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지리학회지. 30 September 2022. 269-284
https://doi.org/10.22905/kaopqj.2022.56.3.10

ABSTRACT


MAIN

  • I. 서론

  • II. 연구지역 및 연구방법

  •   1. 연구지역

  •   2. 연구방법

  • Ⅲ. 광주천 유역의 하계망 변화

  • IV. 광주천 유역의 시기별 변화 과정

  •   1. 자연하천시기(~1920년대 중반)

  •   2. 직강화시기(1920년대 후반~1970년대)

  •   3. 복개시기(1980년대~)

  • V. 광주천 유역의 도시화로 인한 도시 취약성 증가

  •   1. 광주천 유역 홍수 피해의 공간적 분포

  •   2. 광주천 변화에 따른 영향과 복원을 위한 제언

  • Ⅵ. 결론

I. 서론

산업화 이후 하천의 이수 기능과 치수 기능이 오랜 기간 동안 강조되어 왔다. 이에 따라 하천 관리나 복원은 홍수 방지를 위해 하천 제방을 축조하고 하천 유량 배수를 위해 하천이 직선화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다. 더불어 도시화에 따라 도시지역을 흐르는 중소하천은 도시 과밀화 현상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해 복개되었고 이에 따라 자연 하천의 모습은 조금씩 사라지고 도로와 주차장, 건물 등 시가지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하천의 수로를 위한 기능만이 강조되었고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하천의 생태적 기능은 배제되어 왔다.

도시화는 하천 유역의 수문과 퇴적물 공급의 측면에서 변화를 이끌고 이는 하도의 물리적・생태적 손상을 줄 수 있다(Chin, 2006). 도시화는 우선 하천의 수문학적 변화를 야기한다. 도시화에 따라 식생이 제거되며 아스팔트나 타일, 콘크리트 등 불투수층 증가로 강수가 투수되지 않고 바로 유출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첨두 유량의 규모나 빈도를 증가시키고 하도 침식의 주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시가지 확장은 하천 퇴적물에 영향을 주며, 건설 단계에서 퇴적물 공급이 증가하고 지표면이 시가지로 대체되면 퇴적물이 줄어든다(Chin et al., 2013). 도시화에 따른 유량과 퇴적물 이동의 변화를 수문 개조(hydromodification)라고 하며, 이는 하도 침식 그리고 하천 인프라 손상, 수질 저하 등으로 이어진다(Nieto-Lopez et al., 2020).

도시화에 따른 하천의 변화가 홍수 피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정주철 등, 2007; 최충익, 2008; 최열・서만훈, 2013). 대부분의 연구에서 도시의 성장은 홍수 피해를 높이지만 도시화 단계 혹은 각 도시의 상황에 따라 위험성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Savini and Kammerer, 1961). Savini and Kammerer(1961)의 연구에 따르면 도시화 초기에는 시가지 면적의 증가와 첨두유량 증가로 홍수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완성 단계가 될수록 배수 시스템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홍수에 위험성을 낮아진다. 국내 연구에서도 도시 규모가 크고 도시화 정도가 높은 대도시의 경우 최근 피해가 적게 나타나고 하천 개수율이 낮고 토지이용이 늘고 있는 하천 상류부의 경우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김양수 등, 2014; 정관용, 2016).

도시 발달은 유역 내 하계망을 변화시킨다. 하천 주변으로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행되는 하천 직강화는 하계망을 단순하게 만들며, 하도를 사용하기 위해 시행하는 하천 복개는 하계망의 분포를 줄어들게 만든다. 이러한 하계망의 구조적 변화는 수자원 기능에 영향을 주며, 그 결과로 도시 지역 범람을 야기하기도 한다(Zevenbergen et al., 2010). 도시 발달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 도시 하천 하도의 80% 이상이 손실되면서 도시 하천 사막(urban stream desert)이라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Napieralski et al., 2015). 도시화에 따른 하계망 변화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지역에서 이루어졌다(Song et al., 2019). 이러한 연구들은 하계망 구조와 관련된 다양한 지수를 계산하여 계량적인 수치가 도시화에 따라 어떻게 시공간적으로 변화하는가를 주로 관찰하였다.

다양한 연구들 중에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하천의 시공간 변화를 장기간 살펴보는 연구는 많지 않으며, 도시하천 변화의 동인을 정성적인 측면에서 함께 살펴보는 연구 또한 많지 않았다. 더불어 국내에서는 도시화에 따른 하계망의 시공간 변화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박종숙, 1995; 김미령, 2003). 본 연구는 광주천 유역의 유로 변화를 도시발달과 연계하여 파악하고, 이를 통해 광주천의 특성을 고려한 하천 복원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형도를 활용하여 광주천의 하계망 변화를 파악하였다. 더불어 지적도, 도시 계획, 시가지 면적을 고려하여 광주천 유역 변화 과정을 시기별로 구분하였다. 마지막으로 광주천 유역의 하계망 변화로 나타난 홍수 피해 및 복원을 위한 제언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도시발달과 연계해 역사적 관점에서 도시하천의 복원 방향을 설정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I. 연구지역 및 연구방법

