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정신분석지리학과 Sullivan의 대상관계 이론에 대한 이해
III. 지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 매체분석과 영화 ‘벌새’에 대한 소개
IV. Sullivan의 대상관계이론을 본 영화 ‘벌새’에 대한 해석
1. 돌봄이 없는 양육환경
2. 무너진 우정의 사회환경
3. 혼돈과 설움의 세대환경
4. 치유의 관계적 환경
V. 요약 및 결론
I. 서론
한층 더 확대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페미니즘지리학(Rose, 1995), 정치지리학 등에서 정신분석의 개념이 종종 차용되고, 건강지리학의 연구 주제가 치유의 경관(therapeutic landscapes)에서 마음의 경관(landscapes of the mind)으로 서서히 확장되면서(Rose, 2012)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내면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지리학에서도 진행되었다. 영국을 중심으로 Pile, Kingsbury, Philo, Bondi 등의 대표적인 건강지리학자들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Freud을 비롯, Lacan, Jung, Winnitcott 등의 정신분석이론을 지리학에 적용 및 응용해 주관성, 정체성의 구현, 사회적 차이 관계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Bondi, 2003; Thomas, 2007, 2010; Rose, 2012). 이들은 개인에 바탕을 둔 정신적 삶과 실천적 공간 사이의 역동성이 비록 비선형적이고, 불투명하며, 비이성적인 성격으로 (과학적 탐구에서 추구하는) 통일성과 규칙성에서 벗어나 있지만, 신체, 정신, 환경, 사회적 관계 등과 같은 필연적인 공간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한다는 점에 착안해 인간의 취약성을 설명하고 있으며(Pile, 1996; Kingsbury, 2004), 삶의 공간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기보다는 내면(마음의 영역)의 투영(이미정(편역), 2021)임을 강조하는 공통성을 보인다.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본 연구에서는 영화 ‘벌새’를 대상으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Harry Stack Sullivan (1892-1949)의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 적용해 등장인물(청소년)의 삶이 펼쳐지는 일상적 장소와 그곳에서 형성되는 관계적 환경을 정신분석지리학적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왜 Sullivan의 대상관계이론인가? 대상관계이론의 핵심은 한 개인이 맺는 다양한 관계에서 어떻게 자신과 타인에 대한 표상(representation: 인간에 관한 정신적 이미지)을 형성하며, 이와 같은 표상이 지각, 경험, 양식, 더 나아가 정신건강과 병리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김창대 등(편역), 2008). 이와 같은 관점을 토대로 Sullivan은 생리적인 욕구와 사회문화적 그것 사이의 일치되지 않은 ‘상황(situation)’이 갈등과 불안의 핵심임을 강조했으며(노안영・강영신, 2019), 여기에서 말하는 ‘상황’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관성과 반복, 그리고 그 모든 종류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틀인 지리적 실체성을 의미한다(Bondi, 1999; Callard, 2003). 다시 말해, 이는 오늘날 건강지리학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건강과 웰빙을 증진하는 본질적인 치료적 효과는 그 장소(혹은 다양한 지리적 단위)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유동성, 구체성, 역동성 등이 형성되고, 경험되는 방식(예; 표현, 텍스트, 상징을 넘어선 경험, 실천, 비담론적 요소)에 무게를 둔 ‘비표상적/수행적/정서적 전환(non-representational/peformative/affective)’과 연결성을 갖는다(Bondi, 2005; Conradson, 2005; Jones, 2011). 이러한 맥락에서 지리학과 의학의 융복합적 관점에 바탕을 둔 접근은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으며, 바로 여기에서 본 연구는 출발한다.
앞서 언급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우선, 상대적으로 낯선 분야인 정신분석지리학에 대해 폭넓게 이해한다. 그리고 다양한 정신분석학 이론 중 Sullivan의 대상관계이론을 고찰하고, 지리학과의 연결성에 대해 검토한다. 다음으로 문화지리학에서 널리 행해지는 매체분석을 영화적 접근 중심으로 살펴보며, 영화 ‘벌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연구의 결과는 양육환경, 사회환경, 세대환경으로 나눠 여기에서 발견되는 갈등과 불안의 원인을 관계적 환경의 특징을 통해 검토한다. 여기에 더해, 주인공의 치유적 과정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확인한다. 특히, 본 연구는 청소년의 일상적 삶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청소년 시기의 정체성 형성 및 독립적 자아실현을 위한 심리적 변동의 폭이 넓은 특징과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정, 생각, 행동의 근원을 찾아 분석해 억압된 갈등과 불안을 의식화하는 정신분석적 본질을 고려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를 요약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건강의 지향점이 자기실현(self-actualisation)적 관점(Mullan, 2014)으로 수렴되는 현상과 정신분석지리학의 관련성(예: 자기분석(self-analysis)을 통한 무의식의 이해)에 대해 논한다. 정신분석지리학은 정신의 체화된 상호주관적인 관점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으며(Kingsbury, 2004), 이에 본 연구는 아직 시도가 많지 않은 국내 지리학계의 현실에서 실험적인 구체적 산물로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II. 정신분석지리학과 Sullivan의 대상관계 이론에 대한 이해
Freud 이후 다양하게 제안된 정신분석학의 개념 및 방법은 관련 분야를 넘어 사회, 문화, 정치, 교육, 종교 등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개인 및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계기가 있다. 이와 같은 무의식에 대한 탐구라는 흐름에서 예외가 아닌 지리학은 심상적 이미지 혹은 특정 장소에 대한 깊은 감정을 탐구 및 재해석하기 위한 방식으로 정신분석학을 도입하였다(Pile, 1996). 때때로 정신분석지리학은 현상을 뒤틀어 고찰하는 태생적 특징(Friedman, 2006)으로 인해 ‘홍역처럼 불쾌한 경험(Kingsbury, 2004)’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Rose (2000)가 “The Dictionary of Human Geography”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신분석이론의 (앞에서 언급한 규칙성, 통일성 등에서 벗어난 이유로 발생하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리학자들은 차별적인 재해석 및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Kingsbury, 2004).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제시된 대표적인 두 가지 연구의 분야로 투수성(permeability)과 유동성(fluidity)을 통해 본질적 관계를 형성하는 감정(Bondi, 2005)과 특정 영역을 지배하는 일종의 분위기(atmosphere)로 표현되는 정동(affective)을 들 수 있으며(Duff, 2014), 이 둘은 무의식의 차용과 신체(혹은 몸)의 사이공간(the space in-between)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석학적 차원의 유사점을 지닌다(Pile, 2010a).
