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선행연구 검토
1. 문화경관을 통한 문화-자연 관계의 재고
2. 관광경관: 관광에서의 문화경관 논의
3. 해양경관: 문화경관에 해양적 시각 더하기
III. 연구 방법론
IV. 울산-고래 관계의 시기별 전개
1. 고래관광 이전: 공업도시 울산과 장생포의 지역경관
2. 고래관광경관의 도입기: 포경업에서 고래문화로 전환되는 과도기
V.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고래관광경관 조성의 비전과 실천 간의 간극
1. 울산고래축제
2. 고래생태체험관
3. 고래바다여행선
VI. 요약 및 결론
I. 서론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지리학적 전통 속에서 자연은 오랫동안 인간의 문화적 이용을 위한 배경 혹은 자원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 인본주의 문화지리학의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논의에서 두드러지며, 여기에서 자연은 인간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재구성되고 재현되는 대상으로 이해되었다. 문화경관에 대해 Sauer(1925)는 자연경관이 인간 활동에 의해 변형된 결과물로 규정하였으며(진종헌, 2009 재인용), 이러한 정의는 문화경관을 인간의 행위가 각인된 공간적 산물로 파악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 1980년대부터 신문화지리학자들은 경관을 ‘보는 방식(way of seeing)’ (Cosgrove, 1985; 1998), ‘텍스트(text)’ (Duncan, 1980; 1990)와 같은 재현(representation)의 틀 속에서 접근하며 경관을 사회적 권력, 이데올로기, 담론의 물질적 구현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재현 중심 접근은 문화경관 연구의 방법론적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지만, 동시에 경관을 상징과 의미의 표상으로 환원하여, 경관의 유동성・체험성・현장성과 같은 특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문화지리학과 관광연구에서는 재현 중심 관점을 넘어, 경관을 감각적이고 수행적인 실천의 장(場)으로 이해하려는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비재현적(non-representational) 경관 논의는 경관을 인간 중심의 의미와 상징으로 해석하는 재현의 틀을 넘어, 몸의 감각, 정서, 리듬, 일상적 행위와 같은 비언어적・비시각적 요소를 강조한다(Lorimer, 2005; 2008; Thrift and Dewsbury, 2000; Thrift, 2008).1) 이는 수행성(performativity)을 중시하는 관광연구의 흐름과 맞물려, 관광객을 단순히 시각적 경관을 소비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동물・기술・인프라 등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와 상호작용하며 경관을 공동 생산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Haldrup and Larsen, 2009; Prince, 2019). 이러한 맥락에서 관광경관 연구는 경관을 구성하는 물질적・비물질적 요소, 현장성과 경험성, 그리고 관계적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다층적 분석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편 문화지리학, 더 넓게는 인문지리학 내부에서는 그동안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해양에 대한 학문적 시선과 관심이 충분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해양에 대한 더 많은 이론적・실천적 논의가 전개되어야 함을 주장한다(Peters, 2010; Anderson and Peters, 2016; Steinberg, 2025). 해양은 그 유동성과 비가시성으로 인해 근대적 시공간 질서의 논의에서 주변화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도시, 국가, 인간 삶을 구성하는 핵심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양경관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다층적 의미와 권력 관계, 그리고 다양한 행위자들이 얽힌 수행적・관계적 공간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논의에 주목하여, 문화경관・관광・해양의 교차점에서 문화-자연 관계를 재검토하며, 울산의 고래관광을 사례로 분석한다.
‘고래도시 울산’이라는 슬로건 아래, 울산광역시는 과거 포경업이 번성했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바탕으로 국내의 대표적인 고래관광지로서 정체성을 형성해오고 있다. 울산의 주요 고래관광경관은 현재와 미래의 고래-인간 관계를 조명하기보다는, 과거 포경업을 중심으로 한 재현적 전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표현이 ‘고래문화’인데, 여기서 ‘고래문화’는 인간이 고래를 포획・소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역사적・지역적 문화를 의미하며, 주로 과거와 전통의 의미에 방점이 찍힌 개념이다(여영숙・서재원, 2016). 예컨대 울주군의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고래잡이의 흔적을 통해 고래문화의 재현적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관이다.
반구대암각화를 제외한 울산의 주된 고래관광경관은 남구 장생포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장생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 포경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국제포경위원회(IWC)에 의한 포경모라토리엄이 시행되면서 1986년부터 국내 포경업은 중단되었으며, 이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포경업에 의존해왔던 장생포 지역은 쇠퇴일로를 밟게 되었다(김두겸・편상훈, 2012). 이후 2000년대 후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고래문화특구를 조성하면서, 고래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관광자원화하려는 노력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조성된 고래관광경관은 고래의 상업적 이용과 생태 보존 사이의 긴장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게 된다. 특히, 고래-인간 관계에 대한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존재론적・인식론적 층위에서 고래를 어떻게 위치 지울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동반한다(여영숙・서재원, 2016; Choi, 2017).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울산 고래관광경관에서 드러나는 고래-인간 관계의 재현 방식이 정책적 기획과 실천 속에서 어떻게 형성・변화되어왔는가? 둘째,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의 개입과 상호작용은 고래관광경관의 재현적・비재현적 (재)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이를 통해 본 연구는 문화경관과 관광의 교차 지점에서 관광경관을 단지 시각적 기호체계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실천과 감각의 장으로 재개념화하고자 한다. 나아가 문화경관에 해양적 관점을 접목하여 해양경관을 인간 중심의 재현적 틀에 가두지 않고, 비인간 존재들의 행위성과 물질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며 (재)형성되는 관계적・비재현적 경관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II장에서는 문화경관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검토하고 이를 관광 및 해양적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해왔는지를 살펴본다. III장에서는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며, IV장에서는 울산-고래 관계의 시기별 전개를 분석한다. 이어 V장에서는 울산 고래문화특구의 주요 사례인 고래축제,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을 중심으로 재현적 기획과 비재현적 수행 속에서 형성・변화된 관광경관을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Ⅵ장에서는 연구의 논의를 요약하고, 그 이론적・실천적 함의를 제시한다.
II. 선행연구 검토
1. 문화경관을 통한 문화-자연 관계의 재고
근대 사회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삶의 영역을 ‘문화’개념으로 치환하여 설명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자연과 문화를 서로 분리된 실체로 간주하며, 자연을 단지 배경이나 자원으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다(박규택・이상률, 1999; 김병연・조철기, 2020). 그러나 실제로 자연이 배제된 문화, 혹은 문화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자연을 상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공간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문화지리학자들과 문화생태학자들은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개념을 제안해왔다. 문화경관은 인간의 문화적 행위와 자연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상보적 관계를 형성하는 점에 주목한다(진종헌, 2009; 장예지, 2017; Anderson, 2021). 예컨대, 인간은 특정 지역에 정착하면서 그 지역의 기후와 지형에 적응하고, 자연 자원을 활용하며, 고유한 삶의 양식을 발달시킨다. 이 과정에서 자연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실천 속에서 사회적 의미를 부여받고 재구성되는 존재가 된다(진종헌, 2009; 2012).
