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국토지리학회지. 30 September 2021. 275-290
https://doi.org/10.22905/kaopqj.2021.55.3.3

ABSTRACT


MAIN

  • I. 서론

  • II. 이론적 고찰

  •   1. 경관 및 역사경관(애국경관)의 개념 고찰

  •   2. 역사문화관광의 개념 고찰

  • III. 연구지역개관

  • IV. 역사경관을 활용한 역사문화관광지로서의 천안

  •   1. 유관순 열사 사적지의 역사경관

  •   2. 독립기념관의 역사경관

  •   3. 천안의 역사경관 관찰 후 심리적 변화

  • V. 결론

I. 서론

최근 들어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발굴·개발하고 이를 관광과 접목시켜 역사문화관광지로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박경목, 2012). 이 사례들의 주요 특징은 지역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화 하고, 그 역사적 자원을 활용하여 관광자원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근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고,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관심과 활용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사례들이 늘고 있는데, 천안은 대표적이다. 천안은 ‘호국충절’이라는 고유 이미지와 ‘유관순’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관광객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지역이다. 천안이 호국충절의 의미지로 연상되는 이유는 이 지역 출신 인물 가운데 국가의 위기에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오세창, 1988; 박경목, 2012).1) 그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서울 유학 중 귀향하여 아우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심문과정에서도 끝까지 일제에 항거하다가 옥중 순국한 유관순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 나라사랑은 천안의 호국충절 이미지를 강화시켜주고 있다. 그로 인해 천안의 유관순 열사 사적지,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 등은 이곳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다(박경목, 2012; 한지은, 2021). 이처럼 천안은 일제강점기의 슬픈 역사를 잊혀진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항상 국민 가운데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기념관이나 사적지들을 만들어 이들 공간을 역사체험의 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들 역사경관들을 활용하여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건강한 국가관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민말순, 2006).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지역 자체에 관한 지리학적 연구를 쉽게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이 지역이 역사문화관광지로서 갖는 의미에 대한 연구 역시 미비한 편이다. 적게나마 살펴볼 수 있는 천안에 관한 선행연구로서, 박경목(2012)은 천안의 독립운동 사적지 현황과 특징을 통해 이 지역이 갖는 호국충절의 지역적 이미지를 기반으로 역사문화콘텐츠의 개발과 보급을 통한 관광활성화를 제안하였고, 장규식·박상준(2018)김형목(2008)은 일제하 천안의 사회운동 및 근대교육운동이 강한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형성하여 민족해방운동을 추진하였음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였다. 또한 천안을 충절과 애국의 역사적 인물과 함께 구상한 연구들로, 강민희(2019)는 김시민과 관련 유적을, 서미원(2008)은 유관순 열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장소성 활용방안을 논의하였다. 한편, 역사관광지로서 독립기념관, 유관순 열사 사적지 등을 각각 별개로 연구한 논문이 있기는 하지만(태지호, 2013; 박명순, 2011), 이들 역사문화적 장소를 경관과 연계해 총체적으로 고려한 논문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본고는 천안의 역사적 애국경관이 지니는 잠재력과 특성을 소개하고 이들 경관이 지역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세우고, 알리고, 활성화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천안이 역사문화관광지로서의 의미가 주어지는 지역임을 고찰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첫째, 경관연구의 흐름을 통해 경관연구가 지닐 수 있는 연구의 가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역사경관의 개념에 관해 논하고, 둘째, 2019년 2월 26일과 2020년 4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실제 답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천안의 역사경관을 살펴봄으로써 역사문화관광지로서 특징을 고찰해나간다. 추가적으로, 2021년 7월 25일~31일까지 총 7일간 온라인과 유선상의 모집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총 22명의 인터뷰 응답자를 대상으로 본고의 연구대상지인 천안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 대한 반구조화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여 이들 역사경관 및 그 안에 내재된 힘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럼으로써 천안이 지닌 역사경관이 역사문화관광지로서의 특징을 강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 연구가 제시하는 역사경관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향후 천안의 지역발전과 지역이미지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II. 이론적 고찰

1. 경관 및 역사경관(애국경관)의 개념 고찰

일반적으로 경관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지리학에서 경관은 하나의 연구대상으로서 간주한다. 경관은 “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온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사회적인 권력관계, 시대성과 지역성을 반영하는 인간의 심미적 차원 등을 누적하고 있는 지리적 실체(전종한, 2011, 19)”이자 “그 사회의 의미와 가치를 대변하는 요소, 또한 오감에 의해 지각된 지리적 현실(김선범, 2009, 50)”로 해석할 수 있는 개념이다. 특히 Denis Cosgrove에 의해 경관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며 “경관에 내재되어있는 사회 ·경제 ·정치적 권력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Cosgrove, 1985, 46). 다시 말해, 경관에는 특정 사회 집단이 가지는 세계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시간 내지는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가 투영되어있으며, 또한 경관에는 특정 계급의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상상하는 자연과의 관계에 부여한 의미가 반영되어있다는 것이다(정은혜, 2016).

