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의 유형화에 따른 사례 분석
1. 의도대로의 정책 + 정책 목표 그대로의 결과: 싱가포르의 도시화
2. 의도대로의 정책 + 정책 목표와 다른 결과: 미국의 도시재생
3. 의도와 다른 정책 + 정책 목표와 다른 결과: 대부분의 실패한 거대사업
4. 의도와 다른 정책 + 정책 목표 그대로의 결과
III. 공간 이념의 작동 및 결과: 논리적 추론
IV. 요약과 결론: 가능한 논의와 향후 논의 가능성
I. 서론
일반적으로 각종 대규모 공간개발 또는 지역개발 사업이 진행될 때, 많은 사람은 그 개발 사업의 의도 및 기대하는 결과에 대해 의구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의아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정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거나 정책 결정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국가적 그리고 지역적 공간개발 사업이 긴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개발 사업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김준우・안영진, 2020; 2021). 우리의 공간개발의 이념과 공간정책 사업의 결과에 관한 실증적 연구는 이미 제시된 바 있다(김준우・안영진, 2022). 각종 공간개발 및 지역개발 사업이나 정책의 공식적 의도와 실제 의도 간의 일치 여부 및 공식적 달성 목표와 실제 결과 간의 일치 여부로 구성된 유형화라는 것이다(그림 1).
우리가 우리나라의 각종 대규모 공간개발 사업에 관한 전문가 조사를 통해 고찰한 유형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공간개발 사례로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 사업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사업을 거론할 수 있다. 이 두 정책 사업은 위의 유형화 도식에서 공간개발의 정책 목표와 실제 결과의 차이에 있어 ‘있음’과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의 차이에 있어 ‘있음’이 교차하는 부문에 해당한다. 공간개발 사업의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 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또한 공간개발 사업의 정책 목표와 실제 결과 간의 차이 역시 명백하게 나타나는 경우에 속한다. 이러한 공간개발 사업들은 우리나라에서 빈번히 관찰되는 일반적으로 실패로 귀결되는 전형적인 공간개발 사업들의 양상이다(김준우・안영진, 2022). 물론, 이들 사업이 실패로 귀결되는 궁극적 원인 중 하나는 공간개발 사업을 둘러싼 정책적 민주주의 결핍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 논문의 첫 번째 연구 목적은 각종 공간개발 사업의 정책 목표와 실제 결과의 차이 및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의 차이에 관한 기존의 경험적인 조사분석에서 출발한 유형화와 관련하여 새로운 공간개발의 사례를 추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와 달리 이 연구에서는 국내외의 사례를 탐색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는 각종 공간개발 및 공간정책 사업의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의 유형화의 보편성을 제고하려는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다. 두 번째의 연구 목적은 각종 공간개발 및 공간정책 사업의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실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유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는 이론적 이해이다.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 간의 차이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목표와 실제 결과 간의 차이가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의 연구 목적은 각종 공간개발 사업에 대해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한 유형화를 통한 설명에서 발생하기 쉬운 현실 세계의 지나친 단순화와 생략을 피해 보려는 것이다(김준우・안영진, 2010; 2017).
각종 공간개발 및 공간정책 사업의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한 유형화에 해당하는 사례 분석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으나, 의도한 대로의 공간개발 정책 사업이 그대로 실현되는 싱가포르의 도시화에 관해서는 개발 역사적 맥락을 주의 깊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특히 조직 폭력배가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당 독재 전체주의로의 전환과정에서의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개발정책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미국의 도시재생 사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선의가 압도적으로 존재하는 공간개발 사업이 시간이 지나면서 좌초해가는 과정을 여러모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어서 이 연구에서는 또한 한 걸음 뒤로 떨어져서 어떤 의미에서 공간개발 사업 자체의 실패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제시하고자 한다. 