정신분석학은 지리학에서 복잡한 문화적 관행, 정체성, 담론, 경관 등의 이론적 방향을 제공하는 틀로 충분히 “공간적인 학문이다”라는 명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Freud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자들이 지리학적 개념에 얼마나 열려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1)이다(Pile, 1996, Kingbury, 2004). 이러한 점을 반영, 정신분석지리학은 대인관계, 자아상, 불안정, 충동성 등과 같은 정신분석학에서 주요하게 간주하는 주제들을 다루며,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인본주의의 상식적 견해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율적이고 완전히 이성적인 인간 주체에 대한 아이디어에 반기를 둔 관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Andrews, 2019). 오늘날에는 기존에 제안되었던 정신분석지리학에서 마땅히 다루어야 할 것으로 지리학자들에게 최적화된 공간에 대한 이론, 예를 들어 Freud의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꿈의 공간, 성(性)으로 구분된 도시, 소외의 지리학 등이 한층 더 깊이 있게 다뤄지고 있다(Kingbury, 2004).
한편, 본 연구에서 다루게 될 Sullivan의 대상관계이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대상관계이론은 인간이 출생 시 접하게 되는 양육자라는 환경과의 관계를 탐색하고, 다양한 대상관계에서 파생되어 확립되는 심리구조를 연구하며, 그 관계가 남기는 영구적인 심리적 각인이 전 생애에 걸쳐 인간의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남영옥, 2001). 비록, 이 이론은 복잡한 구조를 전제로 하지만, 큰 시선에서 보면 대상과의 관계에서의 주관성이 핵심이 되며, 여기에서 대상이란 외부환경과 자아(다시 말해, 아이)의 내면화된 정신적 표상 사이를 오가는 매개체를 의미한다(Kingsbury, 2004). 그리고 대상에 대한 정신적 경계는 자아의 해체를 막기 위해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또는 특징)의 이분법으로 분리되며(예: 사랑을 주는 혹은 철회하는 주요 보호자로서 어머니의 모습), 자아의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예: 적대적인 태도에 의한 아이의 공감 능력 상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리학에서의 대상관계이론은 주로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담론에 주목했고, 대표적으로 Sibley(1995)의 내면의 자아와 외면적 그것 사이의 지리적 불일치가 낳은 소외, 거부, 정제, 위반, 거리두기 등에 대한 연구(예: 게토의 형성), Aitken and Herman (1997)의 성인의 권위와 백인을 중심으로 하는 중산층적인 가치에 의해 뒷받침되는 문화적 장치로서의 전이공간 혹은 가능장소에 관한 탐구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은 Sullivan의 이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는 대상관계이론의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한 듯 “성격은 인간의 삶을 특징짓는 되풀이되는 대인관계 상황의 비교적 지속적인 패턴”이라고 정의했으며, 개인 간 상호작용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과정에서의 성격 형성을 강조했다. 특히, Sullivan은 연령에 따라 그 특징을 7단계로 구분했고, 성격 발달의 가장 토대가 되는 시기인 청소년(일명 ‘초기 자아와 타자의 유형(early me-you pattern)’으로 불리는)를 주요하게 다뤘다(김성중・김지현, 2003). 그는 청소년기의 두드러지는 면으로 친구에 대한 강한 욕구, 순수한 인간관계의 시작, 평등한 기회에 대한 추구, 혼란 속의 독립심에 대한 의지, 강한 성욕(이성에 대한 호기심), 종종 동성애로 이어지는 또래에 대한 친근감 등으로 정리했으며(양순미, 2017), 이러한 점으로 인해 Sullivan은 친구와의 관계의 폭의 점진적 축소(깊이 있는 관계의 구축)(양순미, 2017),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제공되는 (자기)반영적(인) 평가를 통한 자아의 형성, 위협적인 사건으로부터 자아를 보호(일종의 여과장치와 같은) 등으로 청소년기의 관계성을 설명했다(양순미, 2017). 앞서 언급한 것처럼 Sullivan의 대인관계이론은 개인의 대인관계 패턴이 성격 형성에 매우 중요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만큼, 이와 같은 흐름에서 그는 성격 발달에 있어 또래 관계 혹은 이와 관련된 참여 활동이 인간성 혹은 인격의 조직적 원칙이 된다고 보았다(양순미, 2017; Cortina, 2001).
추가적으로 Sullivan은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고립되고, 자립적인 것이 아닌, 일련의 대인관계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과 역동성에 기초한 ‘상황’을 주목하였다(Morgan, 2014). 그가 칭하는 ‘상황’은 성격 형성의 원리 중 생리적인 욕구와 사회심리적인 그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불안을 말하며, 특히 후자인 긴장(혹은 갈등)의 원천인 사회심리적 욕구는 대인관계 및 문화적 상황에 의해서 야기되는 것으로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심리적 안전을 성취하기 위한 활동(행동)을 자극한다고 피력했다. 예를 들어, 아동의 불안은 (자기)가치감, 자신감, 유능감(혹은 효율감)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대인관계 상의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이 속한 가정(특히, 어머니와의 관계), 사회, 문화와 관련이 깊은 불안과 갈등은 정신분열증 상황과 종종 연결되며, 이러한 이유에서 Sullivan은 정신분열증은 고립된 유기체 내부에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라 개인과 환경(특히, 사회문화적 욕구가 충돌되는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과정들과 사건들에 대한 반응으로 판단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지리학에서 대인관계이론은 객체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웰빙을 담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것임을 밝히는 방법으로 적용되었던 것처럼(Bodnar et al., 2023) Sullivan이 주장하는 정신병리학적 문제는 상호작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회 및 문화적 가치들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만족 및 안전 추구 사이의 조화로움이 깨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재훈, 1999).