1. 연구지역

광주천은 무등산 남서쪽 사면(무등산 장불재 샘골)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를 통과하고, 북서쪽 방향으로 흐르다가 무등산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증심사천, 동계천과 합류한다(광주광역시, 2014a). 이후 용봉천, 서방천, 극락천 등의 지류와 만나면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영산강에 합류된다(그림 1). 광주천은 대동여지도에서 건천(巾川)으로 표기되었고, 극락천이 합류하는 구간에서부터 영산강이 만나는 구간까지를 칠천(漆川)이라고 하였다(최선웅・이상태, 2017). 또한 대동여지도에서 영산강과 광주천이 합류하는 지점은 혈포(穴蒲)라고 하였다(김종일, 2006). 광주천은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일대 증심사천과 합류하는 곳에서부터 영산강과 만나는 구간까지 지방하천이었으나, 2020년 1월 1일부터 하천법 제7조 제2항 제3호 가목에 따라 국가하천으로 관리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광주천 발원지에서부터 증심사천이 합류하는 구간을 상류부, 광주천과 극락천이 합류하는 구간까지를 중류부, 영산강과 만나는 하구까지를 하류부로 구분하였다. 광주천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인공적인 구간이 증가했고, 현재까지 생태적 하천복원 사업이 일부 구간에 실시되고 있으나 광주광역시에서 광주천 복원이 중요한 쟁점으로 논의 중이기 때문에 도시발달과 하천 변화의 관계를 파악하기 적합한 사례 지역으로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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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광주천의 범위와 주요 지점

2. 연구방법

광주천의 하천 지형 변화의 특성을 시공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시기별 하계망을 추출하였고 이를 위해 국립지리원에서 제공하는 1:50,000 지형도를 사용하였다. 이는 사용된 지도의 축적을 일관되게 맞추기 위한 목적이며, 1933년 인쇄된 1:50,000 지형도를 기준으로 모든 시기에서 1:50,000 지형도를 활용하였다. 광주천 유역이 포함되는 범위의 경우 시기별로 발행자에 따라 도엽명이나 도엽경계가 달라진다. 하계망을 추출하기 위해 활용된 지형도는 총 9장이며 각 지형도의 정보는 표 1과 같다. 지도는 최종 수정된 시기를 기준으로 하되 정보가 없을 경우 인쇄된 해로 기술하였다. 1933년 인쇄된 광주, 담양 도엽의 저작권은 조선총독부이며 육지측량부에서 인쇄 및 발행되었다. 지형도에 표기된 제작 연도는 대정6년(1917년) 측도, 소화6년(1931년) 제2회 수정 측도, 소화8년(1933년) 인쇄로 기록되어 있다. 1956년 인쇄된 광주, 담양 도엽은 삼능공업사에서 발행 것으로 단기4289년(1956년) 인쇄 및 발행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63년 초판(응급판)으로 국립건설연구소에서 발행한 광주, 송정 도엽은 1963년 육군측지부대에서 기초자료를 제공하였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면서부터 광주천 유역은 한 장의 지도에 모두 포함된다. 1975년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광주 도엽은 1974년 편집되었다. 1986년 인쇄된 광주 도엽은 같은 해 항공사진과 현지조사가 이루어졌다. 2007년 인쇄된 지형도는 2002년에 촬영하고, 2006년 조사, 2006년 수정 및 편집한 자료이다.

본 연구에서 광주천의 변화 과정을 도시발달과 함께 자연하천시기, 직강화시기, 복개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더불어 복개시기를 중심으로 광주천 유역의 시가지 면적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국가 수자원 관리 종합정보시스템(WAMIS)에서 제공하는 토지피복도를 활용하여 1975년부터 2000년까지 5년 간격으로 광주천 유역의 토지피복 분류별 면적을 계산하였다. 농경지는 토지 피복 분류도에서 논과 밭으로 구분된 지역을 합친 면적이다. 또한 토지 피복 분류도에서 시가지만 추출하여 지도화하였다.

마지막으로 광주천 유역의 하계망 변화로 나타나는 직접적인 영향 중 하나인 홍수 피해를 살펴보았다. 광주천 유역의 홍수 피해의 공간적 분포를 살펴보기 위해 1991년~2020년까지 검색 가능한 과거 신문기사를 통해 홍수 피해의 위치를 파악하고 재해연보(2005, 2015, 2019년)를 통해 피해액의 규모와 시계열 변화 경향을 살펴보았다.

표 1.