이것은 각종 공간개발 및 공간정책 사업의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하여 제시된 유형화를 조금 더 풍부하게 적용하여, 복잡다단한 현실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각종 공간개발 및 공간정책 사업의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한 유형화에는 4개의 부문이 존재하지만, 현실에는 대단히 다양하고 복잡한 맥락들이 전개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II.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의 유형화에 따른 사례 분석
1. 의도대로의 정책 + 정책 목표 그대로의 결과: 싱가포르의 도시화
1965년에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서 건국하였다(Buckley, 1984; IDA, 2000). 1968년의 총선을 계기로 실질적 일당 체제가 성립하는데, 인민행동당(PAP)은 의회의 모든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 싱가포르의 총선에서는 사회주의 정당(‘Barisan Sosialis’)과 말레이시아계 정당(‘Singapore Malays National Organization’)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정당(‘Singapore Chinese Party’)은 불참하였다. 싱가포르의 51개 선거구에서 인민행동당은 단독 출마하였으며, 나머지 7개 경합지에서는 인민행동당 입후보자가 5명의 무소속과 2명의 노동계 정당(Workers’ Party) 입후보자에게 승리하였다(Nam, 1969). 인민행동당은 이후 세 번에 걸친 총선(1972년, 1976년 그리고 1980년)에서도 의회의 모든 의석을 차지하였으며(IDA, 2000), 1984년에 마침내 2개의 의회 의석을 잃으며, 1988년에도 1개의 의석을 잃었다. 1990년 11월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를 역임한 리콴유(Lee Kuan Yew)의 뒤를 이어 고촉통(Goh Chok Tong)이 수상 자리에 올랐으며, 인민행동당은 1991년 총선에서 4개의 의회 의석을 야당에게 내어 주었다. 1997년 선거에서는 인민행동당이 83개 의석 중 81개를 차지하였고(Chua, 1994), 2004년 8월에는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Lee Hsien Loong)이 싱가포르 수상으로 취임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싱가포르의 도시화에 대한 개관에 이어 국가의 형성과정으로서 경제성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1950년대 말 이후 싱가포르의 경제발전 원인에 대해 허프(Huff, 1994: 355)는 첫째 이권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부의 자율성(‘정부 개입의 질적 우수성’), 둘째 건국 시기로부터 이어져 온 안정성, 셋째 국민 대부분이 얻어가는 물질적 이익(‘물질적 이익은 가혹한 탄압 없이도 정부가 통제력을 유지하게 함’) 그리고 넷째 경제 상황에 대한 양호한 판단과 적절한 정책 선택으로 나타나는 공직자의 역량 등을 들고 있다.
첫 번째 요인인 정부의 자율성은 중국인 사업가계급과의 갈등에 연원 하였다(Huff, 1994: 356-7). “1959년 식민정부가 주관한 선거에서 리콴유가 거둔 정치적 성과물은 중국인 다수의 지지이다. 인력거꾼의 지지를 얻었다고들 중국인들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후에 국가권력을 잡고서는 인민행동당(PAP) 좌파와 결별한다. ... (중략)... 영어 교육을 받은 중국인 지도층은 싱가포르의 중국인 사업가계급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친중적이고 중국어교육을 강조한다. 탄카키(Tan Kah Kee)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진정한 중국인 지도자’이다. 그가 중국으로 간 이후의 후계자는 탄락셰(Tan Lark Sye)이다.” 그리고 싱가포르 정부는 경제적으로 중국인 토착 기업을 배제하였다(Huff, 1994: 357). “인민행동당은 다국적기업과 국유기업을 통해 경제개발을 달성하려고 한다. 싱가포르의 토착 사업가 엘리트는 대부분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된다. 경제계가 정책을 결정하지 못한다. 정부에 압력을 넣지도 못한다. 인민행동당은 이러한 노선에 변화를 주려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흔히 얘기되는 작은 규모의 중국계 제조업체와 토착 기업가에 의존하는 1960년대 중반의 홍콩 모델과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싱가포르에서 세력이 있던 중국계 노동조합운동에 기대지도 않는다. 이전의 중국인 중심의 과격한 노조와는 다른 새로운 노조가 인민행동당의 경제정책에 참여한다. 정책개입은 정부실패의 위험을 초래한다. 무능한 경제정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집권당이 경제발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싱가포르에서 정부실패를 막는 기본 장치이다. 영어교육을 받은 중산층 중국인이 집권당을 지지해서 선거에서 계속 당선될 수 있도록 하려면, 경제발전이 필요하다. 다국적기업에 의존해서 이러한 다국적기업이 생산적 활동의 대부분을 직접적으로 맡고 있다는 것도 정부실패를 막는 추가적 장치인 셈이다.”