경관 연구의 공통점은 경관은 그 자체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필자는 경관이 그 자체로 역사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서 존재론적 위치를 지닌 것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즉, 경관은 사람들의 감상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경관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활동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사회 내 다양한 세력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집단의 힘을 증대시키거나 확인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경관을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경관도 되도록 자신들의 방식과 의지대로 해석되기를 희망하는 성향이 있다(이정만, 2012, 352). 특히 현대 사회에서 경관은 지배집단 또는 권력집단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심리를 이용한 경관으로서, 단지 그 공간의 경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배집단의 권위나 정통성이 강화되기도 하고, 특정 이데올로기가 무의식적으로 주입되기도 하는 것이다(정은혜, 2018; Zukin, 1991).

한편, 역사경관은 “인간이 특정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에서 어떠한 목적을 두고 특정 공간에 만든 가시적 형태의 보전 가치를 지닌 경관”을 의미한다(박용국, 2011, 400). 다시 말하면 역사경관은 시간 변화의 양상들을 포함하면서 사회적 효과를 낳는 경관으로서 시간과 공간의 이중성을 지닌 이미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관을 일컫는 것으로, 시간의 퇴적물로 존재하는 경관은 단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기억으로서 인간이 역사를 통해 공간을 경관화하여 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남호엽, 2002; Ogborn, 1996; 임동균 등, 2016). 따라서 역사경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그 변화상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이자 담론이다. 사실상 모든 경관은 역사의 결과물이며, 한 시대의 역사를 반영하기 때문에 역사경관은 과거에 형성된 모든 경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고는 역사경관을 ‘독립적으로 위치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과 주변의 공간이 이루는 경관으로서 과거 어떤 시대의 인물·기술·문화·사건 등 과거의 자취와 사연이 깃들어져 있는 역사적 가치와 미적 가치를 지닌 경관 혹은 역사유적지’로 한정 적용하고, 여기에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 등의 이유로 인간이 의도적으로 창출해낸 경관’도 포함시키고자 한다(심승희, 1995; 최형석, 1999). 특히 이러한 역사경관이 민족적 스케일에서 다루어질 경우 ‘애국경관’이라는 명칭을 병용하고자 한다. 이 경우, 순수 객관적인 독립체로서의 경관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스토리에 의해 재현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남호엽, 2002).

2. 역사문화관광의 개념 고찰

현대의 관광객은 관광경험의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한다(Square, 1994; 조아라, 2009). 그런 의미에서 관광은 장소에 대한 대중의식을 형성하고 장소의 사회적 이미지를 만들고 있으며, 이는 해당지역의 이상적인 전통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반영하는 경관을 형성하고자 한다(Britton, 1991; Bell, 1997; Milne et al., 1998). 대체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관광사업체 등에 의해 그 경관이 형성되나 관광객은 형성된 장소에 대한 수용자이자 소비자로서 해당 장소의 관광경험을 토대로 그 장소를 소비하는 의미화 과정을 거친다(황희정·윤현호, 2016).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역사적 상징성이 드러나는 경관들은 역사문화관광지로서의 인식과 정체성을 창조하고 형성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다(정은혜·손유찬, 2018).

역사문화관광은 역사관광과 문화관광으로서의 의미를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문화, 역사, 교육은 관광동기의 주류이다.”라는 전제를 함축한다(유영준, 2008, 82). 즉, ‘유적, 유물, 전통공예, 예술 등이 보존되거나 스며있는 지역 또는 역사적 스토리를 지닌 사람의 과거에 초점을 두고 관광하는 행위로서 지적 욕구를 위해 일상을 벗어나 특정 생활양식이 내재된 대상이나 유적지 및 사적지, 문화·예술적 표현물 등의 자원으로 이동하는 행위’로 정의된다(Goodman, 1967; Richards, 1996; 이준태·윤병국, 2016). 더 나아가 이에 수반되는 산업 활동을 포괄하는 총체적 현상으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간의 연결고리를 제공해주는 관광으로 볼 수 있다(윤세환, 1997; 정은혜, 2019). 특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 예술, 그리고 경관 등에 기반한 새로운 지식과 경험 및 만남을 증가시키려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Garrod and Fyall, 2000; 김홍운·전영철, 1996). 한편, 전략적인 차원에서 역사문화관광을 지방과 국가의 복지, 기업, 그리고 관광자의 욕구에 균형을 맞추어 그 지방주민과 방문객을 위해 풍요로운 환경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서태양, 1999; 이광진, 1995).

하지만 본고는 역사문화관광을 역사경관과 지역정체성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관광자가 역사적, 문화적 동기를 가지고 다른 지역을 방문하여 역사적 사적지 및 기념관을 경험하는 지적욕구의 관광”으로 협의하고, 이러한 관광이 이루어지는 곳을 역사문화관광지로 개념화한다. 무엇보다 본 연구는 관광을 양적인 차원이 아닌 질적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성에 근거하여(Hall and Page, 2002), 위와 같이 재정립한 역사문화관광지의 개념을 천안에 있는 역사경관에 적용시킴으로써 역사문화관광지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논하고자 한다.