하계망 구축에 활용한 지도

도엽 측량 수정편집 인쇄 발행자 축척
광주, 담양 1917 1931 1933 육지측량부 1:50,000
광주, 담양 - - 1956 삼능공업사 1:50,000
광주, 송정 - - 1963 국립건설연구소 1:50,000
광주 - 1974 1975 국립지리원 1:50,000
광주 1986(항공), 1986(조사) - 1986 국립지리원 1:50,000
광주 2002년(촬영), 2006(조사) 2006 2007 국토지리정보원 1:50,000

Ⅲ. 광주천 유역의 하계망 변화

지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지형도(1917년 측량, 1931년 수정측량)를 통해 광주천 유역의 자연하천시기를 살펴 볼 수 있다(그림 2). 광주천 상류부는 무등산 남서쪽에서 발원하여 증심사천과 합류한다. 광주천 중류부는 북서쪽으로 흐르며 광주읍을 지나 동계천과 합류한다. 그림 2의 지도 상에서 광주천 중류 부분과 동계천 일부 점선으로 표기한 구간은 지형도에서 유로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표현된 곳으로 범례에서 토위(土圍)로 표기되어 있다. 동계천은 연지(蓮池)의 남쪽 부분과 물길이 연결되어 있고, 광주천으로 합류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서방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용봉천과 합류하여 광주천으로 유입된다. 이후 광주천은 두 갈래의 유로를 형성하며 곡류하다가 북서쪽으로 흐르던 극락천과 만난다. 광주천 하류부는 여러 갈래의 다중 유로하도(multiple-channel)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분류시스템(distributary system)은 퇴적물량이 많은 충적지 상에 형성되므로 과거 광주천 하류부는 하천의 운반력에 비해 퇴적이 우세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영산강과 만나는 광주천 하구의 여러 유로는 영산강 하류 방향으로 휘어져 들어가면서 만난다. 특히 가장 남쪽에 형성된 유로는 영산강과 거의 평행하게 휘어져 흐르다가 마륵천과 합류하여 영산강으로 유입된다. 마륵천은 현 염주동과 방구동 사이에서 발원하여 운천저수지를 지나 광주천 유로와 만나 영산강에 합류된다. 마륵천은 기존 문헌에서 광주천의 지류에 포함되지 않았지만(양해근・김종일, 2004) 본 연구에서 광주천 유역에 포함시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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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1931년 광주천 유역 하계망

1956년 지형도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직후까지 광주천 본류를 중심으로 한 하천개수상황이 반영되어 있다(그림 3). 1931년 지도에 비해 광주천 유역 내 용봉천과 서방천 상류부의 하계망 밀도가 증가하였다. 이는 실제 하천 상류부 침식력의 증가로 하계밀도가 증가하였는지 고려해 볼 수 있으나, 시기별 지도제작자의 차이와 지도제작 기술의 발전으로 인위적인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류부에서 경양지의 면적은 축소되었고, 동계천과 광주천 중류부에서 여러 갈래의 유로들은 사라지고 단일유로로 표현되었다. 광주천 하류부에 해당하는 유덕동 일대 광주천 하안을 따라 제방이 건설되면서 제외지(堤外地)를 따라 유로가 직강화 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광주천의 분기된 유로 중 하나와 하구에서 합류하던 마륵천의 유로는 광주천과 분리되었다. 따라서 광주천 중류와 하류부에서 전반적으로 본류의 직강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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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1956년 광주천 유역 하계망

1963년 지형도에서는 광주천 상류부의 하계망이 더욱 세밀하게 표현되었는데, 광주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분적산(414.6m)의 동쪽 사면을 흐르는 지류와 소룡봉(404.9m) 북쪽 사면을 흐르는 지류들이 나타난다(그림 4). 중류부는 지도 상에서 큰 변화가 없다. 유덕동 유촌마을과 극락천이 합류하는 계수마을 주변으로 광주천 하류부의 지류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광주천이 유촌교 극락초등학교 일대를 지나면 곡률이 심해지고 홍수 시기에는 많은 퇴적물을 이동시켜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김경수, 2005). 극락천에서 흘러나온 수로는 광주천 제내지에서 광주천과 평행하게 흐르다가 마륵천과 만나 영산강으로 유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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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1963년 광주천 유역 하계망

1974년 광주천 상류부는 1963년 지형도에서 봤을 때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그림 5). 중류부에서는 동계천과 연결되어 있던 경양지가 매립되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광주천 북쪽에 위치한 서방천과 직선으로 연결된 경양지천이 표시되어 있다. 또한 용봉천(삼각천) 양안에 인공제방이 건설되어 직강화된 것을 알 수 있다. 광주천 양동에서 유동 구간(350m)은 1971년 준공되었으나(광주광역시, 2014b), 당시 지형도에서는 복개구간이 표시되지 않았다. 유덕동 영산강 좌안에 제방이 건설되면서 광주천 하류부 북쪽 유덕동 일대는 영산강과 광주천 제방으로 둘러싸이고, 제내지 논농사 지역에 직각상의 인공수로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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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1974년 광주천 유역 하계망

1986년 지형도에는 중류구간에서 광주천과 동계천이 합류하는 부분(양동복개시장)과 서방천 지류가 복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6). 극락천은 1974년과 비교했을 때 곡류하던 하천이 직강화되었고, 일부 구간이 복개되면서 하계망이 단절되었다. 마륵천의 유로인 운천저수지 상류 구간은 사라졌다. 상류부의 하계망은 산지쪽으로 더욱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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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1986년 광주천 유역 하계망