1959년에 기존의 효율적인 행정 체제를 물려받음으로써 안정성은 시작되었다. 1959년과 1966년 사이는 수입대체 산업화의 기간이다. 이 기간에 몇 개의 경제조직을 만드는데, 수출 위주 경제체제로의 전환에 활용되는 다음과 같은 3개이다. 즉, 경제개발청(Economic Development Board), 싱가포르개발은행(Development Bank of Singapore) 그리고 주롱도시공사(Jurong Town Corporation) 등이다. 1967년 이후 시기에는 노조와 언론매체의 통제를 통해 안정성을 이어간다. 주택 제공과 실질임금의 상승은 집권 여당에 쏟아진 표로 이어진다. 정치 탄압 역시 한몫을 해내었다(Huff, 1994: 358). 1959년 이래 인민행동당(PAP)은 싱가포르 정치를 지배한다. 인민행동당의 좌파와 1961년 결별한 이래, 리콴유는 성취 지향적 정책과 억압의 신중한 조합으로 정적들을 무력화시킨다. 리콴유 수상이 이끄는 힘 있는 집권당이 국가를 운영한다. 선거는 일반적으로 공정했지만, 전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선거운동이 제한되고 반대파는 불이익을 받는다(Thompson, 1996). 리콴유는 세계에서 가장 장수한 수상으로서, 1990년 은퇴 때까지 싱가포르 정부를 이끌었다.
정당화와 계속된 집권을 위해 싱가포르는 경제성장을 강력히 추구하였다(Chiew, 1985). 기간시설의 건설과 산업에의 직접적 개입을 위해 1959년 국가경제기획을 맡은 기관(Economic Development Board)이 설립되었다. 정부 개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 즉 노동시장, 세제와 재정지원 그리고 공기업에 집중되었다(Huff, 1995). 싱가포르의 발전에 있어 가장 특이한 점은 임금과 노동에 대한 정부 개입이다. 1963년의 사회당 탄압에 이어 정부는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킨다. 1965년에는 장기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의 실행 대장격인 노동조합(National Trade Union Congress)이 좌파 노동조합(Singapore Association of Trade Unions)을 대체한다. 그 대신에 정부는 완전고용, 낮은 물가 상승 그리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약속하고, 이러한 약속은 대체로 지켜져 왔다.
싱가포르에서는 실업이 실질적으로 1971년에서 1973년 사이에 사라졌다. 물가는 안정적이었고 공공주택과 교육이 제공되었다(Thompson, 1996). 싱가포르의 정책입안자들은 강제 저축을 통해 높은 투자율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중앙후생기금(Central Provident Fund)이라는 일종의 사회 연금을 통해 싱가포르의 높은 저축률은 실현되었다. 중앙후생기금은 가입자가 퇴직할 때 자신과 자신의 고용주가 납부한 전체 금액에 이자를 더한 금액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이는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퇴직자의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과는 대조된다(Huff, 1995). 공적영역의 경제적 효율성도 주목할 만하다. 싱가포르항공(Singapore Airlines)을 비롯한 공기업은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공직자의 능력 또한 탁월하였다. 매년 싱가포르 정부는 가장 우수한 인적자원을 뽑아 외국대학에 유학을 보낸다. 이들이 돌아오면, 공직에 8년을 복무해야 한다(Vennewald, 1994).
싱가포르의 도시화는 국가 성립과정의 공간적 표현이다. 다른 국가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매우 드물게도 싱가포르는 폭력적 사회통제를 숨기지 않아 왔다. 시민을 아이 취급하며 자유를 박탈한다는 의미의 이른바 ‘보모국가’(nanny state)1)로서 싱가포르를 인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랑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한다.2) 정책과 의도가 일치한다고 해서 도덕적 정당성이 있지는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구체적 한 측면에서의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의 일치는 국가 성립 주역인 리콴유의 개인적 신념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일본군 점령기에 싱가포르에서 범죄가 줄어든 것을 가혹한 처벌 덕분으로 보았다(류지호 옮김, 1999: 88). “일본군의 유일한 통치 수단은 공포였다. 그들에게는 문민통치를 하겠다는 그 어떤 허위의식도 없었다. 형벌이 너무도 가혹했기 때문에 범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식량부족으로 굶주림이 극에 달한 1944년 후반기 동안 범죄행위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밤에 대문을 열어 놓고 자도 될 정도였다. 열 집마다 한 명씩 순번제를 정해서 해질 무렵부터 동이 틀 때까지 동네를 순찰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것마저 별 필요가 없었다. 곤봉 하나만 들고 순찰을 다녀도 당국에 신고할 만한 범죄를 별로 적발하지 못했다. 처벌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가 일치하는 싱가포르 도시화의 이념에는 사회통제 이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였다. 국가생존, 공동체의 안정성 도모, 개인 책임의 강조, 자유시장의 선호라는 또 다른 측면이 사회통제와 같이 얽혀 있었다. 예를 들어, 일당 지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 통제적 주장이 공공주택 제공을 통한 공동체의 유지라는 측면과 연결되었다(유민봉 옮김, 2017: 199-200). “양당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단 제도가 정착되면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선이 불확실하고 선거전은 근거도 없이 야만적이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경력을 잘 유지해온 인재라면 자신이나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선거에 출마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이들은 그러한 정치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편안한 삶을 유지하기를 더 원할 것이다. 