여기에서 지리학적으로 주목할 사실은 이와 같은 아이디어는 오늘날 건강지리학에서 폭넓게 논의되고 있는 ‘비표상적/수행적/정서적 전환’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Bondi, 2005; Conradson, 2005), 이를 환언하면 정동적 측면에서의 친밀함이 감정과 함께 지리적인 참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극히 한층 더 장소에 민감한(place-sensitive) 일상적인 맥락 혹은 환경 접근(a contextual approach)을 중시하는 경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Andrews et al., 2014; Ward et al., 2023). 이는 다채로운 지리적 범주에서 지속적으로 유동적이고, 구체적이며, 역동적인 발생이 형성, 경험, 실천, 비담론적 요소 등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에 무게를 둔 것으로 주로 관계성을 둘러싼 감정과 정동적 측면(결국, 정신분석지리학)과 연결성을 지닌다. Davidson and Milligan(2004)이 설명한 것처럼, 일렁이는 감정은 특정 장소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감각의 영역으로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누구/무엇에 둘러싸여 있는지, 그리고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인식되는지 등의 관점을 토대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지리학에서 치유의 본질적 경험은 관계적 결과, 다시 말해 사람 사이에서의 상호작용 및 더 넓은 사회-환경적 환경 사이의 복잡한 일련의 거래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며, 관계성은 건강지리학에서 다루는 정신병리적 문제가 일어나는 장소적 속성 그 자체보다는 특정 형태의 주관적인 경험에 한층 더 중요성이 부여한다(Conradson, 2005). 사회적 연결, 참여, 상호작용 등은 웰빙의 증진 혹은 하락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한 건강지리학 분야의 결과물은 건강과 웰빙을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간의 오감뿐만 아니라 감정, 희망, 욕망, 두려움 등까지 모두 아우르는’ 감정과 정동을 더 밀접하게 연관시켜 논의를 발전시켰던 것이다(Ward et al., 2023).
이러한 점에서 여타의 지리학에서 다루는 방식과 달리 건강지리학에서의 관계성은 감정적 특징, 정동의 질(quality), 그리고 상호작용의 형성 등에 한층 더 주목하게 되며, 웰빙을 건설적 또는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의 차원을 초월해 삶의 통합적으로 구체화된 측면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Conradson, 2005; Ward et al., 2023). 웰빙에 대한 지리학적 이해는 최근 주관적인 혹은 심리적인 것, 더 나아가 관계적, 사회적, 감각적, 공간적 및 정서적인 것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객관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없는 심리적 만족 혹은 보상적 차원, 경제적 이익, (특수한) 시공간적 상황, 변화의 요인 및 전개 등 지극히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잘 산다는 혹은 건강하다는 인지를 칭하는 것이 된다(Curtis and John, 1998; Cutchin, 2007; Fleuret and Atkinson, 2007; Andrews et al., 2014). 예를 들어, 이와 같이 현재진행 중이며, 기존과 차별적인 건강의 관점과 개념은 의사 혹은 간호사와 환자 사이와 같은 다양한 의료(혹은 건강)적 환경과 생활공간 내에서의, 그리고 관계를 해석하는 데 유용한 것이 된다(Andrews, 2002). 심지어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경험 및 인식과 그것이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질문이 질적인 방법을 통해 무게감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현상이 건강에 대한 지리학의 주요 흐름이 되었다(Cummins et al., 2007).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통상 웰빙이라고 칭하는 것이 환경에서 비롯되거나 혹은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환경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건강지리학을 논하는데 있어 웰빙의 본질을 재고하는 근거가 된다. 종합하면 이는 Sullivan이 주장한 “인격은 그 사람이 살고 존재하는 복잡한 대인관계(적 환경)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정신분석학의 기본적 개념과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으며(Ellman, 2010),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이론은 지리적 차원에서 검토해 볼만한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2)
III. 지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 매체분석과 영화 ‘벌새’에 대한 소개
지리학에서 매체는 종종 정체성, 문화, 사회 등에 대한 투쟁적 담론이 이루어지는 경기장으로 비유될 뿐만 아니라, 나(혹은 우리)와 타인에 대한 생각, 인식,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을 조직하는 동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Hintermann et al., 2020). 이러한 의미에서 지리학자들은 상상적 세계의 생산과 투사에 있어 매체의 역할을 탐구해 왔다(Hay and Israel, 2001). 지리학에서 매체의 역할을 긴 시간 고민한 Adams(2017)의 “매체는 인프라, 공간, 시간을 통한 전송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적 행위자 간의 만남으로 해석된다”는 언급은 바로 앞서 기술한 연구적 경향을 응축한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방식은 매체지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만남의 형이상학(metaphysics)으로 귀결(예: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에 의해 어떻게 변형되는지에 대한 관점)된다”고 했다. 후에 다시 서술하겠지만, 이는 형이상학 및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신체와 정신 사이의 관계 혹은 인간 정신의 본질과 같은 가정 및 주제와 공유하는 지점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미 정신분석학에서도 자리를 잡은 매체분석은 언어적 편견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해 특수한 상황 내의 대상의 중요성을 복원하는 작업으로 감각적 중재를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문화적 실천(Rose, 2012)이라 할 수 있어 본 연구를 위한 방법론으로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앞서 설명한 것 같이 매체를 통한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은 Freud 때부터 이미 채택한 나름의 역사를 가진 방법이다. 정신분석 초창기 회원들은 Freud의 자택에서 ‘수요회’라는 연구모임을 가질 때, 자주 소설, 신화, 연극, 영웅전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심리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1911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인 Otto Rank(1884-1939)와 Hanns Sachs(1881-1947)가 주도하여 인문사회과학과 예술 분야를 정신분석적으로 연관시켜 연구하는 학술 전문지인 ‘Imago’를 별도로 출간하여 활발히 관련 분야를 확장했다. 특히, 1965년 이후에는 정신분석적 영화평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정신과 전공의와 분석가 교육에도 영화 토론이 등장하였으며, 실제로 미국의 정신의학회와 정신분석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는 따로 시간을 마련해 수백 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룬 적도 있다. 이는 매체(더 구체적으로는 영화)와 정신분석이 많은 공통점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관련 연구자들이 쓰는 중요한 방법으로는 첫째, 영화의 줄거리와 전체적인 심리적 의미의 규명, 둘째, 대사와 인물의 성격, 행동, 동기 등의 파악, 셋째, 특정 감독의 일련 영화분석, 넷째, 장르별 숨은 심리 특성에 대한 이해 등을 들 수 있다(김동옥・김영신, 2016).
