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이론적 배경: 트라우마의 장소와 집단기억
III. 현기영의 소설 속 제주 4・3 사건의 기억과 서사
IV. 현기영 소설 속 트라우마의 장소와 집단기억
1. 살육의 현장과 은폐된 고통: 「순이 삼촌」과 ‘잃어버린 마을’
2. 강제 이주와 노동의 현장: 「도령마루의 까마귀」와 성담
3. 고통과 수난의 지형: 「아스팔트」와 궤
4. 자연 속의 피안과 차안: 「마지막 테우리」와 오름
V. 결론
I. 서론
본고에서는 제주 4・3 사건(1948~1954년)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작품을 분석하여 폭력과 학살의 서사가 투영된 장소의 의미와 그 정동(affect)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제주 4・3 사건이 희생자, 생존자, 유족, 지역공동체에게 유발한 트라우마가 집단기억(collective memories)으로 전환되며, 트라우마의 장소는 비극적 사건의 시공간성을 담지하는 물리적 실체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대항기억(counter memories)의 장소로 기능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현기영(1941년~ )은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버지」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제주도가 처한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들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어 온 작가이다. 그는 『순이 삼촌』(1979), 『아스팔트』(1986), 『마지막 테우리』1)(1994) 등의 소설집과 「변방에 우짖는 새」(1983), 「바람 타는 섬」(1989),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 「누란」(2009)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이경민, 2021, 302). 이 작품들은 방성칠의 난(1898년)2), 제주교난(濟州敎難)(1901년),3) 제주잠녀항일투쟁(1931~1932년),4) 제주 4・3 사건(1948~1954년) 등 제주도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 그리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도민(島民)들의 삶과 그 실존적 고뇌를 담고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현기영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던 제주 4・3을 가장 먼저 문학작품으로 구현한 국내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5) 그는 여덟 살 때 겪었던 4・3 사건의 트라우마를 소설 텍스트에 담아 역사적으로 왜곡되었던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노력해왔다(김소영, 2024, 627).
제주 4・3 사건은 해방과 한반도 분단이라는 극심한 이념 갈등이 전개되던 시기에 발생한 국가 폭력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김민하・정희선, 2023, 21; 김소영, 2024, 620). 군경과 토벌대의 민간인 학살은 제주도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겼으며, 특히 1948년 11월부터 1949년 3월까지 제주도 중산간 지역6)을 중심으로 전개된 초토화 작전 기간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중산간 지역 촌락들이 대부분 전소되었으며 다수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는데 4・3의 전체 희생자 규모는 15,000명에서 32,000여 명으로 추정된다(김종민, 1998, 28; 헤드라인 제주, 2021년 7월 13일). 국가는 사건을 무장대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이후 50여 년간 논의를 봉쇄하였다. 2000년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 특별법」)」이 제정된 후 4・3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가 주도의 다양한 진상조사 및 추모사업이 진행되었으나, 사회 전반의 역사적 기억 속 왜곡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와 피해자 유족들의 증언은 채록되어 학술연구자료로 활용(송혜림, 2019; 허호준, 2020)되고 있으나 본고에서 문학작품을 분석하고자 하는 이유는 4・3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장소에 투영되었는지 구체적인 행위와 그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즉, 본고에서는 문학작품에 묘사된 등장인물이 겪은 트라우마의 감정과 감응에 초점을 두고 장소의 의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데 문학작품은 인물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개인의 행동, 감정, 경험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은숙 등, 2008, 607; 백지혜・정희선, 2020, 392). 소설은 플롯의 구조 속에서 시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위, 사상, 심리를 통해 사회상이나 개인의 삶을 드러내는 장르이다. 특히 4・3 소설은 담론적 구성물로서 사건의 생존자, 희생자의 유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겪은 트라우마가 투영된 장소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식기억이 담아내지 못하는 개개인의 삶의 기억을 반영하고 있어 분석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무엇보다도 현기영의 4・3 소설은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개개인이 겪은 사건의 기억과 트라우마가 장소를 통해 다시 발화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데 이는 공간・장소를 통한 치유・회복의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분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트라우마,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개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으로서 트라우마를 유발한 사건은 종종 개인의 수준을 넘어 사회 집단 전체를 연루시키기 때문에 집단기억의 형성 기제와 맞닿아 있다(Pain, 2021, 973). 따라서 트라우마와 관련된 감정과 정동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에 영구적 기억을 형성시킬 수 있으며 이는 집단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여기에서 대항기억은 사회나 국가의 공식적인 서사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된 주체들의 집합적 기억으로서, 공식기억에 도전하는 대안적 서사와 역사를 말한다(Foucault 1980; 이경래・이광석, 2017, 50에서 재인용). 대항기억에 대한 논의는 국가가 선별적으로 재현한 공식 역사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고, 국가가 제도화시킨 공식 역사와 개개인이 체험한 바를 토대로 형성된 사적 기억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공식적 역사에서 배제된 기억은 대항의 서사로 자리 잡게 된다(이경래・이광석, 2017, 50-51). 억압된 개개인의 사적 기억이 모여 결합하면 공식적인 서사에 도전할 힘을 획득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기억은 기억 경합 과정을 통해 새로운 공식기억으로 포섭되거나 치환될 수 있다(정용복, 2021, 12-13; 김민하・정희선, 2023, 24).
주로 국문학과 근현대사 분야에서 이루어진 현기영의 4・3 소설을 분석한 연구들은 작품 속에 재현된 학살의 서사를 포함하여 역사적 사건으로서 4・3의 문학적 형상화의 특징을 비교하거나(노종상, 2010; 김요섭, 2019), 한국의 4・3과 5・18, 중국의 문화대혁명, 베트남전쟁 등 대학살을 다룬 ‘상흔 문학’에 나타난 폭력의 실체와 그 대응양상을 비교・검토(심영의, 2015)하는 등 폭력적 사건들에 견주어 유사점・차이점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현기영의 작품을 통해 제주 4・3이 미군정하에서, 그리고 건국의 과정에서 시작된 비극적 사건으로 국제적・민족적 문제라는 점을 지적(김동윤, 2015; 김현옥, 2018)하고, 4・3 사건을 하나의 왜곡된 형상으로 이용한 이데올로기의 기만을 폭로한다(이하은, 2021). 그러나 대부분은 문학 텍스트와 역사의 진실성 간의 접점을 찾기 위한 연구들로서 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서 장소의 의미를 탐색하는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 본고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작품에 묘사된 트라우마의 장소가 심리적 상흔의 기억을 작동시키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개인의 사적 기억이지만 공식적인 역사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집단기억과 장소의 관계성, 그리고 트라우마와 같은 부정적 감정과 정동이 장소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대항기억과 이 기억이 투영된 장소와 연관시켜 이해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현기영의 소설작품 가운데 「순이 삼촌」(1978),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아스팔트」(1986), 「마지막 테우리」(1994)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는데, 해당 작품들은 현기영 작가 자신의 체험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사건의 전개 과정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탁월하고 등장인물의 트라우마를 실제 장소와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을 통해 제주 4・3 사건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장소에 투영되었는지 텍스트의 재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본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트라우마와 장소의 관계, 그리고 트라우마의 장소가 나타내는 사회적, 물리적 특성을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트라우마의 장소가 나타내는 특징에 따라 분석 대상 소설작품의 묘사 내용을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확인하고 대항기억과 장소의 관계를 종합하여 논의하였다.