유산 연구(heritage studies) 분야의 인문지리학자들은 기존의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보존하는 방식이 근대적 사고에 뿌리를 둔 문화-자연 이분법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Taylor and Lennon, 2011; 박지은, 2022; 전종한, 2024). 이들은 자연과 문화가 얽혀 있는 유산의 복합적 특성을 보다 정합적으로 이해하고 보존하기 위한 대안으로 ‘문화경관’ 개념을 적용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류제헌(2013)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구성되는 과정에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했음을 지적하며, 이 둘을 명확히 분리하려는 시도는 현실과 괴리된 접근이라고 비판하였다. 박지은(2022) 또한 자연과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기존 개념에서 벗어나, 양자의 상호작용과 그 경계가 유동적으로 구성되는 경관의 특성을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본 연구가 주목하는 고래관광은 이러한 논의에 잘 부합할 수 있는 사례이다. 고래는 포경업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멸종위기종 보호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자연유산적 성격 또한 지닌다(최명애, 2016).
한편, 유네스코(UNESCO)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 성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1992년 세계유산의 한 범주로 ‘문화경관’을 새롭게 지정하였다(김예림・성종상, 2023). 여기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중간면...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의 습합지대를 감지”할 수 있는 문화경관의 개념이 강조된다(전종한, 2024, 449). 이를 한국 사례에 적용한 김숙진(2024)은 2021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갯벌을 분석하며, 그 생태적 가치뿐 아니라 오랜 세월 어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형성된 문화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갯벌의 보존・관리 방안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김숙진(2022, 47)은 이러한 문화경관 논의가 향후 “유산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유산을 둘러싼 더 넓은 환경과 문화, 지역공동체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단순히 보존 혹은 소비목적으로 고래를 대상화하는 관광경관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 역사와 생태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경관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며, 고래관광에 대한 문화경관적 접근의 유효함을 뒷받침해준다.
물론 문화경관에 대한 여러 비판 지점이 존재한다. 문화경관론의 형성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문화생태학과 문화지리학은 자연을 인간이 거주하고 활용하는 공간, 혹은 인간 활동으로 변형된 자연으로 한정하는 경향을 보였다(김숙진, 2010; Robbins, 2019). 이는 자연을 인간이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간주하는 환경가능론적 시각과 연결되며, 결과적으로 자연을 수동적 배경으로 보는 관점을 강화하였다. 문화경관론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한편, 자연을 인간의 의지에 의해 재현되고 변형되는 대상 혹은 결과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Neumann, 2011; Pries, 2018). 특히 재현적(representational) 문화경관 개념은 텍스트와 시각 중심의 경관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 주체와, 그것의 객체로서 존재하는 경관 사이의 분리된 존재론을 고착화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진종헌, 2013; 송원섭, 2015). 이에 따라 재현적 문화경관 개념에 담긴 환경 담론 역시 인간의 지배적 행위성(agency)에 집중함으로써, 비인간 존재들의 물질성과 행위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였다(최명애, 2020). 다시 말해, 재현적 경관론은 사회적 구성론에 기반하여 비인간 존재들의 활력과 생동성, 그리고 그들이 지닌 경관에 대한 실질적 개입 능력을 조명하는 데 있어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재현적 경관론을 넘어서, 경관을 비재현적(non-representational)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도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Lorimer, 2005; 2008; Thrift and Dewsbury, 2000; Thrift, 2008). 이 접근은 기존의 주체(인간)와 객체(경관) 사이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고, 시각과 텍스트 중심의 경관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의 수행과 실천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으로서의 경관 독해를 요구한다(진종헌, 2013; 송원섭, 2015). 최근 연구들에서는 기존 문화경관 개념에서 지적받아왔던 인간 중심적 접근들을 보완하고자 하는 지리학 내부의 성찰적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 논의의 중심에 있는 인간 너머의 지리학은 비인간 자연을 질문의 주체(subject of inquiry)로 설정하고, 비인간 존재의 물질성과 행위성이 경관 형성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작용하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Whatmore, 2006; Lorimer, 2008; Lorimer, 2012; Anderson and Wylie, 2009; 황진태, 2018). 다시 말해, 인간 주도로 형성된 재현적 결과물로서 경관이 아닌, 비인간 자연들의 생동력, 활력 등이 개입하여 형성되는 경관에 주목한 비재현적 접근을 요구한다(Choi, 2016). 예를 들어, 숲, 강, 바다 등은 단순히 인간의 조작에 의한 재현적 결과물로서 형성된 경관이 아니라, 비인간 자연을 구성하는 여러 참여자들의 행위성과 물질성이 함께 개입하며 다양한 비재현적 경관을 형성한다(Lorimer, 2012; 송원섭, 2015). 나아가, 비재현적 관점은 경관을 고정된 형상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존재들이 얽혀 있는 이질적인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구성되는 과정(process)으로서 이해하려는 인문지리학의 방향성(김병연・조철기, 2020; 범영우, 2024)과도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재현적 경관 접근 역시 한계를 지닌다. 이 관점은 경관을 지나치게 개별적, 미시적인 것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경관을 둘러싼 사회적, 이론적, 역사적, 구조적 설명들을 소홀히 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Neumann, 2011; Lave, 2015).2) 특히 특정 시공간적 맥락에서 경관에 등장하는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의 형성 메커니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Robbins and Marks, 2010; Neumann, 2011; Lave, 2015). 즉, 비재현적 관점은 경관을 구성하는 네트워크의 등장 배경과 동학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과 연계하여 분석하는 데 있어 설명력이 부족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시각과 텍스트 중심으로 경관을 분석하는 재현적 접근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송원섭(2015)이 제안한 바와 같이, 본고에서는 재현적 경관과 비재현적 경관을 상호배타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 서로 보완적 관계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 두 접근의 강점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문화-자연 관계에 대한 맥락적이고 동태적 이해를 도모하며, 해당 관계를 형성하는 정치・경제・사회적 구조의 작용에 착목하고자 한다.
