Research Article

국토지리학회지. 30 September 2025. 189-204
https://doi.org/10.22905/kaopqj.2025.59.3.3

ABSTRACT


MAIN

  • I. 서론

  • II. 영국 소외지역 논의의 형성과 지역 정책의 진화

  •   1. 영국의 소외지역 논의의 형성

  •   2. 영국 지역 정책의 진화

  • III. 영국의 소외지역과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

  •   1. 영국의 소외지역 문제

  •   2.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

  • IV. 소멸지역 문제를 다루기 위한 레벨링업 정책에서의 시사점

  •   1. 소외지역, 소멸지역의 식별 방식

  •   2. 장소 기반(place based), 장소 민감형(place sensitive) 지역 정책 수립

  • V. 결론

I. 서론

소득과 고용, 기회의 지역적 격차에 대한 불만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포퓰리즘은 학계, 정치계, 지역 사회,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이 다뤄야 할 핵심적인 의제가 되었다. 지역 간 불균형 문제는 인구 감소 및 사회적 여건 악화 등의 지역 침체 문제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이 증가하는 원인이기도 하다(Iammarino et al., 2019). 경제 활동이 특정 지역에 지리적으로 집중하여 ‘번영’하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소외’된 지역 간의 경제적 거리가 확대됨에 따라 소외지역의 박탈감은 증가했다(World Bank, 2009). 또한, 소외지역은 덜 집적되고, 덜 조밀하며, 덜 통합되어 있으므로 지리적으로 불리하고 잠재력이 부족하여 공공자원 할당의 가치가 덜하다고 간주되었고, 그로 인해 지역적 격차는 더욱 심화했다(Hendrickson et al., 2018; Martin et al., 2021). 지역 불균형과 소외지역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권 국가 중심의 정책적, 정치적 논의로 발전했다. 프랑스의 ‘La France Périphérique’(주변부 프랑스), 독일의 ‘Abgehängte Regionen’(정지된 지역), 이탈리아의 ‘Aree Interne’(내부지역), 스페인의 ‘La España vaciada’(텅 빈 스페인) 모두 공간적 불균형에 따른 소외지역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책적, 학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Pike et al., 2023). 이러한 지역 격차와 소외지역 문제는 탈산업화와 지역 불균등 발전 문제를 일찍부터 겪은 유럽 국가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4년 일본 창성 회의(日本創成会議)에서 발행한 일명 ‘마스다 보고서’ 및 후속 저서1)는 지역 소멸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학자, 정책 입안자들은 인구 감소 및 지역 불균등 발전에 대한 정책적, 경제적 논의를 활발히 진행했다(이민주・백일순, 2023).

지역 불균등 발전 문제와 지역 소멸 위기의식은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청년층 수도권 집중의 결과 한국의 다수 지역은 인구 감소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는 지역 경제 침체, 공동체 해체 그리고 행정기능 약화 등의 소위 말하는 지방소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이승철・우정석, 2024).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지방소멸 위험지수로 소멸 위험 지역을 선별하고 정책적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통계 기반 지표인 지방소멸 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인구 수를 해당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으로 지역의 경제, 사회적 맥락과 제도적 대응 능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채지민・임승빈, 2023). 이처럼 인구 중심의 일차원적 접근은 지역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하며, 지역마다 다르게 작동하는 경제 및 산업구조, 정책 흡수력 등 지역 역량을 가려버리는 문제점이 있다(최민정・백일순, 2023). 소외지역, 낙후지역, 소멸지역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는 지역 불균등 발전 문제는 그 규모와 유형에 따라 상이한 접근이 필요하다. 각 지역은 인구 감소 등의 공통된 문제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발전 궤적이 있기 때문에 지역이 겪는 문제의 특성과 지역 역량에 맞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역 격차 및 소멸지역 대응을 위한 정책적 접근은 대체로 중앙집권적이며, 인구통계 지표를 기반으로 동일한 처방을 내리면서 지역적 다양성과 장소적 맥락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성장하는 도시와 쇠퇴하는 지역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실제 상황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정책 결정자에게 대도시 중심의 성장만이 해법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으며, 이는 고질적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지리적 불균등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한다.

지역 격차 및 소멸 위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은 영국의 소외지역(Left Behind Places) 논의와 그에 대한 레벨링업(Levelling up) 정책에서 유의미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영국은 오랜 역사적 누적의 결과 지역 격차 문제가 발생했고, 이는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되었다. 특히, 영국의 불균등 발전 문제는 탈산업화 이후 서비스 및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에 실패한 지역이 등장하며 심화되었다. 예를 들어, 중공업 기반 경제에 의존적이던 잉글랜드 중북부 지역과 소위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으로 불리는 런던-옥스포드-케임브리지 일대의 잉글랜드 남부 지역 간의 격차는 영국 불균등 발전의 현실을 나타낸다(정성훈, 2016). 대도시 중심 성장과 산업 재구조화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 간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소외지역 논의를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 정치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지역 격차에 대한 정치적 불만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자, 소외지역 및 지리적 불평등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관심사를 넘어 다중적이고 상호 연관된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문화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영국 정부는 제도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Pike et al., 2023). 이러한 지리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레벨링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레벨링업 정책은 영국 내 심각한 지역 격차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포함한 일련의 임무(missions)를 설정한 정책이다(MacKinnon et al., 2022). 영국 정부는 지역 간 격차 문제의 현실을 파악하고 레벨링업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경제지표 이외의 사회, 문화적 지표 등 다양한 차원에서 국토 불균등성 분석을 시행했다. 이는 지역의 제도적 역량을 파악하여 국토 전반적인 동일한(one-size-fits-all) 정책적 처방이 아닌, 지역 현실에 맞는 정책을 제공하고 지역이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경제적, 제도적 수준과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2). 레벨링업 정책은 지역의 경제적, 제도적 수준과 역량을 어떻게 키워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규모와 범위가 제시되지 않고, 그 방식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하향식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한계점이 있지만, 지역성을 고려한 장소 민감형(place sensitive) 정책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본 연구는 한국의 지역 불균등 및 지방소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다루기 위해 영국의 소외지역 논의와 레벨링업 정책에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특히, 영국에서 선행된 탈산업화에 따른 지역문제는 잠재적으로 비슷한 문제를 가진 한국에 시사점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며(임석회, 2018), 이외에도 국토 불균등 발전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레벨링업 정책 역시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에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2장은 영국 소외지역 논의의 형성과 지역 정책 진화로 현재 소외지역 논의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영국의 지역 정책 진화 과정과 기존 접근 방식의 한계점을 통해 설명한다. 제3장은 한국의 지방소멸과 영국의 소외지역 문제의 현실을 경제지표로 나타내 설명하며 한국 지방소멸 논의의 한계점을 드러낸다. 제4장은 영국의 레벨링업 정책으로부터 교훈과 시사점을 얻어 한국 지방소멸 위기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제도, 정책적 방향성을 도출한다. 마지막 제5장은 본 연구의 내용을 종합 정리하며 한국 지방소멸 위기에 접근하는 방식은 지역 중심적이며 장소 민감형으로 움직여야 함을 강조한다.