영화를 분석하는 기법은 학자의 기준마다 대동소이한데, 이를 종합해서 고려할 때 크게 작품 안에서만 근거를 찾는 내재적 분석과 작가, 시대, 독자 등 외부적 요인과 연관된 외재적 분석으로 나눌 수 있다. 내재적 분석은 크게 시각, 서사, 청각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고(윤종욱, 2017), 이를 토대로 본 연구에서는 시각(지리적 요소)과 서사 분석의 맥락을 따르고자 한다. 전자인 시각 분석은 지리학에서 영화가 장소와 공간의 성격과 이미지, 그리고 권력관계를 재현하는 대표적인 문화정치의 경관텍스트라는 사실과 연결성을 갖는다(이무용, 1998). 그러므로 영화 속에 비치는 지리적 범주는 단순한 글자 혹은 문장, 그리고 비치는 경관의 집합을 뛰어넘는 것으로 문화 및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복합적인 구성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시되는 메시지, 맥락, 편향 등을 비판적 대상으로 의미를 지닌다(장윤정, 2024).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영화의 지향성을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로서의 공간을 주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이미 주지하고 있듯이 보통 영화의 진행은 등장인물이 중심이 되며, 각본가 또는 감독이 창조한 등장인물 사이의 서사는 스토리와 그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서사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과 시간을 갖는다. 더불어 서사는 등장인물이 함께 출연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더 효율적으로 사용된다. 종합적으로 서사의 관계성을 통해 주요, 보조 또는 추가 역할 분류, 클러스터링 및 시퀀스 감지와 같은 정확한 영화의 스토리를 추출할 수 있는데(Park et al., 2012), 이렇게 착안한 점은 본 연구에 적용한다. 추가적으로 영화는 반복적 감상을 토대로 하는 프로토콜 작성으로 분석의 그 구체성이 드러나는데, 본 연구에서는 개별 숏 마다 정보를 도식화하는 숏 프로토콜을 대신해 일반적이며, 간단한 정리 방식인 시퀀스 프로토콜(시간 및 공간의 변화, 이동 등으로 표시되는)3)을 바탕(윤종욱, 2017)으로 했음을 밝힌다.
본 연구에서 영화의 시각 및 서사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다분히 Sullivan의 관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에서 흥미를 유발한다. 왜냐하면 그의 방법론 중 하나가 정신분석의 대상과 그 대상의 환경 또는 맥락을 참여적 형태로 분석하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는 관찰자와 그(혹은 그녀, 때로는 그들) 사이에서의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는 작업이 정신의학의 중요한 주제임을 강조한 바 있기 때문이다(Sullivan, 1940). 또 다른 측면에서 Sullivan은 대인관계의 발달을 설명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조직된 경험의 변화에 전적으로 집중하면서 무엇보다 언어를 사용하는 의도적인 심리학을 채택했기 때문에 대화의 내용에 기초하는 영화분석은 Sullivan의 접근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로 간주할 수 있다(Cortina, 2001). 두 가지 관점을 종합하면, 영화를 분석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정신분석적 규범과 차별적인 것으로 핵심적 치유자를 둘러싼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표현의 정확한 묘사라 할 수 있다(Cortina, 2001). 거기에 더하여, 이는 대상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열정과 갈등이 현실 혹은 상상 속의 자기와 타인들 사이의 관계들로 인해 변화하고, 경쟁하는 심리적 구성물들에 의해 생긴 것임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된다(이재훈, 1999). 어쩌면 Sullivan은 영화를 분석하는 것과 같은 정신분석적 상황을 직접 부딪치며 알아보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모색하는 길일뿐만 아니라, 치료의 초석을 놓는 방안으로 기술적이면서도 이론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자아의 점진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일이 된다고 간주했을지도 모르겠다(Epstein, 1982).
한편,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영화 ‘벌새’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영화는 1994년을 배경으로 초기 청소년기를 겪는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여러 고민을 담고 있다. 대치동 방앗간 집 막내딸인 은희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자란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주치면 윽박지르는 가부장적인 아빠, 무관심한 엄마,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 비행 청소년인 언니보다 친구 지숙(동성친구) 혹은 지완(남자친구)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맨날 이혼하자고 싸우다가도 아무 일도 없이 식사하는 부모님, 무뎌지기 어려운 오빠의 폭력, 이해할 수 없는 언니의 비행, 그리고 명문대만 강조하는 학교. 은희는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이처럼 은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소 이상하며, 이러한 삶의 무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하는 벌새처럼 주인공 소녀는 포기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시네21, 2019). 어느 날, 지숙과의 싸움, 부모님의 질책, 오빠의 폭행을 경험한 후 학원에 온 은희는 공부 대신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고요히 들어주는 선생님 영지에게 마음을 준다. 그동안 이러한 세상에서 저항도 못 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던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어렴풋한 답을 찾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의 흐름은 단순하지만, 대상관계적인 측면에서 Sullivan의 관점과 충분한 관련성이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Sullivan은 인간은 만족을 추구하는 욕구를 갖고 태어난다고 봤었는데, 이러한 정서적 욕구는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게 된다. 그는 이와 같은 정서적 욕구를 ‘다정함에 대한 욕구(tenderness theorem)’로 명명해 제안했는데, 예를 들어 유아기에는 주변인(특히, 성인)은 자신을 바라봐주는 관객이 되길 바라고, 소년기 때는 다른 소년, 소녀와 경쟁하고, 협동하며, 타협을 추구한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단짝)친구, 그리고 사춘기 이후에 청소년들은 이성의 누군가와 친밀하고, 협조적이며, 사랑하는 성적인 관계를 추구한다(이재훈, 1999).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990년대 대한민국(강남구 대치동) 배경으로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불안과 외로움이 가득한 소녀가 주변인과의 관계와 그들과 함께 하는 특정한 장소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Sullivan이 특히 무게감 있게 다룬 청소년기의 대상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지리학적인 분석의 대상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4)
IV. Sullivan의 대상관계이론을 본 영화 ‘벌새’에 대한 해석
1. 돌봄이 없는 양육환경
우선, 영화 ‘벌새’의 핵심적인 대상관계는 양육환경인 집(가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상 집은 비록 내부적으로는 복잡할 수 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일상과 상호작용을 통해 특정한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 지리적 내재성, 공간적 일관성, 인간 행동과 정서의 규칙성 등을 관찰할 있는 곳으로 간주된다(Pile and Thrift, 1995). 그렇지만 이와 같은 학술적 토대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둘러싼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와의 관계성은 불안함과 우울함으로 특징지어지고, 가장 보호받아야 할 막내인 주인공 은희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 물론, 안식처로서의 집 혹은 가정이라는 주장은 1990년대 이래로 열렬한 비판을 받아왔으나, 상당히 긴 시간 지리학에서 서술했던 집 혹은 가정은 존재로의 인간에게 가장 이상화된 장소 중 하나로 기쁨과 보호의 경험이 가능한 곳이라는 긍정적 규범과 정서적 고귀함으로 규정되었다(Brickell, 2012). 이분법적 대립(예: 안전-불안전)이 한층 더 부각된 ‘더 우울한’ 집 혹은 가정을 묘사되는 영화 ‘벌새’에서의 양육환경은 지리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예외적인 것을 간주된다.