III. 연구지역개관

충남 북부지역의 문화권을 주도하고 있는 천안은 한반도 중앙의 남부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방향에 위치한다(그림 1). 천안이라는 지명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천안부를 만들고 이곳에 지방관직으로 도독(都督)을 둔 데서 비롯하였다. 태조를 모시던 술사(術師) 예방이 태조에게 “삼국의 중심이며 오룡쟁주(五龍爭珠)의 형세로 이곳에 3,000호를 두고 군사를 조련하면 적이 저절로 항복할 것이다”라고 보고하자 태조가 친히 태조산에 올라 지세를 살핀 후 천안이라는 지명을 지었다고 한다(한정순, 2001, 70). 지금도 천안은 그때와 같은 하늘 천(天)자와 편안할 안(安)을 쓰고 있어 지명 그대로 본다면 천안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도시로 해석된다.2) 이처럼 삼국의 중앙에 위치했던 천안은 왕건이 군사를 조련하던 고려 개국의 근원지였다. 조선시대에는 호남, 영남, 호서와 서울을 이어주는 삼거리 길목으로서 교통의 요충지였고3), 각 포구를 연결하는 정치·군사상의 요지로 중부와 남부를 구분하는 지점을 차지하였다. 지금도 천안은 장항선,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수도권 광역철도 등이 경유하는 주요 분기점이 되고 있으며, 1번 국도가 뻗어있는 교통의 요지다(한지은, 2021,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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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천안 내 유관순 열사 사적지와 독립기념관 위치(자료: 천안시청(https://www.cheonan.go.kr/))

게다가 천안은 많은 명인과 열사를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유관순 열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천안의 호국충절이라는 고유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 1919년 4월 1일 유관순 열사가 지역주민 3,000여 명과 함께 전개한 아우내 장터에서의 독립운동은 다양한 독립운동 전개의 기반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여 천안이 애국과 충절의 도시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유관순열사기념관, http://www.cheonan.go.kr/yugwansun.do). 이 외에도 천안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4일 목천보통학교 만세시위, 3월 20일 입장면 양대리 광명학교 여학생 만세시위, 3월 28일 직산 광산 광부 만세시위, 3월 28~29일 사직동에서 시작된 천안읍내만세운동 등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 독립운동은 현재까지도 각종 기념비와 기념탑 등의 역사경관으로 그 증거가 남아있다(표 1). 뿐만 아니라 천안에는 유관순 생가지4), 조병옥 생가지, 이동녕 생가지, 유민식 집터, 유창순 집터, 이종건 생가지 등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열사들의 흔적이 존재한다(김춘식·김기창, 2005; 박경목, 2012)(그림 2). 이 같은 독립 운동가들의 보금자리이자 활동배경지로서 천안은 애국심과 충절을 대표하는 도시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역 정체성에 힘입어 천안에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와 독립기념관이 문을 열게 되었다. 한편,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관으로 알려진 독립기념관은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국민 성금 모금운동을 거쳐 1987년 개관하였다(정은혜 등, 2019, 168).5) 무엇보다 독립기념관은 참혹한 무단 통치 속에서도 꿋꿋이 조국을 지킨 열사들의 모습을 담은 자랑스러운 민족의 전당으로서 훌륭한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이처럼 애국과 충절의 도시로서 천안의 이미지는 나라를 위한 독립 운동가들의 헌신적 결과로서 이들 역사경관의 적극적인 활용은 지역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세우고, 알리고, 활성화하는 데에 매우 유용할 것으로 사료된다.

표 1.

천안의 역사경관: 독립운동 기념비와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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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만세운동 기념탑 목천 만세시위 기념비 병천 3·1운동 기념비 아우내 장터(병천장터) 대한광복회기념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에
있다. 1919년 3월 20일
양대리 광명학교 여학생, 3월
28일에는 직산 금광 광부가
중심이 되어 주민들과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의 발포로 3명이 숨지고
다수의 부상자가 생겼다.
1919년 3월 14일 목천보통
학교 만세시위가 일어난
장소로, 조선시대 목천현
관아 자리였다. 비 후면
에는 127명의 참여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병천리 구미산에 있다.
정인보 선생이 기초한
비문은 ‘기미독립운동 때
아우내서 일어난 장렬한
자취’라고 각서되어있으며,
좌, 우, 후 3면의 비신에
3·1운동기념비문이
각서되어 있다.
1919년 4월 1일 유관순
열사가 지역주민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한 장소
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까지도 아우내장터
는 4일 시장(매 1일, 6일)
이 서고 있다.
천안시 삼용동 삼거리
공원 안에 있다. 1915년 풍기
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이
통합하여 결정된 대한
광복회의 회원으로 천안
출신인 장두환, 성달영,
유중협, 강석주, 조종철,
김정호, 유창순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자료: 2020년 4월 7일,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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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천안의 역사경관: 유관순 생가지와 이동녕 생가지(자료: 2020년 4월 7일, 필자 촬영)

IV. 역사경관을 활용한 역사문화관광지로서의 천안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2019년 2월 26일과 2020년 4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답사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직접 촬영한 사진자료들을 바탕으로 천안의 역사경관을 살펴봄으로써 역사문화관광지로서 특징을 고찰하였다.