2. 관광경관: 관광에서의 문화경관 논의
관광은 근대 산업화와 더불어 제도화된 사회적 활동으로 자리 잡으면서,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특정 공간의 의미와 질서를 새롭게 조직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관광의 발전 속에서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배경이 아닌 사회적・문화적 개입 속에서 재구성되는 공간이 되었다(신성희, 2016; 박지은, 2022). 다시 말해, 관광은 자연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관을 기획・재현하는 과정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문화-자연 관계의 변화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장(場)이 된다. 예를 들어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 산의 관광자원화 사례에서 오영훈(2022)은 설악산 국립공원 지정이 산을 인간 거주의 공간이 아닌 특정 탐방로와 암벽 중심의 ‘관광지’로 전환시켰음을 지적하며, 이는 인간과 산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재편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또한 Fletcher and Neves(2012)는 생태관광이 자연 보존에 기여한다고 홍보되지만, 실제로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통제를 야기하여 자연에 의존하던 원주민들의 문화적 삶터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관광은 문화-자연 관계의 변화를 포착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실천적 틀을 제공하며, 이에 대한 학술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문화경관의 관점에서 관광을 조명하는 접근은 인간의 사회적 실천뿐만 아니라 자연의 행위성까지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미하다. 관광 과정에서 자연은 인간의 소비와 해석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며, 자연 또한 관광 과정에서 경관의 형성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주체로서 작동하는 장(場)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Taylor and Lennon(2011)은 세계문화유산 지역에서 관광이 증가함에 따라 복합적인 자연-문화 환경이 형성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문화경관 개념의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지역의 산업유산 사례를 통해, 진종헌(2012)은 탄광지역의 문화・자연유산의 통합적 보전을 위한 문화경관 개념의 유용성을 제시하며, 이러한 보전 과제가 지역의 관광상품화와 밀접히 연동된 문제임을 드러내었다. 탄광지역의 사례는 관광이 문화경관의 재현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정은혜, 2021; 박지은, 2022). 그러나 관광경관을 인간 중심의 재현적 기획의 산물로만 보는 시각에 대한 반성도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범영우(2024)는 관광경관의 형성에 있어 비인간 존재들의 행위성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며, 비재현적 경관론의 적용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최근 문화경관 개념과 관광의 실천을 연계한 사례 연구들도 점차 등장하고 있다.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에 주목한 오정준(2015; 2016)의 연구에서는 사진찍기를 관광객들이 재현적 관광경관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수행과 실천의 과정으로 봄으로써, 새로운 관광경관의 생산에 관광객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분석하였다. 지상현 등(2018)은 냉전 관광경관인 휴전선 전망대를 찾는 안보관광객들이 단순히 국가가 설계한 동선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군인과 가이드의 통제를 체화하거나 저항하면서 경관에 주체적으로 개입한다고 보았다. 이 연구는 관광경관을 고정된 재현적 결과물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참여자들의 수행적 실천을 통해 구성되는 비재현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지상현 등, 2018). 그러나 위의 연구들은 여전히 인간 주체의 행위에 중점을 둔 해석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한 연구로는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을 부각한 사례들을 들 수 있다. 최명애(2020)는 제주 돌고래 관광을 분석하며, 인간이 설계한 관광경관이 돌고래의 이동, 응답, 회피와 같은 자율적 행위성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흔들리고 균열되는 과정을 포착하였다. 이 연구는 돌고래의 존재가 관광의 재현적 구성을 비재현적 차원으로 전환시키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비인간 상호작용의 복합적 지형 속에서 관광경관을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박준홍・정희선(2021)은 경관 이론에 의존하지는 않았지만, 화천 산천어축제를 분석하면서 인간의 생명정치적 통제와 산천어의 생태적 행위성 사이의 불일치 및 긴장이 축제의 의미와 구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추적하였다. 이 연구 역시 비인간의 물질성과 행위성이 문화적 실천과 충돌하거나 접합되는 지점을 드러내며, 관광경관에 대한 실천적 접근의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관광경관은 인간이 일방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고정된 재현물을 넘어서, 기존 주체(인간)・객체(경관) 이분법에서 탈피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반복적인 상호작용과 수행을 통해 구성해가는 관계의 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연구들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관광 맥락에서 재현적・비재현적 특성을 아우르는 경관 실천 연구는 드문 실정이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고자, 본고에서는 울산 고래관광경관을 사례로 삼아 관광을 통해 형성되는 문화경관의 복합성과 그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수행하는 다양한 경관 실천의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3. 해양경관: 문화경관에 해양적 시각 더하기
기존 인문・사회과학에서 문화와 자연의 관계를 탐구한 연구들은 대체로 육지 중심적인(terrestrial) 인식론에 기초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환경사학자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과 해양 사이에 존재해온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간과되어왔다고 지적하며(Bolster, 2006; 2008), 그 근저에는 문명화된 공간으로서의 육지와 야생적 공간으로서의 해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Germond and Germond-Duret, 2017).
이 같은 육지 편향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최근 인문지리학 내에서는 해양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Steinberg, 1999; Lambert et al., 2006; Peters, 2010; Anderson and Peters, 2016; Jang and Thomas, 2024). Steinberg(1999)는 지리학이 인간의 사회문화적 삶에 대한 관심을 해안선 너머로 충분히 확장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해양을 구성하는 공간적・물질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을 요청하였다. Peters(2012; 2016)는 인간 너머의 관점에서 해양 공간의 행위성과 물질성을 조명하며, 비인간 주체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기존의 인간 중심적 서사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또한, Hasty and Peters(2012)는 지리학 담론에서 소외되었던 선박(ship)에 주목하며, 선박이 해양 모빌리티를 매개하는 동시에 인간의 신체, 해양, 나아가 지구 생태계를 연결하는 주요한 행위자임을 제시하였다(Lambert et al., 2006).
문화경관 연구 또한 이러한 육지 중심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주로 내륙이나 도시, 농경지 등 육상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그러나 해양 역시 인간과의 직간접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복합적인 문화-자연 관계의 장으로 기능해왔으며, 따라서 해양을 대상으로 한 문화경관 연구는 재현적・비재현적 경관 논의들의 지리적 확장을 가능케 하고, 적용 가능한 새로운 분석의 틀을 제공해줄 수 있다. 특히 Anderson and Peters(2016)와 Peters(2016)는 해양을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성, 그리고 그 자체의 물질적 특성과 형태를 지닌 생기적인 공간으로 개념화하면서, 해양 역시 경관 형성에 있어 적극적인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제공해주었다.