II. 영국 소외지역 논의의 형성과 지역 정책의 진화

소외지역 담론은 불우한 집단에 대한 집단적, 도덕적 책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정치적 담론에서 기원한다(Martin et al., 2021). 소외(left behindness)라는 용어는 ‘아무도 전장에서 버려지지 않는다’라는 ‘No man left behind’의 미군 전투 교리이자 윤리적 신조에서 비롯하는데, 전우애, 충성, 책임, 집단의식을 상징하는 핵심 가치를 표현하며 1960년대 베트남 전쟁부터 미국 대중적 의식으로 굳어졌다(Pike et al., 2023). 이 용어의 지리적 사용은 1960년대 후반부터로, 미국의 Presidential National Advisory Commission on Rural Poverty(국가 농촌 빈곤 자문위원회)는 농촌 빈곤층의 지리적 집중에 대해 ‘The people left behind’라 부르며 농촌 빈곤의 위험과 정책적 대응에 초점을 맞춰 소외라는 용어에 지리적, 정책적 함의를 부여했다.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의 도심 쇠퇴와 교외화로 인한 도시경제 쇠퇴, 빈곤,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소외도시(cities left behind)로 표현했고(Thomas, 1991), 2001년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우한 가정의 아동 교육 성취도를 향상하기 위한 미국 연방 정부 정책인 No Child Left Behind Act(소외 아동 방지법)에서 ‘소외된’(left behind)이라는 용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되었다(Martin et al., 2021).3)

이처럼 지리적으로 소외라는 용어의 사용은 특정 지역 및 지역 구성원들의 소외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의무감과 개입의 필요성을 구체화하여 제도적, 정책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 쓰임은 점차 확장되어 비교적 빈곤하고 덜 발전된 지역과 지역 공동체를 지칭하는 약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World Bank(2009)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생산활동과 사람은 선도 지역, 성장하는 도시로 집중되고 있으며, 고소득 지역으로 향하는 이러한 흐름은 지속적으로 번영하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간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켜 소외된 지역에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어낸다.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지역에서 발생한 중력에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그 중력에 대응을 해야만 하는 소외된 지역과 그 지역 주민들은 각종 제도적, 정책적 접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1. 영국의 소외지역 논의의 형성

영국에서 ‘소외된’이라는 개념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초기 논의에서는 지역이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Robert and Goodwin(2014)의 정의를 인용하면 소외된 사람은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기술을 갖추지 못한 자유주의적 전문직 계층이나 주류 정당의 세계시민적 가치관과 거리를 둔 고령의 백인 노동 계층 유권자’를 의미한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이러한 유권자가 집중된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의미가 확장되었으며, 그 의미에 따르면 영국의 소외지역은 주로 잉글랜드 중북부 산업 쇠퇴 지역(일명 Red Wall 지역)이 해당한다. 이 외에도 정치적 불만과 불만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지역, 경제적으로 가장 불리한 지역이 소외지역으로 일컬어지고 있다(Rodríguez-Pose, 2018). 소외지역에 대한 학술적으로 합의된, 단일한 정의와 이를 식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각자의 기준으로 소외지역을 식별하면 대부분 런던 및 잉글랜드 남동부를 제외한 지역이 소외지역으로 나타난다. 결국 소외지역을 정의하고 식별해 내는 작업은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는 영국 지역 불균등 발전 문제를 용어만 바꿔 정치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핵심은 소외지역이라는 공간적 꼬리표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Pike et al., 2023). 지역문제는 경제, 인구, 사회적 차원이 얽힌 다차원적 문제이며, 그 영향은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인구 감소는 출산율 저하 때문일 수도 있고, 고학력 청년층의 유출 때문일 수도 있고, 산업 쇠퇴에 따른 지역의 인적 자본 재배치의 결과일 수도 있다. 또한, 경제 재구조화와 인구 감소의 연관성은 단순하지 않으며, 경제적 요인이 같더라도 지역마다 상이한 인구 변화를 불러올 수 있고, 인구 감소가 항상 경제 쇠퇴를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Velthuis et al., 2025). 따라서 단일 지표나 단순 지표로 소외지역을 규정하기보다 다양한 조건이 결합한 상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결국 각 지역의 지리적 조건을 분별하면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의 방향성 설정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술적으로 소외지역 논의는 지리적 불평등과 그에 대한 정치, 제도, 정책적 대응을 어떻게 규범화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형성되었다. 구체적으로, 소외지역 논의는 기존의 경제 중심적 불균등 발전 이해에서 벗어나 경제, 사회, 환경, 정치, 제도, 거버넌스, 문화 등 공간적으로 다차원적이고 상호 연결된 요소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Pike et al., 2023). 이 특성들은 모든 소외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아닌, 특정 시간과 장소에 따라 고유하게 조합된다. 따라서 무엇이 소외지역임을 규정하는지 소수의 지표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고, 심지어 대표 지표들은 상관관계가 없거나, 서로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다.