인간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타인은 직접적이든 혹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든 자아의 윤곽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적 만남, 기억, 갈망, 욕망 등의 작용을 통해 자아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폭력, 외도, 무관심 등 가장으로서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는 은희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 매우 무기력한 태도를 일관하며, 마치 삶을 포기한 모습이다. 영화에서 은희가 엄마를 목 놓아 부르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는 모습이 이를 말해준다. 그리고 “너는 여대생이 되어야 돼”라는 대사는 은희에 대한 애정보다는 어머니의 삶에 이루지 못한 갈망에 대한 투사로 해석된다.
정신분석학에서도 가족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정서적 자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Gecas et al., 1974), 아버지와 자녀의 유대감을 위협하는 삶의 불안한 사건은 종종 가족구성원 사이(특히,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의 긴장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해석한다(Kalmijn, 2007; Gilligan et al., 2013). 한편, 일반적으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자녀에게 더 지지적이고 관대할 뿐만 아니라(Pillemer et al., 2012), 자녀와 어머니 사이의 유대감은 아버지보다 강해(Suitor et al., 2011) 어머니와의 관계 불안정은 핵심적인 대인관계적 자원에 있어 어려움이 된다. 이와 같은 면을 고려할 때, 영화 속의 양육환경의 자녀들은 부모의 부정적 영향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주인공 은희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주눅이 든 채 자신감이 없다. 아버지의 아들 선호적 태도와 더불어 외고에서 회장을 하고,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오빠는 은희와 은희 언니에 대한 상습적인 폭행을 가하고, 스스로 학업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느낀다. 언니는 거짓말을 하다 아버지께 얻어맞고, 야밤에 남자친구를 집(은희의 방)에 들이는 비행을 드러낸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정신적으로 내면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록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된 관계적 만남조차에서도 즉각적으로 발생한 것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특정 환경 속의 개인의 웰빙은 결국 관계성이 좌우한다(Conradson, 2005).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누적된 은희 가족 구성원의 불안과 갈등은 돌봄의 없음 혹은 무기력한 보호라는 감정과 정동을 형성했다고 판단된다. 지리적 차원에서 가정 내 돌봄은 복잡한 물질적, 심리사회적, 그리고 실천적 특징이 얽혀있으며, (돌봄의 질과 일관성은 가변적일 수는 있지만) 단순히 지리적인 근접성을 뛰어넘어 사회 및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Milligan, 2000; Twigg, 2000; Conradson, 2003; Milligan and Wiles, 2010).
특히, 청소년 시기의 집 혹은 가정의 취약성은 구체적인 개인의 삶으로 스며들어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세상에 대한 개방성에 대한 태도에 장애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 ‘집에 있는 것’에 대한 불안 경험은 오히려 ‘집에 없음’의 감각 수준으로 전환되는 것이다(McMahon, 2014). 여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회화 주체인 부모는 단순한 가족적인 구성원이 아니며, 여타의 사회 집단에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때때로 침투할 수 있는 모델로서의 역할을 한다. 물론, 청소년은 결코 가족을 통해서만 사회화되지 않고, 가족을 넘어서는 구조 속에서 성장(사회화)하지만, 문제가 되는 점은 부모가 청소년기의 자녀에게 또래집단과의 교류, 학교생활, 더 나아가 결혼 및 출산을 통한 새로운 가족 형성, 그리고 직업에서의 역할 등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집에서 형성되는 관계적 환경의 안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Parsons, 1956).
이상한 점은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도 잃어버린 집 혹은 가정에 대한 현실적이면서 상징적인 그리움과 귀환(예: 원만한 가족의 모습)으로의 노력은 인간에게 있어 보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Seiden, 2009), 영화에서 가족구성원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나타나는 갈등과 몰이해는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는 것으로 혹은 다루어져야 할 문제가 아닌 익숙한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의 심각성을 제시하면 이상하게 비칠 정도이다. 예를 들어, 피를 흘리며 싸우던 부모는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웃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처럼 집에서 타인에게 들키기 어려운 가정 내 폭력이 일반화되고(Pain, 2014), 가족공동체가 해체되며, 돌봄이 없는 환경은 주인공 은희에게 공허함, 그리고 외부에서 그 갈증을 해결하려는 행동(예: 비행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며, 이는 불편한 가족과의 친밀감 형성에 있어 전반적인 감정적 억제를 유도해 왔던 모습(Wylie et al., 2023)에서부터의 탈출구로 볼 수 있다.
