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국토지리학회지. 30 June 2023. 141-163
https://doi.org/10.22905/kaopqj.2023.57.2.4

ABSTRACT


MAIN

  • I. 서론: 빨갛게 물든 전국 지도와 소멸 위기에 놓인 한국

  • II. 이론적 배경: 공간적 인식론으로서 영토적 덫(territorial trap)2)

  • III. 행정구역 중심의 지방소멸 정책의 현실과 한계

  •   1. 지방의 부상과 새로운 인구정책방식의 도입

  •   2. 지방의 인구경쟁 본격화: 단기적‧미시적 접근에서부터 장기적‧거시적 계획마련까지

  •   3. 지방소멸과 국가개입의 한계 : 정주성(定住性)을 둘러싼 비판적 접근

  • IV. 결론: 반복되는 행정구역 통합 실패의 교훈

I. 서론: 빨갛게 물든 전국 지도와 소멸 위기에 놓인 한국

인구 감소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아래에 제시된 지도가 매우 낯익을 것이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이 경과된 2117년의 한국은 지방 소멸로 잠식되어 지방의 위기가 아닌 국가의 위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의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국가 소멸 위기 국가로 한국을 1순위로 꼽은 것1)이 우습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인구 감소의 문제가 국가와 지방의 엄청난 재원 투자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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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시군구별 장래 소멸 위험지역(출처 : 감사원(2021))

마치 문제의 해결이 아닌 지연의 방편으로서 인구 감소 대응이 읽히고 쓰이는 와중에 이들 전략 이면에는 숨겨진 일종의 암묵적 전제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지방 소멸=인구 감소’라는 등식 속에 결여된 지역 그 자체의 공간적 이해가 바로 그것이다. 지방 소멸은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의 활력이 감소하여 지방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어야 하는데, 이 개념의 출처로서 지방소멸이 인구문제에 국한되어 있다 보니, 인구 이외에는 설명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의 쇠퇴가 발생하는 원인을 ‘인구’ 문제로만 한정하여, 인구 감소 위기를 지방 소멸로 공포심을 가지게 하는 전략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소멸위험지수가 가지는 한계로 인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정성호, 2019; 허문구, 2022; 하지혜・강정은, 2022), 여전히 젊은 여성과 고령자의 비율로 결정되는 지방소멸의 현실은 지역의 공간적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아래의 그림으로 돌아가 2017년부터 2117년의 지도에서 변하지 않는, 조각조각 나눠진 행정구역의 선들에 주목해보자. 중앙정부를 비롯한 지자체의 지방소멸 전략은 이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추진되고 있다. 여기서 행정구역은 단순한 선이 아닌 다양한 사회, 경제, 정치적 이슈가 연동된 경계로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한 공간적 차원의 인식은 지방자치제 확립과 함께 정책의 표준 또는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사업 대다수 역시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인구의 유입을 촉진하고 유출을 단속하는 내용이다. 다른 지역의 인구를 가져오고 기존 거주민의 이동을 막아 인구의 사회적 증가를 기대한다. 출생인구에 기반을 둔 자연적 증가를 동시 추구하기도 하지만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 0.81명의 수치로 미루어 본다면, 인구 증가의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구역을 경계로 인구를 옮기는 정책이 실질적인 지방 소멸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집계되는 인구의 증감은 인구이동에 따른 명암이지 실질적인 인구증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에 대해서는 문제시하면서도, 지방 소멸과 연관된 ‘지방’이라는 스케일 자체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지방소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인식과 함께 암묵적으로 자리잡은 행정구역이라는 제도적 경직성에 대한 적절한 검토가 요구된다.

현재의 행정구역 개편은 1995년 도농통합 방식을 통해 지역주민의 생활권에 적합한 구역의 마련과 행정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추진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세계화, 개방화에 대한 대응, 대내적으로 지방자치제의 도입을 통해 이에 걸맞은 행정구역의 변화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중앙정부는 주민생활권과 행정구역의 불일치로 인해 거주민의 생활불편, 지역 정서적인 반감, 도농지역의 불균등 발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정규모의 지역을 배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정순관, 2005; 박종관, 2023).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논의는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전개되어 왔다. 첫째, 행정구역의 개편 효과, 둘째 행정구역 개편안으로 인한 쟁점, 셋째, 다른 국가의 행정구역의 개편 사례에 대한 것이다. 첫째, 행정구역 개편으로 불거진 쟁점과 평가에 대한 논의는 해당 주제 연구 성과의 다수를 차지한다. 주로 시군 통합과 관련된 성과 평가를 다양한 방법론으로 분석하고, 문제 개선을 위한 정책 제언을 제공하였다(이양재・정영헌, 2005; 박기관, 2007; 복문수, 2010; 황의정・우명제, 2017; 임석회・송주연, 2020). 예를 들어, 정재진・이병량(2010)은 1995년 시군통합 사례로, 경제적 효과와 정책적 효과를 도출하였다. 행정구역 개편의 효과는 단기적으로는 지역경제 발전 효과가, 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제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대했던 정책효과가 충분히 달성되지 못한다는 한계와 장기적 차원에서 통합이 후속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계적 자율통합과 행정구역 경계 변화의 유연적 적용을 제안하였다.

둘째,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한 갈등과 조정에 대한 쟁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지상현, 2000; 김진욱・장향순, 2011; 이홍준・남재걸, 2012; 박진우, 2017). 행정구역 개편은 기존의 행정 영역을 수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지역 간의 충돌을 초래하였다. 또한 통합 지역의 명칭 변경도 유사한 갈등을 야기하였는데, 지상현(2012)은 이러한 현상을 지명을 중심으로 지역정치가 작동한 것으로 해석하고, 지역명칭이 결정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논란이 되는 이유로 지명이 가진 역사와 정체성 아닌 인구 규모나 기초의원의 수와 같은 정치적 자원의 양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설명하였다. 행정구역 개편은 지역 주민의 인식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는데, 여러 연구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일방적, 강제적 통합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의견 무시, 적절한 합의 도출 과정의 부재 등으로 인해 부정적인 정서가 발생하였다(김용철, 2009; 하정봉・길종백, 2012; 민병익, 2015).

셋째, 독일, 일본 등 행정구역 개편을 앞서 경험한 지역에 대한 분석과 함의를 도출한 연구들이 해당된다(백윤철, 2006; 조성규, 2010; 남성욱・황주희, 2018; 강정구 등, 2022). 안영진・김상빈(2004)을 비롯해 안영진(2012, 2013)은 다수의 연구를 통해 독일의 행정구역에 대한 역사적 흐름과 개편 방향에 대해 검토하였다. 독일은 60-70년대에는 구서독을 중심으로, 1990년대 동독과 서독의 재통일에 대한 효율성 제고를 위하여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구동독 지역의 경우, 급진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었으며, 군과 자치시 차원의 통폐합을 중심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진 구서독 지역 역시 지방 자치권의 문제, 경직적이고 획일화된 구역설정으로 인하여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개편 이후 지자체의 권한과 책임이 커지면서, 자율성이 증대되었으며, 공공행정 서비스의 질도 향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김해룡, 2006; 박해육, 2009).

이러한 선행연구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에서는 행정구역의 개편이 이루어졌으며, 당시 세계적인 흐름에 대한 대응, 국가와 지방의 요구 등이 반영되어 추진되었다. 그러나 행정구역 논의는 정책적 측면에서만 검토된 탓에, 그것의 공간적 인식에 담겨 있는 사회, 정치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곧 현재의 인구 대응책들이 인구에만 초점을 두고 있어, 행정구역은 주어진 전제로 받아들일 뿐 그 안에 내재한 인구의 증감과 이동을 유발하는 공간적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연결된다.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행정 기반의 공간 재구조화는 불가역적 현상이 아니다. 행정구역 개편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법‧제도로서 지방소멸의 문제를 인구가 아닌 지방 즉, 행정구역이라는 공간적 문제로 전환하여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와 지역의 경쟁력 하락이 명확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행정구역을 유지하는 방식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본 연구의 이론적인 틀로 접근하고자 하는 개념으로써 영토적 덫(territorial trap)이라는 은유는 Agnew(1994)가 제안한 표현으로, 국제관계이론가들이 국가의 영토성을 논할 때, 서로 다른 역사적-지리적 상황에서의 영토의 중요성과 의미의 차이를 고려하기보다 불변의 실체로서의 영토국가의 영속성, 완결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영토 중심의 국가가 역사적으로 독특한 정치적 지리적 형성을 보여준다기보다, 정치 질서의 불변의 공간적 틀이라는 가정으로 인해 새로운 비(非)영토적 역학에 대한 상상력과 인식을 모두 방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냉전의 종식, 세계 경제의 속도와 변동성의 증가, 영토 국가의 틀 밖에서의 정치 운동의 출현은 시-공간적 맥락에서 국가의 영토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영토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로서 세 가지 지리적 가정-국가 공간은 주권 공간으로서 고정되고 안전한 영토 단위라는 것, 국내, 국외의 공간은 명백히 구분할 수 있는 분리 가능한 영역이라는 점, 영토화된 주권 국가는 사회를 담는 하나의 '용기(container)'라는 것-이 영토적 덫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따라서 영토적 덫의 개념은 영토의 구획 그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영토적 고정성을 가진 국가 혹은 사회의 단위가 국가 간의 관계나 국가 내의 지역 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규범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id-Henry, 2010).