국내에서는 관련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진종헌(2012)은 문화경관을 통해 자연・문화유산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해양의 문화적 의미에 주목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김예림・성종상(2023)은 문화경관 논의가 기존 육지 중심성에서 탈피하여 해양문화경관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연안지역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김숙진(2024) 또한 갯벌이라는 해양경관을 그 생태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과 갯벌의 공생 관계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관계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대부분 인간의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연안 지역에 한정되어 있어 보다 다양한 해양경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해양에서 서식하거나 회유하는 고래들을 대상으로 한 울산 고래관광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육상에 거주하는 인간들이 관광을 통해 해양 및 그 ‘거주민’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해양경관을 구성해가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이는 문화경관・관광경관 논의를 해양적 차원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재현적・비재현적 경관론을 교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증적 분석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갖는다.
III. 연구 방법론
본 연구는 2022년과 2023년 사이 울산에서 네 차례에 걸쳐 수행한 질적 현장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고래관광과 관련된 정책적 맥락 및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 울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남구청, 고래문화재단 등에서 발간한 정책보고서 및 공공 문서를 분석하였다. 또한, 고래관광을 둘러싼 갈등과 사회적 논의들을 포착하기 위해 다양한 언론기사와 뉴스보도를 함께 참고하였다.
본 연구는 문서 분석 외에도 심층 인터뷰, 서면 질의응답을 병행하여 수행하였다. 심층 인터뷰는 울산의 포경산업 및 고래관광에 대해 직간접적인 경험을 가진 울산 지역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눈덩이 표집(snowball sampling)과 목적 표집(purposive sampling) 기법을 통해 총 12명의 인터뷰 참여자를 선정하였다(Hay, 2000). 이들은 장생포 지역 주민(2명), 전직 포경업 종사자(1명), 고래관광 종사자(3명), 고래 연구자(3명), 환경운동 활동가(3명)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일부를 본 연구에 활용하였다. 인터뷰는 반구조화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진행되었고, 1회당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질문은 개방형 문항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답변자의 주관적 경험과 인식을 보다 심층적으로 포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공기관의 정책 방향과 행정적 입장을 보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온라인 국민신문고를 활용한 서면 질의응답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고래-인간 관계(예: 고래포경・고래관광)에 대한 각 기관(울산 남구, 울산남구도시관리공단)의 공식적인 입장을 파악하였으며, 고래 관련 정책자료, 통계자료, 지도 등 분석에 필요한 1차 자료들을 확보하였다.
마지막으로, 고래바다여행선 사례 분석(V.3.)을 위해 필자는 2023년 5월 21일 오후 2시에 출항하는 여행선에 직접 탑승하여 약 3시간 동안의 이루어지는 고래탐사의 구체적 양상을 파악하였다. 이러한 참여 관찰을 통해 고래탐사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 다른 탑승객들의 관광행태, 해양과 기상상황 등에 관한 내용들을 연구노트에 기입하며 분석에 참고자료로 활용하였다. 또한 보다 입체적인 분석을 위해 탑승객들의 온라인 후기를 바탕으로 한 블로그 내용 분석을 병행하였다. 블로그 후기는 박정은(2017)의 연구방법을 참고하여 수집하였으며, N사 포털사이트에서 ‘고래바다여행선’을 키워드로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작성된 블로그 포스트 중 36건을 선별하여 분석하였다(표 1 참고). 블로그 후기가 본문에 인용된 경우 ‘(순번 OO)’으로 표기하였다.
표 1.
내용 분석에 활용된 블로그 후기 목록
사진, 동영상, 개별적인 감상과 소회 등으로 구성된 이들 블로그는 단순한 시각 중심의 관광 재현물을 넘어, 관광객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행하고 실천함으로써 관광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과정의 일부로 이해될 수 있다(이희상, 2013; 오정준, 2015). 따라서 블로그 후기 분석은 필자의 단일 체험이 지닌 주관성을 보완하고, 관광경관이 어떻게 여러 참여 주체들에 의해 구성되고 경험되는지를 보다 다각도로 파악하는 데 중요한 근거 자료로 기능하였다.
IV. 울산-고래 관계의 시기별 전개
1. 고래관광 이전: 공업도시 울산과 장생포의 지역경관
포경업과 어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울산 남구 장생포의 경관은 공업단지 조성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울산도시계획, 울산의 공업단지 개발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장생포항은 내만으로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들이 정박하기 편리했기에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본의 정유공장 건설이 추진되기도 하였다(곽경상, 2021). 해방 후 1950년대에 울산은 기존 중단된 정유공장 건설부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기에, 공업항 조성이 본격화되었다(곽경상, 2021). 박정희 정권은 1962년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선정하여 울산의 해안지역(울산항, 장생포항 포함)을 중심으로 여러 공업단지시설들이 입지하게 되었다.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울산의 도시 공업화 과정 속에서, 공업단지시설들로 둘러싸인 장생포는 국내 포경업의 중심지로서 포경업의 발전과 더불어 독특한 지역적인 경관을 형성해왔다. 포경업을 둘러싼 대외적인 환경을 살펴보면, 먼저 1965년 한일어업협정 발효 이후 국내에서 잡은 고래고기의 일본 수출이 가능해졌다(허영란, 2012). 당시 국내 고래고기 판매 시세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일본에 수출이 가능했기에, 포경업자들은 일본으로의 고래고기 수출에 열을 올렸다(허영란, 2012). 근해포경수산업협동조합의 1972년부터 1984년까지의 일본으로의 고래수출통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평균적으로 포획된 고래고기 중 36.87%가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1984년에는 무려 65.9%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경상남도 울산시 문화공보담당관실(편), 1987). 다시 말해, 포경업을 중심으로 한 장생포의 지역경제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80년대 장생포 주위에 대규모로 조성된 울산석유화학단지에서 쏟아져나온 공해물질들로 인해 1985년 장생포, 매암, 여천 등의 주변 해안 거주지역이 ‘환경오염 이주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주민 이주가 이루어졌다(서울신문, 2009.01.23.; 울산매일UTV, 2021.09.11.). 뿐만 아니라, 포경업에 의존도가 높았던 장생포의 지역경제는 1986년부터 포경업이 중단되면서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구직을 위한 거주민들의 외부 이주는 장생포 지역사회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2000년대 고래관광산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까지 장생포는 한동안 포경산업 쇠퇴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낙후된 어촌경관으로 머물게 되었다.
2. 고래관광경관의 도입기: 포경업에서 고래문화로 전환되는 과도기
울산에서 고래가 포경업이 아닌 문화관광의 대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 초부터인 것으로 판단된다. 1970-80년대에는 포경업이 울산 남구 장생포 지역의 경제를 떠받치던 주력 산업이었으나, 중공업 중심의 산업도시로 성장해온 울산의 정치경제적 위상에서 포경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1987년 당시 蔚山市史(울산시사)에서는 고래를 포경업의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국제포경위원회(IWC)의 포경 모라토리엄으로 인해 국내 포경산업이 유예조치를 시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경상남도 울산시 문화공보담당관실(편), 1987).