II. 이론적 배경: 트라우마의 장소와 집단기억
심리적 외상을 의미하는 트라우마7)는 하나 이상의 심각한 피해나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발생하고 일련의 공통된 증상들을 포함한다(Pain, 2021, 973). 연구서 『트라우마와 회복(Trauma and Recovery)』(1992)을 통해 트라우마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트라우마의 치유 방법을 소개한 정신의학자 Judith Herman은 트라우마가 무력감・공포와 더불어 삶에 대한 적응 반응을 압도하는 사건에 직면하여 발생한 결과라고 정의하였다(주디스 허먼, 2012). 그는 트라우마를 ‘과각성(hyperarousal),’ ‘침투(intrusion),’ ‘억제(constriction)’라는 세 가지 심리적 반응을 통해 설명하였다(Zaleski et al., 2016, 379).
먼저 심리적・생리적 긴장이 증가한 상태를 나타내는 ‘과각성’은 트라우마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으로서 초조함, 수면 장애, 과민성, 분노, 과잉경계(hypervigilence)가 증상으로 포함되는데 이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 후 추가 위협에 대한 대응 반응으로서, 즉각적인 위험이 사라진 후에도 장기간 지속되며 사회적 부적응을 발생시킨다(Zaleski et al., 2016, 379). 다음으로 ‘침투’는 정상적인 사고 과정과 활동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다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말하며,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상기, 반복적인 악몽, 예고 없이 떠오르는 사건의 이미지와 정서적 고통을 수반하고, 정신적 충격 경험을 완전히 처리하고 해소할 수 없는 마음의 무능력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트라우마의 기억이 파편화되고 무질서하게 저장되어 무의식적으로 다시 떠오르는 것과 같이 개인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Zaleski et al., 2016, 379). 한편 정서적 반응의 감소를 의미하는 ‘억제’는 타인으로부터 분리되거나 단절된 느낌과 같은 감정적 무감각, 사건과 관련된 인물, 장소, 생각 등을 회피하는 것 등이 대표적 증상으로 포함된다. 억제는 압도적인 외상에 대한 방어적 반응으로서 자기 보호 수단으로 작용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감정 및 주변 환경과 단절된 느낌이 들게 되는 무감각, 또는 기억, 의식, 정체성에 대한 지각에서 이상이 나타나는 해리성 장애(dissociative disorder)로 이어질 수 있다(유홍주, 2015, 366-368).
이와 같은 트라우마의 증상은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 시간・장소와 불가분으로 연결된다. 특히 트라우마의 장소는 사건의 발생 장소로서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에서의 트라우마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의 트라우마가 발생한 장소는 교통사고 발생 장소, 가정 폭력이나 학대가 일어난 주거공간 등이 될 수 있다. 집단적 수준에서는 전쟁터, 재난 현장 또는 대규모 폭력이나 학대・학살 행위가 발생한 곳과 같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수준에서 트라우마를 유발한 사건이 전개된 장소를 의미한다. 이러한 장소는 개인과 지역사회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Mountz, 2017, 74). 나아가 대부분의 트라우마는 충격적 사건이 전개된 장소와 시간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그 결과로 장소들 간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Coddington and Micieli-Voutsinas, 2017, 52; Pain, 2021, 974).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은 트라우마가 전개된 장소와 깊은 정서적・정동적 연결성을 가질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장소와의 관계는 개인의 정신 건강이나 집단적 수준에서의 안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와 장소 사이의 관계는 개개인마다 매우 상이할 수 있는데, 개인의 경험, 대처 메커니즘, 그리고 전문적 지원 시스템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Coddington and Micieli-Voutsinas, 2017, 52). 개인에 따라서는 거부・회피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사건 발생 장소를 다시 방문할 수 있는 반면, 일부 경험자는 방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Coddington and Micieli-Voutsinas, 2017, 52).
이러한 트라우마의 장소가 나타내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서적 공명으로서 트라우마의 장소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에게 중요한 정서적・정동적 의미가 있으므로 공포, 슬픔, 좌절, 분노를 촉발할 수 있고, 장소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개인의 기억과 감정 속에 깊이 각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개인은 사건 현장을 다시 방문하거나 회상하는 것이 어렵지만 트라우마의 치유가 해당 장소의 방문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Coddington and Micieli-Voutsinas, 2017, 53-54).
다음은 물리적 측면으로서 트라우마의 장소에는 해당 장소에서 전개된 사건으로 인해 경관상에 물리적인 변형이 이루어지고 그 흔적이 남는다. 예를 들어, 폭격으로 건물이 폐허가 되거나 총격이 발생한 거리에는 그 흔적이 남게 된다. 이와 같은 흔적 경관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뿐만 아니라 비극적 사건이나 참사・전쟁 등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고통의 기억을 형성시킬 수 있다(Pain, 2021, 980).
또한 집단기억의 측면으로서 트라우마의 장소는 지역공동체와 같은 집단 수준에서 경험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유지시킬 수 있다. 집단 수준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로서 특정 역사적 사건으로 유발된 트라우마는 과거에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건과 아무런 체험적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도 나타나며, 이들 비경험자의 트라우마는 후세대까지 전이될 수 있다(김종곤, 2013, 41).
한편 상실감의 측면으로서 트라우마의 장소는 가족, 친족, 이웃, 공동체 구성원의 희생, 삶의 터전으로서의 안전감과 트라우마 전에 유지되던 안정된 삶의 파괴 등으로 개인에게 영구적인 상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상실감은 심리적 외상을 가져온 사건의 스케일에 따라 개인만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 경험자들의 회복을 위해 적절한 지원과 자원을 제공할 필요성이 제기되며, 이와 같은 지원은 개인의 회복을 돕고 공동체의 재건을 촉진할 수 있다(주디스 허먼, 2012, 123).
마지막으로 트라우마의 재발 또는 치유 가능성의 측면으로서 트라우마의 장소는 억제되었던 트라우마를 재유발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고통을 유발할 수 있지만, 개개인 상호 간에 회복을 위한 심리적 지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치유와 회복력의 장소가 될 수 있다(Pain, 2021, 982-983). Herman은 트라우마의 치유가 심리적 외상이 발생한 곳에서 고통의 기억을 직면하고 통제력, 안전감, 자존감을 회복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였다(주디스 허먼, 2012, 17). 즉, 트라우마의 장소가 억제된 트라우마의 증상을 재발화시킬 수 있지만, 이를 통해 트라우마의 주체가 어떤 상황을 경험했는지 자각하고 억눌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심리적 지지와 전문적 치료를 통해 해당 장소가 치유와 회복의 장소로 변모할 수 있다(Pain, 2022, 1791).
