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국토지리학회지. 30 September 2021. 365-378
https://doi.org/10.22905/kaopqj.2021.55.3.9

ABSTRACT


MAIN

  • I. 서론

  • II. 관광루트 상의 평양과 부산

  • III. 평양과 부산의 관광자원 이용양상

  • IV. 평양과 부산의 근대관광 표상과 시선

  • Ⅴ. 요약 및 결론

I. 서론

관광은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지역의 유, 무형 콘텐츠를 시각적, 정서적으로 경험하는 일종의 학습된 소비방식이다. 산업혁명 이후 소비능력을 갖춘 시민 여가계층의 탄생, 철도와 기선으로 대표되는 교통의 발달, 여행사의 등장 등은 관광의 대중화, 산업화를 이끌었다. 이는 근대 이전의 여행(travel)과 구별되는 관광의 근대성(modernity of tourism)이라 할 수 있다.1) 여기에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지 건설은 관광목적지를 해외로 확장시키며 제국과 식민지 간의 관광 권력구조와 시선을 탄생시켰다. 즉 식민지관광은 근대와 전근대로 대비되는 지리적 실체를 확인하고, 제국민의 자각과 지배의 정당성을 강화시키는 기재로 작동했다.

이러한 세계 질서가 19세기 말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쳐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만, 조선, 만주 등의 지배권을 확보하며 신흥 제국으로 부상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를 보유하게 된 일본 역시 서구와 같은 시선으로 주변국을 바라보며 근대 제국주의 산물인 관광을 지배의 수단으로 차용했다. 일제의 근대관광은 서구에는 이국취향2)의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관광객체인 동시에 아시아 식민국가에서는 ‘보는’ 소비자이자 ‘보여주는’ 공급자로서 관광주체가 됨으로써 이중적 성격으로 출발하게 되었다(강상중, 1997; 有山輝雄, 2002; 전수연, 2010).

20세기 초 일제에 의해 지리적, 심리적으로 경계 지어지고, 타자화된 조선은 관광객체로서 출발부터 식민지성이 내재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대내외적으로 제국의 정체성과 위상을 확인시키고자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전시장으로 조선을 재현하고 소비했다. 이는 제국의 우월적, 문명적 위상과 식민지의 열등성, 후진성을 대비시키는 시선의 차별화 전략으로 동양을 타자화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다르지 않았다.

일제는 1906년 통감부에 이어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으로 식민지조선에 대한 관광 수요와 공급 정책을 전개했다. 먼저 수요측면에서 보면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서는 새로 획득한 해외 영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제는 본토인 ‘내지’와 구분하여 해외 식민지를 통틀어 ‘외지’ 또는 ‘신내지’라고 부르며 식민지로의 해외관광을 장려했다. 1906년 아사히신문사가 모집한 滿韓巡遊團3)을 계기로 전승국의 시선에서 조선과 만주 등 신내지의 전적지와 근대적 발전상을 둘러보는 단체 해외관광 붐이 조성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60일 日鮮滿巡遊券 발매나 잡지에 실린 ‘조선은 일본의 영토이니 당연히 가봐야 하며 조선을 못보고 나이를 먹는 것은 평생의 손해다’ ‘조선을 관광하자. 조선을 알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등의 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朝鮮總督府, 1938).

조선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부관연락선과 경부·경의·경원선 종관철도를 이용하여 만주까지 하나의 관광권으로 묶는 동아시아 관광루트의 출발점이자 세계로 나가는 문호로 관심이 높았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관광수요정책은 4가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서구에 제국의 위상을 확인시키는 외국인의 조선관광과 제국민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일본인의 조선관광, 동화·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일제의 선진문물을 확인시키는 조선지배층의 일본관광과 경성을 비롯한 도시발전상을 확인시키는 조선인의 국내관광이었다(조성운, 2009; 2010).4) 물론 시기별로 관광소비자의 규모와 성격 등은 달랐지만 일제의 관광수요정책은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알리고 지배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광정치’의 실천이었다.

그리고 관광객의 시각적, 정서적 경험은 여행기, 보고서, 기행문 등의 기록물로 발행되어 관광욕구를 자극하는 정보매체로 기능했다. 일제의 조선관광기록물 중 주관적 시선과 자유양식의 개인기록물과 달리 수학여행보고서 같은 단체기록물은 관광여정, 관광지, 교통수단, 비용, 소회 등을 통해 표준화된 관광소비패턴을 보여준다(전수연, 2010). 이러한 기억유산들은 관광심리와 행동, 세계관과 시대상, 장소성, 정치사회적 영향 등을 반영하고 있어서 식민지조선의 근대관광 양상을 조명하는 자료가 되어왔다.5) 당시 관광객들은 제국의 시선이 투영된 관광매체를 통해 사전 정보를 얻었고, 제국이 보여주는 표상을 소비함으로써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선험적 지식을 확인하는 스테레오타입의 관광을 통해 끊임없이 일본과 조선을 비교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며 제국주의 의식을 체화했다.

다음으로 공급측면에서 일제는 교통체계 구축, 관광기구 설립, 관광정보 제공 등 근대적 관광기반 조성 및 전국적인 관광지 개발과 홍보에 힘썼다. 첫째, 일제는 1905년 경부선과 부관연락선,6) 1906년 경의선, 1911년 압록강 철교, 1914년 경원선과 호남선 등을 차례로 개통했다. 이로써 조선의 동남-서북, 서남-동북 권역을 연결하는 철도망의 골격을 완성했고, 조선과 일본을 잇는 새로운 항로와 조선과 대륙을 잇는 육상 통로를 확보했다. 여기에 1910년대에 이미 일제시기 도로의 50% 이상을 건설하여 도로망의 기본 축을 마련하고, 철도역과 주변 관광지를 연결시켰다. 이러한 근대교통체계는 일제의 대륙진출과 자원수탈을 위한 정치경제적 목적과 함께 일찍부터 관광객 수송수단으로 이용되어 조선관광의 편의를 제고함으로써 일본-조선-만주를 잇는 철도관광루트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蘇斗永, 1991; 李良姬, 2007; 조성운, 2009; 김백영, 2014).