소외지역 논의의 공간적 다차원성과 더불어 시간적 구성 역시 논의의 대상이다(Martin et al., 2021). 시간적 구성은 지역이 성장하거나 쇠퇴한 시기와 관련하여 소외지역을 판별하는 데 매우 중요한데, 지역이 소외되는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다차원적인 요소들은 시간에 따라 동적으로 변화하고 상호작용을 하므로 더욱 복잡하게 전개된다. 소외지역 논의의 지리적 다차원성과 시간적 맥락에 따라 그 지리적 조건들이 변화한다는 점은 해당 지역으로의 정책적 개입의 목표와 방향을 구체화하기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을 시사하며, 이러한 복잡성은 지역 간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의 전제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MacKinnon et al., 2022). 예를 들어, 단순히 지역이 경제적 쇠퇴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해서 그 지역을 소외지역으로 분류하기보다 지역발전의 역사적 관점에서 현재 직면한 경제적 쇠퇴가 일시적인 것인지 혹은 장기적이면서 구조적인 문제인지에 따라 소외지역에 대한 정책적 접근 방식은 달라지며, 만약 해당 지역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소외되었다면, 그 지역을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하는지의 실존적인 질문까지 제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소외지역 논의는 지리적으로 뒤쳐진 지역,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지역을 포괄하여 지칭하는 범용 용어가 아닌 그 안에 존재하는 지역의 시공간적 조건과 제도적 대응 역량을 내포하는 용어이다. 지역 쇠퇴, 지리적 불균등 발전 문제는 오래된 논의이지만, 공간적 불균등성 용어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다양한 지역 간의 차별적인 문제와 역사적 궤적을 가려버리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소외지역 논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소외되었는가에 답하며 소외지역의 지리적, 역사적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시 소외지역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제도적, 정책적 대응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의 정책적 함의점을 제공한다.

2. 영국 지역 정책의 진화

국토 불균등 발전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접근은 소외지역 논의 형성 이전부터 존재했다. 영국의 지역 정책은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정책 목표와 개입 논리를 조정하며 진화해 왔다(Martin et al., 2021). 지역 정책 초기에는 주로 일자리의 지리적 분포와 접근성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미시정책을 전개해 나갔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 실패 대응과 지역 경쟁력 제고의 경제 효율성 논리까지 확대되었다. 정책 적용의 공간적 범위는 유동적이었고, 정부 재정 상황과 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지원 대상은 변화하면서 정책 온/오프의 반복은 지역 정책의 효과를 지속시키는 데 한계를 초래했다(Martin et al., 2022). 한편, 자본 투자와 고용의 지리적 유인을 위한 인센티브와 규제 수단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바뀌었고, 자원 배분 방식 또한 초기의 의무적 배분에서 부문별 맞춤형 지원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영국 지역 정책의 진화는 지역 간 불균등 발전 문제를 영국 정부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 왔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 소외지역 논의에서 왜 지역적, 지리적, 역사적 맥락을 중요시하는지 기존 접근 방식의 한계점도 나타낸다.

표 1은 지난 90년 동안 영국의 지역 정책 진화를 정리한 것으로, 영국의 공식적인 첫 지역 정책은 1928년 산업이전법(Industrial Transference Act)이다. 이는 잉글랜드 북부의 침체한 탄광 및 중공업 지역의 노동자들이 남부로 이동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와 인센티브를 제공한 지역 정책이다. 이후 1934년 특별지역법(Special Areas Act)이 제정되었다. 이는 낙후 지역으로 기업들이 이전하거나 확장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으로, 기존의 산업이전법은 일자리가 있는 지역으로 인력 재배치가 이루어졌다면, 특별지역법은 지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런던 중심의 경제 구조를 공간적으로 재조정할 필요에서 비롯했으며, 재분배적 성격의 지역 정책 토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케인즈주의적 지역 정책을 도입하여 산업수요 감소에 따른 경제 침체를 겪는 지역을 대상으로 정책을 제공했다. 특히, 지역 정책적 개발 대상지가 잉글랜드 북부에서 남부로 점진적 확장을 했다는 점과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에 신규 투자를 규제했다는 점에서 당시 영국 정부는 정책적으로 산업과 고용의 균형적 공간 분포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Margaret Thatcher 총리의 영국 정부는 신고전주의적 시각으로 지역의 공급 측면에서 역량이 부족하거나 경제적 실패를 거듭한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정책을 폈다. 국가 주도적 개발 대상지를 선정하기보다 기업이 지역 내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하고 임금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지역 정책이 전개되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내생적 성장이론 기반으로 지역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전의 지역 정책과는 다르게 지역적 요소를 기반으로 정책이 전개되었고, 중앙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 방식에서 지역 내 기업의 혁신, 기술 훈련 및 향상을 지원하는 등 수평적이고 공급 측면 중심의 자원 배분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 이후로는 전국을 대상으로 한 일관적 지역 정책보다 지역과 기업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지역의 생산성 향상과 경제 균형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지방정부 간의 경쟁 시스템을 만들어 지역 분권화와 로컬 중심 지역 정책을 실현하고 있으며, 이는 후술할 레벨링업 펀드 지원 방식의 토대로 볼 수 있다.

표 1.