2006년 광주천 유역은 1986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변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7). 광주천 본류와 증심사천, 마륵천 하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하계망이 복개되어 사라졌다. 동계천의 경우 완전 복개되었고 서방천과 용봉천은 상류에 극히 일부만 남기고 대부분이 복개되었다. 서방천 하류 구간의 경우 신안교에서부터 광주천과 합류하기 전까지 일부 구간이 남아 있다. 직강화되었던 극락천도 광주천과 합류되는 하류 일부만 남고, 대부분 복개되어 사라졌다. 현재 극락강 하류 일부도 복개되어 극락강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이로써 광주천 유역은 상류에서부터 영산강으로 유입되기까지 온전히 연결된 유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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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2006년 광주천 유역 하계망

시기별 6개의 지형도를 통해 광주천의 하계망 변화를 살펴본 결과, 이를 자연하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시기, 곡류하던 하천이 직선 형태로 직강화된 시기, 하천이 복개되어 하계망이 단절되는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IV. 광주천 유역의 시기별 변화 과정

광주천은 시간이 지나며 직강화되고, 일부 구간이 복개되면서 하계망은 단순화되고, 단절된 형태를 보인다. 자연하천시기, 직강화시기, 복개시기로 광주의 도시발달과 광주천이 변화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광주천은 1927년 하천정비사업이 시작되었고 이후 인공제방이 축조되고, 직강화를 통해 곡류하던 하도가 사라지고 하폭도 감소하였다. 1971년 양동시장 일대 복개를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는 서방천과 용봉천, 극락천, 동계천 등 많은 광주천 지류들이 복개되면서 광주천 유역은 큰 변화를 겪어 왔다. 이는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나타난 광주광역시 도시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 자연하천시기(~1920년대 중반)

자연하천시기의 광주천 유역은 상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곡류하며 흐르다가 하류부에서 여러 갈래로 흐르는 유로가 나타나는 망류하천이었다. 광주천 중류부는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1915년 생산한 지적원도를 통해 유로를 자세히 확인하였다. 광주천과 서방천이 합류하는 구간까지 1931년 1:50,000 지도에서 유로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고, 광주천과 동계천이 합류하는 일대는 광주읍이 발달해 있어 대축척 지도에서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광주천과 서방천이 합류하는 구간은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신안리(현재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임동 일대)에 해당하는 국가기록원의 지적원도(1915년) 20장을 합쳐 광주천의 물길을 확인하였다(그림 8). 신안리 일대는 광주천이 서방천과 합류하는 구간이다. 지형도(그림 8, 좌)에서 두 갈래로 흐르는 지류 중 북쪽으로 흐르는 부분은 지도 상 신안리(新安里) 지명 때문에 수계의 합류가 불분명하나 지적원도를 확인한 결과 구(溝)로 표시된 도랑이 마을을 지나 서방천으로 흘러든다. 남쪽의 지류는 지형도(좌)에서 하폭이 넓은 모래사장으로 표현된 유로로 지적원도에서 천(川)으로 표시되어 광주천의 넓은 본류구간임을 확인하였다. 지형도에서 태봉산 남쪽으로 길게 표현된 토위(土圍)도 지적원도에서 동계천과 연결된 도랑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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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신안리(현재 신안동, 임동) 일대 유로((좌)1931년 1:50,000지형도, (우)1915년 지적원도에서 유로만 작성)

그림 9의 광주천과 동계천이 합류하며 광주읍이 형성된 지역은 광주도시계획사의 1915년 지적원도를 활용해 작성된 수계를 참고하였다(광주광역시, 2014b, 54). 지형도에서 연지(蓮池)는 남북으로 긴 형태의 호수로 넓은 습지가 표현되어 있다. 연지(蓮池)를 부르는 이름은 경양호(景陽湖), 경호(鏡湖), 서방지(瑞坊池) 등 다양하다(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 2018). 지적원도 상 호수인 지(池)의 경계는 습지를 포함하여 넓게 나타난다. 호수의 수위가 낮을 때는 넓은 습지가 드러나고, 만수위 시 습지까지 수위가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양방죽에는 지형도 범례 상 활엽수가 분포하는 것으로 표시되어있다. 실제 경양방죽에는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 2018). 광주천으로 흘러드는 동계천도 지적원도 상에서 유로가 확인되고, 광주읍성을 따라 해자(垓字) 및 복잡한 수로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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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광주읍 일대 유로((좌)1931년 1:50,000지형도, (우)1915년 지적원도(출처: 광주광역시, 2014b))

1920년대 중반까지 광주천 유역은 상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곡류하며 흐르다가 여러 지류하천과 합류하여 하류부에서 여러 갈래로 흐르면서 분기되고, 망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당시에도 지적도 상 광주읍 일대는 하천수를 이용하기 위해 광주읍과 마을 주변으로 복잡한 도랑이 개설되어 있었고, 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농수로도 평야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특히 연지를 활용하여 광주천과 동계천 유량을 확보하고, 광주읍 및 평야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데 하천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직강화시기(1920년대 후반~1970년대)