1. 유관순 열사 사적지의 역사경관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로 유관순 열사를 들 수 있다. 1902년 충청남도 목천군(현재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천안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운동을 벌이던 중 체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열사의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순국하였으며, 열사는 체포 이후 가혹한 고문과정을 견디던 중 1920년, 18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였다(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2006). 투옥 과정에서도 독립의 뜻을 잃지 않고, 조국에 모든 것을 바친 유관순 열사의 뜨거운 삶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천안시 내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조국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존재하는데6), 대표적인 곳이 바로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이다.

1972년 사적지로 등록된 이곳은 열사의 고향인 병천면 용두리 매송산 기슭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열사의 넋을 기리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 추모각, 봉화탑, 만세 동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적지 내 태극광장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의 만세 동상이다. 이 만세동상은 유관순 사적지의 대표적인 상징적 경관으로 독립운동을 이끈 그의 모습을 통해 애국의 의지를 다지게 한다(그림 3). 또한 만세 동상 바로 맞은편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은 유관순 열사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 설립하였다(서미원, 2008, 71; 유관순열사기념관, www.cheonan.go.kr/yugwansun.do). 이 안에는 열사의 수형자 기록표, 호적등본, 재판기록문 등 관련 전시물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한 디오라마, 재판과정 매직비전, 애국지사들이 고문 받았던 서대문형무소 벽관, 열사의 애니메이션을 비롯하여 역사퀴즈 등의 터치스크린, 영상실 등이 갖추어져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열사의 애국적 생애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의 고문 도구인 벽관(벽에 선 채로 고문 받았던 곳)을 설치하여 잠시나마 직접 그 괴로움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한 ‘벽관 체험관’이나 유관순 열사의 재판 과정을 홀로그램 형식으로 표현한 ‘매직 비전’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전시물로서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며 역사적 교훈과 경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그림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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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유관순 열사의 만세 동상과 유관순 열사 기념관 입구(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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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유관순 열사 기념관 내부 전시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과 옥중 유관순 재현 공간(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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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유관순 열사 기념관 내부 전시물: 벽관체험관과 매직비전(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한편, 열사의 영정사진이 모셔져 있는 추모각은 실제로 분향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분향소 옆에 놓여있는 방명록을 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방문하여 열사의 넋을 기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6). 이처럼 유관순 열사 사적지는 천안의 중요한 역사문화관광지로서 역사적이고 애국적인 경관을 통해 교육적 의미를 도모하고, 호국충절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알리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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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유관순 열사 사적지 내의 추모각과 방명록(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2. 독립기념관의 역사경관

애국심과 충절을 대표하는 도시라는 천안의 지역 정체성은 1987년, ‘독립기념관’이 문을 열게 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한정순, 2001, 72).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은 선사시대 이후부터 1945년 해방 무렵까지의 독립운동과 관련한 자료들을 담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120만 평)의 전시관으로,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국민 성금 모금 운동을 거쳐 1987년 광복절날 개관하였다(독립기념관, http://www.i815.or.kr). 특히 독립기념관은 일제로부터 벗어난 1945년 8월 15일이라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기념’이라는 특정한 형태의 기억을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함께, 같이 기억하라’는 의무를 수반한다(태지호, 2013, 147). 즉, 공적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기억행위로서 기념은 명시적으로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특정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기억 행위로 간주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독립기념관의 역사경관들은 기억행위를 통해 현재 한국인으로 하여금 균등한 시공간을 창출하게끔 만드는 문화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역사적 증거를 통한 집단의 기억은 사회적으로 배분되고 공유된 상징적 이미지에 의해 매개됨으로써 일정한 권력과 담론 작용,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의 실천 등으로 사회적으로 재구성되는데(이기형, 2010; 정근식, 2010), 독립기념관은 국가를 통해 독립을 하나의 기념일로서 꾸준히 기억되고 전승시키고자 하는 집단 기억의 하나로 재구현된 공간이다. 사실상 건립 당시 독립기념관은 국가가 추진한 대형 복합 문화공간의 거대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7)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수난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독립기념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의 애국적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특히 독립기념관의 상징적 건축물인 ‘겨레의 집’은 길이 126m, 폭 68m, 높이 45m 에 이르는 규모로, '동양최대의 기와집'으로 설명되는데,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는 기치 아래 한옥이라는 과거의 건축양식을 현대식 콘크리트로 재해석해 만든 공간이다(독립기념관, http://www.i815.or.kr).8) 내부에는 조각가 김영중의 ‘불굴의 한국인상’이라는 거대한 조각상이 설치되어있는데, 이는 온 몸을 바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열어주신 순국선열들의 얼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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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독립기념관의 상징적 경관: 겨레의 집과 불굴의 한국인상(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이 겨레의 집을 필두로 독립기념관 내에는 겨레의 뿌리, 겨레의 시련, 겨레의 함성, 평화누리, 나라 되찾기, 새나라 세우기의 총 6가지 주제로 구성된 전시관(제1~6전시관)이 있으며, 체험존(제7전시관)을 통한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다(표 2). 이러한 구성은 5천년의 역사 속 잦은 외침과 수난이 있었지만 슬기롭게 나라를 지킨 선조들의 호국정신과 문화유산 등을 순차적으로 정리해 조성한 것으로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겨레의 얼을 담고 있다. 이 같은 교육적 목적이 내재되어있기 때문에 통제된 관람동선은 체계적이고 일관된 형태로 제시된다(Dean, 1994; Bennett, 1995). 그렇기 때문에 방문객은 기념관 내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자율적 활용이 불가능하여 다른 방문객과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 이러한 순차적 구성과 교육적 목적은 독립기념관의 역사경관을 통해 보다 강화되므로 특히 일제침략과 식민지배로 뼈아픈 고통 속에서도 자주 독립정신으로 나라를 지켜온 구국 선열들의 애국심을 보고 배우는 민족의 전당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간결하고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박영순, 2011).