둘째, 1912년 조선의 관광정책을 총괄하는 조선총독부 철도국 내에 일본여행협회7) 조선지부를 설치하여 관광지와 루트 개발, 관광알선과 안내, 관광정보매체 발행 등 다양한 관광사업을 전개했다. 또한 1916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를 발족하여 고적조사를 통한 명승지 발굴과 공원화 등 관광지 육성을 뒷받침했다(朝鮮總督府鐵道國, 1934). 특히 전국적인 철도와 도로망을 기초로 관광지개발이 활발하였고, 경성, 평양, 부산 등 주요 거점도시를 시작으로 일제의 근대표상이 파노라마식으로 세워지면서 관광대상으로서 공간재구조화가 진행되었다. 1930년대 들어 조선지부는 조직을 확대해 조선관광협회와 7개 지방관광협회를 발족하였고, 주요 철도역에 관광안내소를 설치했다. 1940년 전후 일제가 전쟁준비로 신사참배를 제외한 여행금지조치를 시행하기 전까지 숙박·요식·운수·사진·권번업 등 관광사업 유치와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有山輝雄, 2002; 조성운, 2010; 김백영·조정우, 2014).

셋째, 관광안내서, 잡지, 繪葉書8), 지도 등 다양한 관광매체9)가 민관에서 두루 발행되어 조선관광을 선전했다. 온라인상에서 관광지 정보를 빠르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오늘날과 달리 근대전환기의 관광정보 취득경로는 제한적이었으므로 소비자에게 유형의 정보매체가 가지는 영향력은 매우 컸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인들은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관광보다는 관광안내서나 여행안내소에 의지하여 관광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米家泰作, 2014). 특히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이나 국책기구에서 발간한 매체는 주체의 의도와 시선이 투영된 관광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관광객의 선험적 지식 형성과 표준화된 관광소비패턴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관광매체는 유형에 따라 조선의 명승지와 유적지, 조선인의 풍속과 생활상, 관광루트와 교통·숙박·경비 등 정보의 양과 내용이 다양했다. 그중 방대한 정보가 망라된 표준 관광안내서나 근대와 전근대의 표상을 시각적으로 대비시킨 사진자료 등은 식민지조선에 대한 일제의 관광공간설계와 관광이미지 재현 등을 분석하는 자료가 되어왔다.10) 결국 일제의 관광공급정책은 조선을 관광대상으로 상품화하는 ‘이미지정치’의 산물이었다.

이상으로 일제강점기 식민지조선의 근대관광을 수요공급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조선관광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 일문학, 지리학 등에서 적지 않은 성과가 축적되었다. 그 중 단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관광연구는 김창수(2009)가 사진엽서를 통해 식민지시기 인천의 이미지와 시선을 고찰하였고, 김승(2011)이 일제강점기 해항도시 부산의 온천개발과 지역사회 동향을 분석하였다. 박찬승(2015)은 식민지시기 평양기생의 관광, 예능인 등 다중적 표상으로서의 의미와 역할, 인식을 고찰하였고, 서기재(2016)는 일제강점기 관광잡지에 소개된 평양의 관광자원과 기생이미지 등을 고찰하고 오늘날의 미디어를 통한 북한관광의 문제점을 진단하였다. 원종혜(2016)는 일제 강점기 관광지도를 통해 경성의 관광지와 관광일정, 관광이미지 등을 살펴보았고, 김선정(2017)은 1920~1930년대 관광안내도에 나타난 근대 도시 경성의 이미지를 분석하였다. 김선희(2018)는 근대 서울의 관광 이미지와 표상을 일제강점기 사진그림엽서를 통해 유형화하고 표상된 시선과 인식을 탐색하였고, 조정민(2018)은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를 통해 부산의 관광표상과 로컬리티를 고찰하였다.

선행연구를 토대로 조선의 근대관광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채택한 관광을 통해 지리적 실체로서 조선의 지역들을 어떻게 재구조화하고 소비했는지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제의 관광정책은 경부선·경의선을 잇는 종관철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조선관광의 실질적인 시종점으로서 부산과 평양은 수도 경성 못지않은 중요한 관광거점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일제가 생산, 소비한 관광안내서, 관광기록물, 사진그림엽서 등을 활용하여 관광루트와 관광자원, 관광이미지 형성과 표상에 투영된 시선 등을 고찰하여 식민지조선의 근대관광도시로서 평양과 부산의 위상과 구조, 성격을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II. 관광루트 상의 평양과 부산

일제가 철도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개한 관광정책이 공간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관광루트이다. 그림 1에서 보듯이 조선과 만주를 하나의 관광권으로 묶은 선만관광루트는 滿鐵11) 본선(대련~봉천)과 안봉선(봉천~안동)12)을 잇는 만철루트와 경의선(신의주~경성)과 경부선(경성~부산)을 잇는 조선루트가 결합된 관광코스로 1930년대 중반 북선루트(청진~장춘~북만주) 개통 전까지 공식루트로 이용되었다(정재정, 2010; 김백영·조정우, 2014). 표 1에서 ①은 교토시립제2상업학교, ③은 전국중등학교지리역사과교원협의회, ⑥은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의 수학여행 및 시찰여정인 반면 ②는 만철, ④와 ⑤는 旅程と費用槪算13)이 제시한 상업적 여정이다. 관광루트의 성격과 기간에 따라 방문지가 추가되고 있으나 진출입 경로는 ⑥의 북선루트를 제외하면 일본-만주(대련)-조선(부산)-일본과 일본-조선(부산)-만주(대련)-일본 노선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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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조선ㆍ만주 관광루트(자료: 奈良女子高等師範學校(1939)를 기초로 재작성.)

표 1.