2. 무너진 우정의 사회환경
보통 우정은 (상호)애정과 개인적 존중, 공동의 관심사와 활동, 헌신, 충성, 자기 개방과 상호이해, 수평성 등을 필수적인 것으로 요구되며, 이와 같은 조건을 바탕으로 친화적 장소를 형성한다(Chatterjee, 2005). 더구나 이처럼 나열한 요건은 도덕적 뿌리가 되는 자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Keller, 1984), 관계적 친밀성은 사회적인 성취(예: 학업 혹은 업무의 달성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Hood et al., 2017). 영화 초반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은희의 사회환경은 평범한 것으로 그린다. 은희의 일상적 공간을 공유하며 폭넓게 우정의 관계를 유지하는 지숙이, 개인적 외로움과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남자친구, 갑작스럽게 호감을 표현하는 여자 후배 등은 오늘날 우정의 지리학은 한층 더 유동적이며, 상황적인 소속감과 우정을 형성하는 사람 및 장소와 교류하는 실제적이고, 관계적인 성격에 무게를 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Korkiamäki and Kallio, 2018), 특정한 공간적 범주 속에서 우정은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 유지, 해소됨을 표현한다(Bunnell et al., 2012). 그러나 이내 이들 사이의 관계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있고, 무너지기 쉬운 관계적 환경임이 그려진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Sullivan의 대상관계이론에서 청소년 시기의 우정은 전인적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는 우정이 비정상적으로 무너진 상황 속의 주인공 은희의 삶을 비춘다. 학교에서 서로 소위 모범생이 아닌 비슷한 고민을 공유(예: 가족에서의 소외) 하는 지숙이는 방과 후에는 콜라텍과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심지어 담배도 피운다. 대담한 행위는 문방구에서의 절도로까지 이어지고, 들켜버린 범죄행위로 인해 서로의 탓을 하다가 멀어진다. 관계에 있어 항상 약자 혹은 피해자라 생각했던 은희는 지숙이에게 “넌 네 생각만 한다”는 비난을 들으면서 자신이 가하는 상처 혹은 자신 안의 가학성을 대면하며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한다. 가족을 대신해 의지하던 남자친구와는 둘만의 비밀장소에서 통상 청소년 시기에 금지된 애정 행각까지 하지만, 곧 다른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분노를 느낀다. 더구나 남자친구 어머니는 학교 근처까지 따라와 둘 사이를 반대한다. 먼저 호감을 표현했던 여자 후배와는 동성애로 비치는 행동까지 하지만,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는 말로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고, 상실감에 빠진다. 이처럼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공간적 가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개방하거나 혹은 차단(Bunnell et al., 2012)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혼자 방문하기 꺼리는 곳을 친구와 동행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이러한 것의 예일 수 있는데, 은희의 사회환경에도 투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우정에 무게감을 두는 청소년 시기의 특성과 위태한 돌봄의 환경에 노출된 주인공 은희는 소속감의 위험과 일반적으로 여아가 갈등으로 인해 위축되는 경향(Wied et al., 2007)으로 인해 탈선내지 비정상적인 행동에 노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Abhishek and Balamurugan, 2024). 물론, 현대적인 우정은 범위와 강도 면에서 보편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행정, 계약주의, 그리고 화폐화된 교환이라는 비인격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정의 속성 그 자체가 두 사람 이상이 자발적으로 맺거나, 반대로 해소될 수 있는 대인관계로(Bowlby, 2011) 적극적이고, 지속적이며, 필연적으로 상호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정은 혈연관계나 공식화된 계약과 달리 구속력이 없다(Rawlins, 1992). 따라서 사회적 유대감 중 가장 약하고, 모호하며, 명확한 규범적 지위가 없지만(Tillmann-Healy, 2003; Tolia-Kelly, 2006), 은희의 갈등과 불안의 상황은 자유, 두려움, 가능성의 부여 및 거부 등과 결합해 살아있는 혹은 죽어있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공유된 것으로 볼 수 있다(Bunnell et al., 2012).
우정은 기본적으로 진정한 자아를 드러낼 때 깊이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애정, 보살핌, 배려 등의 신뢰의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바탕에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개입으로 사회적 응집력과 연결성을 증가하는 방식은 건강과 웰빙을 형성(예를 들어,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기술(관계성)을 개발하기 위한 음악 프로그램)할 뿐만 아니라, 강한 긍정적 장소 감각을 부여하는 경험적 환경은 인간의 태도와 행동에 치료적 효과를 줄 수 있다(Wiles, 2023). 인간 내면의 결속력, 안정감, 방향감,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 등의 기본적인 욕구(Jackson, 1989)는 진정성에 심리적 뿌리내림으로써 치유의 지리학을 형성한다(Gesler, 1992). 그러나 영화 속 은희의 물리적 만남을 통한 교우관계는 웰빙이라는 정서와 정동의 즉각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이 뒤틀렸음을 보여준다. 후술하겠지만, 무너진 사회환경을 대신해 의사 선생님과 한문 선생님 영지와의 관계적 환경에서 느낀 애정과 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재확인 받는 선택이 되며, 은희의 삶에서 극복되지 못한 것의 양면성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에게 대체되어 표현되는 것으로 또래 집단과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3. 혼돈과 설움의 세대환경
장소, 시간, 맥락 등으로 구성된 특정한 시대는 관계, 문화, 감각 등의 다양한 경험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영화의 중심 무대인 1990년대 중반의 강남은 혼돈과 설움으로 점철된 시대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Davidson and Milligan(2004)은 감정은 인간에게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에 영향을 미치며, 감정의 시공간적 기록은 정서적 강도와 함께 친밀하고, 집단적인 방식으로 세상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구성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정과 정서는 사회의 언어적-비언어적 혹은 가시적-비가시적 차원의 상호보완적 접근으로 간주할 수 있고(Ho, 2024), 특정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정서적 웰빙을 좌우할 수 있다.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특정 유형의 시공간을 이용 혹은 회피하는 과정에서 도시 및 사회기반은 소속-비소속 또는 평등-불평등이라는 특정한 정서적 특성을 낳는다. 영화 ‘벌새’에서도 이와 같은 혼돈과 설움은 다양하게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집에서는 세 남매에게,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명문대 진학과 우수한 성적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는 구호를 외치게 하거나, 비행적인 행동을 한 학생들의 이름을 써서 내는 장면, 그리고 “노래방 가면 날라리다, 남자친구 사귀어도 날라리다”와 같은 검열과 혐오는 이를 표현한다.