현재도 총선 때마다 최고의 인재를 설득해서 출마시키기가 너무 힘들다. 안정된 직장에서 이미 자기 분야의 성공적 경력을 포기하고 정치를 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양당제가 된 위에 어려움은 이보다 훨씬 심할 것이다. 양당제는 최고 A급 한 팀이 A급 두 팀으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다. 임기의 반은 A급 팀이 맡고 나머지 반은 B급 팀이 집권하는 것도 아니다. 이 두 시나리오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최고 A팀은 물론 어쩌면 B급 팀까지도 정치를 떠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이제 A급, B급보다 훨씬 못한 C급, D급 또는 E급의 팀이 빈자리에 뛰어들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림킴산(林金山)을 당선시킬 수 있을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면, 그에게 정치를 하라고 설득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확실한 경우에 일반적 반응은 제3의 인물을 찾는 것이다. 림킴산의 경우, 해당 지역구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출마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가 우리 당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싱가포르로서는 큰 손실이었을 것이다. 림킴산은 공공주택 공급을 책임지는 주택개발청(Housing and Development Board)을 창설한 인물이다. 주택개발청이 아니었더라면, 싱가포르는 지금과 매우 다른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싱가포르가 보통 사람들이 정부 운영을 담당하도록 허용한다면, 싱가포르는 침몰하고 보통의 도시국가가 되어 버릴 것이다.”
자유시장의 선호 역시 국가생존과 연결되었다. 또한 공공주택 제공을 통한 공동체의 유지라는 측면과도 결부되었다(유민봉 옮김, 2017: 215). “싱가포르는 매우 앞서가는 개방경제 국가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될 때부터 싱가포르는 자연 그대로의 내륙지역과 차단된 항구도시로서 운명적으로 세계의 모든 국가와 매우 광범위한 교역망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중략)... 나는 자유시장에 너무 관여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것은 시장의 자율적 인센티브구조를 왜곡시키고 비효율을 만들어 낼 것이고, 나중에 이를 바로 잡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대표적 사례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은 자유시장 방식으로 경제가 돌아가도록 놔둠으로써 총생산 차원에서 최상의 성과를 내도록 하고, 그 뒤에 부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빈곤층에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어느 정도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개인소득세, 부가가치세, 재산세 등 단연코 부자한테서 훨씬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저소득층에게 소비세 환불, 공공요금 지원, 공공주택 보조금, 근로복지 정부 지불금 등의 형태로 재분배하고 있다.”
이러한 생존에 대한 싱가포르인의 불안감은 경제성장 이후에도 남아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수사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악용되었는지를 주로 인용을 통해 서술하기도 한다(Cho and Kriz᷃nik, 2017: 12). “영구적 불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된다. 정책대안을 가진 누군가의 도전을 받지 않는다. 경제발전 저해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Perry et al., 1997: 6). 이렇게 경제발전을 모두 이룬 이후에도 싱가포르 국민이 위기의식을 여전히 가지는 것은 기실 지도자가 통치방식으로 계속 키워온 것이었다(Perry et al., 1997). “생존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징병제가 필요하다. 인종갈등이 없어야 한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나 싸움은 최소한으로 통제되어야 한다”(Chua, 2011: 30)라고 하면서 이러한 위기의식이 가져오는 경제적 폐해를 무시하게 만들었다. 권위적 정권하에서 경제성장은 ‘어떠한 대가를 감수하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 개입적이고 적극적인 싱가포르 국가는 생존이라는 것으로 인해 자기 멋대로의 통치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국가는 싱가포르 국민의 일상생활을 밀착 규제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에 발맞추어 국가 경제발전이라는 기업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 바로 국민의 일상생활이 되었다(Chua, 2011: 30). 싱가포르 발전국가는 생존 추구를 통해 사회를 바짝 통제할 수 있고, 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는 원천인 경제성장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었다(Chua and Kuo, 1991; Perry et al., 1997). 인민행동당의 집권 유지능력 덕분에 경제개발을 최우선으로 한 국가계획을 1960년대부터 당이 주도하였다.