영국 지역 정책의 진화

1928-1939 1945-1979 1979-1997 1997-2010 2010-현재
지리적 초점 경제적 침체 지역: 잉글랜드 북부 및 남웨일즈의 탄광, 중공업 중심지 지역 정책을 통한 개발 대상지의 점진적 확장 개발 대상지 점진적 철폐 및 지구(district) 중심의 세분화 런던 포함 영국 전역 잉글랜드 내 38개 지역의 지역-기업 파트너십,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독립적으로 시행
낙후 지역에 대한 해석 실업 문제를 사회 문제로 간주하여 대공황으로 경제적 타격을 많이 받은 지역 케인즈주의적 시각으로 산업수요 감소에 따른 경제 침체를 겪는 지역 신고전주의적 시각으로 공급 측면에서 역량이 충분하지 못하고 경제적 실패를 거듭한 지역 내생적 성장 이론 기반으로 발전을 위한 지역 자산및 역량이 부족한 지역 내생적 성장 이론 기반으로 지역의 기술력, 연결성,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정책 목표 정책 지원 대상 지역의 실업률, 사회 불안 요소 감소 산업과 고용의 균형적 공간 분포 실현 개발 지역 내 기업가 정신과 임금 유연성 촉진 지역 생산성, 경쟁력 향상 지역 생산성 향상 및 경제 균형 조정
주요 정책 수단 침체 지역의 노동력 이전 유도, 기업 인센티브, 고용 창출 유도 개발 지역에 보조금 지급, 산업 규제 강화,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으로의 신규 투자 통제 보조금 축소, 산업 규제 철폐, 임금 유연성에 집중, 기업 구역 도입 지역 개발 전략을 담당하는 전국 단위 개발기관 설립 전국 단위 개발기관 폐지, 지자체 중심의 경쟁 기반 정책
거버넌스 구조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거버넌스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거버넌스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거버넌스 지역 분권을 일부 포함한 상향식 거버넌스 통합 당국 중심의 추가적 분권화 및 지역 중심 정책 결정
공간 정책 형태 정책 지원 타겟 지역 설정 정책 지원 타겟 지역 설정 정책 지원 타겟 지역을 설정+ 일부 지역적 요소 포함 지역적 요소 및 기반 포함 지역적 요소 및 기반 포함

출처: Martin et al. (2021) “Levelling Up Left Behind Places”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

문제는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형태의 지역 정책이 시행되었음에도 영국의 지리적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불균등 발전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공간적 불평등은 확대되었고, 소외된 지역은 경제적 충격을 감당하거나 회복하는데 취약해졌다(Pike et al., 2010). 영국의 지역 정책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첫째, 지역 정책은 일반적으로 국가 거시경제정책의 부속물로 취급되어 공공지출이 지나치게 많다고 판단되면 삭감의 표적이 되었다. 1920-30년대 대공황 시기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특정 시기를 제외하면 영국 정부는 지리적 불균등 문제를 국가적 차원의 중대 과제로 인식하거나 우선시하지 않았다(Martin et al., 2021). 영국 정부는 재정 여건과 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반복적으로 지역 정책의 시행과 중단을 거듭해 왔고, 이는 불균등 발전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 성과를 누적하고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장애가 된 것으로 판단한다. 둘째, 정책의 공간적 범위와 대상 지역의 변경 역시 자원의 집중과 효과적인 개입을 방해하여 불균등 발전을 해소하기 위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 정책이 적용되는 대상 지역은 여러 차례 조정되면서 일관된 전략 수립이 어려웠고, 지원 대상 지역 간 정치적 경쟁 또한 심화되었다(Rodríguez-Pose, 2018). 셋째, 정책 내용 면에서 지역 고용 및 경제성장 중심에 치우쳐 교육, 건강, 사회 등 지역 사회의 다차원적 불균등 발전 요인을 포괄하지 못했다(MacKinnon et al., 2024). 결과적으로 영국의 기존 지역 정책은 단기적 성과는 일부 거둘 수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지역 격차를 완화하거나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영국 지역 정책의 제도적, 정책적 한계점은 소외지역 논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한다. 과거 정책이 경제적 회복이나 균형발전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 이유가 누적되면서, 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단순한 경제지표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이면서 지역 특수적인 요인들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는 정치적 불만, 성장 기회의 결여 등 다차원적인 문제까지 확장되었다(Rodríguez-Pose, 2018). 결국 소외지역 논의는 기존 지역 정책의 대상이 되었던 낙후 지역이나 쇠퇴 지역을 선별하고 정책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지역 정책의 방향성을 경제 중심에서 다차원적 접근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논의로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III. 영국의 소외지역과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

영국의 소외지역과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는 지역 간 격차와 정책적 대응의 어려움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소외지역과 소멸지역의 공통된 특징은 인구 유출과 그로 인한 인구 감소이다. 인구 감소는 대게 경제적 원인에서 시작되지만, 일단 축소가 시작되면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한다(Rodríguez-Pose et al., 2021). 또한, 인구 감소는 지역 서비스와 인프라 제공 및 유지 능력 저하로 이어지고, 빈집 증가나 생활 서비스업이 철수하는 등 지역 활력에 대한 주민 인식을 악화시켜 ‘소외감’을 강화한다(Velthuis et al., 2025). 영국의 소외지역과 한국의 소멸지역 모두 대도시 중심 성장으로 청년층이 특정 도시를 집중적으로 이동하여 지방의 인구 유출과 감소가 일어나는 산업구조 및 일자리 기회의 불균형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지역 내 청년층의 이탈은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지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이어져 경제적, 사회적 재생산 기반 자체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구양미, 2021). 한편, 정책적으로도 유사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영국은 수십 년간 지역 정책을 시행했지만,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 부족으로 지역 간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소외지역 논의가 형성되었고, 한국 역시 지방소멸 대응 정책이 다수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지역 성장이나 인구 유입보다 정주 여건 개선에 치우친 정책 대응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처럼 영국과 한국의 지역문제는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영국은 한국의 상황을 선행하고 있어 영국의 경험은 한국 지역문제에 제도적, 정책적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1. 영국의 소외지역 문제

