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국토지리학회지. 31 March 2022. 13-33
https://doi.org/10.22905/kaopqj.2022.56.1.2

ABSTRACT


MAIN

  • I. 서론

  • II. 패권안정이론과 생명지정학

  • III.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COVID-19

  •   1. COVID-19 발생 이전의 미국과 중국의 관계

  •   2. COVID-19 발생 후 중국의 보건외교와 백신외교

  •   3. 중국의 백신 개발

  • IV. 중국의 백신 공급과 정치경제적 관계의 재구조화

  •   1. 지경학적 관계

  •   2. 지정학적 관계

  • V. 결론

I. 서론

탈냉전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된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그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시켰으나 9.11 테러와 같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리더십의 공백을 만들어냈다. 21세기에 들어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중국은 이를 기회로 일대일로 구상(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을 제시하며 대륙별 거점 국가들과 정치경제적 공동체 형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대일로는 2013년부터 2049년까지 중국, 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 전략으로서 특히 해양 패권 확대를 목적으로 한다(김준영·이현태, 2019). 중국의 부상은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의 갈등을 촉발하였고, 무역과 정보통신기술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COVID-19 팬데믹하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COVID-19의 확산 초기, 미국 정부는 치명률(case fatality rate)이 급상승하면서 자국 방역 중심으로 대응한 데 반해, 강력한 봉쇄정책으로 감염 확산을 차단한 중국은 COVID-19 임상 데이터, 방역기술, 의료물품 등을 제3세계 국가들에 지원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였다.

2020년 초부터 COVID-19 백신 개발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한 중국은 백신 개발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일대일로 협력국들과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이후 무상 공여 및 수출을 통해 대외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였다. 중국은 2022년 2월 기준 총 6종류의 백신을 상용화하였으며, 추가로 21종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COVID-19 Vaccine Tracker, 2022년 2월 기준). 비서구권 백신 가운데 가장 먼저 WHO(World Health Organization)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얻은 백신으로서 중국생물기술유한공사(China National Biotec Group, CNBG)1)에서 개발한 백신(Sinopharm)과 중국 국영제약사 시노백 바이오테크(Sinovac Biotech)가 개발한 백신(Sinovac 또는 Coronavac)은 현재 전 세계에 공급되고 있다. 시노팜은 77개국, 시노백은 44개국에 공급되었으며, 수출은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그리고 무상 공여의 경우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주목할 점은 중국이 백신을 우선적으로 지원한 국가들이 일대일로의 협력국가로서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백신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COVID-19 백신의 수급 불균형 상황에서 백신 개발국이 백신을 공공재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사적 재화로 활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은진석·이정태, 2021).

중국뿐만 아니라 COVID-19 백신을 개발한 미국과 러시아 역시 정치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목적으로 백신외교를 전개해 왔다. 미국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전쟁지역 중심의 보건의료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왔으나 팬데믹하에서 국내 상황이 위중해지자 자국 내 혼란을 수습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방국이면서도 지정학적 중요성을 갖는 국가들에게 백신을 공급하지 못하였는데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은진석·이정태, 2021, 174). 이후 자국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미국 역시 우방국을 중심으로 백신을 공급하였다. 다만 미국의 백신 기부는 주로 세계 백신 공동 분배 프로젝트인 COVAX Facility(COVID-19 Vaccines Global Access Facility)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백신을 개발한 다국적제약사들이 백신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2) 러시아 역시 2021년 초 라틴아메리카,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중심으로 자국 백신을 공급하였으나 효능과 안전성 논란이 발생하면서 수요가 감소하였다.

COVID-19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이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방역기술과 보건물품, 백신 등을 공여하는 것은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소프트파워는 국제정치학자 Nye(2008)가 미국의 패권 유지 방안을 제시하면서 고안한 개념으로서(Nye, 2008, 94), 군사력·경제력 등의 강압적인 하드파워(hard power)와 달리, 민주주의 및 인권 중시와 같은 사회문화적 가치의 전파, 교육·문화 콘텐츠의 확산 등을 통해 국가의 매력성과 신뢰를 구축하여 자발적으로 행위자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김상배, 2009, 12). 보건 물품이나 백신 그 자체는 소프트파워가 아니라 이러한 원조를 통해 공여국에 대해 우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로 인해 상대국으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권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중국은 2020년 9월 자국 내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였고, 백신의 상용화가 완료되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백신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고 공표하였다(표나리, 2020, 19). 이는 중국이 성공적인 방역 과정을 통해 공동체를 우선시한다는 문화적 가치를 전파하고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적 우위를 갖추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표나리, 2020, 18).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중국의 백신 공여 및 판매가 자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어떤 정치경제적 동기가 반영되어 있고 그 효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미·중 패권경쟁의 맥락 속에서 중국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보건외교와 백신외교를 전개하고 있는 양상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전 지구적 감염병의 확산과 백신의 공급이 패권갈등의 양상을 변화시키는 생명지정학적 기제(biogeopolitical mechanism)로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백신 공여를 통한 소프트파워의 형성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역설하고 그 한계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감염병의 대확산 상황에서 국가가 생명정치적 통치성을 발휘하여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수행하는 일련의 행위를 생명지정학적 행위로 정의하고, 국제정치의 행위자로서 국가의 역할과 정책에 주목한다. 이는 영토, 안보, 동맹과 같은 국가의 정치적 행동을 위계적 차원에서 다루는 고전 지정학적 논의에 가까운데, 팬데믹으로 유발된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의 위기를 지리적 관점과 연관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행위자 중심의 고전 지정학 논의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김상배, 2020; 지상현, 2013; 지상현, 2016; 한국지정학연구회 역, 2007).

본 연구는 이론적 고찰과 언론보도 내용 분석으로 이루어지며,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패권안정 이론과 생명지정학의 의미를 검토하고 COVID-19 발생 이전 미국과 중국의 권력관계와 COVID-19 발생 이후 중국의 보건 및 백신 외교를 고찰한다. 둘째, 중국이 백신 공급을 일대일로 사업 및 대만과의 수교 관계 존속 문제와 연관시켜 다루고 있는 사례를 통해 팬데믹하에서 생명지정학의 작동 과정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소프트파워 형성 전략의 한계에 대해 논하고 그 시사점을 도출한다.

II. 패권안정이론과 생명지정학

패권(hegemony)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할 수 있는 주도권으로서 특정 국가가 국제사회의 질서와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가치, 목표, 제도들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운영해 갈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박병광, 2021, 51). 특정 국가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월한 경쟁력을 토대로 국제 공공재의 창출, 보편적 가치의 확산, 그리고 국제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다수의 비패권국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은진석·이정태, 2021, 165). 이 가운데 주변국들로부터의 지지는 필수적이며,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국가는 자국이 보유한 다양한 형태의 자원을 주변국과 공유함으로써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이때의 지지는 강압적인 형태로도 얻을 수 있지만 이러한 방식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패권을 유지하거나 얻고자 하는 국가는 다수의 국가로부터 “공공재를 제공하여 얻은 준자발적인” 지지의 힘을 필요로 한다(은진석·이정태, 2021, 165).

국제경제학자 Kindleberger(1973)의 패권안정이론(hegemony stability theory)에 따르면,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국의 존재가 필수적이다(Kindleberger, 1973; 박훈탁, 2008, 6에서 재인용). 여기에서 패권국이 제공하는 공공재는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국가의 정치적 수단으로서 공익을 목적으로 활용되지만 패권국의 경제적 이익이나 외교적 영향력 확대와 같은 사익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해왔으나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양국은 다양한 영역에서 충돌하였다. Obama 행정부(2009~2017년)는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였고 Trump 행정부(2017~2021년)에서는 중국을 패권도전세력으로 공식화함으로써 양국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었다(공민석, 2020, 19).