조선ㆍ만주 관광루트

관광코스 기간
(조선체류)
관광일정
南滿洲及
朝鮮視察(1916)
20일
(4일)
京都→大阪→神戶→岡山→宮島→下關→門司→(船內)→大連→旅順→撫順→奉天→安東→평양→경성→
인천→부산→(船內)→博多→熊本→宮島→大阪→京都
鮮滿觀光旅程
(1916)
21일
(4일)
東京→下關→(船內)→부산→경성→인천→경성→평양→安東→奉天→新京→哈爾賓→新京→吉林→
鐵嶺→蘇家屯→撫順→湯崗子→大石橋→營口→大連→旅順→大連→(船內)→下關→東京
滿鮮旅行報告
(1925)
20일
(5일)
門司→(船內)→大連→旅順→大連→營口→湯崗子→鞍山→湯崗子→公主嶺→長春→哈爾濱→奉天→撫順
→奉天→安東→평양→개성→경성→인천→경성→부산
滿鮮周遊旅程
(1928)
14일
(3일)
東京→神戶→門司→(船內)→大連→旅順→撫順→奉天→安東→평양→경성→부산→(船內)→下関→東京
滿鮮周遊旅程
(1938)
16일
(3일)
下関→(船內)→부산→경성→평양→奉天→撫順→新京→哈爾濱→新京→湯崗子→大連→旅順→大連
→(船內)→門司
滿鮮修學旅行
報告書(1939)
19일
(4일)
奈良→京都→米原→敦賀→(船內)→청진→牡丹江→哈爾濱→新京→奉天→大連→旅順→大連→奉天→
撫順→奉天→安東→평양→경성→경주→부산→(船內)→下関→大阪→奈良

선만관광루트의 전체일정 14일~21일 중 조선관광은 3일~5일로 짧았고, 관광공간도 평양-경성-부산을 잇는 철도를 따라 극히 제한적이었는데 이러한 설계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식민지관광이 공간적으로 정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핵심 거점도시 외에는 철도연선의 인천과 개성 정도가 포함되었고, 1930년대 후반에서야 경주가 포함되었다. 그나마 조선총독부가 있는 수위도시 경성에서의 1~2일 관광과 평양에서의 역사유적지 관광, 부관연락선을 타고 내리는 부산항 주변을 잠시 둘러보는 것을 제외하면 대개의 지역이 통과지에 불과했다. 즉 선만관광에서 조선은 일제의 대륙을 향한 관문으로서 조선의 주요 도시들이 관광지로 설계되지 못했던 것은 일제가 식민지관광의 중심을 만주에 두었기 때문으로 이는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군사적, 경제적 전진기지로서 만주경영에 관심과 역량을 쏟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

식민지조선의 관광공간설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조선관광루트이다. 표 2의 ①은 고베고등상업학교(고베실업협회 포함)가 1905년 7월 23일부터 8월 26일까지 35일간 조선을 광범위하게 돌아본 후 1906년 출간한 보고서로 여정은 고베에서 부산을 거쳐 원산항으로 입항하여 육로로 내륙의 5개 촌을 가로질러 평양까지 이동한 후, 평양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이동하며 12개 도시를 방문했다. 주요 거점도시인 원산, 평양, 경성, 대구, 부산에서 3~4일, 그 외의 도시와 마을에서는 반나절~하루를 체류하며 비교적 자세히 여행한 것은 ‘조선은 내지의 연장으로 식민개척과 교육의 책임이 있으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으므로 조선을 여행하여 그 실정을 일반에 알리기 위함’이라는 여행목적에서 잘 드러난다. 이 시기 대중적 단체관광의 발단이었던 만한순유단과 함께 답사와 시찰의 성격이 강했던 이러한 여행은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조선에 이주하여 기회를 이용하라’ ‘조선관광은 전승국 국민에 어울리는 호쾌한 행동’이라며 조선으로의 이주와 관광을 권유했던 시대적 요구의 일환이었다(윤소영, 2007 재인용).

표 2.

조선관광루트

관광코스 기간 관광일정(주요 체류일)
韓國旅行報告書
(1906)
35일 고베출발→(선내)→부산→(선내)→원산도착ㆍ시찰(3일)→원산출발→사타독마을시찰→양덕채촌시찰
→지수촌시찰→마항리시찰→강동시찰→평양도착ㆍ시찰(3일)→개성도착ㆍ시찰→진남포시찰→
경성출발→인천시찰→경성시찰(4일)→경성출발→수원ㆍ천안시찰→대전ㆍ조치원시찰→대구도착
ㆍ시찰(3일)→부산도착ㆍ시찰(3일)→동래범어사시찰→부산출발→(선내)→모지→고베도착
朝鮮金剛山探勝
(1920)
16일 도쿄출발→시모노세키→(선내)→부산출발→경성도착ㆍ관광→평강도착→금강산도착→내금강ㆍ
해금강ㆍ외금강관광(8일)→원산출발→경성출발→부산도착ㆍ관광→(선내)→시모노세키→도쿄도착
東京-朝鮮
往復旅程(1928)
11일 도쿄출발→시모노세키→(선내)→부산도착ㆍ관광→경성도착ㆍ관광(2일)→인천관광→경성출발→
평양도착ㆍ관광→중국 안동도착ㆍ관광→대구도착ㆍ관광→부산도착ㆍ관광→(선내)→ 시모노세키
→도쿄도착
東京-朝鮮
往復旅程(1938)
11일 도쿄출발→시모노세키→(선내)→부산도착ㆍ관광→경성도착ㆍ관광(2일)→인천관광→경성출발→
평양도착ㆍ관광→중국 안동도착ㆍ관광→대구→경주도착ㆍ관광→부산도착→(선내)→시모노세키
→도쿄도착

②~④는 旅程と費用槪算에 수록된 공급측면의 상업적 조선관광루트이다. ②는 1920년 초판에 조선 단독 관광루트로 가장 먼저 소개된 16일 일정의 금강산 여정이다. 도쿄를 출발해 부산을 거쳐 기차로 경성에 도착해 시내관광을 하고, 평강에서 육로로 금강산에 진입해 8일을 체류하며 내금강, 해금강, 외금강의 명소들을 둘러본 후 원산, 경성을 거쳐 부산으로 돌아왔다. 일제는 금강산을 압도적인 자연미의 조선 최고 명승지로 인식하고 1910년대부터 철도와 도로 접근성을 제고하며 식민지조선의 핵심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1916년 외국인을 위한 영어와 러시아어 금강산안내를 비롯해 다수의 관광안내서와 여행기가 발행되었고, 단일관광지로는 가장 많은 사진그림엽서가 발매되어 금강산의 관광적 위상을 짐작케 한다.