영국의 소외지역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지역 간 GDP 차이 등의 단순 경제지표의 격차만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영국은 1980년대 탈산업화 이후 수십 년간의 제조업 오프쇼어링과 고용감소,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 성장으로 구산업지역의 경제적 쇠퇴를 유발했고, 공간적 불균등성을 확대되었다(Sunley et al., 2022). 특히, 탈산업화 이후 영국 내 고용 성장은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영국 경제가 금융 서비스 산업군에 과도하게 의존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산업 구조적 지역 간 격차와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림 1은 영국의 지역별 노동생산성4)을 나타낸 자료로, 노동 투입시간 대비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지역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런던 및 잉글랜드 남동부의 근로 시간당 부가가치는 46파운드 이상으로 탄광 지역이었던 웨일즈와 잉글랜드 북부에 비교하여 약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한편, 중공업 지역이었던 맨체스터 광역지역과 그 인근지역 역시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부에 비해 현저히 낮은 노동생산성을 보이며 영국의 지역 간 격차 문제는 산업쇠퇴지역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는 영국 지역별 소득 분포를 나타낸 자료로, 노동생산성과 마찬가지로 런던 및 잉글랜드 남부 지역과 그 외 지역의 격차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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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국 지역별 노동생산성(2019)
출처: United Kingdom HM Government, 2022, p.6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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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영국 지역별 소득(2021)
출처: United Kingdom HM Government, 2022, p.8 번역.

이와 같이 영국의 소외지역 문제의 주요 원인은 탈산업 시대의 서비스 및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에 실패한 데 있다(Martin et al., 2022). 영국 정부는 산업쇠퇴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및 산업정책을 시행했지만, 새로운 산업 및 경제 구조는 과거 중공업이 요구했던 입지 조건과는 전혀 다른 요구사항을 제시하여 정책적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첨단산업으로 산업구조 재편이 이루어져도 괄목할 만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바이오 의약 부문과 같은 지식 집약적 산업조차 감소세를 보였다(Sunley et al., 2021). 이와 더불어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비용 발생은 구산업도시의 생산성 성장을 더욱 더디게 하는 등 불균등한 경제성장의 고질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The Economist, 2022).

영국의 소외지역 문제는 현재의 경제, 산업 지표가 나타내는 경제적 저성과와 지역 간 격차만으로 환원할 수 없다. 낮은 경제적 성과는 결과적으로 인구 유출, 지역 서비스 축소, 정치적 소외, 공동체 정체성 약화 등 다양한 사회, 문화, 정치적 악순환을 초래하고, 지역 주민들은 스스로 소외되었다는 인식을 공유하여 정치적 불만과 그에 따른 포퓰리즘의 대상이 된다(Rodríguez-Pose, 2018). 이러한 악순환은 각 지역의 발전 궤적과 제도적 역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경제적 저성과로 소외지역을 식별하고 중앙정부 주도의 일방향적 정책 지원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소외지역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영국 정부는 후술할 레벨링업 정책을 통해 지역의 지리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정책적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으로 소외지역 문제를 다루고 있다.

2.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

한국의 지방소멸 논의는 인구학적 위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출산율 저하, 청년층의 대도시 집중 현상으로 소규모 지방 도시의 존속 가능성을 우려하며, 지방소멸은 단순히 경제적 낙후만이 아닌, 지방 도시의 존속 가능성 자체에 대한 실존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림 3은 소멸위험지수를 토대로 2024년 기준 시도별 소멸위험지역 수를 나타낸 자료로, 수도권 및 광역 대도시와 그 외 지역 사이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강원특별자치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소속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는 소멸위험지역으로 나타나지만, 수도권과 광역시는 해당 지역 전체 시군구 수 대비 소멸위험지역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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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2024년 기준 시군구별 소멸위험지역 수
자료: 통계청, 2024년 인구동향조사를 바탕으로 저자 작성.

지방소멸지수를 중심으로 한 지방소멸 논의는 단순하면서 이해하기 쉬운 지표로 인구 감소 및 지방의 존속 위험 문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사회적, 정책적 경각심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복잡하게 전개되는 지역문제를 대표할 수 있는 지표로 보기엔 본질적 한계가 있다(정성호, 2019). 특히, 지방소멸지수는 지역 불균형을 오직 인구 재생산 능력 차원에서만 진단함으로써, 지역의 산업기반, 고용구조, 교육 인프라, 주민 삶의 질 등 다층적 요인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러한 단순화는 지역 현실과 정책 대응 간의 괴리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인구 지표에 의해 소멸위험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 경제적, 사회적 재편 역량이 충분히 있어 회복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재 인구 지표상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제조업 입지 변화와 산업구조 재편으로 경제 기반이 약화되거나 청년층 유출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지역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림 4는 지역별 누계 노동생산성 성장을 나타낸 자료로, 2000년을 기준으로 지역적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구소멸지수와 노동생산성 변화 누계를 함께 고려하면 위에서 언급한 지역 현실과 잠재적 정책 대응 간의 괴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울산광역시 하위 기초자치단체 중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울주군 한 곳이지만, 조선산업 생산성 악화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제조업 노동생산성 누계 성장은 가장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인다. 실제로 울산광역시 동구는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되어 정책적 지원을 받을 만큼 산업 쇠퇴 문제가 진행되는 지역이다(우정석・이승철, 2018). 반면,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약 80% 하위 기초자치단체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나타나지만, 제조업 노동생산성 성장은 전국적으로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이는 국내 전기・전자 제조업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거점도시를 이들 지역에 만들면서 노동생산성이 향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구양미・김성훈, 2024). 물론, 전기・전자 제조업이 성장한 지역은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내에서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정치적, 정책적 대응 측면에서 지방소멸의 현실을 정치적 내러티브의 대상으로 환원시켜 지나치게 단순화하면서 실존적 지역문제를 가려버리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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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지역별 누계 노동생산성 성장
자료: 통계청, 한국생산성본부, 노동생산성지수를 바탕으로 저자 작성.