주목할 점은 전술한 바와 같이 트라우마의 장소가 집단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단기억은 특정 사회 집단이나 공동체의 공유된 기억과 경험을 말한다. 여기에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유된 역사적 사건・경험뿐만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이야기, 전통・문화적 관습 등이 포함된다. 집단기억에는 국가 기념행사, 문화적 전통, 그리고 집단학살, 폭력 등의 충격적인 사건과 같이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동시에 집단기억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이소정, 2023, 7-8). 그러나 집단기억은 선택적이고 편향될 수 있으며 반드시 객관적인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집단기억은 특정 사회, 정치, 또는 경제 체제를 정당화・합법화하거나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소외시키거나 배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비판적 시각으로 집단기억에 내재할 수 있는 편향성과 권력 역학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환언하면 집단기억은 물질적 매개를 통해 유지・전달되므로 집단기억이 투영된 장소를 보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역사적 기록물과 사진, 구전・구술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 집단기억이 투영된 장소의 물리적 구조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 유적지나 기념물과 같이 집단기억을 간직한 상징물을 보존하고 교육 프로그램, 가이드 투어 및 안내문을 설치하는 것 등을 포함할 수 있다(전진성, 2005, 52). 여기에서 장소 보존은 현세대가 필요로 하는 바와 미래 세대를 위해 과거를 보존해야 하는 필요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복잡한 과정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특정 장소와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 협력하여 해당 장소가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보존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집단기억이 공식기억과 동일하지 않은 경우로서 대항기억의 의미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Foucault(1980)에 따르면 대항기억은 공식 역사에서 소외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적이지만 집합적인 기억을 지칭한다(Foucault 1980; 이경래・이광석, 2017, 50에서 재인용). 대항기억에 대한 담론이 국가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재현한 공식 역사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등장하였다는 것은 대항기억이 역사의 진실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저항성을 띠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제도적으로 재생산되는 공적 기억과 개개인의 사적 기억 간의 괴리가 발생할 때,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기억은 대항기억을 형성시킨다(이경래・이광석, 2017, 5051). 즉, 기억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사적이지만, 억압된 사적 기억들이 집합적으로 모여 형성된 집단기억은 공식기억에 대한 대항력을 갖는다. 이러한 기억 투쟁의 결과로, 대항기억은 새로운 공식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특정 기억의 배제나 선택 과정에는 해당 시기의 사회정치적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정용복, 2021, 1213).
III. 현기영의 소설 속 제주 4・3 사건의 기억과 서사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제주 4・3 특별법」은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제주 4・3 특별법」). 이렇게 4・3 사건이 1948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이 민간인에게 발포한 사건으로 시작되어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 해제에 이르기까지 7년 넘게 지속되는 과정에서 제주도 전역은 적성지역으로 분류되었고 중산간 지역의 초토화 작전으로 대규모 희생자8)가 발생하였다(제주 4・3 평화재단, 2019, 119).
현기영은 4・3 사건으로 현시된 갈등의 사회공간적 차원, 화산섬으로서 제주도의 고유한 환경, 폭력의 물리적・심리적 영향, 기억과 장소의 상호작용, 권력의 역학적 작동 과정 등을 구체적인 서사로 형상화하였다. 현기영이 4・3 사건의 실상을 소설의 텍스트로 폭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제주 4・3 역사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노형리9)(현재 제주시 노형동)에서 출생하여 소년기에 4・3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제주도의 고유한 역사, 문화, 자연을 재현하고, 사건의 희생자・생존자의 고통과 상처를 제주도 방언으로 현장감 있게 전달하는 등 높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현기영, 2022, 337-339).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78년에 발표된 「순이 삼촌」은 금기를 깨고 진실과 정의를 외친 문제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49년 1월 17일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 너븐숭이에서 벌어진 양민 학살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은 450여 명에 달하는 주민이 학살된 곳이다(표 1). 대규모 학살 사건의 시작은 남로당 무장대에 의해 북촌리 인근 도로에서 군인 2명이 사망하게 되면서부터인데 당시 제2연대 군인들이 범인 색출과 동조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북촌리 400여 채의 가옥들을 전소시키고 448명의 주민을 학살하였다(서울신문, 2022년 3월 31일). 소설의 주인공 순이 삼촌은 4・3으로 남편과 두 자식을 잃고 살아남은 생존자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순이 삼촌이 학교 옆에 위치한 자신의 옴팡밭(제주어로 가운데가 우묵하게 들어간 경작지)을 일구는 과정이 묘사되는데 이곳은 주인공 순이 삼촌의 생계유지 수단이 되는 동시에 주인공의 상처와 고통이 투영된 장소이다. 옴팡밭에서 남매를 잃었던 순이 삼촌은 트라우마를 겪고 신경쇠약과 환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극의 현장인 옴팡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순이 삼촌」이 발표되고 현기영이 이른바 ‘문제작가’로 지목된 후 발표된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는 4・3 당시 무고한 주민 80여 명 이상이 학살당한 도령마루 동산(제주시 용담2동 1805번지 일대)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김유경 등, 2012, 538; 미디어 제주, 2022년 5월 11일b)(표 1). 노형리에 살고 있던 주인공 귀일댁(귀리집)은 무장대의 방화로 가옥을 잃게 되고 성담을 쌓는 울력에 동원된다. 귀일댁은 성담 쌓기 울력이 끝나는 지점에서 학살당한 주민들의 시신을 매장하는 임무를 맡는데, 그곳에서 군경 토벌대에게 희생된 신랑의 시신을 발견한다. 제주 들판에 버려진 시신은 까마귀가 얼굴을 쪼아먹는 탓에 신원을 알아볼 수 없다. 오열해야 할 순간, 귀일댁은 남편의 얼굴이 까마귀에 상하지 않게 머릿수건을 둘러 밭담 너머에 몰래 숨기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표 1).
한편 1986년에 발표된 「아스팔트」는 역사적 사실의 폭로와 고발에 치중한 이전 작품들과 달리 지역사회 내면에 자리 잡은 심리적 외상에 대한 치유와 갈등 주체들 간의 화해를 지향한 작품이다(현기영, 2022, 341)(표 1). 이 작품에서는 모교 중학교 교감이 된 주인공 창주가 겪었던 4・3에 대한 기억을 그리고 있다. 새밋드르 마을이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전소되면서 창주와 어머니, 동생 용주는 주민들과 중산간 지대의 궤(동굴)로 피신한다. 창주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동굴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다 하산하고, 창주는 6・25 전쟁의 학도병으로 싸우다 제주도로 돌아와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새밋드르 이장 강영조, 그리고 지서 주임이었던 임영준과 창주와의 대립 관계는 임종을 맞이한 강영조가 사과의 뜻을 비치면서 마무리된다. 작품 속에서 아스팔트로 덮인 공항 활주로와 일주도로, 즉 희생자들의 시신이 묻힌 곳은 발설이 금기시되었던 4・3 사건의 전모, 은폐된 고통, 공포, 상흔 등을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표 1.
현기영의 주요 소설작품의 배경과 트라우마의 장소
한편 이 작품에서는 6・25 전쟁의 발발로 제주도에서 예비검속이 이루어질 때 강영조와 임영준의 조작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한 사건 역시 묘사하고 있다. 예비검속은 6・25 전쟁 발발 직후 이적행위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50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경찰서 유치장, 제주읍 주정 공장 창고, 서귀포 고구마 창고 등에 구금되었다가 제주읍 주둔 해병대사령부 산하 병력에 의해 1950년 7~8월, 제주읍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산지항 부근 바다 등지에서 집단 총살 또는 수장당한 사건을 말한다(조정희, 2013, 1, 21). 대거 예비검속되어 학살당한 사람들은 주로 국민보도연맹10) 가입자, 요시찰자, 한라산 입산자 가족 등이었다(조정희, 2013, 2). 「아스팔트」에서는 이와 같이 6・25 전쟁 직후 극심한 혼란의 상황에서 전개되었던 주민들 간의 갈등 관계를 다루고 있다.