연구의 사례로 든 지방소멸 이슈는 영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접근방식이 인구에만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 시행의 이면에는 인구와 영토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영토적 덫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푸코(Foucault, 2007)는 통치성 논의에 있어, 영토의 고정성, 불변성은 국가 유지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이러한 영토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인구의 유지가 중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영토의 존속과 확대라는 통치방식에서 벗어나 국가 영토 안에 있는 인구에 대한 통치 전략이 국가의 정치력을 강화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인구 증가=국력 증대라는 논리가 정상화되어 결혼과 출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통치성은 영토와 인구에 대해 분리된 통치가 아닌 ‘영토-인구와 연계된 통치성(governmentality based on territory-population nexus)’ 이며, 현대 국가에서도 동일한 프레임이 반복,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영토의 통치는 비단 국가 스케일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며, 지역 단위에서도 이루어진다. 지방의 통치성이 국가의 통치성과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쟁점은 남아있으나 확실한 것은 지역의 총합이 국가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역으로 국가의 존재없이 지역의 독립성이 인정될 수 있는가를 따져본다면, 국가와 지역 간의 관계는 지역이 국가의 행정적, 법적, 정치적 권위를 수용하면서도, 지역만이 가진 정체성, 내부적 사회 네트워크 등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통치 방식을 가지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자율성이 완전히 보장되는 사회일지라도, 지역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받고 유지하기 위한 행위와 노력은 국가와 별개로 작동하기 어렵다. 특히, 중앙정부의 권한이 막대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재정의 배분과 법, 제도의 적용 범위에 있어 지방의 정치, 경제적 영역이 국가에 포섭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인구-영토 통치의 논리가 국가에서 지방으로 전이되는 상황은 공간적 스케일의 위계에 수반되는 종속성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와 지역의 인구-영토 통치의 전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영토적 덫’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지방의 통치행위 속에 담겨 있는 공간적 관성(spatial inertia)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국경, 이주, 예외적 영토 등과 같은 다른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영토적 덫의 특징을 다루었다면, 본 연구에서는 국가 내부의 통치 전략으로 영토적 덫에 구속되는 상황, 더 나아가 지역의 영토 논리 역시, 제 영토 내 정주 인구 확보를 성장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삼는 현상을 비판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영토적 덫이라는 공간인식론을 바탕으로 인구 위기로 시작된 지방소멸의 논의가 현재에 이르게 된 정책적 흐름을 살펴보면서, 영토적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들을 분석하고 행정구역 중심의 인구 정책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있어 인구의 질적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연구의 대상 시기는 인구 감소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2003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 무렵부터 2022년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이 제정되고 시행된 시기까지로 보았으며, 저출산, 인구증가, 귀농귀촌, 주민등록 전입 등을 목적으로 시행 중인 지자체별 조례분석을 통해 행정구역 중심의 지방소멸 대응정책 실태를 조명하는 한편, 해당 지자체별 도시‧군기본계획, 통계청 및 행정안전부 자료, 관련 언론보도 등을 검토하여 인구를 둘러싼 지방의 속내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II. 이론적 배경: 공간적 인식론으로서 영토적 덫(territorial trap)2)

한 국가나 사회는 다양한 공간적 스케일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줄이고 내부의 통제와 외부로부터의 보안 및 방어를 위하여 일정한 영토 질서를 만들어낸다(Paasi, 2000; 2005). 영토에 대한 법, 제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이동통제, 출입국의 관리 등의 행위는 일종의 영토 질서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간의 계층 구조를 반영하며, 공간 스케일에 교차되는 지점에서 유연해 보이면서도 가장 완고한 영토적 덫이 (비)의도적,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실현된다. 이는 영토가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면서도 동시에 국가나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낸 함정이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영토에 대한 인식은 고정적이고 절대적이라는 제한된 패러다임을 통해 사회의 공간질서를 만들어내고 이는 곧 영토적 덫으로 귀결된다. 덫의 역할이 어떤 것을 꾀어 잡아두는 것이라면, 영토적 덫의 본질은 특정 집단의 사람들(예: 난민, 불법체류자, 범죄자 등)이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막거나(Agnew, 2015), 한번 규정된 공간의 질서가 완벽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적 기술(political skill)로서의 영토는 단순히 정치적-경제적 또는 정치적-전략적인 것이 아니라 법의 발전과 토지 측량 및 지도 제작과 같은 기술의 역사와 관련을 맺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Elden, 2010).

따라서 국가가 항상 영토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니며, 영토에 기반을 두고 사회가 질서를 갖추게 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경향 때문이라기보다는 국가 내, 외부의 합의와 공동의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Agnew, 1994). 영토적 덫이 대한 애그뉴의 시도는 영토의 이상적이고 폐쇄적인 접근 방식에 도전하는 것으로, 국가와 영토 간의 상호 구성 관계가 선험적 관계가 아닌 역사적, 우발적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Reid-Henry, 2010). 이는 단순히 지리적 상상력을 국가에 기반을 둔 족쇄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지리적 상황에서 (영토 국가의) 중요성과 의미를 탐구’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Murphy, 2010). 따라서 Newman(2010)은 영토의 다면적 차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 권력의 상징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토적 덫의 개념 안에 녹아 있는 공간적 복잡성과 다층성에 대한 접근은 현 시대의 영토적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Agnew(2015)가 지적했듯이, 주권과 영토의 결합은 허구에 불과하다. 실제로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영토 침탈은 주권이 영토 바깥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다국적 기업들의 경제 행위가 하나의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으로 영토적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적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영토적 덫을 우회하는 전략으로 주권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McConnell(2010)은 주권을 역사적으로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실천, 담론, 일상의 물질성을 통해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첫째, 영토적 덫이 전제하는 가정이 일상적인 관행에 의해 어떻게 도전되고 전복되는지, 둘째, 주권-영토 간의 관계가 불안정하고, 별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상상이 어떠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Paül and Trillo-Santamaría, 2015).

그러나 학술적 차원에서 영토적 덫에 대한 이해가 증대되고, 영토의 유연성, 다층성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영토적 덫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연한 공간 인식론과 현실의 충돌 상황 속에서, 국경 통제의 강화, 자민족 중심주의, 방법론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국가 안보 논리가 우세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영토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이동, 가상 공간을 통한 네트워크의 형성 등으로 국경 없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여전히 국가는 사라지지 않았고 정치는 더욱 영역화되었다(Diener and Hagen, 2005).

이러한 연장선에서 Shah(2012)는 영토적 덫을 극복하고자 했던 세계화 이론의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침투 불가능의 영역으로서 영토를 이해하게 되면, 대다수의 세계화 이론은 정치 질서의 예정된 틀로서 영토적 인식을 제거하기보다는 강화하기 때문이다. 영토적 덫의 관점에서 세계화는 영토를 초월하거나 영토성이 소멸되는 것이 아닌 영토에 귀속된 국가 경쟁의 확대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세계화는 전쟁, 경제 위기 등과 같은 특정 사건과 다양한 세력에 의해 야기되는 불균등한 과정이며, 시공간적 흐름에 따라 영토적 덫의 의미와 적용방식이 다양한 형태를 띠며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들은 영토에 대한 집착이 폭력적으로 전회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금융위기 역시 자국에 대한 보호, 위기로부터의 탈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영토적 덫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Glassman, 1999).