표 2.

독립기념관 상설전시관 설명

전시관 이름 주제
제1전시관 겨레의 뿌리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민족혼에 관한 자료 전시
제2전시관 겨레의 시련 일제의 침략과 무단수탈로 인하여 민족의 역사가 단절되고 국권을 상실한 시련기의 자료 전시
제3전시관 겨레의 함성 식민지배 아래 일어난 독립운동과 대중투쟁 관련 자료 전시
제4전시관 평화누리 민족의 자유를 위한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보기 위한 자료 전시
제5전시관 나라 되찾기 조국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전개된 독립전쟁에 대한 자료 전시
제6전시관 새나라 세우기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다룬 자료 전시
제7전시관 (체험존) 사진, 로봇 등을 통해 직접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참여공간

출처: 독립기념관(http://www.i815.or.kr)

독립기념관의 또 다른 상징은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있는 ‘겨레의 탑’이다. 약 51m에 달하는 겨레의 탑은 우리 민족의 비상을 표현하는 상징물이며, 민족의 자주와 자립을 향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 탑을 지나면, 광복을 상징하는 815개의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 마당이 있다(그림 8). 빼곡하게 들어선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은 독립기념관의 대표적인 상징적 경관이자 애국경관으로서 이를 마주하는 방문객들은 국가에 대한 경건함과 애국심을 전달받는다. 즉, 방문객들은 겨레의 탑과 태극기 마당의 압도적인 경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국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정통성이 강화되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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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독립기념관: 겨레의 탑과 태극기 마당(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독립기념관의 내부 전시관의 전시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태지호, 2013). 이를 통하여 관광객들은 우리나라 독립의 역사를 보다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으며, 전시관 내에 있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과 전시물을 관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애국심과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특히 겨레의 시련(제2전시관)과 나라 되찾기(제5전시관)의 역사적이고도 애국적인 경관은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에 대한 민족주의 체험의 장소로서 민족이라는 내러티브로서 제시되는 공적 재현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문화적 실천이 교차하는 장소로 해석될 수 있다(그림 910). 즉, 독립기념관은 참혹한 무단통치 속에서도 꿋꿋이 조국을 지킨 열사들의 모습을 담은 자랑스러운 민족의 전당이자, 그들의 애국심을 보고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독립기념관의 경관은 천안으로 하여금 지역 내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고 보존하며, 호국충절의 지역 정체성을 보다 확고히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역사문화적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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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독립기념관의 ‘겨레의 시련’ 전시관: 을사늑약과 명성황후 시해 재현(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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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독립기념관의 ‘나라 되찾기’ 전시관: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장면의 재현(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한편, 독립기념관 주건물의 서쪽(석양을 상징하는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을 만들어 민족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조선총독부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를 역사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고 전시하되 이 건축물의 분해된 모습을 취함으로서 상대적으로 홀대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에 첨탑을 지하 5미터 깊이에 매장하는 방식으로 조성하고 서쪽이라는 위치성을 부여함으로써 일제강점기의 진정한 극복과 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 구성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상징적 조형물의 대상화, 즉 일제의 만행에 대한 증거물을 통해 민족성을 일으키는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이면의 가치에는 일제에 대한 조소와 적대감이 내포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공원 근처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독립기념관 건립비가 이전되어 있다. 이 건립비는 1987년 8월 15일 개관 당시 겨레의 집 앞 중앙통로에 세워져 있었으나 20년 만에 철거돼 이곳으로 옮겨졌다(연합뉴스, 2007년 4월 19일자).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과 독립기념관 건립비가 공존하는 이 공간의 경관적 의미는 퇴색된 힘의 상징으로 해석된다(그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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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좌), 독립기념관 건립비(우) (자료: 2019년 2월 26일, 필자 촬영)