1994년 발표된 「마지막 테우리」는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군경에 의한 무장대 토벌작전이 벌어진 마을이나 전략촌 등의 촌락 공간 대신 오름이라는 자연의 일부이면서 도민들의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진종헌, 2016)(표 1). 이 작품은 제주시 동남쪽에 위치한 동검은이 오름을 배경으로 마지막 남은 테우리(소몰이꾼)인 고순만 노인이 겪는 어느 초겨울 오후 몇 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다. 고순만 노인의 회상 속에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동굴에 은신한 일가족을 희생시킨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어 겪게 된 고통의 시간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원형분화구를 갖춘 화산체로 한라산 오름의 경관을 서정적이고 심미적으로 묘사하여 주인공의 슬픔을 증폭시킨다.
현기영의 소설은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말살된 기억을 되살려 그것이 다시는 망각되지 않도록 재기억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작품들에는 특히 ‘잃어버린 마을,’ ‘전략촌,’ ‘궤,’ ‘오름’ 등을 포함하여 제주 4・3 사건이 전개된 주요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당한 곳, 즉 트라우마의 장소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폭력과 학살의 서사가 특정 장소와 결합하여 생존자들에게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신경쇠약, 환청, 공포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트라우마가 개인이 경험했을 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파편화된 이미지의 기억으로 자리 잡지만 소설작품은 그와 같은 이미지를 언어로 전달한다. 역설적으로 역사는 언어로 기록되므로 언어화되지 못한 개인의 기억은 파편화되고 소멸하지만, 트라우마는 신체를 통한 정동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구체화 되어 기억된다(조예완, 2023, 15). 4・3 소설은 마음과 신체가, 그리고 이미지와 언어가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며, 사건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IV. 현기영 소설 속 트라우마의 장소와 집단기억
1. 살육의 현장과 은폐된 고통: 「순이 삼촌」과 ‘잃어버린 마을’
제주 4・3 사건은 해방 후 대규모 인구가 제주도로 귀환하여 식량과 생필품 부족, 전염병의 확산 등을 겪으면서 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된 상황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저항하는 봉기를 정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김민하・정희선, 2023, 25). 주민들의 소개(疏開)와 학살, 촌락의 전소, 토지 소유권의 변화 등으로 제주도의 유기적인 생활 터전은 파괴되고, 사회공간적 질서와 혈연 공동체의 기반이 붕괴되었다. 4・3 사건과의 연관성으로 제주도의 특정 장소들은 정서적 상흔의 상징적 의미가 두드러지게 되었는데, 4・3 사건의 트라우마가 투영된 장소로서 현기영의 소설작품 속에 등장하는 곳은 전소된 촌락과 가옥, 경작지, 전략촌과 성담, 오름과 동굴 등으로 이와 같은 장소들은 주민들이 희생되고 소개된 곳, 처참한 집단생활을 했던 곳, 폭력과 학살을 피해 은신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본 절에서 「순이 삼촌」을 통해 트라우마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제주도민의 집단기억이 투영된 장소로서 주목하고자 하는 곳은 ‘잃어버린 마을’과 ‘전략촌’이다. 4・3의 잔혹성을 겪은 소설 속 인물들은 충분한 애도와 추모, 치유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충격적인 기억의 반복적 재생으로 일평생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 기억, 감정, 정동을 통해 드러난 물리적 실체로서의 장소의 의미를 트라우마의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트라우마의 장소가 회복, 치유, 정서적 재건의 장소가 되는 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잃어버린 마을’은 1948년 11월부터 1949년 초까지 무장대의 근거지를 일소하겠다는 취지로 제주도 중산간 지대의 촌락을 중심으로 진행된 군경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발생하였다. 토벌대는 중산간 지역 주민들을 해안에 위치한 마을로 소개시키고, 해안마을에는 주민 감시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로써 중산간 지대의 촌락들은 전소되었고 주민들이 학살되거나 소개됨에 따라 복구되지 않은 마을이 발생하였으며 이와 같은 주민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아 방치된 곳을 ‘잃어버린 마을’로 지칭하게 되었다(김민하・정희선, 2023, 21). 2020년 발간된 『제주 4・3 유적』에서는 가구 수가 10호 이상이었던 마을만을 대상으로 총 122개의 ‘잃어버린 마을’을 기록하고 있다11)(제주특별자치도・제주4・3연구소, 2020; 김민하・정희선, 2023, 27)(그림 1).
한편 전략촌은 전소된 마을 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일종의 집단수용소로서(김은희, 2006, 182), 정부군은 소개된 주민들을 동원하여 “불탄 집터의 울담도 허물고 밭담”도 허물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묘지를 두른 산담”까지 허물어 전략촌 경계에 석성을 쌓도록 하였다(현기영, 2022, 91). 『제주 4・3 유적』에 따르면 현재 4・3 석성의 흔적이 108개소 남아 있다(제주특별자치도・제주4・3연구소, 2020)(그림 2). 소설 속에서 순이 삼촌도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만삭의 몸으로 현무암을 져 나르는 노역에 혹사당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순이 삼촌」의 공간적 배경인 ‘서촌’은 가상의 지명인데 이곳은 1947년 1월 17일 대학살12)이 발생한 북촌(현재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을 나타낸다. 소설 속의 화자 ‘나(상수)’의 독백 속에서 고향 마을은 30년 전 군의 소개 작전에 따라 방화가 이루어져 상실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나’에게 고향은 “마을 동편 하늘에 까맣게 불티가 날고 있는” 모습(현기영, 2022, 67), “하늘에 불아지랑이가 어른거리며”(현기영, 2022, 68), “해풍을 타고 매캐한 연기 냄새”가 밀려오고 “소각된 잿더미의 모습”(현기영, 2022, 71)으로 기억된다.
「순이 삼촌」에서 서촌(북촌)은 1949년 전소된 후 마을 주민 가운데 생존자들이 함덕으로 소개되어 전략촌 건립에 동원되고 2개월 후 소개령이 해제되면서 마을로 복귀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주민들의 복귀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소설 속 서촌을 ‘잃어버린 마을’로 지칭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옥이 전소되고 삶의 터전을 상실하여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이 임시 움막에서 생활하며 전략촌을 건립하였고 마을을 재건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해당 마을이 전소 이전과 같이 완전히 복구・복원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순이 삼촌」 속 ‘나’는 나의 향리인 서촌이 “예나 이제나 죽은 마을”이라고 독백한다(현기영, 2022, 43).
삶의 터전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주민이 희생당하면서 생존자들에게는 트라우마가 형성되었는데 ‘나’는 조부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8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두려운 과거 기억의 재생으로 오싹함을 느낀다.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 살면서 8년 넘게 의도적으로 고향을 방문하지 않고 고통의 기억을 회피하고 ‘억제’하던 ‘나’에게 충격적인 과거 경험의 이미지가 ‘침투’한 것이다. ‘나’ 역시 순이 삼촌과 마찬가지로 국민학교(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 사이에서 희생될 뻔한 경험을 하였고, 순이 삼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주도로변의 밭담으로 둘러싸인 옴팡진 밭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희생된 주민들의 시신이 “허옇게 널려 있는” 것도 목격하였다(현기영, 2022, 61). ‘나’의 상기된 두려움은 순이 삼촌이 겪은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재생된다. 즉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과거의 기억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플래시백(flashback)이 장소와 조우하는 순간에 기억의 침투로 발생한 것이다.