③과 ④는 11일 일정의 조선일주코스로 경로의 차이는 없으나 시간흐름에 따라 약간의 관광지 변화가 나타난다. 1928년 여정은 도쿄를 출발해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에 입항해 기차로 경성, 인천, 평양을 관광하며 국경도시 안동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대구, 부산으로 내려오는 여정이다. 그런데 조선일주코스의 반환점을 평양이나 경의선의 종착지인 신의주가 아니라 만주의 안동을 포함시킨 것은 압록강철교를 건너는 월경체험과 일제가 개발한 鎭江山公園에서 식민지조선을 확인시키기 위한 의도된 설계라 할 수 있다. 1938년 여정은 같은 경로로 안동을 돌아 대구에서 시내관광을 생략하고 곧바로 경주로 이동하여 반나절 사적관광을 한 후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1920년대부터 조선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큰 인기를 모았지만 교통접근성이 낮았던 경주가 뒤늦게 조선일주코스에 포함된 것은 1935년 동해남부선(부산~포항) 개통 이후로 봐야한다(김백영·조정우, 2014).

조선관광루트의 기본 틀 역시 금강산탐승을 제외하면 평양-경성-부산을 잇는 종관철도를 따라 연선의 도시들을 관광지로 포함시키는 일제의 식민지 철도와 도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단 조선일주코스가 국경을 건너오게 한 설계는 대륙을 향한 일제의 심리적, 공간적 연장과 제국을 표상하고 조선을 탈맥락화한 결과였다. 또한 관광목적에 따른 공간소비양상은 상업적 관광이 단순하고 정형화된 반면 시찰관광은 공간범위, 체류기간, 이동수단과 경로 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특히 조선일주코스에서 평양과 부산은 1~3일을 체류했던 식민지조선의 실질적인 관광의 시작과 끝이었다. 평양은 만주를 연결하는 배후도시이자 일제의 전쟁신화를 확인하는 유적지로, 부산은 조선관광의 기점이자 일찍부터 친숙했던 관광휴양지로 소비되며 수도 경성과 함께 식민지조선의 핵심 관광거점으로 기능했다.

III. 평양과 부산의 관광자원 이용양상

일제의 식민지관광은 총독부 주도로 전개되어 관광공간설계는 물론 관광자원 이용도 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역에 따라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키거나 일본인 취향의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제국과 식민지의 표상을 대비시키는 등으로 일제의 정당성과 위상을 확인시키고자 했다. 표 3은 선만관광루트와 조선관광루트의 다양한 관광코스를 상업적 관광과 수학여행 및 시찰관광으로 구분하고, 그 성격에 따라 평양과 부산의 관광자원 이용의 차이를 보여준다. 먼저 지역 간 관광자원 수를 보면 상업적 관광과 수학여행 및 시찰관광 모두 평양에 비해 부산의 관광자원이 적은데 이는 평양의 관광자원이 대동강 변을 중심으로 밀집 분포하는 반면 부산은 도심과 교외 지역으로 관광자원이 분산되어 이동거리 멀었기 때문이다.

표 3.

관광코스별 평양ㆍ부산의 관광자원 이용

관광코스 평양 부산
상업적관광 鮮滿觀光旅程
(1916)
대동문, 연광정, 모란대, 을밀대, 현무문, 부벽루, 영명사,
기자묘, 시가
부산항, 부산역
滿鮮周遊旅程
(1928)
대동문, 연광정, 모란대, 을밀대, 현무문, 부벽루, 영명사,
기자묘, 시가
부산항, 어시장, 시가
東京-朝鮮
往復旅程(1938)
7층석탑, 대동강, 대동문, 연광정, 모란대, 을밀대, 칠성문,
현무문, 기자묘, 부벽루, 시가
부산항, 용두산, 용미산, 신사, 대정공원,
송도공원, 절영도, 시가, 동래온천
수학여행

시찰관광
韓國旅行報告書
(1906)
대동강, 대동문, 연광정, 보통문, 모란대, 평양성, 을밀대,
전금문, 최승대, 금수문, 칠성문, 현무문, 부벽루, 기자묘,
기린굴, 조선마을, 시장
부산항, 용두산, 용미산, 어시장, 왜관, 시가,
어촌마을, 부산우체국, 부산개성학교, 송도해변,
영도마을, 동래읍내와 온천, 범어사
南滿洲及
朝鮮視察(1916)
대동강, 대동문, 보통문, 을밀대, 연광정, 금수문, 부벽루,
청일전쟁충혼비, 평양기생, 평양조선은행, 시가
부산항, 잔교, 부관연락선, 부산이사청,
부산우체국, 시가, 해안마을
滿鮮旅行報告
(1925)
기자묘, 을밀대, 현무문, 부벽루, 연광정, 대동문,
평양중학교, 서기산충혼비, 상품진열소
경상남도 물산지열관, 용두산공원, 용미산신사,
수산시험소, 송도공원
滿鮮修學旅行
報告書(1939)
평양신궁, 칠성문, 평양박물관, 대동강, 을밀대, 현무문,
영명사, 부벽루, 시가, 기생학교
부산역, 부산항

다음 상업적 관광의 선만여정과 조선왕복여정에서 평양의 관광자원 이용은 큰 차이가 없지만 부산은 선만여정에서 입출항으로서 극히 제한적이었던 관광자원 이용이 조선왕복여정에서는 공원, 신사, 시가, 동래온천 등으로 확대되어 차이를 보인다. 반면 수학여행 및 시찰관광에서는 1939년 滿鮮修學旅行報告書 일정을 제외하면 두 지역 모두 관광자원의 이용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상업적 관광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류기간이 길고 자유로운 관광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의 관광자원은 대동강과 모란봉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역사유적지, 기생학교, 시가 등이며, 부산은 부산항과 용두산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잔교와 해변, 시가와 공원, 근대건축물 등과 교외에 분산되어 있는 온천, 사찰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1906년 韓國旅行報告書는 35일간의 장기여정으로 평양과 부산에서 각 3일을 체류하며 다수의 마을과 시장을 비롯해 부산항에서 멀리 떨어진 동래온천과 금정산 범어사까지 관광하였고, 1916년 南滿洲及朝鮮視察은 관광자원을 사진그림엽서로 남겼으며, 1939년 滿鮮修學旅行報告書는 부산에 도착해 곧바로 승선하여 관광이 생략되었다.