이 외에도 독립기념관 입구의 홍난파비를 둘러싼 논란이 애국경관의 얼룩으로 남아있다. 홍난파비는 독립기념관 광복의 동산에 놓여있다. 하지만 친일 인명사전에도 등재된 그의 비석이 독립기념관에 있다는 것은 독립운동가의 투쟁과 고통에 대한 모독이며, 후대의 올바른 역사 교육에도 어긋난다는 주장이 계속되어 2015년 이 비 앞에 ‘홍난파의 친일행적’ 알림판이 설치되었다(YTN, 2015년 9월 20일자). 이처럼 독립기념관에 애국경관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념관 내에 전두환 건립비, 홍난파비 등 힘의 경관을 만듦으로써 이들 경관을 둘러싼 주체들 간의 경합과 타협, 권력 관계 등에 대한 논지를 남겨놓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대대적인 국민성금에 의해 형성된 공간인 만큼 앞으로는 경관을 조성한 주체와 경합하는 행위자 등에 대한 고찰과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져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3. 천안의 역사경관 관찰 후 심리적 변화

필자는 단순한 경관 분석에 그치지 않기 위해 2021년 7월 25일~31일까지 총 7일간 추가적인 인터뷰 조사를 시행하였다. 온라인과 유선상으로 자발적인 참여의사를 밝혀준 대상자에게 본고의 연구대상지인 천안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 사적지의 사진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반구조화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본 연구의 인터뷰에 참여한 응답자는 천안 방문 유경험자 10명, 천안 방문 미경험자 12명으로 총 22명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천안 방문 경험자의 경우 대체로 방문목적이 역사교육 및 가족여행으로 조사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독립기념관 방문자 비율이 유관순 사적지 방문자보다 높았는데 그 이유로는 ‘접근성과 대표성’을 들었다. 즉, 이들은 독립기념관으로의 교통 및 접근성이 편리하다는 점, 그리고 천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 관광지가 독립기념관이라는 답변을 하였다. 인터뷰 대상자 중 천안 방문 유경험자의 경우, 천안을 재방문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10명 중 5명(1/2)이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반면 천안 방문 미경험자의 경우는 천안을 방문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12명 중 4명(1/3)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표 3).

표 3.

인터뷰 응답자의 특성 (역사경관 사진 제공 전)

분류 나이 성별 유관순 사적지
방문 여부
독립기념관
방문 여부
그 외 방문지 방문목적 향후
(재)방문 의사
천안방문
유경험자
Y1 10대 여성 × × 역사교육 ×
Y2 10대 남성 조병옥 생가, 매봉산 봉화지 역사교육 ×
Y3 20대 여성 × × 가족여행 ×
Y4 20대 남성 × 천안삼거리 역사교육,
친지방문
Y5 30대 여성 × × 친척방문 ×
Y6 40대 여성 아우내장터 역사교육,
가족여행
Y7 40대 여성 천안박물관, 이동녕 생가, 김시민 생가 역사교육
Y8 40대 남성 천안박물관 역사교육
Y9 50대 여성 × 현충사 역사교육
Y10 70대 남성 × × 광덕산 휴양 ×
총10명4명9명5명
천안방문
미경험자
N1 10대 남성 - - - - ×
N2 10대 여성 - - - - ×
N3 10대 여성 - - - - ×
N4 20대 여성 - - - -
N5 20대 남성 - - - -
N6 30대 여성 - - - -
N7 40대 여성 - - - - ×
N8 40대 여성 - - - - ×
N9 40대 여성 - - - -
N10 50대 남성 - - - - ×
N11 60대 여성 - - - - ×
N12 70대 남성 - - - - ×
총12명 - - - - 4명
22명4명9명9명