영토적 덫은 국가 간의 관계나 주권과 관련되어 설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이외의 권력 형태에도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인도에 기반을 둔 티베트 망명정부는 경계가 있는 영토를 가진 주권 민족국가는 아니지만, 국가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국가 체제 내에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적 실체로 인정되었다. 비국가 정치체제에서도 영토적 덫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McConnell, 2010)를 통해 영토적 덫의 권력 변형이 가능하며, 이 개념이 권력, 공간 및 정치 시스템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고 잠재적으로 다양한 지정학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토적 덫이 가지는 개념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제하는 지리적 가정들로 인해 오히려 함정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McNeill(2023)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복에 대한 유럽의 이익과 관련하여 영토적 덫이라는 개념 안에 국제 안보 모델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해적들이 빈번하게 약탈행위를 일으키는 아덴만 지역을 사례로 한 이 연구는 “글로벌” 공간의 안보 위기를 문제가 있는 “지역” 공간의 영토 봉쇄로 접근하려는 국제 사회의 대응 방식이 영토적 덫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해적과 같은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이 네트워크화되고 탈영토화된 공간과 관련하여 해석되는 반면, 위협 자체, 그 기원 및 움직임에 대한 진단은 정치 질서의 영토적 상상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국제 안보의 논리가 영토적 덫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영토적 덫이 가진 서구중심주의의 논지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선행연구에서 국가 중심 혹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영토적 덫에만 논쟁이 치중한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Murphy, 2010). 영역의 고정성, 절대성을 기준으로 모든 사회 전반의 전략적 선택을 취하게 만드는 경직적 공간 인식은 국가의 일부인 지역도 유사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관성적 경계 인식을 통해 지역 내의 문제를 공간적 차원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지역이 영토적 덫으로 인한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는 것은 영토를 기반으로 한 경로 의존적 행위가 지역 정치를 보존하고, 지역 내부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역 갈등은 영토적 덫이 노골화된 현상이지만 대부분의 연구에서 이것을 영토적 덫에 기인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추궁하고, 어느 지역의 문화나 정치에 대해 객관적 근거없이 비하하는 등의 행위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 이면에는 지역 내부에 작동하고 있는 영토적 덫을 정상화하고, 지역 바깥에 있는 자들을 비정상화하는 영토적 덫이 매우 강력한 기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조명래, 2011). 급기야 영토적 덫에 걸려 자신이 의존하는 지역의 영역적 이해와 정체성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행위자들의 움직임은 일종의 도시정치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소진광, 2018; 박인옥, 2020). 자본주의 경제가 행위자들의 장소적 고착성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 생산방식, 입지를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자본, 기술, 사람들의 이동성을 증대시키는 탓에 지역을 둘러싼 공간경제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국지적 의존성에 기반한 이해관계자들의 대응은 실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Harvey, 1985; 박배균, 2006).

따라서 영토적 덫의 개념적 해석은 지역 스케일에서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의 영토적 덫과 비교해보았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살피는 것은 이 개념에 대한 이해를 보다 높일 수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 수정의 근거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국내 지방소멸 논의가 영토적 덫의 일환인 행정구역 중심의 고정적 공간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지역의 인구소멸 사업이 영토적 덫에 빠져 다른 지역의 인구를 유인하는 제로섬 게임에 치중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고자 도입된 국가 차원에서의 인구감소지역 지원 제도 역시 영토적 덫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고자 한다.

III. 행정구역 중심의 지방소멸 정책의 현실과 한계

태생적으로 행정구역을 경계로 펼쳐지는 지방의 인구 사업은 국가의 인구정책 노선을 잇는 동시에 새로운 인구 전략을 시도하는 출발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 인구정책=지방소멸대응책’이 된 상황은 여러 지원책 마련에도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현재의 인구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끔 한다. 본 장에서는 오늘날 지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지방소멸대응 정책의 특성과 한계를 3가지 논의의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곧 행정구역 중심의 영토적 덫에 걸린 지방소멸 정책이 국가에서 지방 차원으로 분화하는 과정을 살피는 동시에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요구됨을 제안하는 논거가 될 것이다.

1. 지방의 부상과 새로운 인구정책방식의 도입

일반적으로 인구정책은 다분히 국가중심적인 이해를 가지며 인구는 국가발전의 상관관계 속에서 읽힌다. 과거 풍족한 인구에 따른 인구억제정책으로서 ‘가족계획사업’이 현재 부족한 인구에 따른 인구증가정책으로서 ‘저출산 대책’으로 치환되었을 뿐, 인구를 발전의 매개체로 인식하는 국가의 입장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1970년대 ‘단산’(斷産)의 가족계획사업이 인구증가가 개발을 저해한다는 광범위한 인식하에 기획된 사업이었던 것처럼 2000년대 들어 ‘다산’(多産)의 저출산 대책이 생산인구 감소, 고령사회 심화, 이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 및 경제성장 둔화라는 경제발전을 둘러싼 연쇄적 문제 과정에 배치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현재와 차이가 있다면 과거 소(小)자녀 중심의 국가시책들은 국민 스스로 인구와 경제성장 간 관계를 내재화시켜 인구를 줄이고자 했다면 현재의 인구정책은 이와 사뭇 다른 양상이라는 점이다. 자녀의 수를 경제적 이득 및 손해와 결부된 것으로 만들고 가족 형태 자체를 경제적인 범주로 만드는 작업(Gordon et al., 1991; 이진경, 2003:196)이 60-80년대 인구정책의 방식이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인구정책은 ‘지방’이라는 공간 단위를 중심으로 도입된 인구경쟁이라는 방식이 작동한다.

IMF이후부터 한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가 상당히 어려웠던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도 4%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큰 ‘인구보너스(Demographic Bonus)’ 시기에 해당하였기 때문이다(이삼식 등, 2015). 하지만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지칭하는 인구절벽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 한국은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부양해야 할 인구가 늘어나는 ‘인구오너스(Demographic Onus)’의 시기에 직면해있고, 구조적 저성장 우려 속에 국가는 이를 극복하고자 출산력 증대를 강조한다.

지방도 저출산 해결을 위해 여러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목표설정과 방향은 다소 차이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시 말해, 인구증가의 관점에 있어 국가는 노년부양비, 유소년부양비 등 인구와 관련한 지표에 분모를 차지하는 생산가능인구 증가를 목표하고 있다면, 지방은 생산가능인구만큼이나 연령대를 불문한 주민등록인구의 양적 증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 제고 및 청장년층 유입을 통해 지역 내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을 높이는 일만큼 관내 주민등록 둔 실거주자로서 주민 수를 늘이는 일이 지방의 큰 관심사라는 점이다.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은 주민의 거주관계 등 시군구별 인구의 동태적 측면을 명확히 파악하여 이로써 주민생활의 편익 증진 및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지방의 기본적인 사무 배분에서부터 교부세 산정, 선거구 획정, 행정기구 설치 등 주민등록인구가 일종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까닭에 주민등록은 지방이 인구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즉, 주민등록체제는 행정구역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한 제도로 특정 지역에 인구를 정주시키는 것을 ‘정상화’하고, 그들에게 해당 지역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종속시키는 방식을 따른다(김영미, 2007; 홍성태, 2012).

주민등록체제는 행정구역을 공고히 하는 일종의 장치이고 행정구역은 주민등록체제를 통해 지속 유지된다. 그러나 행정구역을 경계로 삼는 지방에게 인구란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한 제로섬(zero-sum) 관계일 뿐이다. 국가 영토와 달리 주권을 토대로 한 구속력이 없고, 헌법 제14조에 따른 거주이전의 자유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지방의 행정구역은 국토 어디든 자유롭게 거주하고 이전할 수 있는 인구를 지역적으로 구분한 인위적 경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구의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는 유발요인은 행정구역을 넘어선 인구이동을 증감시키는 변수와 같고, 유입지역과 유출지역 간의 인구경쟁은 지방의 정책적 현실과 다름이 없다.

인구수에 자유롭지 못한 지방의 입장에서 인구경쟁이 본격화된 시점은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시행된 이후다(이상림, 2014). 저출산 양상에 따른 국가적 정책 대응 이외에도 지역 차원에서의 정책 대응의 중요성이 부각된 시점으로, 지방자치법 개정 등 법제적 노력을 통해 지방자치제가 정착되고, 중앙정부의 사무이양 등을 통해 지방분권이 가속화되면서 지방이 관할 구역 내 주민을 스스로 다스리는 자율적인 지위와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 부상한 맥락과도 연결되어 있다(김순은 등, 2022).

실제 오늘날 지방정부는 지역의 인구문제에 대처하고자 자율적으로 행정조직을 편성‧운영하고 있다.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가족과, 여성아동과, 복지정책과처럼 기존 유사 업무를 담당하던 부서가 관장하거나 총무과, 기획홍보실, 정책담당관 등처럼 특정 부서를 통해 업무를 추진하는 예도 있지만, 인구정책과, 인구청년과 등 인구를 전면화하여 부서를 편성한 곳도 많아 인구문제가 지역의 고유한 업무영역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충북도청, 전남 진도군처럼 인구늘리기 대응이라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기 위하여 여러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TF팀을 구성한 사례도 있다.

표 1.