일제강점기 평양과 부산의 관광자원을 파악할 수 있는 또 다른 자료는 러일전쟁 이후 대량으로 발매되어 관광기념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사진그림엽서이다. 이는 식민지조선을 관광대상으로 선전하기 위해 장소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상징도구로서 일제가 조선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관광자원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표 4는 일제가 생산, 소비한 조선의 사진그림엽서가 망라된 도록출판물 2종에 수록된 평양과 부산의 주요 관광이미지와 빈도이다. 도록에 수록된 전체 이미지는 수위도시 경성이 1,452매, 평양 676매, 부산 490매 순으로 많았지만 관광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행사, 기념, 풍속, 의례, 통계엽서 등을 제외하고 원 자료의 분류에 따라 관광, 명소, 도시경관, 온천, 기생 사진그림엽서 중 평양과 부산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정리하였다. 이미지의 성격상 평양은 경성 다음으로 역사유적지의 재현이 많았고, 부산은 일제의 표상인 시가지와 근대건축물의 재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구체적인 재현양상과 빈도를 보면 평양은 대동강 변의 모란봉을 중심으로 집중 분포하고 있는 유적지와 기생 이미지가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고 이어서 시가지와 근대건축물, 군사시설 등이 많았다. 부산은 일제가 필요에 의해 개발한 부산항과 용두산 주변의 시가지와 근대건축물, 공원과 해수욕장, 동래온천 등 도시경관과 관광휴양지 이미지가 높은 빈도를 보여 관광코스별 평양과 부산의 관광자원 이용이 사진그림엽서 이미지 빈도로도 확인되었다.

표 4.

평양ㆍ부산의 주요 관광이미지와 빈도

자료명 평양(빈도) 부산(빈도)
사진엽서로
보는
근대풍경
(2009)
모란대(31), 을밀대(29). 대동문(22), 대동교(18),
평양기생과 기생학교(18), 근대건축물(17), 대동강(17),
시가전경(16), 연광정(14), 부벽루(13), 현무문(12),
기자릉(12), 전금문(9), 칠성문(8), 청류벽(7), 보통문(6), 신사(6),
충혼비(3), 영명사 (3), 낙랑고분(3), 최승대(3),
기타 평양백경, 평양오십경 등
동래온천(37), 온천시설(26), 잔교와 부관연락선(22),
부산항전경(20), 부산역(20), 장수통(18), 시가전경(17),
송도유원지(16), 신사(15), 공원(15), 사찰(13), 부산부청(14),
금강원(10), 세관(8), 상업회의소(7), 학교(7), 어시장(7),
경남도청(7), 해운대(4), 우편국(4), 병원(4), 학교(4),
부산대교(3), 부산진성, 기타 건축물 등
그림엽서로
보는
근대조선
(2017)
모란대(29), 평양기생과 기생학교(26), 을밀대(19), 대동문
(14), 시가전경(13), 현무문(12), 군사시설(12), 기자능(11),
부벽루(10), 대동강과 대동교(10), 전금문(9), 연광정(8),
근대건축물(8), 최승대(6), 칠성문(6), 영명사(6), 충혼비(6),
보통문(4), 청류정(4), 능라도정수지(4), 평양역(3), 신사(3),
시장(3), 기타 낙랑유물 등
시가전경(23), 송도유원지(14), 동래온천(14), 잔교와 연락선(9),
용두산(8), 경남도청(7), 부산대교(7), 부산역(6), 향양원(6),
학교(6), 병원(6), 부산진성(4), 부산부청(4), 세관(3),
상업회의소(3), 우편국(3), 대정공원(3), 어시장(3),
상업장려관(3), 상품진열관(3), 백화점(3) 등 기타 건축물 등

자료: 부산박물관(2009), 우라카와가즈야(2017) 등을 기초로 재구성.

IV. 평양과 부산의 근대관광 표상과 시선

관광루트와 관광일정, 관광자원의 이용과 빈도 등을 통해 일제가 근대관광도시로서 평양과 부산의 자연적, 역사문화적 장소이미지를 관광상품화하는 한편 일제의 필요와 일본인 취향에 맞춘 개발을 통해 지역을 재구조화하고 소비하였음을 살펴보았다. 본장에서는 2009년 부산박물관의 「사진엽서로 보는 근대풍경」과 2017년 우라카와가즈야의 「그림엽서로 보는 근대조선」에 수록된 평양과 부산의 관광이미지 31매를 선정하고 각 이미지의 제목과 부가설명, 이미지의 대비 등을 통해 일제의 시선과 인식을 탐색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사진그림엽서가 정보전달을 위한 대중적인 시각매체로 부상하면서 관광기념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한반도 사진그림엽서는 일제의 통치 지역 중에서도 특히 다종다양하게 대량으로 발행되었다(김선희, 2018). 그중 일제의 시선으로 재현된 평양과 부산의 사진그림엽서는 지역이미지를 고착화시킬 개연성이 높고, 이미지에 표상된 차별적 시선과 인식을 통해 식민지조선의 지방도시에 대한 일제의 관광소비의도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그림 2, 3, 4, 5, 6, 7, 8은 가장 조선적인 도시로 여겨지며 경성 다음가는 서선관광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던 평양 대동강 변의 금수산 모란봉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역사유적 이미지들이다. 모란대, 을밀대, 부벽루, 영명사, 전금문, 연광정, 최승대, 청류정 등이 밀집해 있고, 평양성의 대동문, 보통문, 칠성문, 현무문 등과 기자묘, 기생학교, 충혼비 등도 가깝게 분포하여 관광동선이 짧은 편이었다. 평양의 전통적인 모습을 표상하는 이러한 유적지들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소비된 것이 아니라 청일, 러일전쟁 등 일제의 전쟁사적 의미를 각인시키고 승전을 기념하는 패턴화된 관광지로 설계되어 평양의 전통과 역사를 탈맥락화하는 동시에 일제의 전적지이자 선전장으로 재해석되었다.