그 다음으로 이들에게 본 연구에 제시된 역사경관 사진자료들(그림 2, 3, 4, 5, 6, 7, 8, 9, 10, 11)을 제공하고, 천안을 재방문 혹은 방문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와 이유를 물었다. 그 결과, 천안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인터뷰 응답자 중 향후 재방문 의사가 없다던 5명 모두에게 심리적 변화가 나타났다. 이미 역사교육의 목적으로 천안을 방문한 적이 있어 재방문의 의사가 없었지만 제공된 역사경관을 보고 가 보지 못한 역사문화관광지를 보니 추가적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답변을 주었다. 또한 천안을 방문한 적이 없는 12명의 응답자들 중 8명은 향후 천안을 방문할 의사가 없었으나 역사경관 사진을 본 후 이들 중 7명은 마음이 바뀌어 천안을 방문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심리적 변화의 이유로, 이들은 천안에 대한 지역적 매력이 크지 않았으나 역사경관을 보고나니 애국심이 생겨 한국인으로서 한번쯤은 가볼만한 장소가 되었다고 답변하였다. 한편, 천안을 방문한 적이 없는 12명의 응답자들 중 애초 천안방문의사가 있음을 밝힌 4명은 역사경관 사진을 보니 더욱 구체적인 방문목적이 생겼다며 천안방문에의 의지를 굳혔다(표 4). 특히 이 조사를 통해 주목할 것은 천안을 방문한 경험이 없는 사람의 경우, 역사경관 사진자료를 본 후 천안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심리적 변화 양상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경관이 수동적으로 감상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권위와 정통성, 그리고 독립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4.

인터뷰 응답자의 변화 (역사경관 사진 제공 후)

분류 향후 (재)방문 의사 심리적 변화 여부 심리적 변화 이유
천안방문
유경험자
Y1 × → ○ 있음 재방문 의사가 없었으나 유관순 사적지 사진을 보고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Y2 × → ○ 있음 유관순 사적지, 독립기념관을 이미 모두 가 보아서 재방문 의사는 없었지만
아우내 장터나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생가를 새로운 코스로 삼아 돌아보고 싶다.
Y3 × → ○ 있음 이전의 방문은 단순한 가족여행으로 자동차로의 접근성이 좋은 독립기념관만
방문하였는데 제시한 사진들을 보니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도 역사교육 차원
에서 가고 싶어졌다.
Y4 ○ → ○ 없음 -
Y5 × → ○ 있음 친척이 독립기념관에 가라고 권유하여 한 번 갔을 뿐이라 또 방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유관순 사적지와 다른 독립운동가의 생가도 방문하고 싶어졌다.
Y6 ○ → ○ 없음 -
Y7 ○ → ○ 없음 -
Y8 ○ → ○ 없음 -
Y9 ○ → ○ 없음 -
Y10 × → ○ 있음 천안에 놀러간 거였는데 사진을 보니 애국심이 들어 새롭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방문
미경험자
N1 × → ○ 있음 딱히 천안이라는 지역에 대한 매력이 없었는데 사진들을 보니 한국인으로서
방문하고 싶어졌다.
N2 × → ○ 있음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 지역으로서 가보고 싶어졌다.
N3 × → ○ 있음 무척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한번쯤은 방문해 보고 싶다.
N4 ○ → ○ 없음 천안에 애국자가 많다고 해서 한번쯤은 가고 싶었는데 사진들을 보니 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N5 ○ → ○ 없음 천안은 거리상 가까워서 한번쯤 가보려고 했는데 뚜렷한 방문목적이 생긴
것 같다.
N6 ○ → ○ 없음 독립기념관에 가보고 싶었는데 가게 되면 유관순 사적지도 들르고 싶다.
N7 × → ○ 있음 그다지 방문하고 싶은 여행지는 아니었는데 사진을 보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방문해야할 듯한 생각이 들었다.
N8 × → ○ 있음 천안에 관광적인 큰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애국마케팅이
가능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N9 ○ → ○ 없음 병천순대를 맛보러 병천장에 가려고 했는데 사진을 보니 추가적인
목적(애국심)으로 방문할 수 있을 것 같다.
N10 × → ○ 있음 태극기를 보니 가고 싶어졌다.
N11 × → ○ 있음 나이로 인해 딱히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독립기념
관과 유관순 사적지를 보니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N12 × → × 없음 사진을 보니 관심은 가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갈 것 같지는 않다.

본고가 시행한 22명의 인터뷰가 소수 샘플 조사라는 점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응답자들 중 상당수가 역사경관 사진을 본 후 천안에 대한 지역적 이미지가 형성·변화하였으며, 이는 천안을 직접 방문하고 싶게 하는 심리적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경관이 지니는 힘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천안의 역사적 애국경관이 심리를 자극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같은 천안의 애국경관은 역사문화관광지로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더 크게는 천안이 이들 애국경관을 보다 적극적인 관광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V. 결론

35년간의 일제 무단통치 기간은 우리나라 역사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은 더 이상 아프고 숨겨야만 하는 역사가 아니라, 더욱 많이 알리고 체험하며 후손들로 하여금 애국심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르쳐 주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숭고하게 희생한 독립운동가와 민족운동의 역사를 애국경관으로서 담고 있는 천안은 향후 역사문화관광지로서 높은 가능성을 가질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최근 역사과목의 중요성 증대와 더불어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체험학습 기회가 증가하면서, 천안시 내의 역사적 장소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양한 독립운동과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천안은 애국과 충절의 도시로서 입지를 다진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천안 유관순 열사 사적지와 독립기념관을 사례로 이들 경관이 역사적 상징성을 갖는 것으로서 단순히 수동적으로 감상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임에 주목하였다. 특히 유관순 열사 사적지와 독립기념관에 놓인 애국경관들은 역사적인 기억들을 되살리고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 민족이 경험했던 고문, 희생, 민족, 독립의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장으로 변화시키고 있었으며, 이러한 역사적이고도 애국적인 경관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배움과 동시에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추가적으로 시행한 인터뷰 조사를 통해 역사적 애국경관이 심리를 자극하여 천안을 방문하고 싶도록 만드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는 천안이라는 지역을 호국충절의 정체성으로 보다 공고히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음으로 해석하였다.