전술한 바와 같이 패권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패권국들의 지지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Nye는 군사력·자원 등에 기반한 하드파워가 아닌, 마음을 끄는 힘으로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을 뜻하는 소프트파워가 세계 각국의 자발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이며, 소프트파워가 패권국에게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Nye, 2008, 14). 소프트파워의 자원은 정신적 가치, 문화, 외교 정책 등으로서, 소프트파워는 궁극적으로 국제관계를 수행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볼 수 있다. COVID-19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이 백신외교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에서 신뢰성을 얻고 글로벌 리더십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패권국은 타국으로부터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여 패권유지에 소요되는 비용을 낮출 수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강대국들은 하드파워 경쟁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 경쟁을 하게 된다(김태환, 2019, 3). 다만 특정 국가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반드시 대칭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국제질서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조합에 따라 네 가지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먼저, 특정 국가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모두 갖추게 되면 패권국의 지위를 갖추게 되고 공고한 패권 질서가 형성된다. 만약 하드파워가 우세하지만 소프트파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취약한 패권질서가 형성된다. 마찬가지로 특정 국가가 소프트파워를 형성하였지만 하드파워를 갖추지 못하면 자유주의적 무정부 체제와 유사한 국제질서가 형성된다. 이 경우 패권국의 존재 없이도 안정적인 국제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모두 분산되어 있을 경우에는 적자생존이 적용되는 무질서와 갈등이 전개된다(김태환, 2019, 4-6).

미국의 대중 견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지속적으로 다수의 개발도상국들과 기간시설 구축사업을 통한 경제협력을 강화해 온 것은 하드파워의 강화를 위한 것이다. 일대일로를 통해 주로 재정적자와 취약한 경제 기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도로, 철도, 발전소, 항만 등의 기간시설 건설을 위한 재정지원과 인력공급을 확대해온 것이다.

COVID-19의 변이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백신이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그러나 백신의 개발·생산·공급이, 자본이 풍부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명과 건강이라는 보편적 가치 실현에 국가별 정치경제력에 따른 차별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백신에 정치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음을 나타낸다(Gauttam et al., 2020, 321).

즉 백신이 생명과 건강을 관리하는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백신외교는 Foucault(1976)의 생명정치와 연관된다(Foucault, 1976; 이규현 역, 2004에서 재인용). 생명정치는 생명을 통치할 수 있게 하는 기능들을 통해 발휘되며, 사회 구성원 전체를 통제하기보다는 조절 및 관리한다는 특성을 지닌다. 여기에서 생명 조절·관리의 주체는 국가가 되는데 위기 상황에서 국가는 주요 행위자로서 생명보존의 책임을 맡는다(김호연, 2018, 130).

COVID-19 팬데믹과 같이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전개되는 국가의 행위들은 영토, 국경, 생명권에 대한 보호와 통제를 수반하므로 생명지정학적인 성격을 띤다. 생명지정학은 인간의 신체와 생명에 대한 정치적 해석과 실천이 국가 간 정치외교적 맥락 속에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입국 통제, 검역 강화 등의 경계관리, 그리고 생명보존을 위한 방역조치와 백신접종 등을 수행하는 것은 국가이며, 그 행위는 모두 타 국가와의 정치경제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Jauhiainen(2020)은 COVID-19 팬데믹 초기, 유럽 최대의 난민 수용소3)가 위치한 그리스 레스보스 섬(Lesvos)에서 터키를 거쳐 EU 역내로 이주하기 위해 들어온 난민들이 겪는 차별과 탄압을 생명지정학적 관점에서 비판하였다. 즉 팬데믹 상황에서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국가가 수행하므로 모국을 떠난 난민들은 감염 확산의 매개로, 그리고 생명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소외자로 다중적 차별을 받게 됨을 지적하였다. 특히 난민들의 출신이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국가라는 점에서 생명정치와 지정학적 요인이 반영되었음을 강조하였다. Jauhiainen(2020)의 연구는 보호받지 못하는 난민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국가의 생명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지정학적 요인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상 중국 정부는 백신외교를 통해 제3세계 국가의 국민들을 “살게 만들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어 이 역시 생명지정학적 행위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김환석, 2013, 5; 박위준, 2020, 93). COVID-19 백신을 자국과 우방국가를 중심으로 공급하고 있는 미국 역시 생명을 담보로 한 지정학적 조치를 취하고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중국은 백신 공급의 대가로서 특정 국가에게 외교관계의 재설정이나 경제적 협력을 공세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는 감염병의 대확산 상황에서 생명을 담보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의 백신외교를 국가의 생명정치와 지정학적 요인을 결합시켜 해석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의 차별성이 확인된다. 생명지정학은 국가의 주요 이해관계자가 생명정치적 거버넌스로 지정학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전개하는 일련의 정책적 실천을 다루며, 개개인의 생명보존을 위한 국가의 결정이 지정학적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Jauhiainen, 2020, 201). COVID-19 팬데믹하에서 중국이 지정학적·지경학적 목적을 가지고 전개하는 백신외교는 한편으로는 생명정치로 작동하지만 백신이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는 개인의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는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로 기능할 수 밖에 없다.

III.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COVID-19

1. COVID-19 발생 이전의 미국과 중국의 관계

미국과 중국은 1979년 수교 이후 “차이메리카(Chimerica)”4)를 추구하며 교역을 통해 양국의 공동발전을 도모해왔다(한광수, 2009, 8). 중국은 특히 2001년 WTO 가입 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경제력을 기반으로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까지 외교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미국의 대중무역 적자는 1994년 295억 달러에서 2018년에는 4,192억 달러로 급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국 국채 1조 1,000억 달러를 보유한 최대 보유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정부의 위기의식이 심화되었다(동아일보, 2019년 3월 7일; 오피니언뉴스, 2020년 1월 15일). 미국의 중국 견제는 2010년대부터 구체화 되었는데 Obama 행정부에서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P)을 추진하며 아시아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였고, Trump 행정부에서는 무역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과 다양한 대중 무역 제재를 실행하였다(김주리, 2020).

한편 중국은 산업고도화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2008년 이후로는 경제성장둔화와 국제무역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제3세계 국가 중심의 경제협력전략을 구상하게 된다. 2015년에 이르러 중국 정부는 ‘중국 제조 2025(Made in 2025)’라는 경제 어젠다를 제시하며 중국 중심의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형성을 위해 일대일로를 구체화 시켰다(현기순, 2021, 245). 일대일로는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중국의 초대형 대외 경제협력 전략을 말한다(현기순, 2021, 245).

일대일로의 지정학적·지경학적 특성은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의 연선국가(沿線國家)에 SOC 건설 사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산업·경제 협력을 통해 인적·물적·공간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현기순, 2021, 245). 육상 실크로드는 ① 중국-중앙아시아-러시아-유럽, ② 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페르시아만-지중해, ③ 중국-동남아시아-남아시아-인도양을 연결하는 3개 노선으로, 해상 실크로드는 ① 중국-남중국해-인도양-유럽, ② 중국-남중국해-남태평양을 연결하는 2개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최지영, 2015, 151; KOTRA, 2017, 8). 2018년에는 북방항로와 일대일로를 연결시키는 ‘빙상 실크로드’가 추가되었는데, 빙상 실크로드 역시 에너지 수송, 북극 자원 개발,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한다(표나리, 2018, 151).

2022년 2월까지 일대일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국가는 145개국이며, 이 가운데 120개국 이상에서 산업기반시설 건설, 금융지원, 정책조율, 민간교류활성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中國一帶一路網, 2022년 2월 기준). 대륙별로는 아시아 37개국, 아프리카 51개국, 유럽 27개국, 라틴아메리카 19개국, 오세아니아 11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中國一帶一路網, 2022년 2월 기준), 북미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의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대일로가 2049년까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포괄하는 거대한 지리적 연결 플랫폼이 형성된다.