싱가포르의 도시화는 한편으로 말 그대로 계획이 실현되는 그런 모습이다. 1968년 야당의 선거 불참으로 시작하여 오늘까지 인민행동당은 ‘생존을 위한 경제개발’이라는 이념을 내세워 싱가포르 사회를 이끌어 왔다(Chua, 1994; 1997). 실제로 경제성장은 인상적이었다. 1965년 이래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총생산에 있어 연평균 9% 정도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Perry et al., 1997). 변동폭은 크지만, 21세기 들어서도 특정 연도의 성장률은 놀라울 정도이다. 2010년의 경우 14.5%이고, 2021년은 7.6%이었다.
이러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부정부패의 실질적 부재가 인민행동당의 정당성을 담보해 주었다(Chua, 1994).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의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고 이를 공급함으로써 도시화의 방향을 주도하고 있다(Chang, 1999; 2000). 민간의 토지투기는 강제 매입과 엄격한 장기계획에 의해 억제되었다. 싱가포르의 공간적 불평등은 공공주택의 건설 등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김준우, 2007). 싱가포르 공공주택의 성공적인 측면은 2009년에 완공된 피나클 앳 덕스톤(Pinnacle at Duxton) 공공주택사업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50층의 연결다리는 입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공개된다(pinnacleduxton.com.sg). 이 사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26층과 50층에 있는 건물 간 연결다리만이 아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핵심지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그림 2).
2. 의도대로의 정책 + 정책 목표와 다른 결과: 미국의 도시재생
우리는 다음으로 싱가포르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의도로서의 정책이 결과와는 분명히 다른 경우이다. 정책 목표와 현실이 극명하게 어긋나는 사업은 미국의 ‘도시재생’(urban renewal)이다. 도심 빈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분명한 ‘선의’를 가지고 시작된 사업이었으나, 그 결과는 처참하였다.
미국의 도시재개발 사업을 가장 잘 표현한 길햄(Gillham, 2002: 43)은 미국의 도시재생을 ‘도심의 교외화’라고 정의하였다. 열악한 환경의 빈민가를 밀어버리고, 그 위에 교외보다 크고 화려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공원이 펼쳐지고 공원을 가로지르며 고속도로가 놓이며, 고속도로를 따라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는 식의 이상향이 도시재생의 방향인 것이었다. 이처럼 미국의 도시재생은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다. 1937년 통과된 주택법(‘Housing Act’)은 가난한 미국 가족들에게 집을 한 채씩 주겠다는 공공주택정책을 담고 있다. 1949년에 수정된 주택법은 지자체가 이러한 공공주택 건설을 원하는지를 결정하고, 또 원한다면 지자체 자체적인 토지수용과 공공주택건설을 담당할 조직을 만들 것을 명시한다. 가난한 이들이 많고 또 이러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민들과 정치인들이 존재한 대도시에서만 이러한 공공주택건설 사업을 행하기로 결정한다. 이러한 대도시들은 기존 빈민가를 밀어버리고 그 터 위에 공공주택을 건설하기로 대부분 결정하였다(Gillham, 2002: 136). 토지 및 주택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연방정부가 3분의 2를 그리고 해당 도시가 나머지 3분의 1을 맡게 되었다(wikipedia/urban renewal/2009/10/10).
원래 거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보금자리와 공동체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미국의 도시재생 사업은 분명히 실패한 공간개발 사업이었다. 기존의 빈민가를 밀어버리자 교외로 옮겨 갈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옮겨 가고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공공주택 이외에 갈 곳이 없게 된다. 흑인들의 생활을 나름대로 유지해 주던 공간으로서의 끈끈한 공동체는 사라져버리고, 빈민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세워진 고층 아파트들은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Gillham, 2002: 136). 그림 3은 이후 미국 곳곳에서 철거된 이러한 아파트 중 하나이다.
미국 도시정치에 관해 헌터(Floyd Hunter)와 달(Robert Dahl)이 저술한 두 권의 고전을 살펴보면, 이 두 책에서 도시재생이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두 책에서 모두 도시재생이 연구 당시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정의된다. 누가 다스리는가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른 두 학자는 도시재생이 원래 좋은 의도로 출발한 사업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헌터(Hunter)는 도시재생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으로, 그는 대규모 도심재개발을 통한 저소득층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urban renewal)의 실시를 빈민가 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3.