2000년대 초반 울산은 해양 관광권 개발 방향을 모색하며 장생포와 같은 상징적 경관들을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했다(울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2, 339). 당시 관광개발계획에서 장생포 지역은 울산 내 다른 지역들과 함께 포함되었으며, 고래를 중심으로 한 경관사업은 ‘장생포 고래해양공원’ 조성 계획에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관광경관의 조성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일본인 관광객의 방문 수요에 대응하고, 주민들과 공단 근로자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계획되었다(울산광역시, 2001).3) 또한, 1995년부터 장생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고래축제는 2000년 제6회 축제부터 울산 남구청이 주최하며 운영의 주체가 지자체로 변경되었다.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된 이후, 당시 울산에서 개최된 가장 큰 국제행사였던 2005년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IWC) 울산회의는 도시의 위상을 ‘고래문화’ 중심으로 새롭게 구축하려는 울산의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4) 이는 울산이 공단, 산업공해 등의 오명으로 굳어진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여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당시 울산 고래관광 정책의 방향은 “세계적 고래잡이 전진기지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고래문화의 전통과 유산을 계승 발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울산광역시, 2006, 22). 이에 따라 2005년 IWC 울산회의에 맞춰 건립을 추진했던 장생포 고래박물관의 초창기 경관구성에서는 과거 장생포의 지역경제를 뒷받침했던 포경업의 유산 보존과 복원이 강조되었다(울산광역시, 2006, 23).
특히, 울산의 고래관광은 고래를 둘러싼 문화・역사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문화유산적 접근을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최명애, 2016). 이러한 접근은 2007년 이후 발간된 IWC 연례회의록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 예컨대, 2009년 IWC 연례회의에서 울산 남구청장은 고래고기가 울산의 중요한 식문화의 일부임을 강조하였으며(IWC, 2009), 2012년과 2014년 회의의 모두 발언에서 한국 대표단은 고래를 둘러싼 회원국들의 문화적 다양성 존중을 호소하며, 포경업과 고래 식문화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설득하려 했다(IWC, 2012a; 2014). 이러한 문화유산으로의 고래 담론은 국제무대에서 울산 고래관광경관의 정체성을 정당화하고 고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동시에, 자연유산적 접근 또한 울산 고래관광의 담론 구성에 중요한 축을 담당해왔다. IWC 연례회의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고래를 주장함과 동시에, 관광을 통한 고래보존 의지를 피력하고, 나아가 자연유산 보존의 국제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1960년대부터 한국 정부가 귀신고래(gray whale)의 회유 경로를 중심으로 한 해양경관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국제 협력을 통해 귀신고래 모니터링을 지속해온 점이 있다(IWC, 2011; 2012b). 이러한 생태적 조치들은 단순히 보존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귀신고래와 한국 사회의 문화적・역사적 관계를 강조하는 서사와 결합되어 IWC 연례회의에서 재현되었으며(IWC, 2008; 2011), 결과적으로 특정 방식의 울산 고래관광경관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고래를 중심으로 한 울산의 관광경관 정체성의 구축은 단지 지역 차원의 기획에 그치지 않고, 국제 담론과 상호작용하며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V.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고래관광경관 조성의 비전과 실천 간의 간극
2008년, 지식경제부는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 일대를 ‘고래문화특구’로 지정하였다. 당시 울산 남구는 특구 지정을 통해 ‘친환경 고래도시 울산’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고래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복원”하고 “역사적・지리적 고래자원과 문화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하였다(울산광역시 남구, 2008, 3). 이는 포경산업의 중단으로 침체된 장생포 지역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새로운 관광사업으로 지역 활성화를 모색하려는 지자체 주도의 대응이었다.
고래문화특구 조성 당시 제시된 주요 비전은 과거의 고래문화를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래보존이라는 생태적 주제를 담은 관광을 통해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생태문화경관을 복원하는 것이었다(울산광역시 남구, 2008, 22). 이러한 초기 청사진은 포경문화유산이라는 역사적 자산을 기반으로 하되, 그것을 넘어 고래의 생태적 가치를 아우르는 새로운 형태의 관광경관을 구상하고자 한 시도였다.
고래관광경관에서 드러나는 문화와 자연의 관계는 울산광역시 남구가 2009년에 고래박물관 광장에서 제정한 ‘고래의 날 선언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5) 이 선언문은 고래에 대한 문화적 가치와 생태적 중요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거나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하기보다, 상호 얽혀 있는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표 2 참고). 또한 고래관광도시 울산이 지속가능한 관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래문화의 계승뿐 아니라, 고래생태계의 보호를 위한 실천이 병행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표 2.
고래의 날 선언문
그러나 이러한 선언문의 취지와는 달리, 고래관광경관 조성 초기의 정책 실행 및 인프라・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는 고래문화와 고래생태 간의 통합적 관계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정책 실행의 주체인 울산 남구청의 행정적, 정치적 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특히 고래문화특구가 조성되던 당시 울산 남구청장이었던 김두겸 씨는 전통적인 고래고기 소비문화를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200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고래고기 음식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포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발언하며, 고래생태 보존보다는 고래문화를 강조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였다(동아일보, 2009.09. 24.). 더불어, 고래문화특구 내 인프라 및 프로그램 운영 주체인 고래문화재단과 울산남구시설관리공단은 모두 남구청장이 이사장을 겸하고 있어, 지자체장의 정책적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환경운동 활동가A, 2023.05.22.).
울산지역 정가에서 활동했던 한 인터뷰 참가자 역시, 김두겸 씨가 남구청장으로 재임하던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 고래고기를 둘러싼 ‘전통・문화’ 프레임과 ‘생태보존’ 프레임 간의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진술하였다(환경운동 활동가B, 2023.03.28.). 관련 문헌과 인터뷰를 종합해볼 때, 고래관광경관 조성 사업의 초기 정책은 선언문에서 제시한 문화와 생태의 통합적 실천보다는, 포경업 중심의 고래문화 계승에 무게를 두고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음의 세부 절에서는 고래문화특구의 핵심 프로그램이자 인프라로 기능하는 울산고래축제,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을 중심으로, 고래와 인간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이러한 관계가 고래관광경관 조성의 비전과 실천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분석하였다.