일대일로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하는 기반시설 구축사업 중심에서 경제, 문화, 금융 등의 부문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경제적 지원은 대부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을 비롯하여 중국 주도로 설립된 금융기구를 통해 실행되며 사회기반시설 구축은 중국 소재 건설회사들이 각국의 사업을 수주하여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저개발 국가를 돕기 위한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무상원조’ 방식과 달리 차관 형식의 ‘유상원조’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일대일로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김준영·이현태, 2019; 최재덕, 2018). 실제로 차관협정계약서는 비공개 조항과 중국의 최우선적 채권확보를 보장하는 조항을 포함하며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해당 시설의 운영권이 채권자에게 이전되는 등, 사업으로 인한 이익이 중국에 유리하도록 작성된다(김영주 등, 2021, 141).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해상 실크로드의 거점국가인 파키스탄, 스리랑카, 지부티에 중국 해군 기지를 포함한 항구와 항만을 건립하였는데, 사실상 중국의 에너지 자원 이송 비용의 절감효과뿐만 아니라 인도양·말라카 해협에 주둔한 미국·프랑스 해군의 견제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경제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하는 연대를 구성하여 정치·군사·외교적 측면에서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일대일로는 중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목적을 달성하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대외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다.5)

2. COVID-19 발생 후 중국의 보건외교와 백신외교

COVID-19 팬데믹 초기 세계 각국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방역조치와 국경 이동 제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이는 인력의 이동뿐만 아니라 물자의 이동을 중단시켰기 때문에 중국에서 생산된 원자재와 중국인 노동력으로 세계 각지에서 추진되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이에 중국은 G20 정상회담과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에서 글로벌 방역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에서 자체 개발한 다량의 백신을 공공재로 제공하고 방역물품과 함께 임상 데이터를 지원하겠다고 공언하였다(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21, 22). 이를 통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코로나 방역을 선도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며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보건외교의 형태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COVID-19 확산으로 다수 국가들이 보건의료시스템의 붕괴와 의료물품 부족 현상을 겪는 가운데,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을 시작으로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마스크, 방호복 등의 방역물품을 수출하고 진단키트를 포함한 의료물자와 의료진을 제공하는 ‘마스크 외교(mask diplomacy)’를 시작하였다(김태환, 2021, 21). 중국 정부와 알리바바(阿里巴巴)·화웨이(华为) 등의 기업, 중국인민해방군 등이 지원에 나섰으며,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방역물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진국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었다(김태환, 2021, 21). 중국인민해방군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과 동유럽,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군부대를 대상으로 마스크 외교를 수행하였는데, 지원 국가는 대부분 일대일로 참여국으로 그중에서도 남중국해-인도양-아프리카를 연결하여 해상 통제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중국의 군사전략 선상에 위치하거나 중국 정부에 호의적 태도와 협력의 여지가 있는 국가들로 구성되었다.

다만 공여대상국들이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중국이 제안하는 몇 가지 요구사항을 수용해야 했다. 지원을 얻고자 하는 국가는 반드시 중국 정부와 직접 접촉해야 하며, 중국의 COVID-19 극복이 우수한 국가 체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하여 중국 정부에 대해 공식적인 감사 표시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중국은 이와 같은 메시지를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하여 보건 공공외교 전용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전 세계에 공유하며 자신들의 성과를 알리는 데 이용했다(표나리, 2020, 17).

2020년 9월,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자 중국은 자국 내 COVID-19의 종식을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백신외교를 확대하였다. 10월에는 WHO가 주도하는 백신 공동구매 협의체인 COVAX에 가입하면서 개발도상국 대상 백신 우선 지원과 백신 공급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WHO의 중국 편향성을 지적하며 COVAX에 합류하지 않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중국의 백신공급이 대부분 COVAX를 비롯한 국제기구를 통하기보다는 각 국가와의 직접 계약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중국은 WHO의 긴급사용승인 전인 2020년 12월부터 시노팜 백신을 이집트, 인도네시아, 터키, 알제리 등에 수출하였으며 2월에는 파키스탄,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국가에 지원하였다(UNICEF COVID-19 Vaccine Market Dashboard). 2021년 5월 WHO의 긴급사용승인 후에도 서구권 개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 중국산 백신을 차선책으로 선택하면서 중국의 백신외교 대상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일대일로에 참여하며 중국에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백신을 차별적으로 공급하였고, 백신 공급을 조건으로 임상시험과 일대일로의 추가사업에 참여를 요구하거나 대만과의 단교와 같은 자국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일례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입장을 지지한 보상으로, 엘살바도르와 도미니카공화국은 대만과의 단교에 동의한 보상으로, 브라질은 화웨이의 진입을 허용한 보상으로 백신을 지원받았다.

백신을 글로벌 공공재라고 공언했던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백신을 매개로 자국에 유리한 정치경제적 조건을 요구하며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공공재는 근본적으로 비배제성을 띠지만 중국이 백신공여 국가를 선별한다는 것은 백신이 공공재가 아닌 사적 재화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중국 백신이 가진 높은 생산성과 백신 운송·저장 방식의 편리성이라는 특성과 관련된다.

3. 중국의 백신 개발

중국이 2022년 2월 기준으로 상용화한 백신은 총 6종이다. 중국 국영제약사 시노팜(Sinopharm)의 자회사인 중국생물기술유한공사(CNBG)가 개발한 BBIBP-CorV(또는 Covilo, 이하 시노팜), 민간 제약회사 시노백(Sinovac Biotech Ltd.)이 개발한 CoronaVac(이하 시노백), 그리고 칸시노 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와 중국 군사과학원 산하 베이징생명과학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Ad5-nCoV(이하 칸시노), 안후이 지페이 롱콤사(Anhui Zhifei Longcom Biologic Pharmacy)에서 개발한 ZF2001(이하 지페이) 백신이 유통되고 있으나 공급 비중이 높은 것은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이다. 2022년 2월 기준 국제사회에 판매 계약된 중국 백신을 제조사별로 살펴보면 전체 16억 9,000만 회분 중 시노팜이 37.2%, 시노백이 49.5%로 시노백의 공급량이 12.3%(약 2억 회분) 많으며, 기부한 백신은 시노팜이 56.6%(약 9,860만 회분), 시노백이 25.11%(약 4,370만 회분)로 시노팜 백신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Bridge Consulting, 2022년 1월 기준)(표 1).

중국 백신 가운데 가장 먼저 WHO의 긴급사용승인을 얻은 시노팜은 2022년 2월 기준, 88개국에서 긴급승인 또는 조건부 승인을 얻어 77개국에 공급되고 있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시노팜 백신은 시노백과 함께 불활성 바이러스(inactivated virus)를 활용해 개발되었으며, 3~4주 간격으로 2회 접종이 필요하다. WHO는 시노팜이 78.1%의 예방률을 보여 충분한 효과가 있다고 공표하였지만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에서 시노팜의 임상시험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국제사회에 불신을 불러일으켰다(The Washington Post, 2021년 3월 23일). 시노팜은 2022년 2월까지 국가 간 양자협약(bilateral treaty)으로 6억 2,908만 회분이 판매되었고 9,860만 회분이 기부되었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이는 중국이 국가 간 협약으로 기부한 1억 500만 회분의 약 74%에 해당한다. 시노팜의 공급량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3억 3,103만 회분, 아프리카 8,334만 회분, 라틴아메리카 6,003만 회분, 유럽 1,401만 회분이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2020년 시작된 시노팜의 1상 임상시험부터 참여했던 아랍에미리트(UAE)는 2021년 4월 말부터 자국 내에서 백신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방글라데시, 모로코,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헝가리도 양자협약을 통해 백신을 지원받았다(FRANCE24, 2021년 1월 11일; Reuters, 2021년 3월 29일).

표 1.