미국 도심의 고층 공공주택: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1950년대에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지어진 프루이트-아이고(Pruitt-Igoe) 공공주택. 실패한 사업으로서 1970년대에 철거됨(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Pruitt-igoeUSGS02.jpg.)
다음 예문에서 이야기하는 ‘불도저’가 그러한 맥락이다. 빈민가 정비 사업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을 특권층이 꺼린다는 사실을 비판하였다(Hunter, 1953: 189; 191). “빈민가 정비에 대해서 지역 단체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몇 해 전에 관심을 가졌을 때,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의견이 나누어졌다. ‘불량 주거지역을 페인트칠하고 청소하자’는 여성단체를 지원해 주는 것으로 절충 합의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업은 언론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으며, 사업의 설명과 홍보에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다. 페인트와 빗자루는 ‘지방도시’의 주거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었다. 불도저를 사용하는 방안이 이야기되었으나, 청소 생각에 빠져 있는 지도자들에게 설득할 수는 없었다. ...(중략)... 한 번은 그가 ‘페인트칠하고 청소하자’는 운동을 근본적 주거 개혁을 막으려는 특권층이 후원한다고 공개적으로 공격하였다.”
빈민가 정비에 대해서는 당시 특권층 내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Hunter, 1953: 224). “주거 문제는 다른 도시처럼 이 도시에서도 여러 해 동안 문젯거리이다. 문제가 악화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주로 흑인이 거주하고 있고 또 이들을 위한 저렴한 주거환경 제공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여러 단체가 연방법안 통과를 주장하고 나선 바 있다. 이 문제는 제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통일된 안을 내놓기가 힘들다. 어떤 이들은 사업으로 혜택을 보고,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양측은 주장을 강하게 하고, 도시 지배구조에서 밑에 있는 전문직도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전문직은 대부분 저렴한 주거환경 조성에 찬성이다. ... (중략)... 빈민가 철거와 공동체 재개발을 위한 연방법안 통과는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지만, 영향력이 있는 이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행동하지 않고 질질 끌고 있다’.”
달(Dahl)의 경우에도 매한가지로 미국의 도심재개발의 추진 맥락을 부정적이지 않게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뉴헤이븐(New Haven)이 산업도시가 되면서 생겨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온 것이 도심재개발이다(Dahl, 1961: 116). “현대 뉴헤이븐 문제는 산업도시가 되고 난 다음부터 생겨난 것이다. 빈민가, 낙후된 동네가 출현하는 것이다. ...(중략)... 건축가 길버트(Cass Gilbert) 그리고 조경 계획가 옴스테드(Frederick Law Omstead) 두 사람이 1910년에 계획을 제안한다. 도로를 넓히고 항구를 개발하고 공원을 더 만들고 하는 식이다. ...(중략)... 1943년과 1953년에도 각각 계획이 수립된다. 하지만 보고서가 현실을 바꾼 건 거의 없다.”
추진하기 힘들던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판을 새로 깔았다(Dahl, 1961: 116-8).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저런 제안이 실행되지 못한 것이다. 첫째,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이 비용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감당할 것인지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둘째, 전략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도출하는지 하는 정치적 과정을 제시하지 않는다. 셋째, 실제로 일을 추진해야 하는 이들이 보기에 정치적 타산이 맞지 않는다. 얻을 건 없고 잃을 건 많다. 1949년 연방정부 주택법(Federal Housing Act) 제1장의 경우에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해결책을 제시한다. 재개발 계획을 세우고 철거할 부지를 매수하려는 도시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액수는 1조 달러3)이다. 추가적으로 0.5조 달러가 보조금으로 마련된다. 재개발을 실행하려는 도시는 비용의 3분의 1만을 감당하면 된다. 부지를 사들이고 철거하고 이후에 재개발 사업자에게 손실을 보고 팔아넘기는 것을 실제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보조금이다. ... (중략)... 공화당 인물인 셀렌타노(Celentano) 시장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럽다. 지역 언론은 높은 비용을 내세워 아마 재개발을 반대할 것이다. ... (중략)... 많은 가족이 집을 잃게 된다. 이들은 분명히 반대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재개발이라는 것이 처음 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실수는 당연히 나올 것이다. 유권자들은 시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보다 시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중략)... 이에도 불구하고 1952년 오크 거리(Oak Street) 빈민가 15에이커를 철거하는 방안이 시의회를 통과한다.”