이에 본고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향한 열망과 헌신을 반영한 천안의 역사적 애국경관이 지니는 잠재력을 고찰함으로써 이들 경관이 지역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세우고, 알리고, 활성화하는 데에 유용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향후에도 천안이 역사문화관광지로서 애국경관이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천안이 지니는 애국경관은 역사문화관광지를 알릴 수 있는 잠재력으로서 관광마케팅의 일환으로 적극 활용해야함을 제안한다. 또한 천안의 유관순 열사 사적지와 독립기념관의 역사경관은 과거에 대한 집착 혹은 역사적 사명인 공적 기억의 형태로서 고정되거나 단선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기억과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를 단순히 표현하고 재현하는 경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술사, 개인사 등의 방법을 통해 문화적 실천과 의미화 과정이 순환되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독립과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대립상황이 아닌 상호 공감과 화해, 그리고 용서와 추모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찰적인 공간으로 구상하는 학계적 방법과 논의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본고가 시행한 추가적인 인터뷰 자료가 소수의 의견을 담을 수밖에 없었음은 한계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천안 지역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흔적들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향후 역사문화관광지로서 새로운 루트가 조성되고 재정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일제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 유공자는 총 67명으로, 이 중 67.1%(45명)가 3·1독립만세운동 관련자이다. 참고로 천안출신 독립운동 유공자로는 ‘의병’ 권찬규·이정규, ‘의열투쟁’ 유중협·유찬순·장두환·조종철, ‘3·1독립만세운동’ 강기형·김교선·김구웅·김상철·김상헌·김상훈·김소용·김채준·민옥금·박병호·박상규·박영학·방치성·서병순·안은·안시봉·유관순·유도기·유예도·유우석·유중권·유중무·유중오·윤태영·윤희천·이규영·이규태·이근문·이백하·이성하·이성호·이소제·이순구·전치관·조만형·조병호·조쌍동·조인언·최오득·최은식·최정철·한상필·한이순·허병·홍찬섭, ‘국내항일’ 정인석·조병옥·유제경, ‘학생운동’ 김규환·황봉선, ‘만주방면’ 이의복·이장녕·최병규, ‘중국방면’ 강인수·유민식·이붕해·서단파, ‘임시정부’ 이동녕·이종건, ‘광복군’ 안성근·이명 등 총 67명이다(박경목, 2012, 106-107; 공훈전자사료관, https://e-gonghun.mpva.go.kr/user/index.do).

2) 실제로 천안은 지형학적으로도 평온한 지세를 갖추고 있어 그 이름처럼 자연재해 발생이 가장 낮은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한정순, 2001, 71; 장규식·박상준, 2018, 30).

3) 천안 삼거리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정비하던 곳으로,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이곳에서만큼은 신분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어울릴 수 있었기에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었던 장소다(김경수, 2009).

4)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1.3km 거리에 위치한 유관순 생가는 두 칸의 방에 인형을 이용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모습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5) 1982년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 검정 당시 문부성이 한국과 중국 근대사와 관련된 내용을 일본에 유리한 형태로 수정하면서 역사 왜곡 이슈가 터졌고 이에 일본에서는 교과서 집필진에 대한 항의, 문부성 비판 여론이 일었으며 한국의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이 사건으로 한국 내 여론은 독립운동과 같은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알려야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1986년 4월 8일 기준으로 490억 2,432만 5,009원의 국민성금을 기초로 독립기념관이 건립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1972년 건립된 아우내 추모각이 있으며, 추모각 인근에는 봉화지, 봉화탑, 초혼묘, 생가, 기념관 등이 있다. 추모각에서는 순국일인 9월 28일에 추모제를 올리며, 기념관 광장 및 아우내 장터에서는 매년 2월 말에 ‘3·1절 기념 봉화제’를 연다.

7) 독립기념관뿐만 아니라 당시 중앙청 건물의 국립중앙박물관 전환,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등이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로 추진되어 건립되었는데 이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으로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을 위한 문화시설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8) 겨레의 집은 너무 직설적으로 한옥의 형태를 한 현대 건축물이라는 점, 즉 기능과 상관없이 과거 건축양식을 콘크리트로 모방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건물의 성격이나 역사를 생각한 타당한 전통 계승의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있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건국대학교 KU연구전임 프로그램에 의해서 수행된 과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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