중국의 주요 COVID-19 백신의 특징

종류
구분
시노팜-베이징
(Sinopharm-Beijing)
시노팜-우한
(Sinopharm-Wuhan)
시노백
(CoronaVac)
칸시노
(Convidecia)
안후이 지페이
(Anhui Zhifei)
민하이
(Minhai)
개발사 베이징생명과학
제품연구소
(Sinopharm’s
Beijing
Institute of
Biological
Products)
우한생명과학
제품연구소
(Sinopharm’s Wuhan
Institute of Biological
Products)
시노백
바이오테크
(Sinovac
Biotech)
칸시노
바이오로직스
(CanSino Biologics)
및 중국
군사의과학원
(Academy of
Military
Medical Sciences)
안후이 지페이
롱콤(Anhui Zhifei
Longcom) 및 중국
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
민하이
생명과학
(Minhai Bio)
및 장쑤성(江苏省)
질병예방컨트롤센터
백신명 BBIBP-CorV(Covilo) Inactivated
(Vero Cells)
Coronavac Convidecia ZF2001(Zifivax) KCONVAC
개발주체 국가 국가 민간 민-관-학 군-학 민-관
예방 효과
(접종 횟수)
79-86%(2회) 73%(2회) 50-84%(2회) 65-69%(1회) 81.76%(3회) 자료 없음
가격
(US$)
$9~$36/1회* $9~$36/1회* $10~$32.52/1회* $8.5/1회 자료 없음 자료 없음
백신 유형 불활성화
바이러스
불활성화
바이러스
불활성화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벡터
아단위 단백질 기반 불활성화 바이러스
총 보급수 5억 3,679만 회분
이상
자료 없음 7억 1,090만 회분
이상
자료 없음 자료 없음 자료 없음
보급 국가 77개국 55개국 이상 44개국 자료 없음 자료 없음 자료 없음
3상 임상
국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요르단,
이집트, 페루,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페루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칠레, 브라질,
터키
파키스탄, 러시아,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중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에콰도르
중국
긴급사용
승인국가**
65개국 2개국 40개국 10개국 3개국 2개국

* UNICEF(2021)의 COVID-19 Vaccine Market Dashboard를 참고하여 추산함.

** 긴급사용 승인국가는 2022년 2월 기준.

시노백은 불활성화 백신으로 2021년 6월 WHO의 긴급사용승인을 얻었다. WHO에서는 51%의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발표하였지만, 터키에서는 91%, 인도네시아에서는 65.3%의 예방률을 보여 국가 간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Bloomberg, 2021년 1월 12일). 2022년 2월 기준으로 총 44개국에 8억 3,600만 회분이 판매되었으며, 4억 3,700만 회분이 기부되었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시노백의 해외 제조와 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알제리, 이집트, 터키, 브라질, 칠레 등에 생산시설이 건설되었으며, 이 국가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참여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은 플랫폼 특성상 생산에 소요되는 기간이 짧고 보관과 수송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mRNA 플랫폼 백신보다 효능이 낮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세이셸 공화국과 칠레, 인도네시아 등 시노팜과 시노백의 접종률이 높았던 국가에서 백신 접종 완료에도 불구하고 감염되는 사례가 상당수 발생하기도 하였다(Nature, 2021년 10월 14일). 그러나 mRNA 백신이 상대적으로 고가이고 이송하는 데 콜드체인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백신 부족을 겪은 저개발국에서는 중국 백신이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칸시노는 비자가복제 바이러스 벡터(NRVV) 플랫폼으로 생산된 백신으로 WHO의 승인은 얻지 못했지만 3상 임상시험에서 1회 접종으로 57.5%의 예방효과를 보였다(Reuters, 2021년 12월 24일). 멕시코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헝가리 등 9개 국가에서 사용승인을 얻었고, 총 8,470만 회분의 백신 구매 계약이 이루어졌다(UNICEF COVID-19 Vaccine Market Dashboard, 2022년 2월 기준). 이 중 멕시코와 파키스탄은 칸시노 백신의 임상시험 초기부터 참여한 국가로서 2021년 4월에는 중국으로부터 백신 원료와 함께 백신 생산 기술을 이전받아 자국 내에서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Mexican Government, 2021년 3월 23일; Reuters, 2021년 6월 5일).

이처럼 중국은 백신 개발 단계에서 개발도상국과의 양자협약을 통해 백신공급을 전제로 임상시험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였으며(노윤재·문지영, 2021, 9), 약 40만 명 이상의 해외 자원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하였다. 시노팜은 아랍에미리트에서 45,000명 이상, 바레인에서 7,7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아랍에미리트에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COVID-19 Vaccine Tracker, 2022년 2월 기준). 시노백은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등지에서 96,000명, 칸시노는 43,0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였고, 칸시노는 멕시코에서 15,000명 지원자를 모집하여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3,500만 회분의 공급계약을 맺었다(한국국제교류재단, 2021, 8).

물론 중국은 여타 백신개발국들과 같이 COVAX 뿐만 아니라 감염병예방혁신연합(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 세계백신면역연합(Global Alliance for Vaccines and Immunization) 등의 국제기구에 백신을 무상기부하고 있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그러나 국제기구를 통한 공급보다 국가 간 양자협약을 통한 공급 비중이 월등히 높고 일대일로 사업과 같이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우선 분배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협력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대부분 저개발국이고 중국으로부터 제공받는 사회경제적 지원이 해당 국가의 근간이 되는 기간시설 구축사업 중심이기 때문에 수혜국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더불어 현재 개발되고 있는 백신들의 특성상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용이하게 보급될 수 있는 백신이 중국 백신이라는 사실은 중국이 백신을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IV. 중국의 백신 공급과 정치경제적 관계의 재구조화

COVID-19 백신의 국가별·지역별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은 백신의 개발과 보급이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백신을 구매하는 데 국가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외교력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백신 수급의 불균형은 국가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차이를 분명하게 투영시키고 있는데 백신은 자국민의 생명보존을 우선시하는 국가 내부의 “안전관리기술”로 이해될 수 있으며(최병두, 2020, 13), 백신 자체가 국제관계에 영향을 주는, 또는 국제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국가에 의해 생명지정학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백신 개발국들은 백신을 통한 세계 보건 환경의 안정보다는 백신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제약회사의 의사결정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서구 국가들과 달리 중국의 경우에는 중앙당(국가)의 주도로 백신의 생산뿐만 아니라 마케팅과 유통 과정이 통제되고 있다. 즉 중국의 백신은 국가의 의도가 투영된 “안전장치”로 볼 수 있으며, 이 “안전장치”인 백신을 통해 개발도상국과의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전략이 전개되고 있다(Foucault, 2007, 5; 박위준, 2020, 95에서 재인용). 중국의 백신외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연선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백신의 차별적 지원, 두 번째로는 대만과의 단교와 다자간 협의체에서 중국에 대한 지지를 조건으로 하는 백신 지원이다.

1. 지경학적 관계

중국의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은 2022년 2월 기준 전 세계 115개국에 약 13억 9,000만 회분이 공급되었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실제 보급 물량 기준).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이란, 파키스탄, 필리핀,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 이집트, 짐바브웨에서 중국 백신의 공급 비중이 높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중국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아시아 및 동유럽 국가들과 지경학적 관계의 재구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첫째는 임상시험을 조건으로 한 백신구매 비용의 지원이고, 둘째는 일대일로 거점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제협력사업의 확대이다.

먼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집트, 칠레 등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물량의 백신을 공급받은 국가 대부분은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WHO의 긴급사용승인이 공식화된 2021년 5월 이전부터 이미 중국의 시노백·시노팜 백신을 공급받아 접종을 진행하였다. 이들 국가는 재정적으로 백신구매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타 지역보다 이른 접종이 가능했던 이유는 중국 정부가 임상시험 참여를 조건으로 백신의 우선 공급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한 백신구매 비용에 대한 재정지원을 제안했기 때문이다(Mercator Institute for China Studies, 2020년 11월 24일).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국가와 해당 사업 내용, 그리고 최초로 공급된 COVID-19 백신의 종류와 수량을 살펴보면 표 2와 같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카자흐스탄, 모로코, 지부티, 탄자니아, 헝가리는 일대일로의 주요 거점국가로서 중국과의 협력 사업을 통해 항구, 발전소, 에너지 수송관, 고속철도 등 대형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지부티, 모로코, 탄자니아는 2020년 11월, 12월, 그리고 2021년 1월, 칸시노, 시노팜, 시노백 백신을 최초의 COVID-19 백신으로 공급받아 여타 국가들보다 백신접종을 상대적으로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도움으로 2021년 6월 자체 백신(Pak Vac)을 개발하였고, 칸시노 백신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Reuters, 2021년 6월 5일). 인도네시아 역시 2020년 11월 칸시노, 12월에는 시노백을 최초의 COVID-19 백신으로 공급받았다.