기초자치단체 인구정책 조직편성예시

구분 해당 지역
인구정책 전담 강원 정선군(인구정책팀), 전남 장흥군(인구청년정책과), 전북 순창군(인구정책과), 전남 목포시(청년인구과) 등
기존부서 전담 경기 과천시(복지정책과), 경기 광명시(여성가족과), 광주 동구(여성아동과), 부산 동구(가족복지과),
전남 순천시(보육아동과) 등
특정부서 전담 경기 가평군(기획예산담당관), 경기 동두천시(기획감사담당관), 충북 영동군(기획감사관),
충남 금산군(기획조정실), 전남 광양시(전략정책실), 강원 태백시(예산정책실), 전남 담양군(참여소통실),
강원 속초시(자치행정과), 전남 나주시(미래전략과), 충남 보령시(새마을공동체과) 등
T/F팀 구성 충북본청, 전북 군산시, 전남 진도군 등

자료: 지방자치단체별 저출산‧인구증가 관련 조례 및 기사 검색(검색일: 2023.4.20.)

사실상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인구문제 대응을 위해 행정력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나 실효성 부분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지방 공무 조직의 개편이 사업의 효율성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결과가 매우 제한적이고(김윤권・오시영, 2008; 이지은・가선영, 2021), 한정된 수의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정책에 대한 지방정부의 접근은 자신의 행정구역 안에서 인구수만 늘리면 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3) 2005년부터 2023년 4월 현재까지 저출산 극복, 인구증가 등 인구 위기의 대응으로서 지방에서 추진된 갖은 노력의 결과가 지방소멸로 귀결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역적으로 정책적 차별성 없이 행정구역 중심의 양적 증가에만 목표를 둔 대표적인 사업은 출산장려금이다. 저출산 극복을 목적으로 도입된 출산장려금 지원 사업은 2021년 기준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222곳(98.2%)에서 추진 중(보건복지부‧육아정책연구소, 2021)일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문제는 국비와의 매칭 사업 형태가 아닌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시책이다 보니 현금성으로 지급되는 지원 금액을 두고 지자체 간 과열 양상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지자체의 조례 및 시군 홈페이지, 신문기사 등을 통해 출산지원금 현황을 살펴본 결과, 지자체별 출산장려금은 천차만별이다. 출산장려금 외에 임신지원금, 출생아건강보험료, 산후조리비 지원금, 기저귀 등 아이용품 지원비, 양육수당 등 지원 내역이 세분되어 나타나는 가운데 지역에 따라 지원 여부와 정도의 차이가 컸다. 이 중 출산장려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기준으로 지자체별 비교분석을 시행한 결과,4) 지자체의 정책지원은 가히 현금 살포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출산장려금은 출생아 수에 비례하여 해당 가구가 수혜하는 금액이 누적적으로 늘어나게끔 설계되어 있는데, 일부 지역의 지원금액은 출생아 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5) 따라서 본 연구는 지역별 과도한 지원 양상을 드러내는 것에 방점을 두고 한 지역에서 한 가구가 첫째아이부터 넷째아이까지 출산장려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지원받는 경우를 가정하여 지자체별 합산 금액을 살펴보았다.6)

그 결과,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는 지자체의 수는 총 196곳이었다. 대구 북구, 대구 서구, 달성군 등의 일부 지자체는 기존 출산장려금을 폐지하고 출산축하금을 도입한 상황이었고, 서울 동대문구를 포함한 18개 서울 자치구의 경우는 보건복지부가 2022년 신설한 국비 매칭 사업인 첫만남이용권에 기존 출산지원금을 통합하여 시행하는 추세였다. [그림 2]와 같이, 2023년 4월 현재 출산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최대금액을 지원하는 곳은 1억 2천만 원의 충청북도 괴산군이고, 최소는 80만 원의 광주광역시 남구다. 196개 지자체의 출산장려금 평균 금액은 1,976만원이고, 천만 원 이상의 지원금을 제시한 지자체의 수는 117곳으로 전체의 60%가량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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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기초지자체 출산장려금과 합계출산율 상관분포도
(주: 한 지역에서 한 가구가 첫째아이부터 넷째아이까지 출산하였을 경우를 가정해 지원 내역 상 출산장려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자체별로 산출)

한편,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실질적인 목표이자 성과지표로서 시군구별 합계출산율을 살펴보면 2021년 기준 전국 평균은 0.81명으로 최고는 1.87명의 전남 영광군, 최저는 0.38명의 부산 중구다. 출산지원금과 합계출산율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여 분포도를 그려보면, 출산장려금 1,000만 원이하, 합계출산율 0.6명에서 1.0명 사이에 최다 지역이 위치하고, 그 다음으로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합계출산율 0.8명에서 1.1명 사이에 분포하였다. 전북 임실군, 강원 양구군, 전북 진안군 등은 출산장려금 대비 합계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속했고 충북 괴산군, 경북 울릉군, 경북 예산군 등은 지원금액에 비해 합계출산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에 속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2021년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곳의 인구감소지역의 출산장려금과 합계출산율의 분포도를 살펴본 결과[그림 3], 출산지원금 1,000만 원 이상 4,000만 원 미만, 합계출산율 0.8명에서 1.2명 사이에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분포도에 비해 출산지원금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합계출산율 또한 평균인 0.81명을 상회하는 수준이나 이를 두고 지급 금액에 상응하는 결과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열로 치달은 출산지원금의 인플레이션 속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 여건의 인구감소지역 대다수가 존재하고, 1점대에 불과한 합계출산율에도 불구하고 앞다퉈 책정한 고액의 다자녀 지원금액이 결국 출산장려를 내걸고 지역이 남발한 공수표와 같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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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인구감소지역(2021년 지정) 출산장려금과 합계출산율 상관분포도
(주: 한 지역에서 한 가구가 첫째아이부터 넷째아이까지 출산하였을 경우를 가정해 지원 내역 상 출산장려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자체별로 산출)

고액 출산장려금의 실효성 비판(류정희 등, 2018; 보건복지부‧육아정책연구소, 2021; 장인수 등, 2022)에도 불구하고 출산장려금을 둘러싼 지방의 각축전 속에 인구는 단순히 ‘많이’ 낳는 것보다 ‘어디서’ 낳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방 차원에서의 저출산 정책은 사실상 지역 간 인구 유입 경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인구를 ‘빼앗아’ 내 지역에서 인구를 ‘낳게’ 하는 전략이 바로 지방의 출산장려사업이다. 유인책이 될 지원금을 두고 지방이 출혈경쟁을 마다할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산장려를 향한 막대한 예산투입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합계출산율의 성적표는 결국 국가의 총량적인 인구늘리기가 실패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행정구역을 경계로 인구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지방의 입장에서 저출산 대응은 진정한 출산장려정책의 시험장이 아닌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지원금을 내세운 인구 빼앗기의 전장(戰場)으로 변모하였다.

물론 지방의 현금성 출산장려지원사업의 부정적 효과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소위 ‘먹튀’라고 불리는 출산지원금을 노린 전입 사례는 지자체로 하여금 일시금으로 지급해왔던 장려금을 장기간에 걸쳐 분할지급하거나 월별로 분납하는 자녀보험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출산장려금 지원 내용을 바꾸어 놓았다. 또한 첫돌축하금, 어린이집 입소축하금, 초등학교 입학축하금 등 각종 이벤트성 보조금 지원을 통해 인구를 계속 머물게 하고 붙잡아 두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미디어에서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인구(人口)의 인질(人質)화’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과거 국가는 인구를 다스리는 유일한 통치자였다. 인구는 곧 국력이라는 인구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 속에서 인구를 바람직하다거나 원하는 상태로 만들기 위한 국가의 인구 목표는 단일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 지방을 중심으로 한 인구경쟁이 치열하며 그 과정에서 지방은 국가의 정책대리인이자 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업의 주체로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급기야 출생률 제고를 위해 높은 현금성 지원도 마다하지 않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향후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때 ‘해남의 기적’이라 불리었던 전남 해남군은 2012년부터 7년간 합계출산율 1위를 차지하며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이곳을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조한 증가세의 출산장려금과 장려금만 받고 떠나는 출산자들로 인해 합계출산율이 최대였던 2012년 2.47명에서 2021년 1.36명으로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7) 이처럼 지방의 저출산 대응의 명암이 현금지원의 규모나 정도로 판가름 나는 현실은 출산력 또한 행정구역을 넘는 인구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단시간 내 인구를 유인하고 붙잡을 수단은 현금성 지원이 효과적이라는 입장 역시 우세하게 작용한다. 설령 현금성 지원의 인플레가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된다고 하더라도 행정구역이라는 덫에 갇힌 지방의 입장에서는 달리 벗어날 방도가 없다. 당장 인구증가가 아쉬운 처지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유일한 인구통치자가 아니다. 지방이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였고, 새로운 인구정책방식이 도입되었다. 인구감소 시대에 대응하여 국가와 지방 모두 인구의 양적 성장을 목표하나 국가는 영토인 국토를 공간적 범위로, 지방은 지역의 이해가 응집된 행정구역이 중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와 지방의 진정한 인구 목표는 단일하지 않고, 지방 차원에서의 인구증가가 국가의 인구 총합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2. 지방의 인구경쟁 본격화: 단기적‧미시적 접근에서부터 장기적‧거시적 계획마련까지

저출산 정책이 자연적 인구증가에 대한 지원이라면, 지방소멸 정책은 인구 늘리기 전략과 더불어 인구의 균형 분산을 목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대응책은 기존의 행정구역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형적인 영토 기반의 인구정책이라는 점에서 반복된 한계를 가진다.