일제강점기 때 하천개수사업(1926년)으로 제방을 축조하고 광주천이 직강화되고, 광주면 시내 하수구 정비사업(1926년)을 시작한 19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자연하천시기에서 직강화시기로 구분하였다(광주광역시, 2014b). 이를 통해 현재 사직공원 앞 남구 사동에 있는 금교에서 양동시장 일대까지 광주천 하도가 축소되고 직강화되어 확보된 부지에 천변도로와 상가를 비롯한 여러 시설이 건설되었다. 1930년 하천개수 후 모습을 보면 과거 자연스럽게 사행하던 광주천의 모습과 사질로 이루어진 하천 퇴적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황영산, 2015). 또한 광주면은 1926년부터 1929년까지 시내 하수구 정비 사업을 시행했다. 이때 조선시대부터 광주읍성 안팎에 수로들이 하수구로 전환되었다(광주직할시, 1993). 1930년대에는 대인동 일대에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대규모 택지 조성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이에 따라서 1939년 경양지(연지)의 원래 면적 가운데 약 4만 평이 매립되었고, 1940년에는 대부분 대지로 지목이 변경되었다(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 2018). 광주천하천부지 매립 사업(1936년), 광주천 개수공사와 광주천 하천재해복구공사(1937년), 광주천 수선공사(1939년), 광주천 방수 사업(1942년) 등으로 인해 광주천은 지속적으로 인위적인 변화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광주광역시, 2014b).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광주천 본류의 상당 부분에서 하천개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직강화되고 매립된 하천부지는 매각되어 택지로 조성되었다. 해방 후 경양지(연지)는 1967년 매립사업을 시작하여 1968년 매립이 완료되었다(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 2018). 이후 도시화로 시가지가 확장되고 광주천 본류에서 지류까지 직강화가 이루어졌다. 1985년에 광주천의 하천 개수율은 이미 96.1%에 달했다(광주직할시, 1985).

3. 복개시기(1980년대~)

광주광역시 주요 복개하천 현황에 대해 최재완(2004)의 연구 자료를 참고하였다. 1971년 준공된 광주천 중류부 양동복개상가를 제외하면 광주천 유역의 대부분 지류하천들이 1987년부터 1997년까지 복개되었기 때문에 198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복개시기로 볼 수 있다. 광주천 양동에서 유동 구간 약 300m 구간을 상가와 도로 부지 확보를 목적으로 복개하였다(1971년). 이후 1980년대 하천복개가 가속화되어 1987년 서방천의 오치동에서 임동 구간, 극락천의 봉선동에서 광천동 구간과 경양지천 계림동에서 용봉동 구간이 도로 건설을 위해 복개되었다. 1997년에는 동계천의 지산동에서 유동 구간, 용봉천의 일곡동에서 임동 구간, 학림천의 월출동 일대, 진원천의 비아동 일대, 두암천의 두암동 일대, 오치천의 오치동 일대가 복개되었다. 마륵천의 서구 마륵동 일대는 도로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만 복개되었다. 따라서 이때 복개된 하천 지점은 15개이며 복개구간의 길이는 37,461m이다(김종일, 2006).

시가지 면적 변화를 하계망 위치와 함께 보기 위해 복개 전 하계망을 기준으로 살펴보았다(그림 10). 시가지 면적 변화율을 보면 1975년에서 1980년 사이 가장 급격한 증가율을 보였고, 1985년과 1990년 사이 두 번째로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표 2그림 11). 1910년대 광주천의 시가지 면적은 0.079㎢로 주로 구도심인 충장로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분포하였다(조정규, 2002). 1975년에는 광주광역시 구도심이 위치하고 있는 광주천과 동계천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분포하고 있다.

1980년에는 시가지가 동쪽에서 서쪽, 광주천 하류 방향으로 급격히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75년에서 1980년 사이 시가지 면적은 11.16㎢에서 24.34㎢로 분석 시기 중에서 가장 급격한 증가를 보인다. 이 시기에 광주광역시 북구 본촌공단(약 28만평)이 개발되고, 1976년 운암동에서 용봉동 및 중흥동까지 제4토지구획정리지구(2.0㎢) 등 주거지 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때 광주역 중심의 신시가지가 완성되었다(광주광역시, 2014a). 1977년에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광주에서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면서 건설 붐이 일어났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전국적으로 도시의 인구 성장이 계속되었고 따라서 광주에서도 시가지 정비와 확장이 나타났었다. 1986년에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광주시에서 광주직할시로 승격하였다. 이후 1990년에 시가지 면적(33.46㎢)이 눈에 띄게 늘었다(표 2). 1990년에 서방천과 용봉천, 극락천 방향으로 시가지가 크게 확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개발되었던 북구 제5지구(동강대북쪽)와 제6지구(무등도서관 북쪽)에 이어서 호남고속도로 개통으로 개발된 제7지구(전남대학교 북서쪽), 제8지구(오치동 한국전력 부근)와 관련되어 있다(광주광역시, 2014a). 또한 1990년대 문흥지구, 일곡지구, 풍암지구 등 많은 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하여 시가지 확장이 이루어졌다. 2000년도까지 시가지 확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면적이 꾸준히 증가하였다.

정리하면 광주천과 동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는 1980년까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광주천을 따라 하류방향으로 확장되었다. 1975년부터 1980년대 까지 유역면적 내 시가지 면적 비율은 9.9%에서 21.58%로 가장 급격한 증가를 보인다. 1980년 이후 시가지는 2000년까지 광주천에서 남북방향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데, 광주천에서 북쪽에 위치한 용봉천과 서방천, 남쪽에 위치한 극락천은 이 시기에 복개되었다. 광주에서 시가지 확장과 관련된 토지 이용 변화는 하천 복개로 인한 하계망 단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7그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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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광주천 유역 시가지 면적 변화(1975~2000년, 출처: 국가수자원관리종합정보시스템 토지피복도)

표 2.