표 2.

중국의 일대일로 주요 사업과 COVID-19 백신 공급(2022년 2월 기준)

구분 일대일로 사업 COVID-19 백신 승인과 공급
국가 지원종류 사업 기간 사업 내용* 사용승인 백신** 최초 공급 백신 종류***/
최초 공급 시기/
최초 공급 수량
인도네시아 인프라
건설
2014~현재 수마트라5 발전소(3억 1,800만 달러) 화이자, 모더나,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V,
코보백스(인도), 시노팜,
시노백, 안후이 지페이
롱콤, 민하이
시노백/2020. 12./
3,000,000회분
2017~현재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금융협력 2018. 11. 통화스왑(2000억 위안/440조 루피아/3년)
파키스탄 인프라
건설
2015. 4.~현재 캐롯(Karot) 등의 수력발전 댐(70억 달러)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V,
시노팜, 시노백, 칸시노
시노팜/2021. 2./
1,200,000회분
2013. 3.~2015. 4. 과다르 항(Gwadar Port) 방파제 구축
(1억 2,300만 달러)
2015. 4. 체결 카라코람(Karakoram) 고속철도 개통 협약
2015. 4.~현재 중국 신장-파키스탄 과다르 항 구간 철도,
도로, 에너지 수송관 건설(600억 달러)
금융협력 2016~2017 총 12억 달러 차관 제공
스리랑카 기간시설
건설
2009~2010(1차)
2012~2014(2차)
4차까지 예정
함반토다(Hambantota) 항구 재개발
(13억 달러, 2017년 중국으로 운영권 이전)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V, 코비실드,
시노팜, 시노백
코비실드/2021. 1./
500,000 회분/
2019~현재 콜롬보(Colombo) 항구 개발,
신도시 건설 등 20여 건의 사업
시노팜/2021. 3./
600,000회분(스리랑카
체류 중국인 접종용)
카자흐스탄 인프라
건설
2018~완료 호르고스(Khorgos) 내륙 항만 물류특구
(2억 4,500만 달러)
화이자,
스푸트니크 라이트,
스푸트니크V,
시노팜, 시노백
카즈백(QuzVac,
카자흐스탄 백신)
스프투니크V***/2021.2./
22,000회분
~2013. 11. 중국 시안(西安)-카자흐스탄
알마티(Almaty) 철도노선 개선
시노백/2021. 6./
500,000회분
모로코 인프라
건설
2020. 9.~현재 모로코 5G 사업 체결 화이자,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V, 코비실드,
시노팜
코비실드***/2021. 1./
2,000,000회분
시노팜/2021. 1./
500,000회분
지부티 인프라
건설
2015~2017. 7. 도랄레(Doraleh) 신항구 건설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V, 시노백
시노백/2021. 3./
100,000회분/
2015. 1.~2017 중국 상설 군사기지 건설
2015~2018 국제 자유무역지구 건설
탄자니아 인프라
건설
2013. 3. 체결 바가모요 항(Bagamoyo Port)(100억 달러) 얀센, 스푸트니크V,
시노팜, 시노백
시노팜/2021. 2./
500,000회분/
헝가리 인프라
건설
2011~2012. 5. 화웨이 물류센터(15억 달러) 화이자, 모더나, 얀센,
노바백스,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V, 코비실드,
시노팜, 칸시노
화이자***/2020. 12./
78,000회분/
금융협력 2016. 9. 통화스왑
(100억 위안/4,160억 포린트/3년)
시노팜/2021. 2./
550,000회분

* 일부 사업은 일대일로가 구상되기 전부터 추진되었으며, 2013년 이후 일대일로에 포함됨.

** 개별 국가에서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WHO 등 국제기구에서 승인된 백신이 접종될 수 있음.

*** 최초 공급 백신의 종류가 중국 백신이 아닌 경우, 중국 백신의 최초 공급 시기와 수량을 추가 명기함.

이 가운데 스리랑카6)는 일대일로 주요 거점국가이면서 동시에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외교관계의 균형을 추구해 왔으나 일대일로 사업의 참여 조건으로 얻은 차관이 국가 재정 위기로 이어지면서 중국에 채무 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The Economist, 2022년 1월 15일). 스리랑카는 2021년 1월, 아스트라제네카사가 인도혈청연구소(Serum Institute of India)를 통해 위탁 생산하고 있는 코비실드 백신(Covishield vaccine) 50만 회분을 최초의 COVID-19 백신으로 공급받았으며, 2021년 3월에는 중국 정부로부터는 스리랑카 체류 중국인 접종용으로 시노팜 백신 30만 회분을 공급받았다(Xinhua Net, 2021년 9월 19일). 2021년 말까지 2,000만 회분 이상의 시노팜 백신이 스리랑카에 공급되었으나 백신의 감염예방효과가 감소하면서 스리랑카 정부는 화이자 백신을 3차 접종용으로 지정하였다(Epidemiology Unit, Sri Lanka, 2021).

표 2와 같이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국가별 사용승인 백신은 차이를 보이는데 개별 국가에서 사용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WHO나 아프리카 규제 태스크포스(Africa Regulatory Taskforce, ART)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승인된 백신은 접종이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실제 보급된 백신의 종류는 보다 다양할 수 있다(Africa CDC, 2021; 박준홍·정희선, 2021, 22에서 재인용). 그러나 일반적으로 백신의 구매와 공급이 양자협약 체결로 이루어지므로 승인백신의 종류는 백신 개발국가와 구매 국가의 긴밀한 관계를 반영한다.

한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브라질은 시노백 백신의 임상시험을 진행하여 각국에서 4,000만 명 이상이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확보하였으며, 멕시코는 칸시노 백신의 임상시험으로 3,500만 명분의 백신 물량을 빠르게 확보하여 공급받을 수 있었다(CNN, 2020년 12월 2일).7) 이와 더불어 동남아시아에서의 일대일로 거점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국영 제약회사 바이오 파르마(Bio Farma)가 시노백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고(2021년 10월 21일 기준), 중국의 지페이 롱콤 바이오의 지피백스(Zifivax) 백신의 3상 임상시험을 반둥의 파자자란대학(Universitas Padjadjaran) 연구소에서 진행하였다(Reuters, 2021년 10월 7일).8) 시노팜 백신의 임상시험에는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가 참여하였으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시노팜 백신이 생산되고 있다(Reuters, 2021년 3월 29일).

중국은 백신 개발 초기부터 백신 접근성이 낮은 개발도상국이 백신을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 이전과 생산시설의 건설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실제로 아시아 6개국, 아프리카 3개국, 유럽 3개국, 라틴아메리카 3개국에서 각국 제약회사와 공조하여 백신 생산시설을 건립하였다(그림 1). 그러나 중국 백신의 위탁생산공장이 설립된 국가 가운데 아랍에미리트, 브라질 등을 제외하면 원료를 수입하여 직접 제조하는 국가는 드물다. 이들 국가는 백신 생산공장의 건립과 함께 백신의 무상 공급 등 다양한 이점을 취했지만 대규모 임상시험의 실시와 생산시설 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중국의 차관으로 조달한다는 점에서 수혜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생명정치적 의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은 아시아 일부 국가와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10억 달러의 백신 구매 비용을 차관의 형태로 제공하였고 부채에 시달리는 일부 국가의 일대일로 자금 상환 연장을 제안하는 등, 자국 백신 판매를 위한 경제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Indo-Pacific Defense Forum, 2020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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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중국 COVID-19 백신의 해외 생산시설 분포와 연간 생산량(2022년 2월 기준, 단위: 백만 회)(주: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 알제리, 터키, 헝가리,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연간 생산량 자료는 없음. 자료: 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7일 기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이 백신 공여를 통해 경제적 혜택을 얻게 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중국의 백신을 구매하기 위해서 수혜국은 임상시험 참여와 백신 종류 및 구매가격과 같은 여러 조건이 포함된 비공개 협정에 동의해야 한다. 일례로, 중국은 2021년 1월 방글라데시에서 진행하기로 한 시노백 백신의 임상시험 비용 일부를 분담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중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인도로부터 200만 회분의 코비실드 백신을 지원받았다(Hindu Business Line, 2021년 1월 24일). 네팔 또한 방글라데시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비공개 협약을 체결하였으나 정부 관료를 통해 400만 회분의 백신을 1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계약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중국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Hindustan Times, 2021년 6월 20일).