지방의 인구경쟁은 저출산 영역뿐만 아니라 지방소멸이라는 직접적인 위기감 속에 더욱 가시화‧제도화되었다. 지역 인구증가를 위한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에서부터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계획에 이르기까지 지방의 동태는 그야말로 숨가쁘다. 먼저, 전입을 통한 인구의 사회적 증가는 지방이 원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인구증가 방편이다. 출산보다 단시간이고, 주민등록으로 파악되는 인구증가의 효과가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는 곳을 옮기는 대표적인 전입지원책에 해당한다. 농업의 안정적 성장 및 발전, 농업 인력의 지속적인 양성 등 귀농‧귀촌의 일차적인 목적 이면에 감춰진 인구유입에 따른 인구늘리기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최민정, 2015).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귀농, 귀촌에 진입하는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층이 급격하게 줄고 있어 사회적 증가뿐만 아니라 자연적 증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민주・백일순, 2023).

또한 타지에 주소를 둔 지역대학생, 군복무장병, 미전입신고자 등 관할 지역 내 실제 거주하고 있으나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숨어있는 인구를 찾는 것도 지역의 입장에서는 단시간 내 인구를 늘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주민등록은 주민의 거주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허점이 있다. 현행 주민등록법상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 구역에 주소나 거소를 가진 사람은 전입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전입신고를 하여야 하지만, 실거주자의 전입미신고, 비거주자의 위장전입, 실거주자의 무단전출 등과 같이 현실에서의 주민등록제도는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4월 기준, 인구의 주민등록상 전입을 목표한 조례의 수는 총 146개다[표 2]. 귀농‧귀촌, 대학생 전입 등 목적별로 조례를 제정한 사례도 있지만, 인구증가, 인구늘리기 등을 조례명으로 삼아 인구의 유입이나 지역 내 정주를 지원하는 모든 지원책을 망라한 내용의 조례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지원대상은 전입자, 직업군인 및 군무원, 전입학생, 국적취득자, 신혼부부, 전입실적을 낸 유공 기관 및 기업, 군복무 장병, 출향민 등이 해당된다.

표 2.

지방의 인구증가 관련 조례 현황

키워드 조례수 예시
인구증가, 인구늘리기,
인구유입, 인구증대
78 청양군 인구증가시책 지원조례, 금산군 인구늘리기 지원조례, 영동군 인구늘리기
시책 지원조례, 연천군 인구유입시책에 관한 조례, 남해군 인구증대시책 지원에 관한
조례 등
전입 9 논산시 인구증가를 위한 전입대학생 지원조례, 미수복 지역등 출향 양구군민
전입세대 정착지원조례, 포천시 전입대학생 및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조례 등
귀농(어)‧귀촌 59 곡성군 귀농·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영주시 귀농·귀촌인 지원 조례, 임실군
귀농귀촌 임시거주시설 운영 조례 등
전체 146 -

주: 2023년 4월 기준 지자체별 해당 조례검색

특기할만한 점은 지방의 인구를 늘리기 위한 절박한 상황은 결혼이주여성과 같은 국외 인구, 고향을 떠나 사는 출향 인사 등 지역 통계 밖 인구에 대한 포섭 전략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내 부족한 출산력은 외국인 여성의 이주를 통해 충당하고, 외지인의 귀농귀촌을 장려하며, 출향민, 군인, 학생 등 지역의 숨은 인구를 찾아 이들의 주민등록이전을 종용한다[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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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대학생, 군복무장병 등 지역 내 숨은 인구(전입미신고 실거주자) 찾기
(출처: 충청일보, “충북 제천시, 대학 내 ‘출장전입신고’ 접수처 운영”, 2023.3.9.(좌)장성닷컴, “군, 상무대 입교 교육생 대상 ‘찾아가는 전입신고팀’ 운영”, 2023.3.2.(우))

그러나 전입의 대가는 저출산 정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귀농, 귀촌자에게는 소정의 정착지원금을 비롯하여 영농교육, 자녀학자금, 의료비, 주택수리비 등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전입한 대학생 또는 군인에게 장학금, 교통카드, 도서구입비, 지역발행상품권 등을 지급하며, 전입가구에게는 정착지원금에서부터 지역 내 소재 주택에 대한 전세자금대출이자, 결혼축하금, 국적취득축하금, 쓰레기종량제봉투 지원 등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표 3]. 대부분의 지원책이 단기적 차원의 현금, 현물 제공 수준으로 일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키우며, 노후까지 지낼 수 있는 생활 여건 조성은 당장의 인구 유인 정책과 별개의 문제다.

시책 성격상 지방정부의 자체 세원만으로 지원금을 충당해야만 하는 사업인 까닭도 있지만, 지방의 입장에서 전입인구는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구조에 따라 언제든지 전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전입 지원책이 정책의 차별화 지점이기보다는 일종의 정책 평균으로 자리 잡는 양상을 띤다. 유사한 내용과 구성의 조례들이 지역마다 난무하는 가운데, 조례 간 확인 가능한 차이란 지원 여부와 금액 규정 등에 불과하다[표 3]. 지역이 하나의 경쟁 단위가 된 현 상황에서 그에 걸맞은 인구정책 입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차별화된 정책발굴과 실효성있는 사업 추진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표 3.

지방의 인구증가조례 지원 내역 비교예시(충북 영동군 vs. 경남 남해군)

영동군 인구늘리기시책 지원조례 남해군 인구증대시책 지원에 관한 조례
전입
지원
전입세대
지원
25만원 지급
(1회 한정)



전입축하금
지원
1인: 10만원 상당
2인이상: 30만원 상당
4인이상: 70만원 상당
쓰레기
봉투지원
쓰레기봉투
20리터 50장
(1회 한정)
전입세대 주민세
지원
2년간, 부과금액기준 지원
전입대학생지원 최대 100만원 지급
(25만원×4회)
전입세대
빈집 수리비
지원
세대당 200만원 범위에서
보조금 지원(1회 한정)
전입군인
지원
25만원 지급
(1회 한정)
영농정착
지원
세대당 100만원 범위에서 묘목, 모종
또는 영농자재 지원(1회 한정)
셋째이상 자녀
학비 지원
학교 운영시설지원비
및 수업료
공영주차장
이용권 제공
공영주차장 이용권 제공
1대분/50매(500원/1매)
초중고
입학축하금
초등:20만원
중등:30만원
고등:50만원
남해사랑
우대인증
발급
관내 공공시설 입장료 등 감면
농어업인
결혼비용 지원
300만원
(1회 한정)
종량제봉투
지원
1인 : 300리터
2인 이상 : 600리터
공공시설
이용 우대증발급
관내 공공시설 입장료 등
감면
전입학생 지원 전입 초‧중‧고
학생지원
10만원 상당
(1회 한정)
인구늘리기
유공자
지원금 지급
(개인) 30만원
(기관‧기업‧단체)
최소30만원-최대200만원
지원금 지급
전입 대학생
지원
기숙사 입주 시 기숙사비 연 60만원
기숙사 외에 입주하는 경우
10만원 상당(1회 한정)
결혼장려지원 주거자금 대출이자
지원
주거자금 대출이자 이율의 1.5%
(최대 1백만원 한도)
결혼장려금 지원 부부당 200만원
인구증대
유공 인센티브
최소 50만원-최대100만원
임산부지원 임산부교통카드
임산부공영주차장 이용권
어린이집 입소자지원 입소 준비금 지원(1회)

출처: 영동군과 남해군 해당 조례 검색(검색일: 2023.4.22.)