이러한 문제는 지방소멸지수가 특정 시점의 인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지역이 가진 경제, 산업적 궤적이나 제도적 역량을 고려하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또한, 이는 지방소멸의 핵심 문제인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 부족 및 교육,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는데 괄목할 만한 정책적 함의점을 주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 즉, 현재의 지방소멸 논의는 위기 프레임을 기반으로 지방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지나치게 인구 지표에 집중하여 사회, 문화적 맥락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맥락적 요소의 부재는 지역발전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며, 정책 자원 배분이 단순히 소멸위험이라는 인구 지표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지방소멸 논의는 인구 감소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했으나, 이를 정책의 중심 근거로 삼는 것은 지역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위험성이 있다. 영국의 사례에서 봤듯이 소외지역과 지역 불균형 문제는 인구, 산업, 사회, 문화 등의 다차원적 문제이므로 지역 현실에 맞는 맥락적 접근을 통해 실질적 진단과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IV. 소멸지역 문제를 다루기 위한 레벨링업 정책에서의 시사점

영국 재무장관이었던 George Osborne 의원은 2014년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맨체스터, 리즈, 리버풀과 같은 잉글랜드 중북부의 주요 도시들은 런던이나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과 개별적으로 경쟁하기에 규모가 너무 작아 결국 영국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뒤처지게 되었다’라고 말했다(MacKinnon, 2020).5) 소외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인 레벨링업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전개된다. 레벨링업 정책은 경제의 공간적 조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지역 간 격차 문제는 국가 경제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불가피한) 비용이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소외지역의 잠재력 상실, 자원 낭비, 저성장의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레벨링업 정책 백서에도 나와 있듯이, 만약 소외된 지역들의 경제, 사회적 역량을 영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면, 매년 수백억 파운드 규모의 GDP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United Kingdom HM Government, 2022). 이처럼 레벨링업 정책은 경제적 발전이 지속되고 인구를 흡수하는 지역을 희생하여 그 외 지역을 성장시키는 제로섬 접근이 아닌 소외된 지역 자체의 수준과 역량을 끌어올리는 포지티브섬(positive-sum) 접근이다. 또한, 지역적 소외의 원인을 사람과 장소로 구분하지 않고, 사람이 어디에서 성장하는지가 그들의 삶의 기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공간 기반의 접근을 한다. 즉, 지역 격차 해소는 재분배의 문제가 아닌, 소외지역과 지역 주민을 위한 사회, 문화, 경제적 파이 자체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레벨링업 정책이 집적 이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외부효과와 규모의 경제를 발생시키는 집적을 지역발전의 핵심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시사하여 정책적 지원을 통해 소외지역의 몸집 자체를 키워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 내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 레벨링업 정책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1. 소외지역, 소멸지역의 식별 방식

레벨링업 정책 실행의 일부로 영국 정부는 레벨링업 펀드 지원하며 소외지역을 식별했다. 표 2는 레벨링업 펀드 지원을 위한 소외지역 식별 지표로, 각 지역의 경제성과 생활 여건을 다각도로 포착하여 소외지역을 식별하고자 했다. 메인 지표는 지역 생산성, 실업률, 기술 수준을 포함하여 지역 경제의 기본적 역량과 인적 자원의 질을 측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보조지표는 교통 연결성과 부동산 공실률을 사용하여 지역 활력 수준을 간접적으로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기타 지표는 레벨링업 펀드 3차 지원부터 추가된 지표로, 소외지역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성과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사회적 지속가능성과도 연관된다는 점을 반영한다.

표 2.

영국 레벨링업 펀드를 위한 소외지역 식별 지표

지표 가중치
메인 지표 지역 생산성 근로 시간당 총부가가치(GVA)의 로그값 16.7%
지역 실업률 16세 이상 인구의 실업률(%) 16.7%
지역 기술 수준 16-64세 인구 중 국가직업자격(NAQ, National Vocational Qualification) 혹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인구 비율 16.7%
보조지표 교통 연결성 고용 중심지까지 평균 이동 시간(분) 25%
부동산 공실률 전체 상업용 및 주거용 부동산 공실 비율 25%
기타지표 사회・경제적 지표 3차 지원부터 정부가 선정한 추가 사회・경제적 필요 지표(건강, 교육, 환경 등) -

출처: UK Government, Levelling Up Fund: Prioritisation of places methodology note, https://www.gov.uk/guidance/levelling-up-fund-prioritisation-of-places-methodology-note

* 이 지표는 2021년 레벨링업 펀드 1, 2차 지원(경쟁 출연 방식)에 해당하는 지표이며, 2023년 발표한 3차 지원은 2차 지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미선정된 입찰 건들을 대상으로 지역 생산성, 임금, 기술 수준 및 건강 상태(기대수명)의 4개 지표를 사용하여 대상 지역을 선정한다.

레벨링업 펀드 지원을 위한 소외지역 식별 지표 체계는 소외지역 문제를 단순히 소득수준이나 인구 지표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차원적으로 접근하려는 정책적 전환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접근은 영국이 지역 격차 문제를 국가 전체의 잠재력을 제약하는 핵심 요인으로 인식하고 이를 정량화하여 대응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특히, 소외지역 문제를 단순히 복지나 재분배 차원의 이슈로 한정하지 않고, 인적 자본과 지역 자산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 및 선순환 구조 형성으로 연결하려는 점은 기존 영국의 지역 정책과의 차별점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의 지방소멸 논의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예를 들어, 표 3은 한국의 지방소멸 관련 지표들을 정리한 것으로 지방소멸지수 이외의 다른 지수들은 인구지표와 더불어 다양한 지표들을 추가 고려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방소멸 지표들은 여전히 사회적 역량을 고려하지 못하고, 지방소멸 문제를 인구와 경제문제로 환원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이에 관련 정책들은 일회성 지원금이나 단기적 인센티브 지급 정도에 머물러 상주인구 정착 효과는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현재의 접근 방식은 청년층 인구 유출 및 지역 공동체 쇠퇴 관련 단기적 경각심을 주는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 정책 설계나 관련 재정지원의 근거로 활용하기에는 부족하다(채지민・임승빈, 2023). 이러한 소멸지역 식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 문화, 교육 등의 측면을 고려한 다양한 보조지표를 개발・제시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의 쇠퇴 및 소멸 문제는 단순히 경제, 산업, 인구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영국 레벨링업 정책과 레벨링업 펀드는 지역의 경제적, 제도적 수준과 역량을 키운다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를 다루는 지표들은 잠재적 정책 목표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 예를 들어, 산업연구원의 K-지방소멸지수는 지역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지역 역량을 파악이라는 목표가 드러나지만, 다른 지표들은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 자체만을 나타내어 잠재적 지역 정책 수립에 크게 영향력 있는 지표는 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다.