이러한 비공개 협약은 중국에 불이익이 되는 행위가 이루어졌을 경우 채무불이행(default)으로 간주되어 대출자가 즉시 전액 상환해야 하거나 계약 조건 자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못하게 하는 등 중국에 유리한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BBC 코리아, 2021년 10월 1일). 백신 구매 계약 자체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불평등 관계를 형성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비공개 조항 대부분이 백신 구매 비용의 차관과 관련되어 있어 수혜국의 대중 경제의존도(채무비율)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의 경우 선진국 주도하에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국가 부채를 탕감받거나 지원금을 보조받는데, 중국이라는 특정 국가에 대한 채무비율이 높을 경우에는 채무 탕감을 위한 원조가 중국으로 상환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개발도상국의 채무 변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중국은 백신외교를 통해 일대일로 참여국 및 주변국들과의 경제협력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COVID-19 발생 후 EU 차원에서 공동으로 백신 구매와 공급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보다 낮은 백신 수급률로 어려움을 겪은 일부 회원국들은 백신 제조사와의 양자협약으로 백신을 공급받았다. 다만 양자협약으로 백신 확보가 어려운 일부 동유럽 및 발칸반도 국가에서는 유럽의약청(European Medicines Agency)으로부터 정식 사용승인을 얻지 못하였으나 개별 국가의 긴급사용승인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았다. 이들 국가 가운데 일부는 팬데믹 발생 초기 EU의 도움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으로부터 마스크, 인공호흡기, 의료장비 등을 제공받았고 이를 계기로 중국 백신을 공급받아 접종을 시작하였다(이동규, 2021, 166).

특히 2015년부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헝가리의 경우, 백신 수급이 어려워지자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중국 시노팜 백신을 긴급 승인하여 2021년 2월부터 접종을 시작하였다(POLITICO, 2021년 2월 24일). 동년 9월에는 시노백 백신 생산시설 건립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중국이 헝가리를 일대일로의 유럽 거점국가로 삼아 교류를 확대해온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Brattberg et al., 2021, 39). 2018년 시작된 부다페스트와 베오그라드를 잇는 고속철도 공사는 일대일로의 또 다른 거점국인 세르비아와 그리스에서 중국이 운영하는 피레우스 항(Port of Piraeus)을 철도로 연결하는 EU 지역 일대일로 사업의 일부이다(Brattberg et al., 2021, 9). 이 사업으로 헝가리는 중국으로부터 18억 5,500만 달러, 세르비아는 2억 9,760만 달러에 달하는 차관도입협정을 맺었다(Reuters, 2020년 4월 24일).

동유럽은 중국이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특히 헝가리와 세르비아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교두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중국의 전통적 우방국이었던 세르비아로부터 시작되어 헝가리로 확대된 대중 협력관계는 그동안 EU 집행부와의 관계에서 소외되었던 동유럽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 정서를 감소시키고 EU 회원국 간의 결속력은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COVID-19 팬데믹은 하나의 유럽을 강조하던 EU 회원국들이 백신 확보 문제에서 결국 자국중심주의 태도를 보이도록 하였으며, 그로 인해 EU 회원국 간의 내부 갈등은 확대되었다. 중국은 이 같은 상황에서 동유럽 국가들에게 백신을 공급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동유럽 국가에서 전개된 중국의 백신외교는 EU라는 전통적인 협력 기구를 통해 유럽의 균형을 지탱해오던 국제질서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는 백신을 공급받는 대신 중국 기업의 활동 재개를 허용하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브라질과 도미니카공화국은 중국으로부터 백신을 공급받는 조건으로 자국의 5G 통신망 개발 사업에 화웨이를 배제하기로 했던 결정을 취소하였다. 특히 화웨이를 배척하는 미국의 기조를 따랐던 브라질이 결정을 번복하게 된 것은 중국에 강경했던 Trump 행정부가 퇴진하였고 자국 내 확진자 수의 증가로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역시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자국산 백신을 다량 공여해 왔으나 중국의 경우에는 일대일로 사업과의 연계, 백신구매 비용에 대한 장기 차관 제공 등을 통해 경제적 의존성과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Berg and Brands, 2022, 3).

2. 지정학적 관계

중국의 COVID-19 백신은 다수의 개발도상국에 분배되었다. 백신을 공급받은 국가들이 일대일로 또는 남남협력(South-South)과 같은 중국의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가들로서 중국의 백신 공급은 수혜국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자 정치적 의도가 담긴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에 백신 공급을 조건으로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하며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남아시아 국가에 백신 공급을 통해 역내 주도권을 확보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첫째, 중국은 COVID-19 백신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대만과의 외교관계 중단을 요구하였다. COVID-19의 확산은 라틴아메리카의 취약한 공중보건 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큰 타격을 입혔는데, 중남미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8%에 불과하지만 COVID-19 관련 사망자의 약 1/3이 중남미에 집중되었다(안도미니크 코레아, 2021, 21).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서구권에서 개발된 백신 공급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자 중국과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하였다. 중국 백신의 총 판매량인 16억 9,000만 회분 중 30%에 해당하는 3억 9,600만 회분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판매되었으며 1,024만 회분은 기부되었다.9)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여겨지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2008년 이후 미·중 패권경쟁이 심해지면서 과도한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해 중국을 대안적 파트너로 삼고 교류를 확대해 왔다. 2000년부터 2020년 사이 중남미 지역의 대중 무역은 120억 달러에서 3,150억 달러로 약 25배 이상 증가하였고 중국의 비중은 1.7%에서 11.3%로 8배 높아졌다(Americas Quarterly, 2021년 9월 8일). 그동안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중국의 관계는 정치적 요인보다는 경제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으며(Americas Quarterly, 2021년 9월 8일), 두 지역 간 협력은 2018년 1월 개최된 ‘중국-라틴아메리카 포럼’에서의 ‘일대일로 특별성명’ 공동 발표를 통해 공식화되었다(CSF중국전문가포럼, 2019년 9월 30일).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계기로 COVID-19 팬데믹 발생 후 방역 물품 및 기술 지원과 함께 백신 구매 비용으로 10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중국 공헌론”을 전파하고 자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한겨레, 2020년 6월 9일). 그러나 팬데믹이 지속되고 백신 수급 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중국은 백신 지원의 대가로 전 세계 50여 개국에 대만을 ‘중국의 영토’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것이 폭로되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2018년 중국과 수교한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 엘살바도르가 신속하게 백신을 확보하였으며 특히 미국과 외교관계가 악화되었던 니카라과는 대만과의 단교 직후 COVID-19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CNN, 2021년 12월 10일). 반면에 온두라스와 파라과이는 중국산 백신을 제공받지 못했는데, 중국 정부가 이들 국가에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조건으로 백신 제공을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한겨레, 2021년 5월 20일).