반복되는 정책적 실패에 대한 자구책 마련과 날로 심각해지는 지방소멸위기 대응을 위해 오늘날 지방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인구정책을 도입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등을 법률적 근거로 삼아 ‘인구정책 조례’ 내지 ‘인구정책 기본조례’를 시행하는데 주요 내용은 지역의 인구정책 기본방향 설정 및 계획수립, 이를 위한 추진체계 규정 등으로 2023년 4월 기준 전국 104곳이 이를 보유한다. 현행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의거 5년마다 수립되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따라 지자체의 장이 수립하여야 하는 연도별 시행계획과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이 수립하여야 하는 5개년 인구감소지역대응기본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 등과 같이 국가와 지방의 공동 책무를 강조하는 일련의 인구정책 법안들이 성문화되면서 인구정책은 지방의 공공계획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이 구체화 된 계획과 법, 제도에 기반한 근거를 통해 인구정책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 지역의 인구를 세고 읽으며 합리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전문지식을 확보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지방이 하나의 통치 주체로서 기능한다는 것과 같다. 문제는 지방 차원에서 인구 계획이 가진 모순에서 비롯된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인구 추계와 달리 지방의 미래인구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흔히 장기발전계획이라 불리는 도시‧군 기본계획 내 계획인구가 대표적 사례다. 여기서 계획인구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거 각 시군이 수립하는 도시‧군 기본계획 내 향후 20년 인구 추정치이다. 예를 들어, 2023년 3월 기준 101만여 명의 창원시 인구는 2040년 114만 명이 목표이고, 동기간 331만여 명의 부산시의 계획인구는 350만 명이다. 144만여 명의 대전은 2030년 185만 명이 목표이고, 동기간 142만여 명의 광주의 계획인구는 170만 명이다. 현 시점의 인구는 감소하나 미래시점의 인구는 증가를 기대하는 모순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자세한 논의를 위해 인구감소지역 지정지역을 대상으로 도시‧군기본계획 내 계획인구를 살펴보았다[표 4]. 목표연도가 2035년이며 인구감소지역에 속하는 13개 지자체의 도시‧군기본계획의 계획인구를 동일연도의 시군별 장래인구추계와 비교 분석한 결과, 3개 시군(강원 평창군, 충남 보령시, 충남 논산시)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경우 최소 105.7%에서 최대 152.9%까지 미래에 대한 인구 전망이 높았다. 현행 도시‧군기본계획 수립지침에 따르면 목표연도 인구추계치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당 시‧군의 도종합계획 상 인구지표와 통계청 인구추계치의 105퍼센트 이하로 하고, 다만 성장형의 경우에는 승인권자가 판단하여 110퍼센트 이하로 할 수 있는데 대다수 지자체가 이 수치를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 강원 평창군, 강원 양양군, 충북 괴산군, 충북 제천시, 충남 보령시, 충남 태안군의 2023년 4월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2035년 시군별 장래인구추계를 이미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계획과 현실의 괴리를 짐작하게끔 한다.

표 4.

2035년 기준 인구감소지역별 장래인구추계 대비 목표연도 계획인구

구분 계획인구(명) 시군별 장래인구추계 시군별 인구추계대비
계획인구 비율(%)
2023년 4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경기 가평군 100,104 71,576 139.9 61,915
강원 평창군 42,000 42,156 99.6 40,729
강원 양양군 30,000 28,375 105.7 27,869
강원 고성군 31,000 26,329 117.7 27,157
강원 삼척시 88,900 60,677 146.5 63,444
강원 정선군 46,000 34,480 133.4 34,715
충북 괴산군 50,000 43,544 114.8 36,779
충북 제천시 170,000 134,898 126.0 131,459
충남 보령시 99,126 107,000 92.6 96,764
충남 논산시 119,000 125,000 95.2 111,822
충남 태안군 82,000 73,000 112.3 61,029
전북 무주군 32,000 23,295 137.4 23,416
전남 해남군 90,000 58,848 152.9 65,414

주: 일부 지자체의 경우 계획인구 내 주간활동인구를 포함하고 있어 이를 제외한 상주인구로서의 계획인구(자연적인구+사회적 증가인구)만 수치 입력

출처: 해당 시군별 도시군기본계획

경기, 충남 시군별 장래인구추계 2015-2035(2015년 기준)

강원 시군별 장래인구추계 2017-2037(2015년 기준)

충북, 전북, 전남 시군별 장래인구추계 2017-2037(2017년 기준)

2023년 4월 기준 인구 KOSIS(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용도지역 결정과 더불어 토지이용을 추동하는 핵심 지표로서 인구 추정은 출생, 사망과 같은 자연적 증감요인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변화에 따른 인구동태적 측면의 사회적 증감요인을 함께 고려한다. 통상 인구의 자연 증감 추세가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인구이동을 통한 사회적 요인이 인구증감에 미치는 영향은 더 직접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예측된 인구 추정치인 계획인구는 해당 지역 내 토지이용계획을 비롯한 여러 정책 등에 바탕이 된다. 실질적 집행계획이자 법적 구속력을 갖는 도시관리계획 내 각종 도로, 공용청사, 주차장, 공원 등의 도시계획시설은 상위법이자 행정적 구속력을 갖는 도시기본계획에서 예측한 인구를 근거로 시설 수 및 규모 등이 결정된다.

이를 지자체의 입장에 대입해보면 관할지역 내 계획인구 증가는 인구의 자연적 증감요인보다 대규모 개발사업 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인구의 생존률 추정을 중심으로 한 생잔모형 조성법에 의한 자연적인 인구증가보다 현재 계획되어 있는 도시개발 및 산업단지 조성 등 제반여건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사회적 인구증가가 최우선적인 인구증가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현행 대부분의 도시기본계획에서 인구지표의 사회적 인구증감분이 자연적 인구증감분보다 높이 책정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김영우・문영기, 2008; 박종안 등, 2011; 김준형, 2012; 이정섭, 2012). 대규모 개발사업 추진을 통한 계획인구의 증가는 도로, 철도 등과 같은 도시계획시설의 유치 및 확보를 용이하게 하고 이는 다시금 계획인구에 영향을 미쳐 인구를 증가시키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대 계상된 계획인구는 인구 유치의 어려움에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토지이용을 남발하며 계획된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는 곧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장기발전계획 수립의 필요성 자체를 무색하게 하는 지점으로 지역발전의 이상(理想)으로 자리 잡은 계획인구는 실제와 양립하지 않는다.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가 팽배한 상황 속에서 지방은 행정구역을 기회의 기준선으로 삼아 주민등록 전입을 통한 인구의 사회적 증가를 목표한다. 그리고 제 지역으로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는 편향된 기대는 정책적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대응책에서부터 계획인구의 과대계상에 이르기까지 지방의 인구문제를 관통한다.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국민의 과반이 거주하는 현 상황에서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인구를 두고 88%의 비수도권이 벌이는 각축전은 차치하더라도, 행정구역이라는 틀에 갇혀 현재의 인구감소에 따른 계획적 대응과 미래의 인구증가에 따른 계획적 대비가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한 지역 안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쉬이 납득가지 않는다. 지방소멸의 ‘인구감소지역대응기본계획’과 지역발전의 ‘장기발전계획’이 공존하는 지방의 모순적 현실 앞에 조화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3. 지방소멸과 국가개입의 한계 : 정주성(定住性)을 둘러싼 비판적 접근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2023년 1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방의 인구 위기에 대응하는 체계적 접근을 담은 제도적 근거 마련을 통해 비로소 국가는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이 가능해졌다. 여기서 인구감소지역이란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시군구를 대상으로 출생률, 65세 이상 고령인구, 14세 이하 유소년인구 또는 생산가능인구의 수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으로, 2021년 정부는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89개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한 바 있고, 5년 주기로 재지정된다.

이 법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시군구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재정지원 규정을 명시하고 있는데, 국가 단위 사업 공모시 일정 부분의 인구감소지역 우선 배정, 지방교부세의 특별 지원, 지방자치단체의 계획수립시 지방소멸대응기금 연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연 1조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은 2022년부터 10년간 지원할 계획임이 공표되어 전국의 모든 지자체들의 관심 사업이 되었다. 그러나 인구감소지역 지정을 통한 국가의 선택적‧집중적 지원 방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지역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8) 법 시행 초기인 만큼 첫 시행주기에 한해 타당성 검토의 여지를 남겨놓은 상황이지만, 재지정을 둘러싼 지역 차원의 요구가 향후 계속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인구감소지역 89곳에 인구감소지수가 인구감소지역 다음으로 높은 지역에 해당하는 관심지역 18곳을 포함해 총 107개 지역이 지방소멸대응기금 혜택을 받는 것을 두고 지원 효과가 분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9) 우선 지원 방침의 기준이 되는 희소성‧선별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인구감소지역이 ‘뜨거운 감자’인 것은 확실하다.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지방을 지원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정책적 차별성 없이 인구의 제로섬 게임만을 되풀이하는 지방의 대응에 돌파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의 인구감소지역 지원이 결국 또 다른 여건의 제로섬 게임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애당초 지방의 인구경쟁은 인구증가를 통한 지방교부세 확보라는 성격이 강하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 재정자립도는 45.3%로 이를 시군구 단위로 살펴보면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6.0%의 경북 영양군부터 가장 높은 62.2%의 경기 성남시까지 그 차이는 상당하다.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지자체 수는 단 8곳(서울 종로구, 경기 하남시, 경기 용인시, 서울 중구, 서울 서초구, 경기 화성시, 서울 강남구, 경기 성남시)에 불과하고, 재정자립도가 20% 이하에 해당하는 지역이 144곳으로 전체의 과반을 차지한다[그림 5]. 열악한 지방재정 여건에 시달리는 지역 어디나 국가의 재정적 지원은 ‘가뭄 끝 단비’와 같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지역 간 인구경쟁은 불가피하다. 지방의 직접적인 문제는 인구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예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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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시군구별 재정자립도 현황(단위: 개소, 2022년 기준)
(출처: 통계청, 행정안전부(재정정책과))