“심한 결벽증에 사로잡혀 혹시 누가 뒤에서 흉보지 않나 하는 생각에 붙잡혀 늘 전전긍긍하게 되고, 나중엔 환청 증세까지 겹쳐, 하지 않은 말을 들었노라고 따지고 들곤 했다.”(현기영, 2022, 59)에서와 같이 순이 삼촌이 겪었던 신경쇠약, 환청, 경찰 기피증, 무력감, 결벽증 등은 트라우마의 증상으로서 순이 삼촌은 자신의 남매를 포함하여 무고한 주민들이 군경에 의해 희생된 참극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순이 삼촌뿐만 아니라 강제로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데 화자인 ‘나’도 “서로 이름 부르며 가족을 찾는 소리와 군인들의 악에 받친 욕 소리로 국민학교 운동장이 아수라장”이 된 상황, 일제사격 후 천지를 진동하는 통곡 소리(현기영, 2022, 71), 마을 외양간에 매인 채 “불에 타 죽는 소와 말 울음소리”(현기영, 2022, 71) 등 오감으로 체화된 공포의 정동으로 괴로워한다.
「순이 삼촌」에서는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발생한 주민들의 무고한 희생뿐만 아니라 무장대의 만행도 언급하고 있는데, 주민들이 “밤에는 부락 출신 공비들이 나타나 입산하지 않는 자는 반동”(현기영, 2022, 75)이라 하여 희생당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무장대와 토벌대 모두가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남매와 남편을 잃고 자신과 유복자만 살아남게 된 순이 삼촌은 생계를 위해 주민 학살 터였던 밭에서 유골과 탄환을 거두어 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처참했던 과거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고구마를 일구던 밭에서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그 옴팡밭에서 붙박인 인고의 삼십 년. 삼십 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지를 못했다. 흰 뼈와 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현기영, 2022, 94)
“그(순이 삼촌의)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 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순이 삼촌)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 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 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현기영, 2022, 94)
인골과 탄피가 나오는 옴팡밭을 일구며 순이 삼촌은 학살 사건 때의 총성을 환청으로 듣게 되고 옴팡밭에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나’는 순이 삼촌의 삶이 이미 30여 년 전 4・3 사건에 의한 가족 상실의 비극이 일어났을 때 이미 끝나 버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순이 삼촌이 결국 과거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옴팡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을 통해 제주도민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13) 사적 기억이 집합적으로 결합하는 상황은 촌락 주민들이 하루에 집단으로 희생됨으로써 같은 날 제사를 지내게 되고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의 기억을 매년 공유하게 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적 기억이 모여 공공의 기억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순이 삼촌」은 양민 학살과 주민 소개의 과정, 그리고 제사 풍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 방언의 구사와 세밀한 경관 묘사를 통해 현장감을 높여 독자가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순이 삼촌의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친족, 이웃, 마을 전체를 연관시키는데 국가는 사건에 대한 망각을 강요하였고 생존자나 유족의 억울함, 상실, 고통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 결과 학살 터를 벗어날 수 없었던 순이 삼촌이 반복된 트라우마를 겪은 것이다. 이는 트라우마의 발화 기제가 공간적이고 물질적임을 보여주며, 한편으로 장소는 국가의 공식적 기록과 기억을 넘어서서 개인에게 체험된 기억을 투영시킴으로써 사건의 진상을 상세하게 폭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장소가 대안적 서사와 역사의 토대가 되며 공식 역사 속에서 소외된 집단의 경험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서사의 창조와 영속화에 관련된 권력의 역학을 인식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강제 이주와 노동의 현장: 「도령마루의 까마귀」와 성담
1979년에 발표된 현기영의 단편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는 「순이 삼촌」과 마찬가지로 4・3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비극과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제주 4・3 사건 당시 공포의 상징이었던 서북청년회와 군경의 역할, 그리고 계엄령하에서 주민 이동을 막기 위해 건설된 성담 구축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 귀일댁의 가족이 산폭도와 군경 토벌대에게 당한 희생을 언급하여 이중적 피해자로서 무고한 주민들이 겪은 비극의 서사를 재현한다.
「도령마루의 까마귀」에서 귀일댁은 다랑굿 마을을 포함하여 노형리의 자연 촌락들14)이 초토화되고 남편이 산폭도들에게 끌려가고 난 후 해안가의 서호마을로 소개된다. 열 살짜리 아들 순원은 제주 읍내에 피난 보냈으나 계엄령으로 이동이 금지되어 만날 수 없는 상황이다. 작품 속에서 일본어 ‘소까이’로 표현된 소개령은 단순한 강제 이주의 명령만이 아니라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전소되고 주민들이 비인간적인 울력에 강제 동원되어 자유로운 이동이 금지되었던 상황을 포괄하는데, 학살과 폭력을 자행한 주체들의 파괴된 인간성을 폭로한다.
주인공 귀일댁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다랑굿 마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간직한 곳이지만 이와 동시에 4・3의 폭력과 참혹함이 스며들어 있는 장소이다. 제주도의 산과 바다는 대립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자연경관 요소이지만 분쟁과 갈등, 폭력과 죽음의 요소들을 상징한다. 작품 속에서 산은 은신처이자 저항의 장소로, 바다와 해안은 피난처이자 강제노역과 시련의 장소로 그려진다.
“계엄령이 떨어져 있는 저 제주 바다에는 배가 뜨지 않는다. 항시 감시 군함 두엇이 앞바다를 오락가락할 뿐 쪽박 하나 뜨지 않는다.” (현기영, 2022, 123)
“사방이 바다로 꽉 막혔으니, 산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독 안에 든 쥐일 수밖에, 바다를 막아놓고 군경 합동 토벌군은 섬을 뺑 둘러 해변에서부터 쭉 훑어 올라간단다. 폭도들이 해변을 습격해올 때 숨을 만한 해변가 일주도로 근처 밭담이란 밭담은 죄다 허물고, 솔수펑, 수리대 밭도 태우고, 폭도들이 죽창 만들지 모른다고 왕대밭도 태우고, 핑계김에 마을 정자나무, 늙은 팽나무 신목도 잘라 팔아먹고, 당도하는 중산간 부락마다 모조리 불태워 그 불기에 몸을 녹이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점점 좁혀간다.” (현기영, 2022, 123)
귀일댁이 소개령으로 마을에서 강제 퇴거된 후 옮겨간 해안마을은 임시 피난처의 역할을 하지만 이곳에서도 폭력의 공포와 기아, 강제 동원 등의 시련이 이어진다. 도피자가 된 신랑의 행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귀일댁은 굶주림으로 갓 백일을 넘긴 아기를 잃고 성담 건설 작업에 동원되는데, 성담 건설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이북출신의 ‘까마귀 오(烏)’라 불리는 오 순경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찰이었던 그가 미군정하에서 또 경찰이 된 것이다. 그는 반공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서북청년회의 일원으로 토벌대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귀일댁은 “저 순경이 먼빛으로 설핏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뒷목에 칼날이 닿는 듯 썰렁한 한기가 일어나”는 공포의 정동을 느낀다(현기영, 2022, 98).