1. 울산고래축제
초창기 울산고래축제는 1986년 포경 모라토리엄 이후 몰락한 포경산업의 유산을 기억하고 포경업재개를 희망하며 장생포 청년회에 의해 1995년부터 운영되어 온 로컬 스케일의 기념행사였다. 2000년부터 울산 남구가 주최하게 되었으며(울산광역시 남구, 2008; 울산광역시 남구 고래과, 2012),6) 2005년에는 울산 남구에서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고래축제 추진위원회를 조성하였다(울산광역시 남구, 2015). 2010년대 초반까지 축제에서는 과거 고래잡이 유산을 기억하고 포경재개를 희망하는 고래문화 중심의 담론이 강하게 반영된 고정된 재현경관 구성이 지배적이었다. 그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고래고기를 시식하는 행사와 프로그램의 운영이었다. 당시 울산 남구의 주도하에 고래고기로 구성된 ‘고래밥상’ 상표를 출원하여 고래문화특구 주변 고래고기 식당가들에 보급하기에 이르렀다.7) 이는 시민단체들의 강한 비판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비판여론을 의식해서였는지, 2017년부터 해당 행사는 공식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다(오순환 등, 2017).
재현적 축제경관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비판적 참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3년에는 7개 시민단체가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며 고래축제를 생태축제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였다. 고래축제경관에 대한 이들의 비판지점은 “고래를 축제 홍보물로써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이용만 했을 뿐 고래의 생태를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으며(환경운동연합, 2023.05.11.),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의 축제이므로 고래 입장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라는 것이다(환경운동 활동가C, 2023.05.22.).
이러한 지적에 대해 축제를 주관하는 지자체가 전혀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2015년에 작성된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변경 계획”에서는 축제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위해 고래보존 등 생태적 논의를 중심에 둔 축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울산광역시 남구, 2015). 또한 과거 축제 종료 후 실시한 축제평가에서도 축제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축제방문객들의 설문조사 피드백을 바탕으로 한 2017년 평가보고서에서는 “동물 ‘고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생태, 환경, 보존, 상생 등 공감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으며(오순환 등, 2017, 104), 2022년 평가보고서에서는 “고래가 없는 고래축제”에 대한 관광객들의 문제 제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래문화재단, 2022).8)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축제경관의 변화는 2024년 울산고래축제에서 일부 가시화되었다. 해당 축제에서는 총 50개의 체험 부스 중 시민환경연구소와 환경운동연합(고래연구소)이 운영한 고래생태 관련 체험부스가 새롭게 마련되었다(2024 울산고래축제 홈페이지).9) 이러한 변화는 앞서 언급한 시민단체들의 비판적 실천과 축제방문객들의 피드백이 반영된 축제평가 결과가 일정 부분 수용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축제경관을 구성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지자체, 시민단체, 관광객 등)의 수행과 실천이 축제경관의 재현 방식과 정체성 변화에 점진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지상현 등, 2018; 권재현, 2021). 물론 이 과정 속에서 고래는 여전히 직접적인 행위자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간 행위자들이 제한적으로 고래의 입장을 대리하고 있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고래축제경관은 고래를 둘러싼 기존의 문화-자연 관계 구도가 서서히 재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2. 고래생태체험관
고래생태체험관은 고래문화체험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돌고래와 다양한 해양자원을 활용한 해양체험 공간을 조성하며, 과거 포경문화를 학습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기획되었다(울산광역시 남구, 2008). 초기 계획에는 ‘돌고래수족관’, ‘울산연안바다수족관’, ‘고래해체장’ 등의 시설이 포함되어 있었다(울산광역시 남구, 2008, 43). 2009년 개관 이후 체험관의 핵심 인프라는 돌고래수족관으로, 살아있는 돌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관광경관으로 홍보되었다.
울산 남구는 2009년 체험관 개관 당시 돌고래들에게 한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며, 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그림 1 참고). “이곳 고래들은 제각각 주민등록번호와 한글 이름을 보유한 ‘남구 주민’이다. 장생포 민원출장소를 찾아 돌고래 가족들의 주민등록등본도 발급받을 수 있다”(울산광역시, 2022, 36). 또한, 2012년에는 ‘고래의 날’을 기념해 고래도시 울산을 알리는 데 기여한 4마리 돌고래들에게 ‘2012 고래문화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울산신문, 2012.04. 24.). 그러나 이 체험관의 돌고래들은 모두 일본 와카야마현 타이지의 돌고래 양식장에서 기증받거나 수입된 개체들로, 이는 해양에 서식하던 돌고래를 인간의 통제 하에 있는 육상공간(수족관)으로 이주시킨 사례에 불과하다. 이는 해양의 주민인 돌고래를 울산의 주민이라는 육화(陸化)된 존재로 포섭함으로써 ‘고래도시 울산’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관광객들의 흥미를 환기시키는 재현적 경관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개관 이후 돌고래 수족관의 제한된 사육 여건 속에서 지금까지 8마리의 돌고래가 폐사하였다. 이들의 예상치 못한 이상행동(예: 구토, 먹이행동 둔화)과 체온상승, 그에 이은 폐사는(연합뉴스, 2020.07.22.), 인간 중심적으로 기획된 관광경관이 비인간 행위자의 수행을 통해 균열되고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고래생태체험관이 ‘현재형’의 고래도시 담론을 구현하기 위해 야심차게 기획되었지만, 정작 돌고래의 행위성과 물질성이 해당 경관의 불안정성과 한계를 드러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최명애, 2020). 물론 돌고래의 행위성과 물질성을 ‘죽음’이나 ‘이상행동’과 같은 단편적이고 결과론적인 사건으로 치환할 수는 없지만(Barua, 2016), 수족관에서 발생하는 반복되는 돌고래 폐사는 인간이 구성한 고래관광경관의 재고를 촉구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돌고래 폐사를 둘러싼 환경적 조건과 사회적 논의는 고래생태체험관 운영방식의 변화와 재검토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국제 환경 여론이 돌고래 해양 방류를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부 지자체가 여전히 사육을 고집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였다(연합뉴스, 2021.05.26.). 제도적 맥락에서는, 2018년 환경부가 잔인하게 포획된 국제 멸종위기종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야생생물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하였다(환경부 보도자료, 2018.03.20.). 이 법률 개정안에 의해 일본 와카야마현 타이지에서의 돌고래 수입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시사울산, 2018.03.22.). 또한, 해양수산부는 2023년 참돌고래, 낫돌고래, 해마 등을 해양보호생물로 신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하여, 이들의 국가 간 유통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해양수산부 보도자료, 2023.02.22.).