따라서 국가가 도입한 인구감소지역 지정제도는 예산지원에 민감한 시군의 입장만을 자극할 따름이다. 지정 여부에 따라 정책수혜 여부가 나뉘는 제도의 특성은 지역의 반발을 노정한다. 행정구역에 따른 지역의 이해와 행태를 묵과한 채 인구감소지정지역만을 집중지원 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또 다른 지역발전의 차별이라 읽힐 수 있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 간 발전의 불균형 구조가 인구감소지정 여부에 따라 재편된다는 세간의 우려와 함께 지방은 계속하여 인구의 제로섬 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행정구역을 경계로 한 지방의 이해는 달라진 바가 없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승산 없는 게임일지언정 제 뜻대로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은 ‘생활인구’란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법적으로 생활인구란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민으로 등록한 사람, 통근·통학·관광·휴양·업무·정기적 교류 등의 목적으로 특정 지역을 방문하여 월 1회 이상 체류하는 사람, 외국인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개념상 생활인구는 유동 인구의 속성을 가진다. 여기서 유동 인구란 일정한 기간 동안 한 지역을 오가는 사람의 수로 주민등록인구로 대표되는 정주 인구와 배치되는 개념이다. 관계인구, 체류인구 등은 생활인구와 유사 개념으로 쓰이는 용어로 2016년 관계인구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타카하시 히로유키는 일회적 관광과 진입장벽이 높은 정주 사이에서 관계인구의 발굴을 강조하였고(류영진, 2020), 안소현 등(2022)은 ‘주민등록 신고를 하지 않은 특정 지역에서 1박 이상 머무는 인구’를 체류 인구로 개념 설정하고 지역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맺는 관계의 정도에 따라 인구와 지역연계성은 단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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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생활인구의 단계적 접근: 방문-체류-정주
(출처: 안소현 등(2022:39))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생활인구의 개념 핵심은 주민등록체제와 무관한 인구의 일시적‧단기적 혹은 정기적‧장기적인 체류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유동적이면서도 상시적인 인구 총량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 지역사회 내 소비의 주체로서 또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매개하는 외부자원으로서 기능할 생활인구는 지역이 소멸하지 않고 지속 발전할 수 있는 대안적 인구 유형으로서 인간의 이동성이 심화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정주성 자체가 반드시 인구의 기본 전제가 될 필요는 없다는 인식 전환에 따른 접근이다.

여기에 덧붙여 생활인구 개념이 정책적 차원에서 도입된 배경에는 지자체 간 정주인구 확보를 위한 소모적인 경쟁만으로는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국가적 판단이 내재한다.10) 인구의 총량적 증가 없이 지자체 간 인구를 뺏고 빼앗는 과정만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지역에 체류하며 생활하는 인구의 유입을 통해 지역의 활력을 제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그러나 생활인구의 강조는 정주 인구수에 집착했던 정책들과 노선을 달리하나, 실상은 정주 인구의 형식적 분산 내지 외형적 재배치에 불과하다는 한계점이 있다.

사실 정주성(定住性)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옹호받지 못하는 개념이다. 정주성을 근대적 인간 삶의 전제로 만들었던 19세기 공장과 가족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유효한 장치가 아니다(Cresswell, 2006). 노동자의 신체 이동을 이용하는 동시에 이를 가둠으로써 노동력을 통제‧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만드는 공장과 노동력의 재생산에 부합하는 근대적 주거장치로 포섭되었던 가족이 자본의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공간경제의 재편과정 속에 구조적 전환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과 조건에 대응하는 자본의 이동성이 도시와 지역 내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자들에게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것(Harvey, 1989)처럼 끊임없이 이동하는 존재로서 인구는 ‘다시 여행자로 되돌아가고 있다’(Attali, 2003).

문제는 과연 ‘지방이 행정구역에 종속되지 않는 인구와 그들의 정주성을 포기할 수 있는가’다. 과거 정주가 아닌 유동하는 인구에 대한 인식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금기시되어왔다. ‘돌아다니는 사람을 적처럼 여기는’ 국가이기 때문이다(Scott, 1998). 실제 인구는 국토와 내치(內治)가 안정화되면서 만들어지는 범주로(임동근, 2012:290), 영토가 시시때때로 변하거나 빼앗긴다면, 사람들이 정주하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면, 국가는 결코 인구를 셀 수 없다. 세야 할 인구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영토의 경계를 배제와 포섭의 구분선으로 삼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정주시키고자 각종 행정력을 동원해왔고, 그것이 이른바 근대 국민국가라 불리는 국가 형성의 과정이었다.

지방의 처지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관광, 출장, 방문 등 체류 목적의 생활인구 유입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지역을 일정 기간 체류하는 존재로서 생활인구의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지역의 입장에서 이는 매번 속성을 달리하는 상주인구와 다름이 없다. 이른바 준 상주인구로서 유동 인구인 이들은 지역의 입장에서 추가적 인구관리비용의 부담 없이 세입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염돈민, 2012:9). 그러나 생활인구가 지역의 항시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지방교부세 등의 세입뿐만 아니라 선거구 획정, 행정체제 유지, 공무원 조직 편제 등 정주 인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정치 및 행‧재정 제도의 변화 없이 인구 개념의 확장성만을 현 위기 탈출의 방안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생활인구의 도입 역시 행정구역이라는 제도 안에서 인구의 정의(definition)을 다소 유연하게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 인구감소지역에 해당하는 충북 영동군의 경우, 2022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구획정 기준 인구수 미달로 지역의 광역의원 선거구가 축소되자 소멸 위기 지역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한 바 있다.11) 인구수에 따라 판가름나는 의석 확보에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소멸위기 시군의 정치적 목소리는 작아질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지방경쟁력 약화 속에 인구감소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팽배하다. 100만 인구 사수 운동을 벌이고 있는 창원특례시도 비근한 예다.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인해 2025년 100만 명 아래로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 판단에 따른 대응책으로 전담TF팀을 구성하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12) 100만 인구 붕괴에 따른 특례시로서의 위상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지방의 입장에서 인구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를 통해 지방은 중앙정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특정 통치 단위로서의 위상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예산지원을 통해 지역을 실질적으로 유지 존속시킬 수 있다. 행정구역을 경계로 지역의 이해를 응집해온 지방의 입장에서 지역 고착적 이해를 지키고 강화시킬 수 있는 집계(集計) 인구는 여전히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문제의 지점은 숫자로 치환된 인구의 정주가 아닌 지방이 인구의 정주성을 포기할 수 없는 구조, 이른바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톱니바퀴 물리듯 돌아가는 정치 및 행‧재정체제에 있다. 행정구역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없는 한 ‘지방의 정주 인구 앓이’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IV. 결론: 반복되는 행정구역 통합 실패의 교훈

2022년 4월 부산, 경남, 울산을 하나의 생활·경제권으로 묶어 780만 명 규모인 3개 시도의 인구를 2040년까지 1,000만 명으로 늘리고, 지역 내 총생산 491조의 거대도시로 키운다는 목표를 내걸고 ‘부울경 특별연합’이 출범하였다. 행정구역의 통합을 통해 인구의 효율적인 분산을 도모하고, 지방소멸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초광역 특별지자체 추진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해 치러진 6.1 지방선거 이후, 민선 8기가 들어서면서 울산시장과 경남도지사가 입장을 바꿔 탈퇴를 선언했고, 2022년 10월 특별연합 대신 행정구역의 조정 없는 초광역 경제동맹 출범을 합의하였다. 그리고 2023년 2월 부산시의회가 부울경 특별연합(메가시티) 규약 폐지를 최종 의결하면서 전국 최초 특별자치단체로서 부울경 특별연합은 각자도생의 길을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인구감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당초 목표는 사라지고 여전히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한 이권 경쟁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끔 하는 사례다.