성장동맹론은 미국의 도시재생을 실패로 보고 있다(김준우 옮김, 2013: 175). “전후 도시재생 사업은 (1960년대까지 계속된) 정말 제임스 볼드읜(James Baldwin)이 얘기한 대로 ‘흑인제거작업’이었다. 주거지 철거는 가난한 흑인 공동체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정부 권한과 대규모 사적 투자를 위한 보조금은 도시재생에 활용되었다. 도시재생의 대상이 되는 지역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기에는 잠재 수익률이 떨어지는 곳들이다. 결국 가난한 동네가 떠안게 되는 비용은 엄청났다. 애틀랜타에서는 도시 거주민 6명 중 1명이 도시재생 때문에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가난했다(Stone, 1976). 나라 전체로 볼 때, 1960년대 미국 도시 가구 중에서 무주택가구 비율 증가에 이는 상당히 기여하였다. 10년 정도에 걸쳐 백인이 살고 있던 집 10%와 흑인이 거주한 20%의 집이 사라졌다”(Dahmann, 1982).
3. 의도와 다른 정책 + 정책 목표와 다른 결과: 대부분의 실패한 거대사업
우리나라의 사례로서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사업을 들 수 있다.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가 달랐고, 또 정책 목표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김준우・안영진, 2022).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더 일반화하고 또한 정교하게 논의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실패한 이른바 거대사업(mega-project)이 이 부류에 해당한다. 정책과 달리 거대사업에서는 투입되는 돈의 액수가 엄청나다. 자연히 의도한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공식화되어 있다. 이러한 공식 과정에서 실제 정책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인간의 지식은 제한적이고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부가 그러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무안공항의 건설사업과 호남고속철도의 무안공항 경유는 공식 과정에서 정책 목표의 달성 여부를 살피지 않은 결과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공식 목표가 실제 의도가 아니다.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별로 없는 공항이나 이런 공항에 멈춰 서는 고속철도는 장기적인 지역 균형발전에 저해 요인이 된다. 지도 위에 선 그어서 토지 기반 수익을 확보하고 표를 얻어 당선되는 성장동맹론의 논의가 실제 의도이다. 향후 추진될 가덕도 신공항과 군위 신공항 역시 마찬가지의 사례로 평가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부분은 있다. 이 논고에서 거대사업의 개념은 기존 논의보다 실제 적용에 있어 조금 더 포괄적이다. 형편없는 결과를 내는 거대사업이 점점 늘어나는 와중에 더 많은 거대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플리뷔예그(Flyvbjerg et al., 2003: 3-6)가 말하는 이른바 ‘거대사업 역설’ 현상은 단일사업을 전제로 한 느낌을 준다. 우리의 논의에서의 이 유형은 꼭 단일사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중국 전역의 유령도시(ghost town) 건설이 그러하다.
4. 의도와 다른 정책 + 정책 목표 그대로의 결과
우리는 이러한 유형 분류에 맞아 들어가는 현실의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으므로, 하나의 논리적 기준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law of unintended consequences)에서 기대하지 않은 유익한 결과가 나온 경우이다. 여기서 하나의 조건이 덧붙어져야만 한다. 그 좋은 결과가 바로 공식적 정책 목표와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에, 가상적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생태계의 보존이 공식 목표이고 개발이 실제 의도인 어떤 섬이 있다. 정책 집행자나 사업추진 주체는 개발을 하고 싶은 의도를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개발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섬이 보존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III. 공간 이념의 작동 및 결과: 논리적 추론
우리는 이제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한 유형화의 네 개 부문을 공고히 구축하는 철골에 실제 형태를 만드는 콘크리트를 부어 만드는 작업을 행하고자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 어떤 유형화도 복잡다단한 현실을 단순화하기 때문에, 부단히 맥락과 의미를 다시 부여해야만 한다.
첫째,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 일치 여부는 선악이 아니라는 점이다. 싱가포르의 도시화는 공식 정책과 실제 의도의 일치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즉, 도덕적 판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리콴유 이전 싱가포르는 그냥 가난한 어촌이 아니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지배 치하에서도 손꼽히는 중국계 조직폭력 근거지였다. 백인도 갈취를 피하지 못하고 영국 식민지 정부도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하였다(Lunde and Morton, 2004). 깡패 지배에서 일당 독재 지배로 옮겨온 사회에 대한 평가는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 일상 공간의 통제와 공공주택을 통한 주거 불평등의 최소화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독재 지배라는 하나의 대상이 보여주는 두 가지 모습이다.