울산 남구청은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돌고래의 해양 방류를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중앙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국민신문고 울산 남구청 답변, 2023.05.23.). 울산과 고래와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 인터뷰이는, 과거 포경 및 고래고기 소비 옹호에 대한 논란이 점차 고래축제경관에서 지워졌던 흐름을 상기시키며, 해당 주제를 점진적으로 지워나갔던 지자체의 소극적인 행정 태도가 고래생태체험관 운영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고래 연구자A, 2023.06.28.). 주목할 점은, 고래축제가 주로 인간 중심의 기획과 재현을 통해 구성되었다면,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인간 행위자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인 돌고래의 행위성과 물질성이 재현적・비재현적 경관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수족관 안의 고래들은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보존・전시・반대 담론을 통해 시민사회의 논쟁을 촉발하는 비인간 행위자로 작동한다. 돌고래의 제한적 수행과 실천은 인간 주도의 경관 기획에 예기치 못한 변동을 야기하며, 이를 통해 관광경관은 경직된 재현물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복합적이고 동적인 문화-자연 관계의 장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3. 고래바다여행선
고래바다여행선은 고래문화특구의 관광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실제 해양에서 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로, 인간 중심의 역사・문화적 재현을 중심으로 구성된 울산의 고래관광경관들 가운데 생태적 의미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례이다(여영숙・서재원, 2016).10) 이 프로그램은 장생포 항구에서 출발하여 울산 해안을 따라 외해로 나아가며 광활한 바다에서 고래와 조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항 초입에는 해안선을 따라 대규모 조선소, 정유공장, 대형 화물선 등 산업경관이 즐비해 있어 산업도시로서의 울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고래탐사 여정 초반에는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이 동반된다. 이들 해설은 탑승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회문화적 측면과 결부된 내용 설명이 강조되며, 이에 반해 고래의 생태적 특징, 서식지, 보존 필요성 등에 대한 설명들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해설사들은 출항 후 외해로 나가기 전에 볼 수 있는 울산항, 울산의 역사와 명소들을 소개하거나(순번 15, 34, 36), 2022년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와 고래와의 관계와 같은 서사를 동원하여 울산고래문화특구를 홍보하기도 하였다(순번 8). 이러한 해설은 울산과 고래 관계에 대한 일방향적이고 정형화된 서사를 전달함으로써 재현적 경관 형성을 위해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진종헌, 2013; 송원섭, 2015).
하지만 탑승객들은 이러한 서사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주변 해양경관에 대한 성찰과 재해석을 통해 능동적으로 고래도시 울산의 의미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선박과 크레인과 컨테이너뿐이다. 장생포 하면 떠오르던 포경이나 고래라는 낭만적인 단어와는 영 거리가 먼 광경이다” (순번 10)
“배가 바다로 나갈수록 산업도시 울산의 면모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순번 15)
이러한 탑승객들의 후기들은 관광객들이 단순히 경관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경관을 생산해나가는 과정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오정준, 2015; 지상현 등, 2018).
문화관광해설을 제외하고, 선박 내부에는 고래탐사와 관련된 체계적인 안내나 교육 자료가 부족하며 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상주하지 않아 생태관광으로서의 구성은 미흡하다. 예들 들어, 탑승객들에게 고래와의 조우 시 행동 요령이나 관련 정보를 담은 자료는 제공되지 않았으며, 선내에 부착된 일부 고래 포스터 외에는 별도의 교육적인 장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순번 25). 외해로 나가는 약 1시간 30분의 항해 동안 고래관찰 가능 여부에 대한 충분한 안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순번 23). 고래발견 시 선장이 방송을 통해 발견 위치를 안내하지만(순번 15, 20, 32),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는 과거 촬영된 돌고래 영상을 송출하고 회항한다(순번 10, 17, 21, 25). 이러한 운영 방식은 고래가 헤엄치는 해양경관에 대한 탑승객들의 사전 기대와 실제 체험 간의 간극을 만들어낸다.
고래탐사에 관한 안내와 교육의 부족은 일정 부분 저조한 고래발견율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고래발견율은 낮은 편으로, 2018년과 2019년에는 20%를 넘는 발견율을 기록했으나 다른 연도에서는 대부분 10% 내외의 낮은 수치를 보였다(표 3 참고). 울산 연근해에서의 낮은 고래발견율은 고래들의 회유 시기(4-7월)와 고래바다여행선의 운영 기간(4-11월)이 일치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또한 고래탐사 당시의 해무, 파도, 수온, 기온 등 해양과 대기, 그리고 육상의 다양한 환경 요인들이 고래의 특성과 맞물려 작동하고 있기에 그렇다.
“점점 지쳐가는 사람은 추위를 피해 1, 2층으로 피신했다” (순번 16)
“너울성 파도로 인해 취소” (순번 22)
“풍랑예비특보로 취소” (순번 24)
“출렁이는 파도에 설상가상 멀미까지” (순번 27)
표 3.
고래바다여행선의 연도별 출항 대비 고래발견율
| 구분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출항횟수 | 143 | 154 | 163 | 116 | 64 | 46 | 55 | 140 | 133 | 98 |
| 발견횟수 | 22 | 20 | 16 | 24 | 13 | 6 | 8 | 10 | 7 | 10 |
| 발견율(%) | 15.4 | 12.9 | 9.8 | 20.7 | 20.3 | 13.0 | 14.5 | 7.1 | 5.3 | 10.2 |
예를 들어 기상악화로 인해 예정 출항계획이 취소되고(순번 22, 24), 출항하더라도 높은 파도로 인해 고래를 발견할 수 없게 되거나(순번 27), 해무로 인해 예정 항해시간보다 일찍 회항하는 결과(순번 12) 등 인간이 기획한 고래탐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여건들은 고래관광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고, “다가가 이르는 과정”에서의 고래와 관광객 간의 ‘만남’이 계획대로 성사되지 않는 비재현적 해양경관의 양상을 드러낸다(송원섭, 2015, 313; Peters, 2016). 특히 순번 16과 27번의 후기는 인간 행위성의 과도한 강조로부터 벗어나 인간 너머 세계의 다른 물질적 요소의 관여들을 잘 보여주며, 해양, 그리고 더 나아가 지구생태계와 인간 몸의 네트워크를 연결시키는 선박 인프라의 중요성(Lambert et al., 2006; Hasty and Peters, 2012)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래관찰 가능성이 낮고, 물리적 조건이 불안정한 상황은 인간 중심적으로 설계된 관광기획 - 즉 ‘고래를 응시하는 관광객’의 시선 - 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경관형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관광객과 고래의 관계는 단순한 주체-객체 구도를 넘어, 인간 외 존재의 자율성과 물질적 특성이 결합된 복합적 해양경관으로 나타난다. 이때 응시가 실패하는 순간은 오히려 비인간 행위성의 가시화를 가능하게 하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기존의 재현적 울산-고래 담론에 의구심을 품거나 울산 해양환경에 대한 성찰적 감수성을 드러내게 된다(순번 01, 05, 27, 29).