귀일댁이 동원된 작업은 실제 1949년 초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이어진, 제주성 안을 오가는 길목에 성담을 쌓는 일이었고 해안마을에서는 입산자들과의 교류를 차단하기 위한 마을 성담이 건립되었다. 이 작업 과정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미디어 제주, 2022년 5월 11일a). 정부군은 주민들을 노역에 동원하였는데 젊은 남성들이 대다수 사상범으로 희생되었기 때문에 강제노역에 주로 여성들이 동원되었다(김은희, 2006, 185-186). 소개된 주민들은 “어른 키로 둘 되는 높이”로 성담을 세우고 성담 밖에는 “키 높이 정도의 함정”을 파고 “실거리나무, 엄나무, 볼레나무 같은 가시나무를 베어다” 넣어 놓는 노역에 동원되었다(현기영, 2022, 113).
해안마을로 주민 소개가 이루어진 이유는 중산간 지역에 은신한 무장대와 주민 간의 관계를 해체하기 위해서였다. 무장대가 주민들로부터 식량, 은신처, 보급품,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군경 토벌대는 이와 같은 관계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즉, 중산간 지역의 초토화 작전을 통해 주민들을 해안마을로 이주시켜 석성을 쌓고 수용한 후 선별 작업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군은 미리 작성된 명단에 따라 주민들을 등급별로 분류하여 감시하거나 숙청하였으며, 주민들의 신분을 확인한 후 양민증을 발급하는 등 주민들의 활동을 철저히 통제하였다(김은희, 2006, 185-186). 또한 주민들이 ‘민보단’을 조직하고 무장단체에 맞서 싸우도록 하였는데, 전략촌 건립 후 주민들은 주로 성을 지키기 위한 경비 역할을 수행하였다(김은희, 2006, 185-186).
소설에서 성담 쌓기 울력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귀일댁은 도령마루에서 시신 수습에 동원되는데 도령마루는 1948~1949년 제주도 17개 마을에서 끌려온 8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된 장소였다(제주일보, 2024년 1월 22일). 희생자라는 익명성이 아닌 귀일댁이라 불리는, 무고한 여성을 통해 소설작품은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의 전소, 가족의 희생, 축성을 위한 강제노역, 전략촌에서의 굶주림 등 제주도민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곳들을 상세하게 현시한다. ‘잃어버린 마을’과 강제 수용된 마을, 전략촌, 성담 등은 공식적 역사에서 배제된 피억압자의 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집단기억이 투영된 장소라는 점에서 공식적인 지배기억과 대비되는 대항기억으로서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장소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전희진・박광형, 2016, 12).
3. 고통과 수난의 지형: 「아스팔트」와 궤
1986년 출간된 「아스팔트」는 제주도 지역사회 내에서 나타난 가해자와 피해자 간 갈등 관계를 언급하며 4・3 사건이 과거에 발생한 일시적 폭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의 삶과 함께 현존하고 있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소설의 이야기는 주인공 창주가 중학교 교감으로 30여 년 전 4・3 당시 마을의 동태를 보고하는 정보원 노릇을 했던 강씨(강영조)의 임종을 맞으러 밤길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토벌대에 의해 불타오른 마을(새밋드르)로부터 도피하던 주민들은 입산하여 2개월간 궤(동굴)에서 은신한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주민들이 하산하게 되고 제주 읍내 주정 공장에 수용되어 있을 때 이들을 강씨와 또 다른 이북출신 마을 주민인 임씨(임영준)가 감독하게 된다. 당시 13세였던 창주는 임씨와 강씨가 마을의 정자나무였던 수백 년 된 팽나무를 벌목하여 착복하고, 예비검속이 이루어질 때 무고한 청년들을 희생시킨 것을 알고 있다. 6・25 전쟁 발발로 군에 자원입대한 창주가 복무를 마치고 귀향해 보니 강씨는 마을 이장이 되어 있었다. 강씨와 임씨 두 사람의 행적을 용기 내어 폭로하고자 하였으나 보복의 두려움이 커서 더 이상 대립상황이 유발되지 않도록 언행을 조심하고 살아왔는데 그런 강씨가 임종을 앞두고 과거를 사죄하겠다고 자신을 부른 것이다. 과거 행적에 대해 뻔뻔하기만 한 임씨와 다르게, 죽음을 앞두고 잘못을 시인하고자 하는 강씨의 처사를 새삼스러워하며 가족의 수난사를 상기시킨 창주는 강씨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아스팔트」에 담겨있는 4・3 사건과 관련된 특별한 체험담은 바로 동굴 생활이다. 군경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불타오른 마을을 떠난 주민 일부가 2개월 동안 동굴에서 은신하는 비참한 모습이 상세하게 재현되어 있다. 이 작품에도 토벌대의 살육 행위뿐만 아니라 무장봉기대의 가해 행위도 묘사되어 있는데, 작품의 전반부는 동굴 생활의 비극에 전념하는 반면, 후반부는 토벌대가 저지른 잔혹 행위와 이에 맞선 주인공의 갈등과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산섬 제주도의 자연동굴은 4・3 당시 주민과 무장대에게 중요한 은신처로서, 소설 속 주인공 창주가 기거했던 동굴은 극단의 추위와 굶주림, 고통의 장소였다. 처음 동굴에서 은신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동굴은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일주일 정도만 인내하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일종의 희망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큰넓궤(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도엣궤(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다랑쉬굴(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빌레못굴(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대섭이굴(제주시 조천읍 선흘리)과 같은 곳은 은신한 주민들이 토벌대에게 발각되어 처참하게 희생된 곳으로서 죽음의 덫이며 학살의 장소였던 것이다(존 에퍼제시・허준호, 2022, 98). 제주도에는 현재 32개의 자연동굴이 4・3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28곳의 동굴이 제주시에 분포한다15)(이그나즈 아니타, 2016, 65-66)(그림 3).
“굴 앞이 무성한 잡초덤불로 가려져 자연 은폐가 되었지만 연기와 불빛은 절대 금물이었다. 밤에는 불빛이 샐까 낮에는 연기가 샐까 걱정이었으니 그 겁먹은 불이 오죽 컸을까? 가랑잎 한 줌 타는 정도 이상의 불꽃은 키울 수 없었다. 눈 맞은 삭정이는 습기가 많아 연기를 많이 내므로 껍질을 벗겨서 때지 않으면 안되었다.” (현기영, 2015a, 67)
이러한 동굴은 은신의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나 유족, 그리고 4・3이 끝난 이후에도 동굴 내의 유골을 마주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와 해리성 장애를 유발하였다. 「아스팔트」에서 봄이 와 해동이 되면서 동굴 천정의 얼음덩이가 떨어져 모자가 희생되자 창주를 포함하여 은신한 주민들은 동굴 생활을 포기하고 하산한다. 하산 직후 주민들은 읍내 주정 공장에 수용되어 심문을 받는데 창주는 이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현기영, 2015a, 72). 극도의 추위, 공복, 공포, 불면으로 야기된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얼마간 지속된 것이다.
작품에서 주인공 창주는 4・3 사건과 6・25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강인한 인물로서 자신의 참혹했던 경험을 담담하게 회상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창주가 강씨 집으로 이동하면서 제주 공항과 인근의 아스팔트 아래에 묻힌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오싹함의 정동을 느끼지만, 트라우마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4・3을 겪은 마을 노인들의 증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비만 오면 [중략] 드러눕기가 일쑤이고 겨울만 되면 울 일도 없는데 공연히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다니는 고향 노인네들······. 너무 공포에 질린 나머지 한번 맘 놓고 울어보지 못한 그들에게 겨울만 되면 아무 뜻도 없이 자동으로 눈물이 나도록 눈병을 선사했으니 시대는 이토록 가혹했던 것이다.” (현기영, 2015a, 74).