광주천 유역의 토지피복 분류별 면적(단위: ㎢)

토지피복 1975 1980 1985 1990 1995 2000
시가지11.16
(9.9%)
24.34
(21.58%)
24.88
(22.06%)
33.46
(29.66%)
38.53
(34.16%)
40.17
(35.61%)
수역 0.05 0.05 0.26 0.51 0.32 0.09
나지 3.51 6.92 5.16 3.83 2.89 4.25
습지 0.06 0.06 0.01 0.00 0.01 0.02
초지 13.20 6.22 1.36 2.18 1.13 1.01
산림 55.67 52.02 49.13 56.13 49.32 47.59
농경지 29.16 23.19 32.00 16.68 20.60 19.67
합계 112.80 112.80 112.80 112.80 112.80 1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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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유역면적 내 시가지 면적 변화(단위: %)

V. 광주천 유역의 도시화로 인한 도시 취약성 증가

광주광역시의 도시화 과정에서 광주천 유역의 하계망은 큰 변화를 겪었는데 현재까지 서방천, 용봉천, 극락천, 마륵천 등 많은 하천의 일부 구간이 복개되어 사라졌으며, 광주천 본류 구간 역시 양동복개상가로 인해 단절된 유로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광주천 하계망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홍수 피해이다. 광주천 유역의 홍수 피해를 신문기사(1991년~2020년)와 재해연보(2005, 2015, 2019년)를 활용해 살펴보았다.

1. 광주천 유역 홍수 피해의 공간적 분포

과거 1991년에서 2020년까지 신문기사를 통해 광주천 일대 홍수 피해 지역의 공간적 분포를 확인하였다(그림 12). 광주천 유역 내 복개되기 전 하계망과 홍수 피해 지역의 공간적 분포를 함께 확인하였다. 각 지류 구간을 따라 홍수 피해를 살펴보면 동계천 복개 구간에 해당하는 산수동 굴다리 지역이 1991년 수해 피해를 입었으며, 동계천과 광주천 본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금남로4가역이 잠기는 피해가 2004년에 있었다. 용봉천 복개 구간에서 2004년 용봉동 일대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서방천 복개 구간에 해당하는 북구청 광장에서 2004년, 신안교 일대에서 복개 직후인 1997년 그리고 최근 2020년에 피해가 있었다. 그리고 서방천이 복개하기 전인 1991년 용봉초등학교 일대에서 홍수 피해가 있었다. 극락천 복개 구간에 해당하는 무등시장 일대와, 백운광장, 서석고 일대, 광천사거리에서 2004년 홍수 피해가 있었다. 또한 농성동 농성지하차도에서는 1997년, 2004년, 2005년에 침수 피해를 입었다. 광주천 본류와 중류 구간에 위치하고 있는 남광주역(2003년), 양동시장 일대(2004년, 2005년, 2009년, 2020년), 양동교 일대(2008년과 2010년), 임동 공영주차장(1997년), 광천2교(2014년)에서 침수 피해가 나타났고 이들 지역은 광주천 유역의 다른 지점과 비교했을 때 자주 침수되는 지역에 해당한다. 하류 구간인 동남아파트(2004년), 극락초교 근처(1993년과 2004년), 광주시청(2004년) 등이 과거 피해를 입었다. 복개된 마륵천에 해당하는 마륵동 상무화훼단지에서 2004년 홍수 피해가 나타났다. 신문기사로 살펴본 광주천 유역의 홍수 피해 지역은 주로 하천이 합류하는 구간에 해당하며 이러한 지역에서 주로 홍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면 복개된 동계천과 광주천이 합류하는 양동복개상가 일대, 용봉천과 서방천이 합류하는 구간(신안교 일대), 서방천과 광주천이 합류하는 구간(임동 일대)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복개된 극락천의 지하차도 일대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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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광주천 유역의 홍수 피해 지역(1991~2020년)

2. 광주천 변화에 따른 영향과 복원을 위한 제언

신문기사로 살펴본 광주천 유역의 홍수 피해 지역은 복개된 하천 구간 또는 복개된 하천과 광주천과 만나는 구간에서 자주 발생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자연재해는 태풍과 호우에 의한 홍수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이승호・이경미, 2008). 광주광역시 2005년과 2015년, 2019년 재해연보 자료를 기초로 작성한 자연재해 피해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광주광역시 자연재해 피해의 시계열 변화를 살펴보면 1999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12년에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3). 과거 1989년 7월 25일에서 7월 28일 동안 광주지역에는 495.0mm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내렸고 21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6,775세대 24,114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99년에는 태풍 올가로 인해 피해가 컸으며 주로 7월 23일부터 8월 4일 동안 피해가 나타났다. 피해액은 대략 1,650억 원으로 나타났다. 2002년에는 태풍 루사(8월 30일 - 9월 1일)에 의한 피해로 피해액이 961억 원이었다. 2004년에는 태풍 메기에 의한 피해로 광주에서 이때 최대일강우량이 322.5mm로 1442억 원의 피해가 나타났다. 가장 큰 피해는 2005년에 나타났으며, 최대일강우량이 382.0mm로 광주 지역에 강수가 집중되었고 피해액이 3,005억 원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2012년의 경우 태풍 신바에 의한 피해로 대략 1,693억 원의 피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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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1996~2019년 광주광역시 자연재해 피해액(단위: 천원)
(출처: 2005년, 2015년, 2019년 재해연보(행정안전부, 2006, 2016, 2020)를 기초로 작성))