표 3.

한국 지방소멸 관련 지표

지방소멸위험지수 인구감소지수 K-지방소멸지수 지역재생잠재력지수
주관기관 한국고용정보원 행정안전부 산업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지표 20~39세 여성 인구수 대비 65세 이상 인구수 연평균인구증감율
인구밀도
청년순이동률
주간인구
고령화비율
유소년비율
조출생률
재정자립도
1인당 경상연구개발비
전산업다양성지수
지식산업 비율
천명당 종사자수
1인당 GRDP
인구증감율
둘째 이상 출생률 대비
출산 가능 인구 비율
(15~49세 여성 인구)
특징 일본 지방소멸지수 그대로 한국에 적용 인구구조와
인구증감에 초점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에 초점
지역 인구 증가
역량에 초점

출처: 채지민・임승빈 (2023) “지방소멸 위기에 빠진 기초지방정부의 지방소생지수 지표개발과 정책대안에 관한 연구”의 표 1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작성.

물론, 영국 레벨링업 정책에서 사용하는 지표들 역시 한계점은 존재한다. 이를테면, 상대적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지표 간 가중치 설정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있으며, 특정 지역이 실제 필요에 비해 과소평가 되거나 과대평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생산성이나 실업률과 같은 단기적 지표에 치중하면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경쟁 출연 방식으로 운영되는 지원 구조는 지역 간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정책 수혜 능력이 높은 지역에 자원이 집중되는 역설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MacKinnon, 2020). 그렇지만 이를 토대로 소외지역을 식별하고 그 지역을 위한 임무를 제시하며 장소에 민감한 정책적 접근을 함으로써 기존 지역 정책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장소 기반(place based), 장소 민감형(place sensitive) 지역 정책 수립

식별된 소외지역의 발전을 위해 영국은 레벨링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중앙집권적 획일적 접근보다 장소 기반, 장소 민감형 지역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기존 지역 정책은 중앙정부가 설계하고 주도하는 공간 지정형 지역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경제, 사회적 지표를 기준으로 개발 대상 지역을 지정하여 획일적 정책 시행을 하며, 지역 수준에서 정책 설계나 집행에 대한 재량권은 부여하지 않았다(Martin et al., 2021). 주로 보조금 지급, 세제 혜택, 인프라 투자 등의 방식으로 정책이 전개되었으며, 이는 한국의 현행 지역 균형발전 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공간 지정형 정책은 해당 지역과 지역 주민들의 기회를 향상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소외지역 논의와 레벨링업 정책 추진에 있어 무의미하지 않다. 또한, 자원 배분 방식에서 지역 간 입찰 경쟁은 지역 내 혁신을 촉진하고 지역 자원을 결집하는 동인이 될 수 있다. 이는 지역 스스로 정책을 흡수・활용하는 역량을 축적하게 한다는 점에서 레벨링업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와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간 지정형 방식은 지역 간 격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하지만, 단기적으로 소외지역의 사회, 경제적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여전히 유효한 정책 추진 방식으로 판단한다.

한편, 레벨링업 정책은 기존 접근과의 차별성을 장소 기반, 장소 민감형 정책 설계에서 찾는다. 이는 지역별로 상이한 문제와 자원을 고려하여 지역이 주도적으로 발전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하향식으로 개입하는 대신, 지역 주민, 기업, 지방정부 등 다양한 지역 주체가 상향식으로 정책 의제 도출과 집행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지역 현실에 부합하는 맞춤형 전략을 마련한다. 이러한 과정은 지역 고유의 맥락과 잠재력을 반영하므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해 레벨링업 정책은 장소 민감형 접근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동일한 지역 불균등 문제라 하더라도 지역마다 역사, 사회, 문화, 경제적 배경이 상이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해법이 아닌, 개별적 맥락에 따른 차별화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장소 기반, 장소 민감형 지역 정책은 다소 추상적인 접근 방식이지만 레벨링업 정책은 그 실행 논리를 구체화하기 위해 임무 지향형(mission oriented)6)접근을 도입했다. 영국의 소외지역 논의와 레벨링업 정책은 지역 간 격차 해소 문제 역시 경제 및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거대한 도전(grand challenge)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 공간적 불평등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로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책적 전환을 이끄는 일련의 임무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한다. 레벨링업 정책으로부터 시사점을 얻어 한국의 지역 정책 방향도 일정 부분의 수정이 요구된다. 특히, 특정 이슈와 현상에 집중하여 중앙정부로부터의 정책적 대응에 의존하는 지역 정책은 지역 현실을 대변하지 못한 채 정책적 ‘도구’에만 머물러있게 된다. 또한, 단기적 성과에만 치중하여 근본적인 지역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에서 장소 기반, 장소 민감형 접근을 통해 지방정부 스스로가 지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임무로 만들어 의제화하고, 중앙정부는 그 임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 기본 틀과 재정을 지원하는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장소 기반, 장소 민감형 접근은 여전히 제약이 존재한다. 정책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실증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으며, 각 지역은 고유한 발전 전략을 발굴하고 수립하기보다 우수 사례 모방에 치중하는 경향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 또한, 지역 주체의 정책 역량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경우 자율성 확대가 오히려 지역 소외감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사례는 한국 지방소멸 논의에 시사점을 준다. 한국의 지역 정책은 중앙정부 주도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는 단기적 성과를 도출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지역 자체의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지방소멸의 문제의 원인을 수도권 집중 발전에서 찾을 수 있지만, 동시에 지역이 그 문제에 대응할 정도의 수준과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영국 레벨링업 정책의 지역 주체성 강화, 지역적 맥락에 대응한 전략과 임무 지향적 정책 전환은 소멸위기에 놓인 지역에 시사점을 남긴다.