둘째, 정책 목표와 실제 결과의 일치 여부는 인간 지식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은 결과의 평가 자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평가하는 행위 자체의 불완전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른바 거대사업의 기준이 되는 수익이나 이용객 숫자는 예측하지 못한 어떤 사건의 계기로 급격히 변화할 수 있다. 수익이나 활용도 자체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정적인 것이었다고 평가가 바뀔 수도 있다. 과도하게 관광객이 몰리는 현상(‘over tourism’)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시각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논리 전개의 연장선으로 생각해 보면, 선의로 시작된 공간개발 사업의 성공은 정확한 미래 예측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전략적 사고의 부재로 의도하지 않은 실패를 겪은 사례는 미국 미시간주(州)의 플린트(Flint)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 테마파크인 ‘식스 플래그 오토월드’(Six Flags Auto World)는 1984년 개장하였으며, 1994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플린트의 이 테마파크 개발 사업은 미국의 다른 도시들에서와 유사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Logan and Molotch, 2013: 130). “미시간 플린트(‘미국 실업수도’)가 시의 재정을 자동차 테마파크(Six Flags Auto World Theme Park)에 투자해서 신차와 중고차를 전시하고, 또한 차를 지역의 다른 명소로 연결해 줄 주제로 활용한 것도 훨씬 소박하지만 이와 유사하다. 이 테마파크는 폐허가 되어가는 도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려고 입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입장권 수익은 얼마 되지 않았고 테마파크는 오래가지 않아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7,000만 달러의 사적 그리고 공공 투자는 날아가 버렸다”(Risen, 1984).
셋째, 거대사업은 의도 자체가 기만적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하여 제시하는 유형화는 현실적으로도 유용하다. 성장동맹론과 같이 기존의 거대사업을 다루는 이론은 토지 기반 수익이라는 다른 의도를 전제로 한다. 이와 달리 여기서는 의도의 기만성 여부를 심층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모든 토목 공사를 의심하기보다는 의도가 공식 목표와 일치하는 거대사업도 많을 수 있다고 전제한다. 선의의 거대사업은 당연히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넷째, 선의의 사업 실패는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도시재생 사업을 논의하면서 위에서 노예제를 언급한 바 있다. 도시재생과 같은 사업이 성공하려면, 사실은 사업 자체를 뛰어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미국의 경우에는 단순히 흑인이 아니라 빈민층 전체의 삶을 개선시키는 방향에 대해 사회 대다수가 합의해 주어야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위대한 미국’ 사업의 결과는 빈민층보다는 중산층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4)
IV. 요약과 결론: 가능한 논의와 향후 논의 가능성
이 연구에서 공간 이념의 의도 및 결과와 관련하여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된 공간개발 사업의 사례는 싱가포르의 공공주택개발 사업과 미국 도시재생 사업이다. 우리는 이 두 공간개발사업 자체에 대한 향후 논의가 촉발되는데 적잖은 기대를 갖고 있다. 기존 싱가포르의 도시화 논의는 싱가포르 현지 학자가 싱가포르 사회의 지적 자체 검열기준을 세우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왔다. 비판적 논의를 제시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여기까지가 가장 비판적일 수 있다는 기준을 세우는 이른바 문지기(gateman)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우리가 고찰하는 시각은 차악으로서 제시된 개발독재의 정당화 사업으로서 공공주택의 개발 및 제공이다. 이는 조직폭력 지배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생각해 온 싱가포르인들의 한 표 한 표에 근거하였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도시재생 사업은 사실 미국 내에서도 평가 자체가 별로 없다. 미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정치에 의한 여론의 단순 이분화가 이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아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의 의도와 결과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쉽지 않다. 미국의 도시재생 사업에 적극적인 진보 성향의 논자들 내에서도 도시재생 사업이 왜 실패한 것인지를 차분히 살펴보는 데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의도와 다른 정책 + 정책 목표 그대로의 결과’의 가능성을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law of unintended consequences)과 연계시킨 시도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사례 조사 및 분석을 기대한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 지식의 한계와 사회적 합의라는 개념을 별개로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양자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지도 잘 모른다. 우리는 이점에 관해서도 또한 향후 연구를 기대한다. 이 논고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제시한 논의 부분 역시 충분히 생산적인 논쟁과 재정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의도와 다른 정책 + 정책 목표와 다른 결과’라는 유형화의 경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형적이라고 고찰하는 실패한 이른바 거대사업들이 해당한다는 논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