광주광역시의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홍수 피해 지역이 집중된 복개 하천 구간에 대한 관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광주천과 동계천이 합류하는 양동복개상가 구간과 용봉천과 서방천이 복개되어 합류하는 신안교 일대, 서방천과 광주천이 합류하는 임동 일대는 빈번한 피해를 입고 있으므로 복원이 시급한 지역으로 고려된다. 임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건설된 전남・일신방직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 대한 복원계획을 수립할 때 홍수 피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임동 구간은 과거 광주천이 서방천과 합류하고 있었다(그림 8). 임동 일대 구유로를 참고하여 홍수 시 서방천과 광주천의 유량을 조절할 수 있는 저수로를 조성하거나 습지를 조성하여 이 구간에서 자연적 하천 복원이 필요하다. 자연 하천 시기 광주천에서는 여러 지류와 수로, 습지가 발달했었다(광주광역시, 2014b). 복개 구간의 복원을 통해 홍수 피해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고, 광주천의 유로 연결성을 회복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도시화로 인해 광주천 유역의 동계천, 서방천, 용봉천, 극락천, 마륵천 등 대부분이 복개되어 광주천 본류만이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마저도 양동복개상가로 인해 하천 연결성이 떨어지고 있다. 광주천변에서 있던 장시는 조선왕조후기에 발달한 것으로 그 역사가 깊은 곳이다. 매월 음력 2, 7일에 서는 큰 장과 4, 9일에 서는 작은 장이 있었는데, 둘 다 광주천의 유역변경으로 형성된 모래밭 위에 열렸다. 읍성(邑城)의 진산(鎭山)인 무등산이 수령의 영역이었다면 장터로 이용되기도 하였던 광주천은 읍민의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광주직할시, 1993). 갑오경장 무렵, 성 밖 천변에 큰 장과 작은 장이 번갈아 서고, 그 주변에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광주시민과 함께한 유서 깊은 광주천변 장시의 전통을 이어나기 위해서는 광주천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광주천 전통 장시에 관한 홍보나 행사 운영 등이 필요하며 특히 양동복개상가와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 하천 복원과 더불어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하천 복개는 도심의 수변공간을 축소시키고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녹지 공간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미기후 측면에서 영향을 주어 도심 기온 상승으로 이어진다. 광주지역의 여름철 열섬현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하천 복개구역(평균 24.2°C)과 도심하천구역(평균 23.6°C), 수변구역(평균 22.2°C)의 기온이 각각 0.6°C, 2.0°C 정도 차이를 보였다(박석봉, 2004). 광주광역시에서는 1980년 전까지 평균기온의 변화가 크게 없었지만 1980년과 1990년 사이에 약 0.8°C 상승하였고 200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 기온이 1°C 정도 상승하였다(광주광역시, 2014a). 이러한 기후변화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이자원, 2010). 지구온난화 완화 및 적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위한 방안으로 자연기반해법(Natural-based Solution)이 강조되고 있다(Kabisch et al., 2017). 도시 하천 복원을 통해 생태계서비스를 강화하는 시도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천은 도심의 막대한 열을 저장할 수 있는 열 흡수원이기 때문에 도심의 높은 온도를 낮추는 냉각효과가 있다. 따라서 광주천 복개 지역에 대한 복원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Ⅵ. 결론

기존 식생복원, 수질개선, 친수공간으로서의 이용에 치우친 도시하천 복원과 더불어 하천지형의 관점에서 생태・환경적 복원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본 연구는 도시발달에 따른 광주천 하계망의 시공간 변화와 요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1931년부터 2006년까지 1:50,000 지형도를 활용해 하계망도를 작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광주천 유역의 하계망 변화를 자연하천시기, 직강화시기, 복개시기로 구분하였다.

자연하천시기 광주천 유역은 상류부에서 하류부까지 여러 지류와 합류하며 영산강으로 유입된다. 하류부는 다중유로(multiple-channel)를 형성하며 퇴적물이 풍부한 충적지를 망류하였다. 광주천 하류부의 여러 유로 중 가장 남쪽의 유로는 마륵천과 극락교에서 합류하여 영산강으로 유입되었다. 중류부는 지적원도(1915년)를 통해 광주천과 서방천이 합류하는 신안리(현재 신안동과 임동)의 하계망 지도를 작성하였고, 광주천이 서방천과 합류하는 부분에서 두 갈래의 물길이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광주읍 북쪽에 위치하는 연지(경양지)는 광주천, 동계천과 연결되어 있어 인근 지역의 유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광주읍과 평야 지대에는 수로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어 하천수를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로 활용했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직강화시기 광주천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광주도시계획사와 광주시사, 논문, 지형도 등을 참고하여 직강화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았다. 광주천 본류 구간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하도 직강화와 관련된 하천개수 사업(1926년)이 이루어졌다. 경양지(연지)는 1939년 일부 매립되어 대지로 변경되었으며, 1968년 완전히 매립되어 사라졌다. 이후 광주천 유역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광주천의 지류도 직강화되었다.