이와 같이 감정은 개별적으로 경험하는 차원이다. 그렇지만 그 개인은 서로 다른 권한을 가진 집단의 구성 요소로 권력, 행위성, 사회정의의 문제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감정과 정서적 강도는 집단적 동일시와 행동을 동원할 수 있다. 감정과 정서의 시공간적 표현은 소속-비소속, 순응-반항, 무행동-변화 및 기타 존재, 감정 및 행동 방식과 같은 사회적 상태와 사회공간적 위계를 생성해 이것이 부정적으로 해석될 때에는 방향감각상실, 긴장, 갈등, 심지어 느껴지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Bosworth, 2022). 모범생 오빠에게 주어진 보이지 않는 강요는 언니와 은희에 대한 폭력으로, 공부를 소홀히 할 뿐만 아니라, 비행적 모습을 보인 언니에게는 아버지의 폭행이, 등장인물들의 사회환경인 학교는 비주류에 해당하는 은희와 우정의 지리적 범주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당함을 가한다. 이는 지숙의 대사인 “그런데 우리한테 미안해하기는 할까?”라는 말을 통해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본 영화의 세대환경은 순간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기억을 통해 현재로 이어진 과거로부터의 누적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무의식은 넓은 맥락에서 개인, 다양한 사회의 집단, 물질성, 텍스트, 과거/현재/미래의 시공간 간의 상호적 연결을 설정 및 형성한다(Jones, 2011). 한층 더해, 이는 윤리적 가치, 신념, 시대적 철학 등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복잡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경험적이고, 해석적인 규범이 된다. 이처럼 명백히 물려받은 가치, 신념, 가정 등은 역사성을 지닌 무의식적인 세대환경을 이루며, 우리의 의식적 경험이 말하거나 말하지 않은 것, 제정되거나 억제된 것, 상상되거나 억압된 것 등의 모든 방향과 연결성을 지닌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의 오빠를 항상 우선으로 하고, 집안의 기둥임을 강조하는 남아선호 사상, 부정적이고, 비도덕적인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억지로) 존중할 수밖에 없는 가부장적 위계,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하는 참사와 죽음의 상징성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주인공 은희는 이러한 세대환경, 다시 말해 소속감으로 치환될 수 있는 관계적, 문화적, 감각적 경험이라는 정신병리적 상황 속에서 기존의 자리매김된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저항을 보인다. 통상 지리학에서 정의하는 소속감은 인간, 장소, 시간, 문화 등의 맥락이 특정한 장소에 얽히면서 형성된다고 보며,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인간은 감각적으로 참여할 때 시공간적 변화를 구체화한다(May and Muir, 2015). 이러한 소속감은 역사적 흐름이 필연적으로 투영되는 역동적이며, 변화하는 문화복합체를 구성하는 일부로, 인간 사이의 역학적 관계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쳐왔다. 다시 말해, 역사적인 변화는 필연적으로 비밀스러운 정신적 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연관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Kaplinsky, 2008). 항상 버릇없다고 손가락질하는 가족을 향한 감정적 폭발하거나, 영지 선생님의 사직을 알려주지도 않았던 원장 선생님에 대한 질타와 같은 은희의 예외적인 행동은 이와 같은 익숙한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적 특성을 주인공이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항상 주눅 든 은희의 이러한 저항성은 존재의 정서적 힘을 불안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저항은 단순한 대립의 양식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다른 영향을 받는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새로운 관계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취약성의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비록 이와 같은 과정과 생성에 있어 지리적 참여는 창발적이고, 분산적이며, 임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권력과 사회적 차이의 문제에 대한 지속적이고, 비판적인 견해를 형성할 수 있으며, 수평화와 보편화가 개인과 정체성 기반 집단의 차별적 취약성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게 된다(Brice, 2023). 이러한 측면에서 은희의 반항 이후 성수대교 붕괴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오빠의 눈물, 은희의 혹 재발로 인한 아빠의 통곡 등은 전환 혹은 변화의 모습을 압축해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4. 치유의 관계적 환경
이 영화에서 중요한 치유의 관계적 환경은 부모님도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을 알려주며 은희의 질병에 대해 따뜻함과 위로를 건네는 의사 선생님과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해준 학원 선생님 영지에 의해 형성되며, 이들과의 관계는 은희의 삶에 있어 탈출구가 된다. 특히, 영지 선생님과의 관계는 특별하다. 우연히 한문 학원에서 만난 영지 선생님과의 관계는 라포(rapport: 친밀함을 넘어선 상호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전제로 하는 마치 상담의 그것과 같다. 이러한 행태는 일반적인 돌봄에서 나타나는 관료주의(예: 돌봄의 공여자와 수여자의 불평등성)와 비밀 유지라는 규범적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오히려 구체적이고, 유동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시공간적 범주를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면화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주체가 제공하는 외적 공간을 내면화한다.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일종의 치유적 공간성은 현실과 환상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호하게 하며, 이는 현실적(물질적)이면서도 상상적(상징적)인 자아에 대한 복잡한 이해를 조정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재형성한다(Bondi, 2003). 은희와 영지 선생님 사이의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와 같은 대화는 이러한 사실의 반영으로 볼 수 있고, 새로운 차원의 자아가 출현하는 데 기반이 되는 안정감은 관계적 만남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는 사실을 뒷받침 한다(Conradson, 2005).
한편, 이 영화는 실질적인 공간의 이용뿐만 아니라, 상상의 공간 개입도 조명한다. 지리학에서 종종 상상의 공간 개입은 중요한 장치인데, 특히 개인이 정신 건강을 증진하고 웰빙을 증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인화된 정신 전략을 탐구(예: 이민자의 향수병 치료에 있어 상상력과 기억력의 응용)하는 데까지 확장된다(Gastaldo et al., 2004). 유일한 지지자였던 영지 선생님은 성수대교라는 90년대 가장 충격적인 참사로 죽음을 맞는다. 은희의 영지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은 선생님 개인적인 공간(집과 방)으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은희는 영지 선생님의 남아있는 체취를 느끼며(예를 들어, 선생님의 가구를 만지는 행위) 간절히 누군가와 이어지길 희망하는 욕구를 표현한다. 또한 한층 성숙한 주인공 은희는 일기를 쓰면서 상상 속에서 영지 선생님과 대화하며 일상에서 찾지 못한 질문에 답을 찾아간다. 이처럼 상상력, 감각, 기억력 등과 연관된 인간의 행동은 이미지와 시각화를 통해 실질적이며,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침투함으로써 (심리적) 장소로 재현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신화적 혹은 마법적이지만, 다른 어떤 것에 비해 매우 현실적인 치유의 방법으로 풀이된다. 이는 정신분석학적 접근법 및 그것의 지리학적 해석인 정신분석지리학에서도 치료의 장소가 반드시 ‘실제적(선형적)’ 시간과 물리적 공간에서 존재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널리 공유하고 있는 사실과 연결된다(Andrews, 2004). 종종 치유가 확장된 방식으로의 상상력과 기억력은 종종 치료의 과정에 있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환자를 편안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기술로 발견되기도 하며, 직접적인 의료 행위라는 중요한 접근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를 다른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로 데려다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감각을 활용한 이미지 훈련, 이완 기술, 명상, 기도 등과 같은 것이 이것의 실질적인 예이며, 이러한 방식은 마음과 신체 사이의 연관성을 토대로 작동하는 정신적 차원의 치료 관행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대처하며, 심지어 치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명백한 의학 및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한다(Williams, 1998; Andrews, 2004; Jones, 2011).