파라과이는 남미 지역으로만 한정하면 현재 대만의 유일한 수교국으로 남아 있다(표 3). 2016년 탈중국화를 추구하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취임 후 중국은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엘살바도르와 도미니카공화국 등 8개국이 대만과 단교를 선언하였지만 파라과이는 현재까지 수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 초 파라과이에서는 백신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자 중국과 수교하고 백신을 공급받아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이에 대만은 남미 유일의 수교국인 파라과이와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백신 수송용 헬리콥터와 의약품, 방호복 등을 파라과이에 기부하고 미국, 일본, 인도 등의 협력국을 통해 백신이 공급되도록 하였다.10)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를 기반으로 대만의 독립 반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 고립을 원하지 않는 대만은 파라과이와의 양자 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Long and Urdinez, 2021). 파라과이의 경우는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선택하여 발생하는 기회비용보다 대만을 선택함으로써 얻게 되는 실질적 혜택과 중국과의 이념적 차이를 대비시켜 얻는 국내 정치적 역학관계의 혜택이 크다고 할 수 있다(Long and Urdinez, 2021). 이렇듯 중국의 백신외교는 국제사회에 중국 체제의 특수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양안관계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대결 구도의 지리적 범위를 확대시켰다(이광수, 2021). 탈중국화를 추구하는 대만과 하나의 국가를 내세우는 중국의 갈등과 견인이 수교국과의 정치적 관계를 재구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표 3.

대만 수교국(2022년 2월 기준)

구분 대만 수교국 대만 단교국(2016년 이후)
오세아니아 팔라우, 마셜제도, 나우루, 투발루 키리바시, 솔로몬제도
유럽 바티칸 -
아프리카 에스와티니 상투메프린시페, 부르키나파소
라틴아메리카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아이티, 세인트키츠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 니카라과

온두라스 역시 파라과이와 마찬가지로 대만 수교국이면서 중미 국가 가운데 과테말라 다음으로 COVID-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이 발생한 국가이다.11) 2021년 4월, COVID-19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Hernández 온두라스 대통령은 수교 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 그리고 미국에 백신 구매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하였다. 이후 중국의 수교국인 엘살바도르12)가 온두라스에 백신 34,000회분을 기부하였으며, 온두라스 정부는 대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에 무역대표부를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한겨레, 2021년 5월 20일). 2021년 7월까지 COVAX가 온두라스에 총 294만 회분의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스푸트니크V 백신을 제공함으로써 전체 인구의 5.4%인 80,000여 명만이 2차 접종을 완료하였다(주 온두라스 대한민국 대사관, 2021년 7월 20일). 2021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국과의 수교를 공약으로 내건 Xiomara Castro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COVID-19 백신 공급으로 나타난 대만과 중국에 관한 인식 변화를 부분적으로 보여주었다(한겨레, 2022년 1월 13일).13)

파라과이와 온두라스는 백신 보급에서 소외된 개발도상국으로서 두 국가 모두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대만과의 수교 문제를 두고 관련국들로부터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국가는 핵심행위자로서 국민 개개인의 생명권력을 국가가 대리하기 때문에 한 국가가 자주적으로 자국민의 보호를 위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정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파라과이와 온두라스는 주변국들과의 지정학적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둘째, 중국은 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다량의 백신을 공급함으로써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있는데 중국 백신의 분배는 남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일대일로 협력국을 중심으로 우선 공급되었다. 선진국들이 서구의 백신 개발 제약사와 접촉할 때, 중국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백신을 무상 지원하며 남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힘썼다. 남아시아에서 중국은 인도와 역내 패권 확보를 위한 경쟁을 전개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국경분쟁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세계 최대의 백신 생산시설인 인도혈청연구소(SII)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사와 협력을 통해 백신 생산 기술을 이전받아 월 2억 5,000만 회분을 위탁 생산하고 있다(BBC News, 2021년 12월 8일). 인도는 국경 갈등을 빚고 있는 네팔을 비롯하여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몰디브, 아프가니스탄 등 주변국에 2,000만 회분의 백신을 무상 공여하였고 남아시아에서의 역내 주도권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국경 문제를 두고 대치 중인 중국과 인도는 2020년과 2021년 라다크(Ladakh)와 아루나찰프라데시 주(Arunachal Pradesh) 타왕(Tawang)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빚었다(The New York Times, 2020년 9월 8일). 이를 계기로 인도는 중국과의 각종 협력사업을 취소하고 대중 무역 규제를 강화하였으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결성된 미국, 호주, 일본, 인도의 4개국 협의체 QUAD(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에 참여하였다(조원득, 2019, 136). 그로 인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인도의 역내 주도권 경쟁은 곧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편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도 백신을 제공하며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데, 2021년 6월 개최된 중국-아세안(ASEAN) 외교장관 특별회의를 통해 남중국해에서 관련국의 상호도발을 자제한다는 내용의 아세안 회원국 공동성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분쟁에 연루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남중국 해상에서 중국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였지만 캄보디아, 라오스 등 중국으로부터 백신과 경제적 원조를 지원받은 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uters, 2021년 6월 8일). 이 사례는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역내에서 협력국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효과를 얻기 어려워졌음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중국의 백신외교와 정치경제적 관계의 재구조화 과정을 요약하면 그림 2와 같다. 중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국가 등 기존 일대일로 사업의 거점 국가 및 지역을 중심으로 백신외교를 진행하면서 특히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본격화한 중국은 중남미 지역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잠재적 패권 권력을 지닌 인도에 대한 견제 역시 지속하면서 패권국의 지위를 얻기 위한 다각적인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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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중국의 백신 외교와 정치경제적 국제질서의 재구조화

실제로 기술 경합, 무역갈등 등으로 촉발된 미·중 패권경쟁에 백신외교가 부가되면서 중남미와 아시아에서의 국제질서 변화는 가시화되고 있다. COVID-19 백신 공급 대상국에 대한 선별과 정치적 요구조건의 수용 여부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중국의 백신외교는 생명을 담보로 한 지정학적 실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의 백신외교가 인도주의적 차원보다는 정치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전개되고 있는 만큼 진정한 가치 요소의 확산과 설득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별 현안 해결 과정에서 소프트파워의 효과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V. 결론

본 연구에서는 미·중 패권경쟁의 맥락 속에서 소프트파워의 확대를 노리는 중국이 지정학적·지경학적 중요성을 갖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COVID-19 백신 공급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전 지구적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백신이 패권갈등의 양상을 변화시키는 생명지정학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소프트파워의 근간으로서 백신외교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COVID-19 백신 공급을 주도한 것은 패권안정이론에서 제시하는, 강대국이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기반으로 주변국에 공공재를 제공함으로써 소프트파워를 형성하는 과정에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백신을 먼저 공급받은 국가 대부분은 중국이 구상한 육상·해상 실크로드 상의 거점국가로서 경제적 이해관계가 밀접한 국가들이었다. 이는 백신이 글로벌 공공재라기보다는 사적 재화로 활용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중국 백신의 수혜 국가가 백신 공급의 대가로 임상시험 참여 및 비용 분담 등의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경제적 배경과 고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백신이 중국의 지경학적 목적달성과 생명관리를 위한 권력의 수단으로 작동하였음을 의미한다.

둘째, 중국은 COVID-19 확산으로 일시 중단되었던 일대일로 사업을 백신 공급을 위한 채널로 활용하면서 보건원조와 경제협력이 융합된 모델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의 방역성과를 국가 체제의 우수성으로 홍보하면서 무역 분야에서의 전략 갈등으로 비춰지던 미·중 경쟁을 가치 경쟁의 범주로 확대시키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비록 백신을 제공함으로써 수혜국에서 우호적 관계와 신뢰성을 형성하였더라도 대부분 구매 비용을 차관으로 조달했다는 점에서 양자협약을 맺은 국가들은 중국과 종속적 관계로 구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강제적인 권력의 작동을 의미하므로 소프트파워보다는 하드파워와 같은 강압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인도주의적 관점에서의 백신 공급이 아닌, 지경학적 맥락에서 백신 공급 대상국을 선별하고 재정적 의존성을 높이는 것은 소프트파워의 형성과 효과 지속에 한계로 작용할 수 밖에 없으며, 나아가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실질적 패권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한계를 노정할 수 밖에 없다.