복개시기에는 토지피복도를 활용해 광주천 유역의 시가지 면적 지도를 작성하여 공간적 변화를 확인하였다. 도시화 초기 광주천과 동계천이 합류하는 일대에 광주읍이 발달해 있었다. 이후 1970년대까지 광주 시가지가 광주천변 본류를 따라 하류 방향으로 발달하면서 시가지 면적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광주천에서 북쪽 방향인 용봉천과 서방천, 남쪽 방향인 극락천과 미륵천 방향으로 시가지 면적이 확대되었다. 북쪽과 남쪽 방향으로 시가지가 확대되는 이 시기를 거치며 용봉천, 서방천, 극락천, 미륵천 등 지류 하천 대부분이 복개된다. 광주천 발원지에서부터 증심사천이 합류하는 광주천 유역 상류부만이 과거의 하계망을 유지하며 남아있다.

최근 홍수 피해 지역의 공간적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신문기사(1991~2020년)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복개 전 광주천 유역의 하계망도와 피해의 관련성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 하천의 합류부에서 홍수 피해가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수집된 과거의 하계망과 유로는 추후 하천 복개 지역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도시발달과 연계해 역사적 관점에서 광주천 유역의 복원 방향을 설정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추후 본 연구를 바탕으로 다른 대도시의 사례지역을 추가하여 우리나라의 도시발달과 하계망 발달에 관한 후속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부록

부록 1.

광주천 유역 홍수 피해에 대한 신문 기사 목록

날짜 신문사 제목 장소
1 1991.07.10 연합뉴스 호우주의보속 농경지,도로등 침수피해 산수동 굴다리 지역, 용봉초등학교 일대
2 1993.07.12 연합뉴스 光州 全南 곳곳 집중호우 피해 극락초교 근처
3 1997.08.10 연합뉴스 호우경보속 진도 최고 84㎜ 비 내려 임동 공영주차장, 신안교 일대, 농성동 농성지하차도
4 1998.08.18 연합뉴스 광주.전남 비로 1억8천여만원 재산피해 동구 용산동 광주천 주변
5 2003.12.12 뉴시스 광주지하철 배수 시설 부실 시공으로
침수사태 ‘빈번’
남광주역
6 2004.08.18 뉴시스 태풍 ‘메기’영향 광주・전남 비피해 속출 광주시청, 광주지하천 금남로 4가 역사, 서구 농성지하차도,
광천사거리, 북구청 앞 광장, 북구 두암동 밤실마을 인근,
남구 주월동 무등시장 뒷편, 서구 마륵동 하훼단지,
서구 유덕동 동남아파트, 동구 광주천 고수부지 및
천변주차장
7 2004.08.19 SBS [태풍 피해]광주는 물바다 광주시청
8 2004.08.20 노컷뉴스 수해주민 외면한 수해지역 방문 서구 유덕동 동남아파트
9 2005.05.30 세계일보 광주 상습침수지 또 물난리 우려 동구 지원 2동 소태천 소태골 일대, 남구 백운광장,
무등시장 주변, 서구 유촌동 극락초등학교, 북구 석곡동 및 동림동,
광산구 신가동 극락강 주변, 운남동 배수문 주변,
신총동 신야촌 마을, 신창동 반촌마을,
서구 화정동 서석고 주변, 북구 용봉동 일대
10 2005.07.02 연합뉴스 광주・전남 비 피해 발생 북구 운암동 운암지하차도, 서구 농성동 농성지하차도,
서구 양동 광주천변 주차장
11 2005.10.27 한겨레 뚜껑 덮인 광주 하천, 숨통 틔워주자 북구 신안교 일대
12 2008.08.09 KBC 광주, 예고없던 '물폭탄'…뒷북대응 피해 속출 광주천 양동교 일대
13 2009.07.16 연합뉴스 '또 물폭탄' 광주・전남 피해 속출 서구 양동 광주천 일대
14 2009.08.06 뉴시스 환경련 광주천 인공구조물이 홍수피해 키워 광주천 일대
15 2010.08.17 연합뉴스 광주전남 호우특보..주택침수 등 피해속출 광주천 양동교 일대
16 2013.07.05 데일리안 남부지역 '물폭탄' 장마 폭우로 피해 잇따라 서구 광천동 광주천 일대
17 2014.07.19 뉴시스 화순 280㎜ 전남 물폭탄… 광천2교
18 2020.08.07 매일경제 10년간 물난리 300번 겪고도
수해 참사 부른 3대 인재
광주천 양동교 일대
19 2020.08.08 뉴시스 호우・산사태로 인명 피해 눈덩이…
이재민 2656명
서구 양동시장 태평교 일대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B5A0710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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