본 연구는 국가-영토의 실질적 정치 효과에 대한 환상을 개념화한 ‘영토적 덫(territorial trap)’이라는 공간인식론적 관점을 바탕으로 국내 지방소멸의 대응들이 행정구역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러한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기존 이론을 일부 보완하는 측면에서 인구-영토-통치의 관계가 국가를 비롯한 지역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작동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국가의 대리자 혹은 매개 행위체로서 지역 역시 영토적 덫에 전제된 영토-주권의 고정성을 강조하고, 지역 내‧외부를 분리하는 정책으로 자신의 지역을 유지하며, 행정구역이라는 물리적 선을 고집하는 영역적 행위를 실천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국가가 인구정책을 출산장려로 선회한 지난 20년간 한국의 인구정책은 큰 변화가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인구감소지역지원 특별법」 등과 같이 인구정책에 대한 법적 토대가 마련되는 한편, 지방은 또 다른 정책 주체로서 지역의 인구를 계획하고 다스린다. 단, 행정구역이라는 영토적 덫에 둘러싸인 한계는 분명하여 지방의 인구정책이 인구를 향한 제로섬 게임으로 점철되는 현실을 피할 순 없었다. 최대 1억 원대까지 치솟은 출산장려금과 귀농귀촌인, 대학생, 군인 등 전입 인구를 찾기 위한 온갖 자구책들이 현 지방소멸대응 정책의 민낯이다. 심지어 지속적인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지방의 미래인구는 증가하는데, 행정구역을 경계로 인구를 뺏고 뺏기는 관계에 대한 낙관은 내일의 인구수를 왜곡한다. 정주인구를 향한 지방의 소모적인 경쟁에 최근 국가는 생활인구 개념을 통해 중재에 나선 상황이나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생활인구는 어디까지나 관계와 목적 등에 기반한 유동 인구일 뿐 지역의 존폐를 판가름하는 중요 잣대는 주민등록인구로서 정주 인구수에 달렸다. 인구감소 시대에 발맞춰 국가와 지방의 인구정책은 대안적 인구 개념을 통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보는 중이나, 인구를 기반으로 지역의 이해를 좌지우지하는 정치 및 행‧재정 제도는 행정구역이라는 틀 속에 갇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한편,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 지정을 통한 국가의 지원 방침은 지역균형발전 논란의 불씨다. 과거 국가의 불균형 발전에 따른 인구의 차등적 분포가 작금의 지방인구 위기의 전제였다면, 현 국가의 인구감소지역 지정은 불균형 발전 양상 속에 덧씌워진 또 다른 측면의 지역 불균형 발전을 야기한다. 인구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지정 여부에 따라 지역발전의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으로 변질하면서 일부 미지정지역을 중심으로 국가 발(發) 지방소멸 위기라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끝으로 본 연구의 한계는 지방소멸에 대한 지역 차원의 애로사항을 분석하는데 있어 지역 행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확인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당초 연구 목표로서 지방소멸과 관련된 정책적 흐름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행정구역 중심적 사고가 문제 개선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에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연구 가설 설정의 문제라고 자평할 수 있다. 추후 연구에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실질적인 정책 마련에 기여할 수 있도록 관련 근거와 자료를 보완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가 제기하고자 했던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강정구 등(2022)의 연구에서도 중앙정부의 재정부담을 완화하고 지방분권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일환으로 행정구역에 대한 공간구조 재편을 주장한 바가 있다. 본 연구는 지방소멸의 근본적 문제 인식의 출발점이 인구증감이 아닌 현재의 행정구역의 비효율성에 있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있다. 지역을 구분하는 잣대로서 행정구역은 결코 고정불변의 선이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지방소멸은 지자체 간의 경쟁이 아닌 영토의 재조직(행정구역의 부분적 혹은 전면적인 수정)에서 시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함께 적절한 인구 분산이 장기적 관점의 지방소멸 대응이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Acknowledgements

본 논문은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1S1A5C2A03088606)

[10] 1) 국민일보, 2022년 5월 26일, “일론 머스크의 경고…‘한국, 가장 빠르게 인구붕괴 중’”

[11] 2) 일부 국내 연구에서 territorial trap을 영역적 함정(박배균, 2012; 황진태, 2016), 영토의 덫(윤해동, 2017) 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영토적 덫으로 일괄 표기하고자 한다. Territory의 번역에 있어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로서 영역(領域)뿐만 아니라 물리적 차원의 영토성과 법적, 행정적 구분 기준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땅의 범위를 뜻하는 영토(領土)를 선택하였다.

[12] 3) 디지털타임스, 2021년 12월 31일, “지방 소멸? 아니 `내 지역구 소멸`”

[13] 4) 출산장려금에 대한 명칭과 정의도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일부 지역은 출산장려금이라는 용어 대신 출산축하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출산장려금과 출산축하금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이를 모두 지급하는 지자체도 있다. 사실상 출산장려를 목적으로 한 현금지원이라는 정책내용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선택적 용어 사용 및 구분으로 인해 연구자의 판단에 따른 연구자료의 취사선택이 불가피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출산장려금과 출산축하금을 동시 지급하고 있는 경우는 지급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장기적인 출산장려금을 채택하고, 타지역의 출산장려금 정의와 유사하나 출산축하금으로 명시한 경우는 이를 출산장려금으로 대체하여 자료를 구축하였다.

[14] 5) 경기 가평군의 경우 첫째아이는 100만원, 둘째아이는 400만원, 셋째아이는 1,000만원, 넷째아이 이상은 2,000만원을 각각 지급한다.

[15] 6) ‘다섯째 아이 이상’까지 별도 지급 금액을 명시한 지자체도 있지만, 해당 지자체의 수는 많지 않은 편으로 대부분이 ‘셋째 아이 이상’이거나 ‘넷째 아이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본 연구는 임의로 ‘넷째 아이까지’를 최대치로 설정하고 해당 지자체별로 동일한 가정을 적용하여 출산장려금 지급액을 산정하였다.

[16] 7) 조선일보, 2021년 1월 23일, “장려금만 먹고 튀었다? 출산율 1위 ‘해남의 기적’ 끝난 이유”

[17] 8) “전라남도의회, ‘정부 인구감소지역 지정방식 문제’(KBC, 2023년 4월 14일)”, “목포시의회 인구감소지역지정 재검토 강력 촉구(오늘경제, 2023년 5월 17일)”, “전남 ‘군’ 중 인구감소지역서 유일 제외된 무안군 ‘아쉽다’...왜?(뉴스원, 2021년 10월 18일)”, “인제군, 정부 인구감소지역 지정 끝내 불발 형평성 논란 불가피(강원도민일보, 2021년 10월 18일)”, “‘지방소멸대응기금’ 서울·수도권까지 ‘쪼개기’ 논란(강원도민일보, 2022년 2월 8일)”, “통영-창원 “인구 줄어도 지원대상 빠져(동아일보, 2021년 12월 1일)” 등 인구감소지역 지정 방식에서부터 지정 대상에 이르기까지 인구감소지역 지정을 둘러싼 논란은 뜨겁다.

[18] 9) TJB뉴스, 2021년 10월 18일. “충남 9개 시군 인구감소지역 첫 지정..연 1조원 푼다는데”

[19] 10) 머니투데이, 2022년 12월 21일, “워케이션부터 은퇴자 마을까지‥‘지방소멸’ 막는 ‘생활인구’ 시동”

[20] 11) 중부매일, 2022년 4월 26일, “광역의원 선거구 축소… 영동군 "농촌소멸 위기 반영하지 않았다" 반발”

[21] 12) 노컷뉴스, 2023년 4월 24일, “인구 백만 사수…창원시, 진해동부 인구대응 전담 TF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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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B뉴스, 2021년 10월 18일. “충남 9개 시군 인구감소지역 첫 지정..연 1조원 푼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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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 2021년 10월 18일, “인제군, 정부 인구감소지역 지정 끝내 불발 형평성 논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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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 2022년 2월 8일, “‘지방소멸대응기금’ 서울·수도권까지 ‘쪼개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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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022년 5월 26일, “일론 머스크의 경고…‘한국, 가장 빠르게 인구붕괴 중’”.
99
노컷뉴스, 2023년 4월 24일, “인구 백만 사수…창원시, 진해동부 인구대응 전담 TF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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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원, 2021년 10월 18일, “전남 ‘군’ 중 인구감소지역서 유일 제외된 무안군 ‘아쉽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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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21년 12월 1일, “통영-창원 ”인구 줄어도 지원대상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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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타임스, 2021년 12월 31일, “지방 소멸? 아니 ‘내 지역구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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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2022년 12월 21일, “워케이션부터 은퇴자 마을까지‥‘지방소멸’ 막는 ‘생활인구’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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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경제, 2023년 5월 17일, “목포시의회 인구감소지역지정 재검토 강력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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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1년 1월 23일, “장려금만 먹고 튀었다? 출산율 1위 ‘해남의 기적’ 끝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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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2022년 4월 26일, “광역의원 선거구 축소… 영동군 “농촌소멸 위기 반영하지 않았다”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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