이미지에 부가된 설명을 보면, 평양 6대문 중 가장 규모가 큰 대동문과 보통문은 임진왜란 시 小西行長이 평양을 점거했을 때 명나라 군과 대치한 곳, 칠성문은 청일 및 러일전쟁 시의 전장, 현무문은 청일전쟁 시 原田重吉이 성문을 파괴하며 분전하여 청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모란대에는 청군포대가 설치되었었고, 평양 8경의 하나로 누정 아래 11m의 석축을 쌓아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을밀대는 청일전쟁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으며, 연광정은 小西行長이 명나라 심유경과 화평을 협상했던 곳, 충혼비는 청일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의 넋을 기리는 곳 등 전쟁기억을 소환하는 장소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외에 식민주의의 정당성을 기자조선을 근거로 한 조선의 고대사에서 찾으려는 의도로 기자릉의 이미지도 다수 소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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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대동강과 모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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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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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부벽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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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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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현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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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연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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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기자릉

그림 9그림 10은 평양의 또 다른 관광이미지인 평양기생과 기생학교이다. 대동강 변에 건축된 조선식 건물인 기생학교를 ‘조선 유일의 관광명소’로 소개하는 동시에 기생은 ‘조선여행에서 가장 인상에 남을 정도로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설명하며 평양을 넘어 조선의 대표적인 관광이미지로 소비하고 있다. 이는 기생이 단순한 인물사진을 넘어 생활상과 수업내용 등이 이미지화되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권혁희, 2003), 조선의 인상으로 고착화되거나(권행가, 2001), 조선의 여성상으로 기생과 빨래하는 여성을 성과 노동력의 관계로 이미지화한(서기재, 2002)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30년대 평양관광코스(평양역-신사-칠성문-박물관-기자릉-을밀대-현무문-전금문-대동강유람선-대동문-연광정-기생학교-시내견학)에서도 기생학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관광이미지였다(조성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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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평양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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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기생학교

그림 11, 12, 13, 14, 15, 16은 식민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근대적 표상이미지들이다. 신사, 신시가지, 서구식 건축물, 정비된 도로와 전차, 대동교와 철도역, 병원과 학교, 군사시설 등이 식민도시의 발전상을 확인시키는 관광이미지로 소비되었다. 이러한 근대표상들은 대개 ‘조선을 종관하는 대동맥’ ‘평양부청의 위용’ ‘상점이 즐비한 번화한 거리’ ‘약진을 보여주는 번영의 극’ 등으로 수식하며 일제의 선진문명을 선전하는 기표로 소비된 반면 그림 16은 ‘단층 건물이 늘어선 정비되지 않은 조선인 거리’로 설명하여 근대와 전근대를 대비시키는 차별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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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대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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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평양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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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평양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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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평양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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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대화정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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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대동문거리

부산은 일찍이 倭館이 설치되었었고,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과 일본인거류지 형성으로 조선으로의 도항자 및 이주자가 크게 늘면서 일제 초기 부산에는 일본가옥이 1천여 호, 재조일본인 및 관광객이 7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문순희, 2012). 1893 인천-오사카와 모지, 1902 원산-오사카와 모지 등을 연결하는 항로가 있었으나 1905년 부관연락선과 경부선 철도의 개통으로 부산은 ‘東亞大陸으로 통하는 通路’ ‘世界의 通路’ ‘歐亞大陸으로 통하는 門戶’ 등으로 소개되며(조성운, 2008) 가장 빠른 조선 입국경로이자 만주, 중국, 러시아를 잇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부산은 식민지조선에서 일본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거류지였고, 입출항으로서의 기능이 특화되었으며, 도심과 외곽지역에 분산된 관광자원의 입지 등으로 역사관광도시 평양과 달리 체재형 휴양관광도시로서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전진기지로서 부산은 일찍부터 일제에 의해 도시화가 진행된 근대화의 표상공간이자 해수욕장, 온천 등 관광자원 개발을 통해 관광휴양지로 재구조화되었고, 이는 지역 관광이미지 형성의 근간을 이루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이미지는 식민지조선의 관광기점으로서 부산항에서부터 용두산 일대 시가지를 포함하는 당시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재조일본인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근대 도시이미지에 집중되었다. 그림 17은 부산항 전경으로 1906년 최초의 근대식 여객부두시설인 부산항잔교에 이어 1913년 북항잔교가 준공되면서 일대에는 세관, 부산역, 우편국, 어시장 등이 들어섰다.

그림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은 부산의 근대도시경관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이다. 여객부두와 부관연락선을 배경으로 밀려드는 입항자들이 ‘조선의 문호’ ‘대륙의 출발점’으로서 부산항의 위상을 표상하고, 항구 입구의 서구식 세관 건물은 ‘항안을 감시하는 위풍’ ‘무역의 교두보’로, 1910년에 준공한 부산역은 ‘조선의 현관’으로 소개되고 있다. 왜관 시절부터 용미산, 용두산을 중심으로 여러 신사가 분포하였는데 그중 용두산 신사는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로 부산항과 시가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높게 설계되었고, ‘웅장한’, ‘위용’ 등으로 수식된 부산부청을 비롯하여 우편국, 경남도청, 상업회의소, 학교, 병원 등 근대 건축물들이 관광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그리고 용두산 동서부시가지는 지금의 중구 광복동, 중앙동 일대로 일본인 주택과 상가가 밀집해 있었다. 장수통은 ‘번성한 상점가로 내지 기분이 넘치는 夜店이 유명’하고, 북항 매축 지역에 조성된 대창정, 역전통 역시 ‘반도 제일의 무역항 부산의 대표적인 상점가로 번영을 다투는 상점들이 즐비’하다고 소개하였다. 반면 그림 26은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산록에 초가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조선마을로 잘 정비된 일본인 거주지와 시가지에 대비되는 일제의 차별적 시선을 표상하고 있다. 이외에 ‘부산의 명물’, ‘건축과학의 위용’ 등으로 수식된 1934년 준공한 영도대교의 도개장면과 어시장 등이 관광이미지로 소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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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부산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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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잔교와 부관연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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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부산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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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부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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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용두산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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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부산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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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부산우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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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

서부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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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5.