이와 같이 소설은 신체적・심리적 외상의 증상이 마을 주민들에게 집합적으로 나타났음을 드러낸다. 4・3 사건의 은신처 동굴은 도피 생활의 현재성과 상징성을 띠고 있다. 특히 다랑쉬굴, 큰넓궤와 같이 은신한 사람들의 유골과 유물이 발굴된 곳의 이미지는 4・3에 대한 희생자의 사적 기억을 상기시키며, 이를 통해 대항기억으로서 사적 기억이 공식기억으로 치환될 수 있는 시발점이 만들어진다. 즉 동굴은 사건 당시 겪은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트라우마를 상징하는데, 박탈감, 두려움, 그리고 가족과 이웃 상실에 대한 기억은 이러한 은신처에서의 고난과 관련이 있다. 생존자들은 종종 어둡고 비좁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으로 인해 평생의 상처를 갖게 되었음이 텍스트에 드러난다.
그러나 연좌제와 보안법 적용과 같은 정치적 탄압으로 제주 4・3 사건을 논하는 것은 금기시되었고 생존자와 그 후손은 종종 오명에 직면했으며 동굴과 관련된 충격적인 경험은 공개적으로 공유되지 않았다. 이러한 기억의 억제는 트라우마의 또 다른 층으로 자리 잡았다. 동굴은 무장대의 은신처이기도 했으므로 억압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지배적인 서사에 도전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힘과 인내를 강조하는 대항기억의 토대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은신처였던 동굴을 보존하고 관련된 서사를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려는 노력이 치유와 화해 과정에 필요하다는 것이다(음영철, 2013, 303). 4・3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동굴은 트라우마의 장소이자 저항과 기억의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니며, 과거를 기억하고 기리며 이해를 증진하고 치유를 촉진하는 장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4. 자연 속의 피안과 차안: 「마지막 테우리」와 오름
「마지막 테우리」는 1994년 발간된 단편소설로서, 주로 서사적 구조 중심으로 4・3 사건의 참상을 폭로했던 현기영의 1970년대~1980년대 작품들과 달리 제주도 자연경관의 심미적 특성과 4・3 사건과 연루된 목자(소몰이꾼)의 삶을 연관시켜 제주도의 로컬리티를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16)(조영단, 2022, 19; 23). 「마지막 테우리」의 공간적 배경은 동검은이 오름(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으로, 소설 속에서 주인공 고순만 노인은 나이 일흔여덟에도 소를 맡아 키우는 고용 테우리이다(그림 4). 초겨울 오후, 고순만 노인은 오름 속 초원에서 자신의 친구, 현태문 소유의 어미 소와 송아지를 돌보다 과거의 기억에 빠져든다. 고순만 노인은 어릴 적 토벌대에 붙잡혀 구타를 당하고 산폭도들이 은신한 굴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화를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엉뚱한 동굴을 특정하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비어있으리라 확신했던 굴속에 노부부와 손자가 은신해 있었고 이들이 처참하게 희생되는 일을 겪은 것이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죄책감, 고통, 고해, 트라우마의 시간이었다(현기영, 2015b, 25).
“노인이 초원을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슬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이제 격정은 아니었다. 그 잔잔한 슬픔은 마치 가슴속에 마르지 않는 찬 샘을 갖고 있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때때로 무서운 격정에 사로잡혀 영각하는 소처럼 들판을 향해 울부짖기도 했다.” (현기영, 2015b, 25)
자연에서 소를 돌봐온 노인에게 오름, 벵듸(들), 궤(동굴) 등이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곳이 된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초원에서 백골과 탄피들이 발견되고 고순만 노인은 공포의 기억을 떠올린다.
“흙 한 점 묻혀보지 못하고 풍우 속에 허옇게 폭로되어 있던 백골들‧‧‧ 지금도 건초 수확 때마다 풀밭에 늘비하게 눕혀 있는 건초뭇들을 보면 당시의 떼주검이 연상되어 몸이 오싹해지는 그였다. 초원에 묻힌 그들의 삭일 수 없는 한이 저 거친 야초를 키운 것이 아닌가.” (현기영, 2015b, 21).
작품 속에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오름에서 바위틈에 불을 지핀 채 잠든 고순만 노인에게 소를 맡긴 친구, 현태문의 음성이 생생히 울려오고 잠을 깬 그가 황급히 눈 위에 찍힌 소 발자국을 따라가 친구 현태문의 임종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4・3의 피해자이며 일종의 가해자로서 노인의 삶에 대한 회상과 자각은 작품 전체에 반영되어 있는데, 노인의 성찰은 4・3 사건에 대한 참혹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한때 마소를 가족으로 여겼지만 4・3 토벌군의 강요로 마소를 사냥하여 도살하는 백정이 되기도 하였다. 모두 그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었지만 4・3 사건 이후 그가 살아온 삶은 트라우마와 고해의 시간이었다(장지은, 2018, 295). 오름, 들판, 초목, 하늬바람, 방목된 소 등이 노인에게 일종의 ‘침투’를 일으켜 반복적인 악몽과 정서적 고통을 발생시켰다. 노인의 꿈속에서는 들판이 불타오르며 불기둥이 내리꽂히는 모습, 소 떼의 처절한 울음소리, 섬광이 반복되어 나타났다(현기영, 2015b, 27). 이와 같은 악몽은 심리적 외상에 따른 ‘침투’의 증상을 나타낸다. 고순만 노인 역시 현기영의 다른 4・3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삶의 터전, 즉 오름과 들판을 떠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과거의 참혹한 기억과 이미지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에 갇힌 이중 피해자였지만 현기영의 4・3 소설 속의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4・3 사건의 기억은 노인을 구속시켰고, 남은 인생을 속죄하는 데 바쳤지만 아무도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가 고순만 노인의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일 수 있으며 이것이 오름에서의 삶을 평안하게 이어줄 단초였던 것이다.
오름과 벵듸는 제주도의 자연경관을 대표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연의 영속성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인간의 삶과 역경을 초월하는 자연의 힘을 나타낸다. 제주 4・3 사건이 전개되는 동안 오름은 생존을 위한 저항과 피신의 장소로 상징되며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공간적 배경을 제공한다. 특히 오름은 제주 4・3 사건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로, 과거의 아픔과 역사를 상기시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를 반영하고 있다.