V. 결론

영국과 한국의 소외지역, 소멸지역 문제는 제도적 맥락과 역사적 조건은 다르지만, 모두 지리적 불균등의 구조화라는 공통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영국은 지난 90여 년간 다양한 지역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간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으며, 이는 단순히 재정지원이나 보편적 지역 정책으로는 누적적이고 구조적인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외라는 용어가 다소 논쟁적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으며 대도시 이외 지역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일으켰다. 이에 영국 정부는 레벨링업을 최우선 국내 정책으로 설정하고, 지리적 불평등 문제를 수십 년 만에 국가적 의제로 격상시켰다. 소외지역에 대한 장소 기반 전략인 레벨링업 정책의 부상은 기존 균형발전 접근이 지역의 맥락성을 층분히 반영하지 못했음을 방증하며, 소외지역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영국의 소외지역 논의와 레벨링업 정책은 지방소멸 문제에 직면한 한국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한국 지방소멸 논의는 인구구조 위기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소멸위험지수와 같은 인구학적 지표가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지역문제를 곧바로 인구 부족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겼고, 이는 복잡한 지역문제를 단순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지역문제의 본질은 경제적 성장과 인구의 증감이 아닌, 지역 역량과 잠재력의 지속적 약화에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로 지역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경제, 사회, 문화적 기반이 점차 붕괴되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과 정치적 신뢰가 악화되는, 지역 사회가 국가 발전 과정에서 주변화되는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지방소멸 문제 대응은 인구 및 경제지표에 국한된 위험 진단을 넘어서야 한다. 지역의 경제적 기반, 산업구조, 사회적 연결성, 정치적 불만 등을 고려한 다차원적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단순히 재정지원이나 인프라 확충 등의 정책적 접근 방식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영국의 레벨링업 정책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지역의 고유한 맥락을 반영한 장소에 민감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임무 지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역이 보유한 인적, 물적, 사회적 자본을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유한 임무를 설정하여 실행하는 방식은 한국 지방소멸 대응에도 유용한 프레임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한국이 영국의 정책과 전략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양국은 제도적 맥락, 정치 및 행정 구조, 재정 체계 등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영국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한 상향식 정책 설계의 경험이 풍부하지만, 한국은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 이행 전통이 강하고, 이러한 하향식 통치가 줄곧 성공을 거듭했다. 이와 더불어 지방정부의 정책 역량 또한 지역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에 영국의 소외지역 논의와 레벨링업 정책을 단순히 모방하기보다 지역 역량을 강화할 제도적 장치와 참여적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시사점을 얻을 필요가 있다. 또한, 지방소멸 문제를 단지 위기관리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국가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전제한 주요 임무로 다룰 필요가 있다.

[5] 1) 마스다 보고서로 불리는 「성장을 이어가는 21세기를 위하여: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지방활성화 전략」 보고서는 2014년 5월 일본 창성회의에서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는 도쿄로 집중되는 일극사회 문제는 지방에서의 인구 유출로 그치는 것이 아닌, 일본 전체의 인구 급감을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이 내용은 2014년 8월 「지방소멸: 도쿄 일극중심이 초래하는 인구급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박승현, 2016), 2015년 9월 「지방소멸: 인구감소로 연쇄붕괴하는 도시와 지방의 생존전략」의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 출판되었다.

[6] 2) 레벨링업(Levelling Up)을 직역하면 ‘수준을 끌어올림’이다. 영국의 레벨링업 정책은 지역의 경제적, 제도적 수준과 역량을 끌어올려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여, 분배보다 중소도시 및 산업쇠퇴지역의 성장과 발전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볼 수 있다.

[7] 3) 미국 사례에서 소외된(left behind)의 개념은 지역 구성원의 (비)이동성에 초점을 맞췄다. 젊고 건강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반면, 이러한 요인들에 의해 특정 장소에 머무르거나 갇혀 있는 지역 주민을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한다(Partridge et al., 2020). 이러한 선택적 이주의 결과 소외된 지역 구성원들은 빈곤, 인종차별, 범죄 문제에 노출되고, 이러한 문제들로 고통받는 지역은 소외지역이 되어 제도적, 정책적 도움의 대상이 되었다.

[8] 4) 영국 레벨링업 정책에서 노동생산성(labour productivity)은 근로 시간당 부가가치(GVA per hour worked)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한국은 노동 투입(취업자 1인) 대비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9] 5) 잉글랜드 George Osborne 의원이 가진 잉글랜드 남-북 지역 격차 문제에 대한 관점은 본질적으로 규모 중심의 경제 서사로 풀이된다. 그는 집적 이론과 같은 맥락으로 도시 규모와 밀도가 지역 경쟁력을 키운다는 관점에서 맨체스터, 리즈, 리버풀, 셰필드 등 잉글랜드 중북부 핵심 도시들의 강점을 결집해 런던에 대응할 수 있는 도시 집적체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10] 6) Mazzucato(2021)Mazzucato and Dibb(2019)은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grand challenge)에 대응하기 위해 임무 지향형(mission-oriented) 혁신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임무 지향형 접근은 단순히 산업 육성이나 기술 지원을 넘어 기후변화, 고령화, 해양 보호, 디지털 전환 등 전지구적 문제부터 로컬의 문제까지 다양한 스케일에서의 사회 문제들을 다룬다. 그들은 임무 지향형 정책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정책의 전략적 방향성(정당성과 목적), 정책 간 조정(수평 및 수직적 통합), 정책의 효과적인 실행(적절한 자금 조달과 실행 방식)이 구체화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충분하고 안정적인 재원 조달, 제도적 실행력, 혁신적인 실험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수반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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