추가로 인간의 삶에서 고통, 혼란, 피로, 방향 감각의 상실, 외로움, 슬픔 등을 유발하는 역경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인생의 단계에서 다른 모습으로 승화될 수 있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표출되는 한 가지 공통점은 역경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어떤 형태로든 희망이 거의 항상 생겨난다는 것이다(Andrews, 2017). 이것은 단순히 이전과 유사하거나,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 혹은 단순히 지속하는 것을 넘어선 잠재적인 의미를 뜻한다. 오히려 이와 같은 행위는 적응능력, 적극적인 행동, 그리고 새로운 학습 경로를 모색할 잠재력을 부여한다. 결과적으로 역경에 적응한 인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동적인 끈기와 타성을 넘어선 건강과 웰빙을 추구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찾기 위한 상실에 대한 구체화한 정신생물학적 반응을 포함한 실천적, 내재적 혹은 변혁적 역량을 보인다(Power et al., 2019; Madrell, 2020). 영화 끝에 카메라에 비친 변화된 은희는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에 둘러싸여 매우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일련의 정신적 성장이 통합된 ‘희망적 적응(hopeful adjustment)’으로 간주할 수 있다(Andrews, 2017).
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Sullivan의 대상관계이론을 적용해 영화 ‘벌새’를 대상으로 정신분석지리학적 차원에서 영화의 주요 무대를 양육환경, 사회환경, 세대환경으로 나눠 등장인물의 갈등 및 불안, 그리고 치유 과정의 지리적 특징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돌봄이 없는 양육환경, 우정이 무너진 사회환경, 혼돈과 설움의 세대환경은 주인공 은희의 정신병리적 문제를 유발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대상관계(영지 선생님)는 주인공 소녀의 성장을 이끄는 치유의 ‘상황’이 된다. 상대적으로 특별할 것 없는 영화의 내용은, 그렇지만 건강지리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1990년대에 의료지리학을 재편, 재지시, 확대하여 건강지리학이라고 불리는 방향으로 전환함으로써 등장한 건강에 대한 보다 문화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인식과 사람, 건강, 장소 간의 역동적인 관계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의 흐름(Andrews, 2002), 특히 ‘비표상적/수행적/정서적 전환’과 연결되는 것(Bondi, 2005; Conradson, 2005; Jones, 2011)으로 이 영화는 실질적인 것을 넘어선 인지적 차원의 환경을 반영하고, 지극히 개인적 내부(세계)를 조명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본 연구의 내용을 각 환경 별 대상관계, 감정, 상호작용으로 정리하면 표 1과 같다(표 1 참조).
표 1.
영화 ‘벌새’의 핵심적 양육, 사회, 세대환경과 치유 과정에서의 대상관계, 감정, 상호작용의 개요
오늘날 건강적 차원에서 정신분석에 대해 탐구하는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건강의 지향점이 통합된 자기실현(self-actualisation)적 관점으로 해석된다(Mullan, 2014). 욕구와 관련한 대표적인 연구자인 Abraham Harold Maslow(1908-1970)는 달성하기 가장 어려운 자아실현은 자발적인 태도를 통해 타인의 안녕에 초점을 맞춘 행동을 유발하게 되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종종 관대함, 공익을 위한 봉사, 지식과 정치의 추구, 인간 욕망의 관리, 무엇보다도 자신의 움직임의 (순수한) 목적 또는 궁극적인 성취나 목표의 달성을 포함한다(Norman et al., 2024). 바로 이와 같은 발전 및 성장하고자 하는 자아실현의 개념이 현대적 의료 및 건강과 관련된 분야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전체주의 의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미치료(logotherapy)와 같은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치료 과정은 우울증 환자의 불안과 슬픔을 줄여주는 것으로 그 의학적 효과가 이미 증명된 것이며, 이와 같은 보살핌은 자기에 대한 관리가 성장으로 이어져 자신을 둘러싼 불리한 조건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표출되는 방식이 된다(Castillo, 2021). 그리고 여기에 인문지리학적 고찰은 주관성과 인간의 행위주체를 근본적으로 공유한다는 사실에서 웰빙과 질병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를 구축하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건강을 달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인간의 행위주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깊이 설명하는 데 기여한다(Williams, 1998).
이러한 바탕 위에 서구권에서 이미 널리 퍼져있는 전체론적인 치유 및 건강 관행은 의미, 가치, 경험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특정 치료환경(가상적인 것까지 포함해) 내에서 내재된 심리적 뿌리와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해준다(Williams, 1998). 이와 같은 사실에서 영화를 통한 정신분석에서의 지리적 탐색은 영화를 본 후 관람주체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 대표적으로 동일시(identification)와 투사를 활용하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Freud가 말한 ‘자아가 대상을 자기 안에 통합시키려는 것’이라는 자기 성장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백상민, 2005), 이미 Karen Horney(1885-1952)와 같은 정신분석학자가 정신병리의 자기분석(self-analysis)에 대해 제시한 것의 구체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영화가 본질적으로 가진 특성인 즉각적인 형상화와 사건에 대한 효과적인 전달력은 강력한 불안과 갈등 맞서 관객들은 그것을 극복하고 풍요롭고 안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영화를 통한 정신분석은 인간에 대한 본질과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조두영, 1997; 김종환, 2015).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에 나오는 지리적 요소(특히, 관계적 환경)에 대한 깊은 감정을 탐구하던 방식을 재해석하면서 정신분석학적 관점의 비판적 사고를 개인과 외부(세계) 사이의 변증법으로 적용한 정신분석지리학은 자기실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기실현의 실천은 의학의 진보와 관련성이 있으며, 이것은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정신을 수용하는 치료 혹은 치유에 대한 전체주의적인 접근방식을 기초로 한다(Hartley, 2004). 바로 이 점에서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일어나는 배경이 되는 지리적 요소, 특히 마음 혹은 그 너머(무의식)에서 일어나는 환경에 대한 고찰은 응당 주목해야 할 주제가 되는 것이다. Pile(2010b)의 전언처럼, 지금은 정서의 구성, 출현, 그리고 그것의 촉진과 방해 등의 요소에 대해 폭넓게 알아야 하는 때이다. 무엇보다 웰빙의 시공간은 감정적 부분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떤 것이 심리적 혹은 정서적인 부분을 소진시키는지, 어렵게 만드는지, 반대로 긍정적인 활력을 주는 방법과 이유에 대해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Kingsbury, 2010). 마음 혹은 정신의 차원에서 발현되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건강의 문제는 (은유적 표현으로) 마치 생물학적 요인으로 일으키는 질병처럼 개인을 감염시키고, 인구집단 사이에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관한 새로운 탐색과 발견은 이러한 현상이 퍼져나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대책과 같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Andrews et al., 2014),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은 전체를 위한 확장된 차원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음(감정, 심리 등을 포함해)과 실질적인 사회적 맥락(환경)의 무의식적이며, 반사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지리학적 개념을 재정립한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함의를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