대창정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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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6.

영도 조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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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7.

도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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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

어시장

그림 29, 30, 31, 32은 부산의 또 다른 관광이미지로 일본인들의 여가활동을 위해 개발된 관광휴양지이다. 1915년에 조성한 도심의 용두산 공원을 비롯하여 용두산 서남쪽 해안가에 1913년부터 개발한 송도해수욕장과 송도공원은 광복동, 남포동 등 일본인 거주지와 인접한 해안관광지로 큰 인기를 끌었고, 대정공원은 다이쇼천황의 즉위를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18년에 운동장을 겸비한 공원으로 준공하였다. 도심에서 벗어나 북쪽 원거리에 위치한 동래온천은 개항 이후부터 일본인들이 방문하기 시작하여 1907년 일본인에 의해 대규모 객실과 목욕시설을 갖춘 봉래관이 건립되었고, 1915년 전철 개설 및 도로 정비, 통신시설 설치 등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조선 제일을 자랑하는 온천’으로 자리 잡았다. 중심시가에는 상점과 술집 등이 줄지어 들어서고 온천역 앞에 벚꽃거리가 조성되었으며, 다양한 시설을 갖춘 온천장들이 건립되며 부산 최대의 종합휴양지로 번성하였다(국사편찬위원회, 2008). 이외에 부산 근교 금정산 범어사, 일본인이 금정산 자락에 조성한 온천장을 겸한 일본식 정원인 금강원, 교통 접근성이 떨어져 1920년대 중반이후 개발이 본격화된 해운대온천, 小西行長이 쌓았다고 소개된 부산진왜성 등이 관광이미지로 소비되었다(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부산광역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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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9.

송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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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0.

동래온천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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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1.

동래온천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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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2.

금강원

Ⅴ. 요약 및 결론

일제강점기 민관에서 생산, 유통시킨 식민지조선에 대한 관광안내서, 관광보고서와 여행기, 사진그림엽서 등은 일본인이 조선을 바라보는 창이었다. 이를 통한 일본인의 조선관광은 완전히 이질적인 지역이 아니라 내지와 닮은 신내지를 관광하며 제국민의 자부심과 제국주의 의식을 체화하는 과정이었다. 일제의 식민지관광은 관주도로 전개되어 출발부터 식민지와 제국의 표상을 대비시키는 차별적 시선이 내재해 있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지리적 실체로서 조선의 지역들이 어떻게 재구조화되고 소비되었는지에 주목하고, 근대관광도시로서 평양과 부산의 위상과 성격, 일제의 시선과 표상 등을 살펴보았다.

선만관광루트에서 평양-경성-부산이 조선관광의 중심축을 이루었다. 이는 일제가 철도와 도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식민지조선의 관광공간을 설계하였고, 이러한 기본 틀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면서 식민지관광이 공간적으로 정형화되었으며, 선만관광에서 조선의 비중이 낮았던 것은 일제의 식민지관광의 중심이 만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관광루트에서 평양과 부산은 체류시간, 관광자원 이용 등에서 경성 다음가는 실질적인 조선관광의 남북 거점이었다. 평양은 만주를 연결하는 배후도시이자 서선관광의 중심지였고, 부산은 조선관광의 기점이자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일찍부터 근대 도시화와 관광자원 개발이 활발했다.

관광자원 이용양상은 관광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정형화된 상업적 관광에 비해 시찰이나 수학여행에서 관광자원의 이용이 활발하였으나 부산은 입출항의 기능과 관광지 간의 거리가 멀어 관광자원의 이용범위가 제한적이었다. 평양의 관광자원은 대동강 변의 모란봉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는 유적지를 대표하여 기생학교, 근대 건축물과 시가 등이며, 부산은 부산항과 용두산 주변에 분포하는 근대 도시경관의 상징인 서구식 건축물과 시가를 대표하여 도심의 남부 해안과 근교에 분산되어 있는 공원, 해수욕장, 온천 등이었다. 이러한 관광자원 이용양상은 식민지조선의 지역별 관광이미지를 담고 있는 사진그림엽서로도 확인되었다.

나아가 사진그림엽서 이미지(그림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를 통해 근대관광도시로서 평양과 부산의 표상이미지들이 일제의 시선에서 재생산 소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의 수도였고 가장 조선적인 역사도시로서 평양의 유적지들은 청일, 러일전쟁사로 재해석되어 전승을 기념하고 제국의 위상을 선전하는 패턴화된 관광지로 소비되었으며, 평양기생은 조선여성상으로 이미지화되었고 조선광광의 표상으로 기생학교가 소비되었다. 개항 후 일본인들의 거점이었던 부산은 부관연락선과 경부선의 개통으로 만주, 중국, 러시아를 잇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며, 근대도시의 상징이자 관광휴양지로 빠르게 재구조화되었다. 일찍부터 일본인들에게 공간적, 심리적으로 가장 친숙했던 부산의 근대적 표상들은 위용, 발전, 번화, 약진, 번영 등으로 수식되며 선진문명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일제가 개발한 다양한 관광휴양지들은 재조일본인들의 여가활동과 일본관광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되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조선관광은 조선의 역사와 고유성, 조선인의 삶이 배제된 채 제국주의 질서와 시선 속에서 전개되었고, 지리적 실체로서 평양과 부산이 일제에 의해 그리고 일본인을 위한 근대관광도시로 기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식민지조선의 관광 시종점이자 핵심 거점도시로서 평양과 부산은 전통과 역사가 탈맥화되고 재해석되는 한편 근대화를 명분으로 한 도시 재구조화와 공원, 해수욕장, 온천 개발 등을 통해 관광대상으로서 타자화, 상품화되었다. 결국 평양과 부산의 관광이미지 생산과 소비는 제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한편 지배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식민지 경영전략의 수단이었다. 끝으로 조선의 근대관광이 일제의 ‘관광의 정치’, ‘이미지의 정치’ 실천 과정 속에서 태동하였다는 점에서 단위 지역을 대상으로 보다 다양한 기억유산을 종합적으로 비교하여 근대관광지 형성과 변화의 실체를 규명하는 더 많은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1) 관광(tourism)은 근대 이후에 등장하는 여행형태를 지칭한다. 1841년 Thomas Cook(1800~1892)이 세계 최초로 기차 단체관광을 실행한 후 1845년 여행사 설립, 1851년 런던박람회·1855년 파리박람회의 관광상품 판매 등 자본주의와 기술진보에 기초한 관광의 상업화가 전환점이었다. 근대관광은 여행의 본질을 소비로 변형시켰고, 관광객(tourist)은 능동적 의미의 여행자(traveler)와 달리 수동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IUOTO, 1963; Cohen, 1974; 닝왕, 2004).