Foucault가 제시한 대항기억의 개념은 지배적인 서사에 의해 소외되거나 억압된 역사를 인식하고 되찾는 것을 포함한다. 「마지막 테우리」의 오름은 제주 4・3의 억압된 역사를 상징한다. 공식적인 역사는 사건을 지우거나 삭제하려고 하지만, 오름은 고통과 저항의 기억이 보존되는 곳이다. 대항기억은 권력의 주체가 강요하는 지배적인 역사적 담론에 도전하고 대안을 제공한다. 오름은 대항기억의 저장소가 되어 국가의 공식 역사에 대한 대안적 서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과 저항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오름의 침묵은 오히려 억압된 기억이 재생될 수 있도록 해주며, 국가의 감시와 통제, 억압된 역사를 담지한다(Stephen, 2005, 180). 자연경관으로서 오름은 소설 속 사건의 배경일 뿐만 아니라, 억압에 맞서는 저항과 기억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기영의 소설작품에 재현된 4・3 사건으로 유발된 트라우마의 장소, 즉 학대, 폭력, 파괴, 학살이 전개된 장소들은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현재와 미래의 사회적 방향성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즉, 제주 4・3 사건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비극적 사건이었던 만큼 이를 다룬 현기영의 소설은 4・3 사건이 전개된 장소가 사적 기억을 재현하고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 묘사된 생존자와 유족, 그리고 지역공동체에 트라우마를 유발한 장소는 역사적 사건의 실제 현장이며 그 자체로 물질적 증거가 되는데, 이러한 장소들은 개개인이 겪은 구체적인 사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림 5는 현기영의 4・3 소설을 통해서 본 트라우마, 기억, 장소의 관계에 대한 개념적 틀을 나타내며, 시간의 경과에 따른 각 요소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장소는 폭력, 학대, 학살, 파괴 등을 포함하는 충격적 사건의 발생, 그리고 사건에 연루된 가해자, 희생자, 생존자, 목격자 등 주체들 간의 정체성의 차이에 따른 관계성을 반영하고, 감정적・정동적 반응으로서 공포의 정동이 생성되는 공간적 배경이 된다. 정신적 상흔을 남기는 충격적 사건 경험에 따라 생존자, 유족, 지역사회에서 ‘과각성,’ ‘침입,’ ‘억제’의 트라우마 증상이 발화됨으로써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 요구된다. 개인의 사적 기억은 결합하고 공론화를 거치면서 집단기억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이는 서로 다른 기억 간의 경쟁과 사회정치적 인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라우마 경험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사건 현장 방문, 전문 치료, 안전감 회복, 애도, 지역사회와의 재연결이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트라우마 주체의 치유를 위해서는 사건 발생 과정에 대한 구전・구술 채록, 해당 장소에 추모관・기록관의 건설과 같은 치유를 위한 공간적 실천이 요구된다. 이를 기반으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집단기억이 공식기억에 통합되어 제도화・영속화될 수 있다. 그림 5는 트라우마, 장소, 기억이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한 역동적인 측면을 나타내며, 치유 과정과 집단적 기억이 공식 역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장소의 의미를 확인하게 한다.
V. 결론
본고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작품으로서 「순이 삼촌」(1978),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아스팔트」(1986), 「마지막 테우리」(1994)를 분석하여 폭력과 학살의 서사가 투영된 트라우마의 장소가 공식 역사에 대한 대항기억의 공간으로서 작동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현기영의 4・3 소설들은 각기 다른 공간적 맥락에서 트라우마의 형성과 발화 과정을 다루는데, 해당 장소들은 단순한 작품의 배경을 넘어서서 4・3을 경험한 주체들과 지역사회에 역사적 상흔을 치유하고 집단기억을 공식기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순이 삼촌」에서는 4・3의 참혹한 폭력・학살이 전개된 장소들 대부분이 묘사되었는데 특히 전소되어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과 강제 이주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조성된 전략촌, 그리고 학살의 현장은 4・3의 생존자, 유족, 지역사회에 ‘과각성,’ ‘침투,’ ‘억제’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인 불안의 정동을 안겨주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령마루의 까마귀」는 제주도 중산간 지역과 해안마을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겪은 강제 이주와 축성작업의 고통을 보여준다. 특히 도령마루와 같은 학살 현장은 가족과 공동체의 비극을 상징하며, 폭력, 학대, 학살의 참상이 투영되어 있음을 폭로한다. 한편 「아스팔트」에서 동굴은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의 생존 투쟁의 공간이자 죽음의 덫으로서, 은신한 주민들에게 심리적 트라우마와 해리 장애를 유발하였음을 보여준다. 동굴에서의 경험은 사건 당시 겪은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외상의 증상을 지속시킨다. 「마지막 테우리」에서 오름은 제주 4・3 사건으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의 공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항의 공간이기도 하다. 오름은 봉기를 일으켰던 산사람들의 저항과 생명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며 가해자였던 주인공이 느끼는 죄책감의 무게, 상처, 슬픔이 깃든 장소임을 보여준다. 오름은 단순한 자연경관 이상의 깊은 상징적 의미를 띠는데 4・3 사건과 연결된 트라우마와 역사를 반영하는 중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그려진다.
현기영의 소설작품들에 묘사된 장소들은 트라우마의 증세가 장소를 통해 발현되는 과정을 구체적인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경험한 트라우마의 깊이, 그리고 역사적・개인적 비극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즉, 현기영의 작품들은 4・3 사건의 공간적 배경을 통해 트라우마와 기억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그로 인한 고통을 깊이 있게 전달한다.
중요한 점은 트라우마의 회복 과정이 단순히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제된 방식으로 트라우마가 발생한 장소를 다시 방문하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Herman이 제시한 바와 같이 트라우마 치유 과정에서 안전, 기억, 애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회복을 위해서는 생존자가 심리적 외상의 기억을 압도당하거나 통제당하는 대신 자신의 삶의 서사에 통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상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심리적 외상의 치유는 외상이 발생한 곳에서 고통의 기억에 직면하고, 경험의 주체에게 통제력, 안전감,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폭력・학대・학살이 발생한 트라우마의 장소가 대항기억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기억과 역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기억, 애도, 추념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장소의 의미가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 즉, 트라우마가 발생한 장소의 맥락에서 대항기억은 사건의 흔적 지우기에 대해 저항하고 진실을 추구하도록 한다. 그것은 희생자를 기리고 고통을 인정하며 생존자와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강조하는 대안적 서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요컨대 트라우마의 장소는 애도, 추념, 기억의 행위를 통해 강력한 대항기억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장소에 설치된 기념관, 박물관, 추모비, 교육 및 해설 프로그램 등은 사건에 대한 반성, 학습 및 치유를 촉진하는 동시에 기억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의 장소를 대항기억의 장소로 전환하는 것은 장소를 보전하고 회복하는 방식의 한 형태로서 생존자와 지역사회가 함께 이러한 장소의 의미를 재정의하여 전유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는 희생자를 기리고 집단적 슬픔을 표현하지만 생존과 저항을 기념하는 의식, 제의 및 공개 모임이 포함될 수 있다. 동시에 트라우마 현장에서 대항기억을 확립함으로써 회복력, 정의, 평화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본질적으로, 집단적 수준에서 사건이 전개된 장소는 기억, 교육, 치유의 초점이 되어 대항기억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가 인정되고, 피해자가 존중받으며, 대항기억이 망각・부정・배제되지 않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본고는 문학작품 속 공간적 배경으로서 주요 장소의 의미를 트라우마의 복잡성과 기억의 다층성을 통해 탐구하였으며, 이는 문학 텍스트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트라우마와 기억, 장소의 관계를 탐구할 수 있는 시발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문학작품을 통한 역사적 사건과 집단기억의 융합적 접근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분석 대상으로 삼은 소설의 텍스트가 제한적이어서 장기간 지속된 4・3 사건의 복잡했던 전개 과정과 그 공간적 배경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문학 장르를 포함하여 다채로운 작가군의 4・3 소설들을 비교・분석하고 소설 속 문장의 키워드를 추출하여 네트워크 분석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적용하며 문학적 분석과 역사적 맥락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추후의 연구 과제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