“고래가 나타나기는 하는 건지 하고 의문이 생길 정도...” (순번 01)
“[고래를] 하도 잡으니, 나타나지 않는거겠죠?” (순번 05)
“그동안 우리가 해양보호에 힘쓰지 못한 탓은 아닐까 반성해 본다” (순번 27)
“자연이 우리 마음대로 되나” (순번 29)
반면, 고래가 헤엄치는 해양경관을 포착할 수 있었던 일부 탑승객들은 울산과 고래의 관계를 보다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재현 중심의 서사에 부합하는 감상을 공유하기도 하였다(순번 07, 20, 30).
“쿵쾅쿵쾅 설레는 기분, 여러 번 탑승 중 처음 발견, 아이들과의 관광지로 적극 추천” (순번 07)
“고래떼의 웅장함과 경이로움...대자연의 멋짐과 아름다움” (순번 20)
“정말 울산 바다에 고래가 다닌다니~...선장님이 알려주시길 울산바다에서 볼 수 있는 고래는 참돌고래” (순번 30)
그렇지만 아래 고래를 발견한 후기(순번 15)와 그렇지 않은 후기(순번 06, 순번 19)가 보여주듯이, 고래바다여행선의 탑승 경험에 대한 인식이 고래발견 유무에 따라 ‘긍정 vs. 부정’과 같은 이분법적 방식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었다.
“울산이 공업도시가 되지 않았더라면 자연 그대로의 바다로 있었더라면 아마도 울산 앞바다까지 고래들이 노닐다 가는 곳이 되지 않았을까...” (순번 15)
“단체로 온 손님이 있었는지 너무 소란스러웠음. 막걸리도 가져와서...” (순번 06)
“생각보다 고래를 볼 수 있는 날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진 않지만 시원하게 바다뷰를 보고 바람 느끼러 가기에는 충분히 좋은 코스” (순번 19)
이를 바탕으로 볼 때, 고래바다여행선에서 체험하는 울산 고래관광경관은 단순히 해양에서 고래를 발견할 수 있는지 여부로 환원되지 않는다. 고래를 매개로 한 경관경험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덜 가시화된(less visible) 해양환경, 특히 오염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인식을 확장하게 하며(Beatley, 2014), 이는 일부 블로그 후기(순번 15, 27)를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고래관광경관은 고래의 자율성, 해양과 대기 환경의 물리적 조건, 선박과 선원, 해설사, 그리고 함께 탑승한 다른 관광객 등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이 경관의 일부로 상호작용하며 공동으로 (재)형성해가는 과정 속에서 구성된다(진종헌, 2012; 최명애, 2020).
이러한 경관 형성 과정은 고래관광경관을 단순히 고정된 재현의 틀 속에서 해석하는 것을 넘어선다. 즉, 고래를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으로 일방적으로 대상화하는 인간 중심적 시각을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상호작용하며 얽혀드는 가운데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비재현적 문화경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특히 고래바다여행선에서 드러나는 경관은 자연과 문화를 둘러싼 재현적 서사를 드러내는 동시에, 관광객・선박・해양환경・돌고래와 같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경관이 어떻게 수행적으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VI.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울산 고래문화특구를 사례로 하여, 문화경관, 관광, 해양의 관점을 교차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고래관광경관을 자연-문화, 인간-비인간, 재현-비재현의 경계가 맞물려 작동하는 동적이고 관계적인 실천의 장(場)으로 분석하였다. 과거 포경업의 중심지였던 울산은 고래를 매개로 한 문화・역사적 유산을 바탕으로 ‘고래도시 울산’이라는 정체성을 구축해왔으며, 이는 고래축제,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 등의 관광경관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분석 결과, 이러한 관광경관은 단일하고 일관된 서사와 장소성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고래축제의 경우, 초기에는 포경문화의 재현과 고래고기 소비를 중심으로 한 ‘고래문화’의 재현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이후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와 관광객들의 피드백을 통해 생태적 감수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경관의 구성이 서서히 전환되고 있었다. 고래생태체험관은 ‘고래도시’의 현재적 서사를 강화하려는 기획이었지만, 돌고래의 이상행동과 반복적인 폐사는 인간 중심적 관광경관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며 재현적 경관의 균열을 드러냈다. 고래바다여행선의 경우, 해설사와 선원이 제공하는 정제된 울산과 고래에 대한 서사와 더불어, 고래의 예측 불가능한 행위성, 해양의 물질성, 기상 조건, 선박 모빌리티, 탑승객들의 수행적 실천 등이 뒤섞이며, 개별적이고 비재현적인 해양경관을 산출하였다(Lambert et al., 2006; Haldrup and Larsen, 2009; Hasty and Peters, 2012). 이러한 분석은 경관을 고정된 재현의 대상으로 환원하기보다, 관계적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울산의 고래관광경관은 단순한 도시 브랜딩이나 관광자원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들, 재현적 기획과 비재현적 수행, 육지와 해양의 얽힘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적인 경관이다. 돌고래 폐사, 시민사회의 비판, 고래 조우의 불확실성은 피드백 과정을 거치며 지자체와 국가 차원의 정책적 변화를 촉구하며 기존의 고래를 둘러싼 문화-자연 이분법을 교란시킨다. 다시 말해, ‘고래도시 울산’의 도시 정체성은 고래관광경관을 둘러싼 재현과 수행의 긴장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경관은 인간-비인간 관계의 불안정성과 다층성을 드러낸다.
본 연구는 관광을 통한 문화경관 형성을 인간 중심의 시각적 소비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하는 관계적・수행적 과정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해양을 중심에 두는 관점은 기존 육상 중심적 논의를 넘어, 도시・인간・해양(생물) 관계를 새롭게 사유할 가능성을 열었다. 이러한 확장은 향후 문화경관 연구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라는 인류세적 위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유효한 이론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Whatmore, 2006; 범영우, 2024).
나아가 관광, 어업, 중공업, 물류 등 해안 도시의 다양한 산업활동 속에서 도시와 해양의 상호작용이 긴밀해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Kraus and Rolland (eds.), 2009; Beatley, 2014), 해양적 차원으로 확장된 문화경관 연구는 해양뿐 아니라 육지, 대기, 더 나아가 지구적 차원의 생태-사회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Peters, 2010; Anderson and Peters, 2016). 근대적 시공간 질서에서 소외되어 온 해양과 그곳의 존재들을 문화경관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작업은 인류세 시기의 생태적 전환을 모색하는 중요한 학술적・실천적 기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