셋째, 중국의 백신외교는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에서 지정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중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COVID-19 백신 공급을 조건으로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하였고, 그 결과 니카라과로부터 신속하게 대만과의 단교를 이끌어내고,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과의 수교를 선택하라는 여론을 형성시킬 수 있었다. 중미 국가들이 대만과의 단교를 선택하게 된 것은 미국과의 외교관계 악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한 목적이 주요하게 작용하였지만 이는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역내 패권국의 지위로 전환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영토·영해 분쟁을 겪고 있는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에서도 나타난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역내 패권을 얻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도 주변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백신을 공급하였고, 그 결과 다자간 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는 중국의 체제 특수성이 백신 공급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양안관계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대결 구도가 글로벌 스케일로 전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검토를 바탕으로 중국 백신외교가 나타내는 시사점을 도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COVID-19 백신 수급의 불균형이 중국 백신외교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제 보건 거버넌스를 보다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국가 간 양자협약 또는 국가와 제약회사 간에 이루어지는 백신 구매와 공급에는 국가 간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제력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구매 협상에 나서지 못하는 저소득 국가가 발생하고 있고 이는 백신 보급의 격차를 심화시킨다. 따라서 글로벌 보건위기 상황에서 COVAX와 같은 다자간 협의체를 통한 백신 분배가 확대되어야 하며,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에 따른 보건안보협력의 강화가 요구된다.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에 의한 협력은 생명을 담보로 한 통치성의 발휘와 그 이면에 자리잡은 생명권 경시라는 윤리적 위기 상황의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두 번째로 COVID-19 백신 불평등의 상황에서 강대국의 백신외교 전략이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일부로 구사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한, 백신 분배의 정의적 실천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이 COVID-19 백신 개발 초기, 자국 우선주의와 백신 민족주의 기조를 유지하며 백신 분배에 소극적이었던 것을 포함하여 중국이 보건외교로 구사하고 있는 백신의 선별적 공급은 생명을 적극적으로 보존하거나 반대로 포기할 대상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구별하는 것에 다름없으며, 이는 인종주의(racism)와 같은 맥락에서 일종의 죽음의 지정학(necrogeopolitics)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백신의 수급 불균형으로 유발되는 생명소외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건 및 의료 기반시설과 제약기술이 특정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생명권 보호와 연동되어 있는 공공재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공급을 놓고 전개되는 국가 행위자의 전략적 실천과 표상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나 글로벌 스케일에서 국가를 단일 행위자로 간주함으로써 국제질서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행위자와 구조의 상호작용을 다루지 못한 한계를 갖는다. 또한 국가별 정책에 관한 공식문서보다는 언론보도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미디어의 시각이 반영되었다는 한계도 있다. 국제정치의 전개 과정과 패턴에 대한 분석은 상황구속적 지식을 넘어서야 하며 지정학적 행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략적 선택을 하고, 그러한 선택이 상충하는 목표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어떠한 효과를 발생시키는지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특정 국가의 지정학적 성격과 지경학적 성격이 상호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지정학과 지경학의 복합적 성격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지경학적·지정학적 행위 사례는 사실상 그 복합적 성격을 단순화시켜 접근하였기 때문에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작용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동적 변화에 대한 추가 고찰이 필요하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1S1A5A2A03060460).

각주

[9] 1) 시노팜 베이징을 개발한 베이징생명과학제품연구소(Sinopharm’s Beijing Institute of Biological Products)와 시노팜 우한을 개발한 우한생명과학제품연구소(Sinopharm’s Wuhan Institute of Biological Products)는 중국생물기술유한공사(China National Biotec Group, CNBG)의 산하기관이다.

[10] 2) 미국의 제약사들이 COVID-19 백신 판매 비용을 포함하여 계약 내용을 대외비로 유지하고, 미납 백신 대금에 대해서는 국가자산 추징까지 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에서 신랄한 비난이 가해졌다. 팬데믹 하에서 다국적제약사들이 보건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주요 행위자로서 국가와 같은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11] 3) 2020년 9월 8일 레스보스 섬(Lesvos Island)의 모리아 난민 캠프(Moria refugee camp)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시설이 모두 전소되었으며, 12,000명의 난민은 팬데믹 상황에서 마브로보니(Mavrovoni)에 마련된 임시 텐트에 수용되었다(The Washington Post, 2020년 9월 16일).

[12] 4) 차이메리카(Chimerica)는 ‘China’와 ‘America’의 합성어로 미국과 중국이 각각 소비와 생산으로 기능을 나누어 상호 협력과 의존 관계 속에서 발전해온 것을 의미한다(한광수, 2009, 8).

[13] 5)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Trump 행정부 집권기에 가장 심화되었는데 Trump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 관행이 불공정했다고 주장하며 중국산 제품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기술유출과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제재조치를 가하였다(공민석, 2020, 12). 특히 대만·홍콩과의 관계, 남중국해 영토분쟁, 위구르 탄압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법 제정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면서 양국 간 갈등은 심화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무역, 기술 분야의 갈등으로 다루어졌지만 사실상 기존 패권국에 도전하기 위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강화시키려는 중국과, 국제사회에서 패권국으로서의 입지를 유지하려는 미국 간의 경쟁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4] 6) 장기간 내전에 필요한 무기를 중국으로부터 공급받았던 스리랑카는 2014년 함반토다(Hambantota) 항구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항만건설 비용으로 소요된 11억 2,000만 달러를 변제하지 못하여 2017년 중국에 부채 정리 조건으로 99년간 항만 임차권을 제공하였다(유경완, 2016). 현재 진행하고 있는 콜롬보(Colombo) 항구 개발 사업은 2019년 5월 일본 및 인도가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으나 스리랑카 정부가 계약을 파기하면서 중국에게 사업권이 이전되었다(The Diplomat, 2020년 1월 1일).

[15] 7) 칸시노 백신은 2021년 4월 중순부터 멕시코 전역의 교사·교직원에게 접종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서구권 개발 COVID-19 백신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2021년 11월 칸시노 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와 백신 구매 계약을 종료하였다(Reuters, 2022년 1월 4일).

[16] 8) 지피백스는 2021년 10월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얻었으며, 2022년 1월부터 시노백,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와 함께 추가 접종용 백신에 포함되었다(Reuters, 2022년 1월 12일).

[17] 9) 이 가운데 실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전달된 백신 물량은 2억 8,550만 회분이다(Bridge Consulting, 2022년 2월 기준).

[18] 10) 대만은 인도 정부가 파라과이에 COVID-19 백신 10만 회분을 무상으로 공급하도록 하였으며, 제약회사 바라트 바이오테크(Bharat Biotech)가 개발한 코백신(COVAXIN)도 파라과이에 추가적으로 제공되도록 하였다(신흥지역정보지식종합포탈, https://www.emerics.org).

[19] 11)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COVID-19 국외발생현황(2022년 2월 9일 기준)에 의하면 COVID-19 사망자는 과테말라에서 16,509명으로 가장 많이 발생하였으며, 다음으로 온두라스 10,551명, 파나마 7,844명, 코스타리카 7,641명, 엘살바도르 3,952명, 벨리즈 629명, 니카라과 221명이다(보건복지부 국외발생현황, 2022년 2월 9일 기준; Our World in Data, 2022년 2월 9일 기준).

[20] 12) 엘살바도르는 2018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서 일대일로 연선국가에 진입하였다. 엘살바도르는 중국과의 수교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얻을 수 있었으며(연합뉴스, 2019년 12월 5일),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중국으로부터 COVID-19 백신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21] 13) Xiomara Castro 후보는 대통령 당선 후 미국과의 관계를 중국보다 더 우선시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선거공약과 달리 대만과의 단교를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입장 선회는 경제 및 군사 원조 등을 통해 온두라스에 영향력을 미쳐온 미국의 외교력이 발휘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한겨레, 202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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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World in Data, https://ourworldindat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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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CEF COVID-19 Vaccine Market Dashboard, https://www.unicef.org/supply/covid-19-vaccine-market-dash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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