2) 이국취향(exoticism)은 타자와의 차이에 대한 감성적 접근방식으로 문화적 호기심, 이미지 형성 등과 함께 국제관광 요인의 하나이다. 중립적 이국취향은 낭만주의적 애착, 상향식 이국취향은 약소국가의 동경과 호기심, 하향식 이국취향은 문명, 우월감 등을 전제한 식민주의적 충동으로 구체화된다(Turner and Ash, 1975; Todorov, 1993).

3) 총 389명이 30일 일정으로 일본 요코하마를 출발해 조선의 부산, 경성, 평양, 만주의 대련, 여순 등을 여행한 단체관광단이다. 아사히신문사가 관광객 모집부터 이동, 숙박, 안내 등 편의를 제공하는 패키지 형태로 대중적 단체관광의 발단이 되었다(有山輝雄, 2002; 조성운, 2008).

4) 조성운은 일본여행협회와 조선지부 산하 여행안내소의 조선·만주 관광문의 건수, 외국인 관광객 수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외국인과 일본인의 조선관광에 대한 관심과 규모를 고찰하고, 경성일보시찰단, 조선귀족관광단 등 조선인의 일본시찰단과 국내관광단 실태를 분석하였다.

5) 조선관광기록물을 활용한 연구는 윤소영(2007), 정재정(2010), 권희주(2013), 米家泰作(2014), 조윤정(2014), 정치영·米家泰作(2017) 등이 있다.

6)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정기여객선으로 광복 전까지 관부연락선이라 불렀다. 1905년 산요기선주식회사가 항로를 개설해 壹岐丸이 첫 출항한 후 高麗丸·新羅丸·慶福丸·德壽丸·昌慶丸·昌德丸·金剛丸 등이 취항하며 대륙을 잇는 통로가 되었다(金贊汀, 1988;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7) 일본여행협회(Japan Travel Bureau)는 전후 경제침체 타파와 제국의 위상제고를 위해 1912년 철도원에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설치된 후 일본인의 해외관광알선으로 업무를 확장했다. 대련·대만·조선·청도지부를 두었고, 국내외 관광안내소를 통해 여행알선과 안내를 무료로 제공했다. 1930년 국제관광국 설립 때까지 일본의 근대관광산업을 주도했던 현재 일본교통공사의 전신이다(日本交通公社, 1982; 조성운, 2010; 荒山正彦, 2012).

8) 에하가키(繪葉書)는 근대 일본에서 발행된 사진과 그림엽서를 통칭한다. 러일전쟁 후 해외관광이 본격화되면서 식민지의 명소, 인물, 풍속 등 다양한 이미지로 발행되었는데 우편기능이 기념품, 선물, 수집 등 관광기능으로 대체되면서 ‘그림엽서 열풍’으로 이어졌다(우라카와가즈야, 2017). 본 논문에서는 사진그림엽서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9) 관광안내서로는 朝鮮鐵道路線案內(1911), 四季の朝鮮(1913), An Official Guide To Eastern Asia(1913~1917, 영문), 京城案內(1916, 영문), 金剛山案內(1916, 영문과 노문), 朝鮮鐵道旅行案內(1918), 朝鮮·滿洲·支那案內(1919), 旅程と費用槪算(1920~1940), 朝鮮鐵道旅行便覽(1923), 朝鮮滿洲旅行案內(1926), 平壤案內(1928), 釜山案內(1930), 朝鮮旅行案內記(1934) 등이 있다. 시각자료는 朝鮮寫眞帖(1917, 영문), 朝鮮風景繪葉書(1917, 영문), 寫眞帖朝鮮(1921), 半島の近影(1937) 등과 다량의 사진그림엽서가 있고, 잡지는 朝鮮(1908), 朝鮮及滿洲(1912~1941), 觀光朝鮮(1936) 등이 있다.

10) 여행안내서를 활용한 서기재(2002), 윤소영(2007), 전수연(2010), 김백영·조정우(2014), 정치영(2018) 등의 연구와 사진을 이용한 권행가(2001), 권혁희(2003), 김창수(2009), 오윤빈(2014), 최인택(2017), 김선희(2018), 장원석·정치영(2020) 등의 연구가 있고, 지도를 활용한 원종혜(2016), 김선정(2017) 등의 연구와 잡지를 이용한 서기재(2016) 연구가 있다.

11) 남만주철도 또는 남만주철도회사의 약칭으로 러일전쟁 승리 후 일제가 1906년 설립한 국책회사이다.

12) 봉천과 안동은 현재의 중국 심양과 단동이다.

13) 일본여행협회가 1920년부터 1940년까지 매년 발간한 표준 관광가이드북으로 관광지, 지리와 기후, 비용 등 관광정보와 함께 朝鮮一周, 滿鮮周遊, 鮮滿支周遊 등 다양한 관광루트를 제시하여 일제가 설계한 식민지관광의 전체상을 보여준다(荒山正彦, 2012; 김백영·조정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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